'거미집'에서 라이징스타 한유림 역 맡아 열연
"차가운 이미지 나쁘다고 생각 안 해…오히려 장점"
가수 겸 배우 정수정이 영화 '거미집' 개봉을 기념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H&엔터테인먼트 |
정제되지 않은 스타는 어떤 모습일까. 연예계는 대중의 관심을 받는 스타도 많고, 이들을 팔로우하는 매체도 많다. 모처럼 인터뷰가 잡혀도 단독으로 대면하는 경우가 드물다. 다수의 매체 기자가 함께 인터뷰를 하다 보니 내용도 비슷하다. 심지어 사진이나 영상마저 소속사에서 만들어 배포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런 현실에서도 <더팩트>는 순수하게 기자의 눈에 비친 느낌을 가공하지 않은 그대로의 모습으로 전달한다. <편집자 주>
[더팩트|박지윤 기자] 그룹 f(x)(에프엑스) 멤버 크리스탈이자 배우 정수정의 이름 앞에는 여전히 비슷한 수식어가 붙는다. 실제로 만난 정수정은 작은 얼굴에 꽉 찬 이목구비, 긴 생머리로 그동안 봐왔던 익숙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하지만 이 느낌이 반전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여전히 도도하고 시크한, 얼음 공주 같은 자태였지만 그 안에는 예상치 못한 귀여움과 따뜻하고 솔직한 내면이 자리 잡고 있었다.
정수정은 지난달 27일 스크린에 걸린 영화 '거미집'(감독 김지운)에서 라이징스타 한유림 역을 맡아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개봉을 앞둔 지난 22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위치한 카페에서 <더팩트>와 만난 그는 작품에 관한 이야기부터 배우와 가수 활동에 대한 생각까지 허심탄회하게 털어놨다.
정수정은 '거미집'에서 라이징스타 한유림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바른손이앤에이 |
'거미집'은 1970년대, 다 찍은 영화 '거미집'의 결말만 다시 찍으면 걸작이 될 거라 믿는 김감독(송강호 분)이 검열, 바뀐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배우와 제작자 등 미치기 일보 직전의 악조건 속에서 촬영을 밀어붙이며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다. 한유림은 영화 속 영화 '거미집'의 젊은 여공 역을 맡은 주연 배우로, 결말을 다시 찍어야만 하는 김감독의 애를 태우다 마지막으로 재촬영에 합류하는 인물이다.
정수정은 1970년대 말투부터 스타일링까지 완벽하게 재현하며 안정적인 연기력을 보여줬고, 김지운 감독의 믿음에 보답하며 찰떡같은 캐스팅임을 증명했다. 또한 '거미집'으로 제76회 칸 국제영화제에 참석하며 배우로서 영광스러운 순간도 만끽했다.
작품을 준비하면서 어려운 점도 많았지만, 촬영 현장만 가면 자연스레 그 시대와 동기화됐다는 정수정은 "유림이처럼 '감독님 저 힘들어요. 가야돼요'라고 말할 수는 없어요(웃음). 주어진 걸 해내야 하는 성격은 비슷해요. 연기 열정도, 뚜렷한 목표가 있는 것도 닮았어요"라고 캐릭터를 향한 애정을 드러냈다.
특히 정수정은 송강호 오정세 임수정 전여빈 등 내로라하는 배우들 사이에서 밀리지 않는 존재감을 발산하며 안정적으로 극의 한 축을 담당한다. 앞서 그는 "대사 한 줄만 있어도 참여하고 싶었다"라고 의지를 내비쳤는데, 이들과 호흡을 맞춰보니 어땠을까. 정수정은 "영화 한 장면을 보는 기분이었죠"라고 회상했다. 그리고 말을 이어가는 그의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송강호 선배의 애드리브를 보면서 감탄했어요. 정세 오빠는 아이디어 뱅크였고요. '정세 오빠가 잘생겨 보인다'라고 할 정도로 캐릭터랑 찰떡이었어요. 수정 언니랑 붙는 신이 많아서 이것저것 편하게 물어봤죠. 여빈 언니랑 첫 촬영이 싸우는 장면이었는데, 100% 에너지를 쏟으면서 리허설하니까 주변에서 말릴 정도였어요(웃음). 촬영 들어가면 앙칼지게 싸우다가 컷 소리 나면 서로 챙겨줬어요. 다 특별했죠."
