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 중 이상행동으로 공포에 빠지게 되는 남편 현수 役
#군더더기 없는 대본 #봉준호 감독의 극찬 #정유미와 네 번째 호흡
배우 이선균이 영화 '잠' 개봉을 기념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롯데엔터테인먼트 |
[더팩트|박지윤 기자] '킬링 로맨스'로 파격 그 이상을 보여줬던 배우 이선균이 약 5개월 만에 다시 극장가로 돌아온다. 변신과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가 이번에는 지금껏 본 적 없는 유니크한 공포로 또 한 번 관객들에게 신선한 재미를 선사한다.
이선균은 9월 6일 개봉하는 영화 '잠'(감독 유재선)에서 갑자기 찾아온 수면 중 이상행동으로 공포의 한가운데에 빠지게 되는 남편 현수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최근 이선균은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위치한 카페에서 <더팩트>와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먼저 국내 관객들과 만나기 전 칸 국제영화제를 다녀왔던 그는 "좋은 기운을 받고 개봉하는 것 같아서 다행이에요. '칸 초청' 자체가 마케팅 포인트가 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라고 설레는 마음을 드러냈다.
이선균은 갑자기 찾아온 수면 중 이상행동으로 공포의 한가운데에 빠지게 되는 남편 현수 역을 맡았다. /롯데엔터테인먼트 |
'잠'은 행복한 신혼부부 현수와 수진(정유미 분)을 악몽처럼 덮친 남편 현수의 수면 중 이상 행동, 잠드는 순간 시작되는 끔찍한 공포의 비밀을 풀기 위해 애쓰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봉준호 감독의 '옥자'(2017) 연출부 출신의 첫 장편 영화이자 칸 국제영화제를 시작으로 해외 유수의 영화제에 초청받으며 많은 관심을 모았다.
이선균은 대본을 읽기 전, 봉준호 감독으로부터 연락받았다고 솔직하게 밝혔다. '뛰어난 친구'라는 말을 듣고 자연스럽게 기대감과 궁금증을 품게 된 그는 "봉 감독님의 영향이 없다고 할 수 없죠. 그리고 시나리오를 봤어요. 복합적인 장르가 얽혀있는데 군더더기 없었어요"라고 출연을 결심한 이유를 전했다.
그렇다면 '기생충'으로 봉 감독과 호흡을 맞췄던 이선균이 바라본 유재선 감독은 어땠을까. 우선 외모부터 비슷하다고 말문을 연 그는 "굉장히 솔직해요. 자기 포장이나 방어막이 없었고, 꾸밈없이 이야기하는데 이걸 장르적으로 녹여내려는 게 봉 감독님과 비슷했어요. 누군가를 존경하면 닮게 되잖아요. 분명 영향이 있겠죠"라며 "저희가 촬영한 것의 90% 정도는 영화에 다 담겼어요. '다 계획이 있구나'라고 생각할 정도로 낭비 없이 잘 찍었죠"라고 덧붙였다.
이선균은 네 번째 호흡을 맞춘 정유미에 관해 "편했고, 굉장히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롯데엔터테인먼트 |
앞서 이선균은 '잠'과 '탈출: PROJECT SILENCE'(감독 김태곤)로 칸 레드카펫을 밟았다. 그동안 여러 차례 칸의 부름을 받았지만, 이번 칸이 더욱 뜻깊었던 이유는 두 작품의 초청을 비롯해 아내이자 배우 전혜진, 그리고 두 아들과 함께했기 때문이다.
"큰아이는 '잠'이 공포 미스터리인지 모르고 봤다가 울먹이고 짜증 냈어요(웃음). 사실 아이들은 칸이 어떤 곳인지 잘 모르지만, 나중에 갔다 왔다는 거 자체가 좋은 경험이라는 걸 알게 되겠죠. 이런 걸 느끼게 해주고 싶었어요. 흔치 않은 기회라 선물 받은 느낌이에요."
극 중 현수는 매일 밤 수면 중 이상행동을 저지르지만 정작 잠에서 깬 본인은 기억하지 못하고, 자신이 가족을 위험에 빠트릴지도 못한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힌 인물이다. 특히 현수는 수면 도중 침대에서 일어나 무의식중에 냉장고 문을 열고 다양한 음식을 꺼내 먹기도 하는데, 이를 연기한 이선균은 "소품이 아니라 진짜였다"고 밝혀 촬영 과정을 더욱 궁금하게 했다.
"그런 장면을 찍을 기회가 별로 없잖아요. 좋았지만, 당연히 걱정도 됐죠. 스태프들이 준비를 많이 해주셨어요. 생선을 먹는 게 걱정됐는데 실험하고 영상까지 보내줬어요. 걱정했던 것에 비해 수월하게 찍었어요. 더 기괴하길 바랐는데 결과적으로 적당히 더럽지 않게 표현된 것 같아요. 테이크도 한 6번 정도로 그렇게 많이 안 갔어요."
이선균은 사이좋은 부부의 자상한 남편으로 아내를 아끼는 모습에서 잠드는 순간 돌변해 끔찍한 행동을 보이는 양극단의 이중성으로 극의 섬뜩함을 더한다. 작품은 수진과 현수가 처하는 상황이 극적으로 변하는 세 시기를 콤팩트하게 나눈 세 개의 장으로 이루어지는데, 특히 수진이 예민하게 변하는 과정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이선균은 "'무빙'같은 히어로물에 도전해보고 싶다"고 전했다. /롯데엔터테인먼트 |
이에 이선균은 극 중 수진의 감정 변화가 잘 드러날 수 있도록 현수로서 촉매제 역할을 잘 해내기 위해 많은 고민을 거듭했다고. 그러면서 이번 작품으로 네 번째 호흡을 맞춘 정유미를 향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홍상수 감독님의 작품은 원 씬 원 테이크로 가거든요. 그동안 여러 번 호흡하면서 현실적인 연기를 하다 보니까 훈련이 잘된 것 같아요. 유미가 한다는 것도 제 출연에 영향을 줬죠. 같이 하니까 정말 편했어요. 유미가 부끄러움이 많은 데 연기할 때만큼은 용감하고 과감해요. 그게 정유미의 힘이거든요.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유미의 얼굴이 배우로서 너무 좋아요. 깊이도 있고요. '잠'이 유미의 필모그래피에 굉장히 남는 영화가 될 것 같아요."
그동안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오가며 꾸준히 대중들과 만나온 이선균은 어느덧 데뷔 22년 차를 맞이했다. 그는 여러 '인생캐'부터 유의미한 성과까지 남기며 '믿고 보는 배우'가 됐지만, 여전히 자신에게 박하다고. 그렇지만 탄탄한 필모그래피를 구축하고 있는 점은 스스로 칭찬해 주고 싶다면서 앞으로 걸어가고자 하는 길을 솔직하게 밝혔다.
"저도 당연히 모자란 부분이 있고, 채우고 싶은 게 있죠. 제가 하는 연기가 고여 있으면 안 되잖아요. 결국 제가 연기하는 거라 큰 변화가 있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계속 생각에 변주를 주면서 잘 흘러가고 호흡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끝으로 이선균은 "제가 원한다고 작품이 주어지는 게 아니기 때문에 주어진 걸 잘 해내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라고 말했다. 그렇기에 도전하고 싶은 장르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던 그는 문득 디즈니+ '무빙'이 떠올랐다며 "히어로물을 해보고 싶긴 해요. 별거 없어 보이는 데 능력 있는 걸 좋아하거든요. 너무 재밌을 것 같아요(웃음). 그리고 주어진 작품을 잘 해내면서 지금처럼 잘 가고 싶어요"라고 각오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