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집' 김열 감독 역 맡아 열연
"'거미집'은 영화만이 가질 수 있는 에너지와 매력이 있는 작품"
배우 송강호가 영화 '거미집' 개봉을 기념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바른손이앤에이 |
[더팩트|박지윤 기자] "저에게 영화란 정답이 아닌 정답을 찾는 것 같아요."
다소 철학적인 답변에 정적이 흘렀다. 마치 대학생이 교수님의 첫 강의를 듣는 것처럼 고개만 끄덕였다. 이후 여러 번 곱씹고 나서야 말의 뜻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올해로 데뷔 33년 차를 맞이한 송강호는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배우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치열하게 고민하고 의심하고 있었다. 그렇게 '정답 아닌 정답'을 찾는 여정이 그에게 곧 영화 그 자체가 됐다.
송강호는 지난 27일 스크린에 걸린 '거미집'(감독 김지운)에서 다 찍은 영화 '거미집'의 결말만 다시 찍으면 걸작이 나올 거라는 집념 하에 재촬영을 감행하는 김열 감독 역을 맡아 열연을 펼친다. 개봉을 앞둔 지난 18일, 송강호는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위치한 카페에서 <더팩트>와 만나 작품에 관한 이야기부터 연기관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송강호는 다 찍은 영화 '거미집'의 결말만 다시 찍으면 걸작이 나올 거라는 집념 하에 재촬영을 감행하는 김열 감독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바른손이앤에이 |
'거미집'은 1970년대, 다 찍은 영화 '거미집'의 결말만 다시 찍으면 걸작이 될 거라 믿는 김감독이 검열, 바뀐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배우와 제작자 등 미치기 일보 직전의 악조건 속에서 촬영을 밀어붙이며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다.
모든 작품은 관객의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기 마련이다. '거미집'도 예외는 아니다. 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송강호가 가장 자신한 지점은 OTT를 포함해 콘텐츠가 넘쳐나는 상황에서 영화만이 가질 수 있는 에너지와 매력이 '거미집'에 가득한 것. 이는 송강호가 작품을 택한 이유가 되기도 했다. 그는 "이런 게 그리웠어요. '거미집'이 대중적이지 않을 수 있지만, 영화의 매력이 흠뻑 담겨 있거든요. 결과는 나중 문제죠"라고 전했다.
영화 속 영화 '거미집' 촬영 현장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에피소드가 콩트 같기도 했지만, 작품이 끝났을 때 '영화의 메타포, 상징은 무엇인가'라는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지점이 송강호에게 크게 와닿았다.
그는 "피상적으로 보이는 인간의 욕망 속에서 허우적대는 수많은 인간 군상을 통해 결국에는 영화가 끝났을 때, 또 우리 실제 영화가 끝났을 때 결국 '영화의 상징은 무엇인가'라는 게 참 좋았어요"라며 "이게 '거미집'만이 가진 강렬한 맛이죠. 괴기스럽지만 유쾌한 장르예요. 종합선물세트죠"라고 자신했다.
송강호는 "'거미집'은 영화의 매력이 흠뻑 담겨 있는 작품"이라고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바른손이앤에이 |
송강호는 '조용한 가족' '반칙왕'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밀정'에 이어 '거미집'으로 김지운 감독과 다섯 번째 협업을 이뤘다. 약 25년 동안 알고 지냈지만, 송강호가 바라본 김지운 감독은 늘 한결같았다. 특히 김지운 감독이 갖고 있는 근본적인 집요함과 진중함이 좋다는 그는 "그게 있기 때문에 김지운 감독이 갖고 있는 스타일과 영화 미장센이 완성되거든요. 그때와 달라진 건 산업적인 시스템뿐이죠"라고 두터운 믿음을 드러냈다.
극 중 김열은 다 찍은 영화 '거미집'의 새로운 결말에 영감을 주는 꿈을 반복해서 꾸고, '이걸 그대로 찍으면 걸작이 되지만 알고도 무서워 그대로 둔다면 평생을 후회 속에 살 거야'라며 재촬영을 감행한다. 그렇다면 김열 감독은 각고의 노력을 들여서 다시 찍은 '거미집'이 만족스러웠을까. 미묘한 표정으로 엔딩을 장식하며 관객들에게 짙은 여운을 남긴 송강호 또한 "그건 아무도 알 수 없어요. 아마 복잡한 심경이었을 것 같아요"라고 덧붙였다.
"정말 마음에 드는 영화가 탄생한 건지, 아니면 또 다른 야망 때문에 미진한 건지 알 수 없어요. 그 표정이 가장 키 포인트에요.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어요. 그래서 저도 영화를 볼 때마다 다르게 보여요. 어떨 때는 행복한 것 같다가도 또 불만스럽게 느껴지기도 하거든요."
송강호는 "모두가 알고 있는 정답을 적으면 안 되고, 사람들이 모르는 정답을 내야 한다"라고 연기관을 밝혔다. /바른손이앤에이 |
송강호는 봉준호, 박찬욱, 김지운 등 세계가 인정하는 거장들의 페르소나이자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칸 국제영화제 레드카펫을 가장 많이 밟아 본 한국 배우다.
박찬욱 감독은 23년 전에 '송강호는 정답이 아닌 정답을 적었는데 알고 보니까 정답보다 더한 정답이었다'라고 했고, 김지운 감독은 과거 송강호의 연극 연기를 보고 '께름칙하다'라는 표현을 썼다. 직관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웠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송강호는 늘 예상 가능하면서도 창의력을 더한 연기로 대중들을 사로잡고 있는 것과 일맥상통했다.
이는 이름 앞에 붙는 화려한 경력이나 수식어에 취하지 않고 매번 다른 불규칙한 과정으로 작품과 캐릭터를 만들어 가는 송강호만의 루틴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는 '모두가 알고 있는 정답을 적으면 안 되고, 사람들이 모르는 정답을 내야 한다'고 후배들에게 하는 조언을 가장 먼저 지키고 있었다.
"연습은 실전처럼, 실전은 연습처럼'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수많은 고뇌를 하지만 실전은 연습처럼 하는 것 같아요. 이게 말처럼 쉽지 않죠. 제가 알고 있는 정답을 내밀었을 때 관객들이 고개는 끄덕일 수 있지만 감동은 없다고 생각해요. 관객들의 가슴을 울리는 게 가장 큰 정답이죠. 정답 아닌 정답을 찾는 과정이 저에게 영화죠."
송강호는 앞으로도 변치 않는 열정을 품고 끊임없이 도전할 예정이다. 이는 배우 송강호, 그리고 한국 영화의 자부심으로 귀결될 테니 말이다. 그는 "이 거대한 지구상에서 조그만 나라가 역동적인 영화를 만드는 것은 안주하지 않고 도전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이게 곧 한국 영화의 자부심이거든요. '거미집'같이 한 발짝이라도 더 나아가야죠"라고 힘주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