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전에 제작진이 영화 OST 요청할 땐 대박히트 예상 못했다"
70년대 주요 히트곡, 최근 국악가수 권미희 목소리로 리메이크
안치행은 최근 '앵두'(최헌) '연안부두'(김트리오) 등 그가 작곡한 70년대 히트 명곡들이 류승완 감독의 영화 '밀수'에 OST로 리바이벌 소환되면서 존재감이 새삼 부각됐다. /더팩트 DB |
[더팩트ㅣ강일홍 기자] 작곡가 안치행은 K팝의 근간을 지탱하는 가요계 원로 중의 원로다. 70년대 최고 가요 기획사인 안타 프로덕션 대표이자 작곡가로, 지금까지 50여년 째 왕성한 작곡 활동을 펼치고 있다.
최근 '앵두'(최헌) '연안부두'(김트리오) 등 그가 작곡한 70년대 히트 명곡들이 류승완 감독의 영화 '밀수'에 OST로 리바이벌 소환되면서 존재감이 새삼 부각됐다.
그의 70년대 대표곡 중 하나인 '오동잎'은 그룹사운드 히식스 출신 故 최헌이 1975년 발표한 솔로 데뷔곡으로 발표와 동시에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국민 애창곡이다. 또 84년 나훈아가 발표한 '영동부르스'는 서울 강남 개발의 시대상을 담은 노래다.
그가 요즘도 젊은 작곡가들 못지 않게 꾸준한 작곡 활동을 하는 데는 장르를 초월한 감각적이면서도 트렌디한 멜로디 덕분이다. 시대를 관통하는 현역 작곡가로 장수하는 비결이기도 하다.
지난 2016년에는 KBS2 '불후의 명곡'의 주인공으로 초대돼 홍경민(아 바람이여) 노브레인(오동잎) 러블리즈(영동부르스) 김소현&손호준(구름나그네) 박기영(달무리) 임정희(울면서 후회하네) 임도혁(연안부두) 등 젊은 스타 가수들이 오마주했다.
최근에는 70년대 이후 자신의 주요 히트곡들을 국악가수 권미희의 목소리로 새롭게 편곡 제작하는 등 변화를 시도했다. 자신의 기획사(옛 안타음반) 이름 그대로 30여년만에 제작한 것이어서 더욱 관심을 모은다.
그의 변함없는 열정은 현재 진행형이다. 한국 가요사의 한 축을 이끌어온 그의 가요인생을 직접 들어보기로 했다. 인터뷰는 7일 오후 서울 강남 논현동에 위치한 가요기획사 안타프로덕션 사무실과 부근 카페에서 진행됐다.
안치행(왼쪽)은 K팝의 근간을 지탱하는 가요계 원로 중의 원로다. 최근에는 70년대 이후 자신의 주요 히트곡들을 국악가수 권미희의 목소리로 새롭게 편곡 제작하는 등 변화를 시도했다. 서울 강남의 한 카페. /강일홍 기자 |
<다음은 반세기 넘게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작곡가 안치행과의 인터뷰>
-여전히 활력이 넘쳐보인다. 나이를 잊고 사는 비결이 궁금하다.
젊어보인다는 말은 언제 들어도 기분 좋은 말입니다. 나름 건강관리를 꾸준히 하는 편이죠. 근력운동을 위해 TV를 보면서 매일 아침 실내 자전거를 30분간 타고, 밖으로 나가 40분씩 걷습니다. 또 사무실에 출근하면 일만 하는게 아니고, 지인들과 어울려 유쾌하게 담소하는 시간을 꼭 갖습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의욕이 생기고, 일에 열정이 있으면 나이는 의미가 없습니다.
안치행은 70년대 이후 작곡가 겸 제작자로 당대 인기가수 조용필 최헌 윤수일 등과 밀접한 인연을 맺는다. 최헌의 '앵두' '오동잎' '세월', 윤수일의 '사랑만은 않겠어요' '갈대' '유랑자'를 작곡했고,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편곡했다. 또 '구름나그네'(서유석) '연안부두'(김트리오) '울면서 후회하네'(주현미) '연상의 여인'(윤민호) '실버들' 등 숱한 히트곡들을 탄생시켰다. 그가 작곡한 노래는 통산 600여곡에 달한다.
-영화 '밀수'에 주요곡들이 OST로 소개되면서 원작곡자로서 조망을 받고 있다.