'거미집'으로 칸 국제영화제에 참석한 정수정은 "정말 새롭고 신선했다. 즐기려고 많이 노력했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H&엔터테인먼트 |
2009년 f(x)의 크리스탈로 데뷔한 정수정은 2010년 MBC '볼수록 애교만점'으로 연기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드라마 '상속자들' '슬기로운 깜빵생활' '써치', 영화 '애비규환' 등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오가며 탄탄한 필모그래피를 구축했다. 특히 정수정은 아이돌 시절 고수했던 긴 머리를 싹둑 자르는가 하면, 임산부 역할도 마다하지 않으며 크리스탈로서 쌓았던 이미지에 갇히지 않는 유의미한 행보를 펼쳤다.
"파격적인 변화에 별로 영향을 받지 않는 것 같아요. 당연히 이런 것도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서 두려움이 없는 편이죠. 안 해봤던 장르를 해보고 싶어요. '애비규환'도 임산부라는 캐릭터 이전에, 글이 재밌어서 한 거에요. 제가 소화할 수 있거나 캐릭터가 매력있으면 하는 것 같아요. 멜로나 휴먼도 해보고 싶어요."
그런가 하면 이날 정수정은 가수 크리스탈의 행보도 언급했다. 매 앨범 유니크한 콘셉트를 내세웠던 f(x)는 'NU ABO(누 에삐오)' '첫 사랑니' 등 수많은 히트곡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 가운데 정수정은 당시 기자를 포함한 주변 사람들의 배경 화면이었고, 테니스 스커트와 흰 운동화 등 그의 모든 패션이 트렌드가 되며 '여덕(여성 덕후) 최강자'로 불렸다.
하지만 16세에 데뷔한 크리스탈은 2015년 발매된 4번째 정규 앨범 '4 Walls(포 월즈)'를 마지막으로, 무대에 오르지 않고 있다. 당시 그의 나이가 22세였던 것을 감안하면 꽤 이른 나이에 본업을 멈추게 된 셈이다. 이에 정수정은 "그게 마지막이 될 줄 몰랐어요. 지금 생각하면 아름다웠던 마무리 같기도 해요"라고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다시 모이고 싶어 하는 마음은 있는데 다들 한국에 없어서 현실적으로 어렵죠. 다른 그룹들이 모이는 걸 보면 뭉클해요. 가수는 제가 안 하고 싶은 건 아니에요. 타이밍이 안 맞거나 곡이 아쉽거나 등 이런저런 이유로 늦춰지다가 이렇게 됐죠. 할 수 있는 걸 계속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아예 생각이 없거나 놓은 게 아니에요. 시대도 많이 바뀌었잖아요. 두 가지 다 할 수 있는 건 어드벤티지죠. 기회가 되면 하고 싶어요."
정수정은 "낯설다는 건 곧 신선하다는 거다. 그게 '거미집'의 매력"이라고 많은 관람을 독려했다. /H&엔터테인먼트 |
올해로 데뷔 14주년을 맞이한 정수정은 어느새 30세가 됐다. 데뷔 때 앳된 얼굴은 그대로지만, 여전히 대중들이 '얼음 공주'로 바라보는 것이 아쉽지 않냐는 질문에 "제 이미지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런 캐릭터가 저와 잘 어울리면 제가 할 수 있으니까 또 좋은 점이죠. 제 장점이 될 수 있잖아요"라고 대답하는 그를 보며 오랫동안 경험치를 쌓아 올린 걸 알 수 있었다.
끝으로 정수정은 '낯설다는 건 곧 신선하다는 것'이라고 '거미집'만의 매력을 언급하며 많은 관람을 독려했다. 그는 "저도 1970년대를 경험하지 않았지만 옛것을 좋아해요. 저와 비슷한 사람이 분명히 있을 거고요. 새로우니까 재밌을 수 있죠. 여성 캐릭터가 다 독립적이라는 점에서 공감하는 분도 계실 것 같아요"라고 덧붙였다.
'거미집'은 정수정의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매력을 볼 수 있는 작품이다. 대선배들 사이에서 결코 밀리지 않으며 연기를 잘한다는 인식을 다시금 심어주고, 그의 필모그래피 중 비주얼적으로 회자될 것 같기 때문이다. 늘 예상을 깨는 도전으로 독보적인 캐릭터를 구축했던 정수정은 자신의 이미지를 이용하면서도 절대 갇히지 않는 영리한 행보로 더 넓게, 더 멀리 뻗어갈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