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명그룹 후계자 류석 역 맡아 완성한 '빌런의 얼굴'
"더 편하고 파격적인 캐릭터가 눈에 들어와요"
배우 송승헌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택배기사'로 전 세계 시청자들과 만나고 있다. /넷플릭스 제공 |
정제되지 않은 스타는 어떤 모습일까. 연예계는 대중의 관심을 받는 스타도 많고, 이들을 팔로우하는 매체도 많다. 모처럼 인터뷰가 잡혀도 단독으로 대면하는 경우가 드물다. 다수의 매체 기자가 함께 인터뷰를 하다 보니 내용도 비슷하다. 심지어 사진이나 영상마저 소속사에서 만들어 배포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런 현실에서도 <더팩트>는 순수하게 기자의 눈에 비친 느낌을 가공하지 않은 그대로의 모습으로 전달한다. <편집자 주>
[더팩트|박지윤 기자] '가을동화' 세대가 아닌 기자에게도 배우 송승헌의 대표작은 '가을동화'였다. 해당 작품으로 얻은 글로벌한 인지도와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외모, 잊을 만하면 나오는 당시 자료화면 등은 '송승헌은 정형화된 연기만 한다'는 인식을 심어줬다.
그러던 중 본 '출장 십오야-스타쉽 편'은 대중으로서 그에게 갖고 있던 고착화된 이미지를 깨는 계기가 됐다. 이후 기자로서 인터뷰를 준비하기 위해 필모그래피를 훑어보고서야 그동안 다채로운 캐릭터에 도전했다는 걸 깨달았다.
이렇게 한 겹의 선입견을 벗겨내고 비가 내렸다가 멈추면서 우중충했던 18일, 송승헌을 만나기 위해 삼청동으로 향했다. 오후 2시가 되고 인터뷰가 진행되는 카페 2층으로 올라가 보니 짙은 눈썹과 뚜렷한 이목구비, 마치 TV를 보는 듯 현실감 없는 비주얼의 송승헌이 문 앞에서 취재진을 맞이하고 있었다.
송승헌은 대한민국의 실세 천명그룹의 후계자 류석 역을 맡아 빌런으로 활약하며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넷플릭스 제공 |
송승헌은 지난 12일 공개된 넷플릭스 '택배기사'(극본·연출 조의석)에서 대한민국의 실세 천명그룹의 후계자 류석 역을 맡았다. 이날 그는 류석처럼 '완깐 머리'를 했지만 블랙 수트가 아닌 '청청 패션'으로 소화하며 주변을 환하게 만들었다.
작품은 공개 3일 만에 3122만 시청 시간을 기록하며 넷플릭스 글로벌 TOP10 TV(비영어) 부문 1위에 올랐다. 기분 좋은 소식을 접한 그는 "감독님과 배우들이 걱정을 많이 했는데 좋은 성적을 거둬서 다행이죠"라며 웃었다.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택배기사'는 극심한 대기 오염으로 산소호흡기 없이는 살 수 없는 미래의 한반도, 전설의 택배기사 5-8(김우빈 분)과 난민 사월(강유석 분)이 새로운 세상을 지배하는 천명그룹에 맞서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류석은 산소를 무기로 세상을 지배하는 인물로, 송승헌은 극에 긴장감을 불어 넣는 빌런이 됐다. 그동안 관객 수나 시청률로 반응을 확인했던 그는 이번 기회를 통해 새로운 경험을 쌓는 중이다. 특히 국내외 매체와 팬들로부터 동시에 각기 다른 반응을 얻으면서 감사함과 책임감이 동시에 따른단다.
"이런 환경이 신기하고 와닿지 않기도 하지만 배우로서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는 거죠. 하지만 만족하면 안 돼요. K-콘텐츠를 향한 기대심리가 있기 때문에 나올 때마다 업그레이드해야 하는 부담감도 있어요. 그럼에도 행운아인 배우로 살아가는 걸 잘 유지해야죠."