이미 1년 전에 영화 제작진들로부터 OST로 사용하고 싶다며 연락을 해왔어요. 처음엔 어떤 장면에 나가는지 몰라 궁금하긴 했는데 이렇게 좋은 결과를 낼 줄은 몰랐죠. 대박 히트를 기록한 멋진 영화 속 장면에 삽입되면서 저는 '꿩 먹고 알먹는' 1석2조의 효과를 본 셈이죠. 중장년층한테는 추억의 명곡으로, 당시엔 태어나지도 않았을 젊은 층 관객들까지 공감하는 노래가 됐으니까요.
그가 쓴 곡 중에는 한 시대를 풍미할 추억의 명곡들이 많다. 영화 '밀수'에 OST곡 '앵두' '연안부두' 외에도 '사랑만은 않겠어요'(윤수일), '오동잎'(최헌) '구름 나그네'(서유석), '실버들'(희자매) '영동부르스'(나훈아) 등 대중에 익숙한 노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꾸준한 작곡 활동을 하며 최근에는 70년대 히트곡들을 신예 권미희의 목소리로 재현해 관심을 끌었다.
안치행은 70년대 이후 작곡가 겸 제작자로 당대 인기가수 조용필 최헌 윤수일 등과 밀접한 인연을 맺는다. 사진 왼쪽은 '사랑만은 않겠어요' '갈대' 등을 부른 가수 윤수일, 오른쪽은 '앵두' 오동잎'을 부른 故 최헌. 두 가수의 히트곡 대부분을 안치행이 작곡했다. /온라인커뮤니티 |
-가수 고 최헌과 특별한 추억이 있으면 소개해달라.
최헌이 고등학교 때 음악을 배우러 와서 처음 만났어요. 내가 기타학원 조교로 있을 때였죠. 기타를 배우고 한동안 못봤는데 최헌이 히식스 보컬로 활동하며 '당신은 몰라'를 히트하면서 만날 기회가 생겼어요. 당시 나는 킹박(음반제작자)의 요청으로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편곡해 그룹사운드 영사운드 곡과 묶어 음반을 만든 직후였죠. '오동잎'이란 곡을 히식스 멤버들한테 줬는데 최헌이 새음반 타이틀 곡으로 불러 히트를 했고, 이후 연달아 음악적 교감을 하게 됐어요.
안치행은 그룹사운드 영사운드 리더로 활동하며 '달무리' '등불' 등의 히트곡을 냈다. 이 보다 앞서 미8군 무대에서 패키지쇼 멤버로 활동했고, 71년 새로 결성한 그룹사운드 실버코인스 멤버로 명동의 조선호텔 19층 나이트클럽 무대에 섰다. 10여년간 밴드 활동을 하다 최헌의 '오동잎'을 계기로 작곡자로 변신했다. 이후 윤수일 김트리오 희자매 등에게 곡을 주고 음반제작자로 거듭났다. 훗날 박남정 이규석 소리새 문희옥 등 수많은 인기가수들의 음반을 제작했다. 대한극장에서 펼쳐졌던 김추자의 리사이틀 공연실황 음반도 그의 작품이다.
-최헌의 히트곡을 많이 낸 작곡자로서 어떤 매력이나 색깔이 있는지 궁금하다.
최헌은 허스키 보이스의 첫 번째 남자가수로 꼽습니다. 당시까지는 남녀 가수 모두 맑고 청아한 목소리가 대세였고, 갈라지는 목소리는 가수로 인정하지 않았어요. 한데 음악 장르가 차츰 달라지면서 허스키 보이스는 색다른 스타일로 각광을 받게 됐죠. 약간 쉰듯한 목소리가 오히려 짙은 감정 호소력이 와닿았어요. 최헌은 그래서 녹음실에 오면 일부러 줄담배를 피우고 최소 1시간씩 반복해 노래한 뒤 컬컬해진 목소리로 녹음을 하곤 했죠.
