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째 박스오피스 1위...340만 명 돌파
관계자 "성인을 타깃으로 한 애니, 국내 정서와 맞닿아 있어"
지난달 14일 스크린에 걸린 '엘리멘탈'이 누적 관객 수 340만 명을 돌파하며 무서운 뒷심을 발휘하고 있다.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
[더팩트|박지윤 기자] '엘리멘탈'이 무서운 뒷심을 발휘하며 흥행의 불씨를 살려냈고, 16일째 1위 자리를 지키며 역주행 신드롬을 일으켰다.
10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디즈니·픽사 애니메이션 '엘리멘탈'(감독 피터 손)은 지난 7일부터 9일까지 80만 453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박스오피스 1위를 수성했다. 누적 관객 수는 340만 6139명이다.
지난달 14일 스크린에 걸린 '엘리멘탈'은 개봉 첫날 4만 7000여 명을 기록, '범죄도시3'와 '플래시'에 밀려 3위로 출발하며 아쉽게 시작했다. 이렇게 별다른 힘을 쓰지 못하고 극장가를 떠나지 않을까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지만, '엘리멘탈'은 개봉 2주 차 주말 전체 박스오피스 1위에 등극하며 역주행 조짐을 보였다.
이후 '엘리멘탈'은 개봉 4주 차에 들어서면서 가장 높은 일일 관객 수와 주말 관객 수를 경신하며 장기 흥행에 돌입했다. 이 같은 상황이 더욱 신기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엘리멘탈'이 전 세계적으로 사상 최악의 흥행 성적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6월 16일 북미에서 개봉한 '엘리멘탈'은 3일 동안 2950만 달러를 기록하며 박스오피스 2위로 출발했다. 이는 역대 픽사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 중 최저 오프닝 스코어로, 처참한 성적표다. 일각에서는 북미에서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 가운데, 유독 한국 관객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엘리멘탈'은 상상력 넘치는 비주얼과 개성 가득한 캐릭터들, K-정서가 담긴 재미와 감동 스토리 등으로 한국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
작품은 불·물·공기·흙 4원소가 살고 있는 '엘리멘트 시티'에서 재치 있고 불처럼 열정 넘치는 앰버가 유쾌하고 감성적이며 물 흐르듯 사는 웨이드를 만나 특별한 우정을 쌓으며 자신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이야기다.
고향을 떠나 '엘리멘트 시티'로 이주한 앰버의 부모님은 파이어타운에 터를 잡고, 가게를 운영하며 생계를 이어간다. 어린 시절부터 이를 지켜본 앰버는 부모님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 가게를 물려받고자 한다. 외동딸 앰버에게 가게를 물려받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던 중 예기치 못한 사건에 휘말리면서 만난 웨이드는 앰버에게 변화의 계기를 안겨준다. 서로가 너무 달라서 함께할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이를 극복한 두 사람은 특별한 사이가 되고, 앰버는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게 무엇인지 깨닫는다.
연출을 맡은 피터 손 감독은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픽사 출신으로, 한국계 미국인이다. 실제로 식료품 가게를 하던 부모님은 장남인 피터 손 감독이 일을 물려받길 원했고, 할머니는 그가 한국 여자와 결혼하기를 바랐다. 한국인 이민자의 자녀인 그는 자신이 겪었던 일과 고민 등을 작품에 고스란히 담아냈고, 동양적인 색채를 가미했다.
주인공이 살고 있는 파이어타운은 돌솥에서 착안해 디자인했고, 앰버는 아버지를 아슈파로 부르는데 이는 한국어 '아빠'에서 비롯됐다. 앰버의 엄마는 드라마 대사를 줄줄 읊는가 하면, 커플의 궁합을 봐준다. 또한 부모님은 앰버가 같은 원소인 불과 결혼하기를 바라고, 웨이드를 못마땅하게 여기며 뜨거운 숯콩으로 그를 시험하기도 한다. 더 나아가 꿈을 찾은 앰버는 부모님에게 큰절을 올리고 떠난다.
배급사 관계자는 "피터 손 감독이 내한해서 '아시아권에서 통할 수 있는 메시지'라고 말한 게 전략적으로 잘 통한 것 같다"고 바라봤다.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
이렇게 한국 문화와 정서를 제대로 그려낸 '엘리멘탈'에는 부모의 헌신과 희생, 자녀의 감사함과 부담감의 공존 등 누구나 느껴봤을 법한 감정도 담겨 있다. 또한 가족과 남녀 간의 사랑, 공존할 수 없는 이들의 화합 등 다양한 삶의 가치를 어렵지 않게 풀어내며 한국 관객들에게 깊은 공감과 여운을 남기고 있다. 다시 말해 멀게 느껴진 픽사와 너무나 익숙한 K-정서가 만나 한국 관객들을 위한 동화가 탄생한 것.
작품을 본 여성 A 씨(28·수원 거주)는 "자신의 꿈보다 부모님의 행복을 우선순위로 두는 것과 나중에 꿈을 찾고도 부모님이 실망할까 봐 바로 말하지 못하고 고민하는 등 대부분의 이야기가 K-장녀로서 너무 공감됐다"고 말했다.
배급사 관계자는 <더팩트>에 "픽사 애니메이션이지만, 개봉 전부터 피터 손 감독이 내한해서 '아시아권에서 통할 수 있는 메시지'라고 말한 게 전략적으로 잘 통한 것 같다"고 역주행의 이유를 바라봤다.
또한 관계자는 "성인을 타깃으로 한 애니메이션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자녀로서, 또 부모로서 책임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다 보니까 국내 정서와 맞닿아 있는 것 같다"며 "'주토피아'(2016)처럼 뒷심을 발휘하지 않을까 싶었다"고 전했다.
'엘리멘탈'은 올해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중 최고 스코어를 기록한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239만 명)를 넘어섰고, 역주행 신드롬을 일으킨 일본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보다 더 빠른 기록을 보이고 있다. 뜨거운 입소문의 힘을 증명한 '엘리멘탈'이 올해 두 번째 역주행 신화를 이룩할 수 있을지 이목이 집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