최헌은 74년 7명의 멤버로 구성된 '검은나비'를 결성하고 리드보컬로 활동했다. 허스키하면서도 구수한 목소리로 부른 '당신은 몰라'에 이어 76년에 결성한 새로운 그룹 호랑나비 당시 발표한 '오동잎'(안치행 작사 작곡)은 국민적 애창곡이 됐다. 솔로 전향 1년만인 78년에 '앵두'를 히트시켰고, 이듬해인 79년 '가을비 우산속'을 연달아 히트시키면서 당대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사회적 이슈를 담은 노래를 종종 작곡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2010년 천안함 순국용사 추모곡을 발표했고, 지난해엔 대장동 의혹 속 망자들을 위한 추모곡을 냈어요. 누군가의 가족이며, 친구인 그들이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하면서도, 온전한 위로를 받지 못하는 사실이 너무 가슴 아팠죠.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고인의 명복을 빌고, 유족의 슬픔을 달래고 싶었을 뿐 정치적인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답답한 국민들을 향한 위로곡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안치행은 작곡가 이전에 유명 록밴드의 리더 겸 기타 연주자였다. 그가 이끌던 영사운드는 72년부터 75년까지 서울 명동과 소공동의 생음악 살롱인 포시즌스와 오비스 캐빈을 명소로 자리매김하는데 기여한 중심 그룹이기도 하다. 영사운드는 이전까지 유행했던 요란한 사이키(델릭) 사운드를 벗어난 건전한 음악으로 젊은 음악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70년대 후반 히트곡들을 작곡가 오리지널 버전으로 리메이크(디지틀 음원)했다. 국악 가수 권미희의 목소리에 실어 비교적 젊은 음악팬들까지 공감하는 추억을 소환했다. /안타프로덕션 |
-70년대 히트곡 중 가수 권미희가 리메이크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대중이 관심을 갖고 궁금해하는 노래를 색다른 버전으로 재해석해 호응을 얻었다는 점에서 만족해요. 국악으로 다져진 권미희의 은은하면서 상큼한 보이스가 매력으로 와닿습니다. 40여 년전 오리지널 버전의 구수함 못지 않은 깊이가 있어요. 마침 영화 '밀수' 개봉과 맞물리면서 짦은 시간 내에 주목을 받는 덕을 봤고요. 복고풍을 되살리는데도 맥락이 있어야 하는데 그 점에서는 트렌드를 나름 잘 이은 셈이죠.
그는 70년대 후반 자신의 히트곡들을 작곡가 오리지널 버전으로 리메이크(디지틀 음원)했다. 국악 가수 권미희의 목소리에 실어 비교적 젊은 음악팬들까지 공감하는 추억을 소환했다. 이 앨범에는 '사랑만은 않겠어요'(윤수일 원곡), '구름 나그네'(서유석 원곡), '실버들'(희자매 원곡) 등 70년대 추억의 명곡들도 함께 담겼다. 편곡은 고 신해철의 넥스트에서 기타를 담당했던 작곡가 겸 한국음악 저작권협회(음저협) 이사 정기송이 맡았다.
-마지막으로 불교 경전을 힙합 리듬으로 탄생시켰는데 어떤 의미가 담겼나.
스님들이 독경하는 불경을 악보에 담아 음악으로 풀어내는 작업은 만만치가 않았어요. 주변에서 거의 미쳤다고 했을만큼 방대한 작업에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쏟았으니까요. 애초 불교 신자도 아니었지만, 관심을 갖고 열정을 쏟다보니 의욕이 샘솟더라고요. 작업 중엔 몰랐는데 다 끝내고 나니 녹초가 됐어요. 억만금을 준다고 해도 이런 작업을 다시 하라고 하면 이제는 못할 것같아요. 처음엔 부를 가수가 없어 제가 직접 녹음을 했는데 얼마전 불자가수 권미희가 리메이크 형태로 음반을 다시 냈죠. 비로소 고생한 보람과 뿌듯함이 생겼습니다.
유명 작곡자로서 그는 반세기 가요인생을 회향하는 의미있는 작업을 완성했다. 반야심경, 천수경, 신묘장구대다라니, 금강경, 대부모은종경 등 불교경전을 힙합 리듬으로 재구성한 음반 '심경(心經)'은 불교계도 깜짝 놀랄 '마음의 경전'으로 평가받는다. 애초 천주교 신자였던 그는 금강경 독경을 권유하는 주변사람들 덕에 불교에 입문했다. '구인사 가는 길' '추억의 백담사' 등 사찰을 주제로 한 불교노래들도 다수 작곡했다. '심경'은 그가 작곡하고 직접 노래도 불렀으며 실력파 신예가수 권미희가 최근 리메이크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