'택배기사'는 공개 3일 만에 3122만 시청 시간을 기록하며 글로벌 TOP10 TV(비영어) 부문 1위에 올랐다. 그는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다행이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넷플릭스 제공 |
해외 시청자들은 K-디스토피아에 새로움과 신선함을 느꼈다면 원작을 재밌게 본 국내 팬들은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특히 류석의 전사가 부족하다며 개연성을 지적하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이를 피하지 않고 언급한 송승헌은 "원작이 있는 작품은 팬들의 기대가 너무 높아서 좋은 얘기를 듣기 어렵죠"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OTT를 통해 작품을 전 세계에 동시 공개하는 게 익숙하지 않으면서도 모든 반응을 꿰뚫고 있는 송승헌을 보면서 소위 말하는 '짬바(짬에서 나오는 바이브)'가 느껴졌다. 그는 극과 극으로 갈리는 반응이 당연하다면서도 "제한된 회차 안에서 류석의 이야기를 다 담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구현되지 않은 기획에는 행성 충돌 전과 류석 아버지의 대학생 시절이 담겨 있었다. 또한 류석은 아버지와 같은 모습으로 태어난 전사까지 있었다. 이에 송승헌은 1인 2역을 소화할 생각이었지만 6부작이라는 한정된 분량으로 인해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를 다 알고도 작품에 들어간 그는 "디스토피아가 처음이라 신선했죠. 어렸을 때 상상만 하던 세계에서 연기해 보고 싶었어요. 또 조의석 감독과의 믿음도 있었고요"라고 밝혔다.
선과 악으로 정의하면 류석은 당연히 악에 가깝다. 하지만 송승헌은 인물이 처한 현실과 갖고 있는 불치병 등을 마주하면서 연민의 감정을 느꼈다. 더 나아가 디스토피아 세계관은 그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한 가지 사안을 두고 입장에 따라 전혀 다른 해석이 나오는 건 현실과 비슷해요. 세상을 끌고 가기 위해 모든 걸 다 안고 갈 수 없었지만 난민을 죽이는 것 또한 정당화할 수 없으니까요. 아버지에게 '직접 끝내주세요'라고 할 때는 정말 안쓰러웠어요. 연기하면서 원망스럽고 울컥했죠."
"어렸을 때 물을 사 먹지도 않았고 그렇게 될 거라고도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자연스럽잖아요. '산소도 사서 먹는 세상이 오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들었죠. 지구가 오염되는 걸 크게 느끼지 못하지만 충분히 그런 세상이 올 수 있겠더라고요. 하지만 인간은 독하니까 또 이겨내겠죠. 코로나19를 극복한 것처럼요."
송승헌은 영화 '히든페이스'와 드라마 '플레이어 시즌2'로 대중들과 만날 예정이다. /넷플릭스 제공 |
1995년 모델로 데뷔한 송승헌은 이듬해 시트콤 '남자셋 여자셋'으로 연기를 시작했고 어느덧 28년 차에 접어들었다. 누군가에게는 '멜로 장인' '한류 스타' 등 한정된 수식어로 불리지만 최근 송승헌의 필모그래피는 색채 짙은 장르물이 주를 이룬다. 특히 '인간중독'(2014)으로 모두를 놀라게 했던 그는 이후 드라마 '블랙' '보이스 시즌4' 등을 통해 시청자들과 만났다.
이는 대중들이 자신에게 갖고 있는 정형화된 이미지를 깨기 위한 노력이 깃든 행보였다. 그런 점에서 '인간중독'은 배우 인생에 터닝 포인트가 된 작품이었다. 더 어렸으면 쉽게 도전하지 못했을 결의 캐릭터를 선택하면서 희열감과 해방감을 느꼈고 더 나아가 연기에 흥미를 갖게 된 송승헌이다.
"착하고 정의롭고 바른 이미지로만 보시는 것 같았어요. 다른 것도 해보고 싶었는데 들어오는 작품도 다 비슷했어요. 어릴 때는 멋지고 착하게만 보이고 싶었는데 새로운 걸 하고 싶은 갈증이 생기더라고요. 더 편하고 파격적인 이미지를 깰 수 있는 역할이 눈에 들어와요. 류석도 그 연결성에 있고요. 이런 게 새롭고 편해요. 예능도 비슷해요. 아등바등하면 반응이 안 좋고 내려놓으니까 박수 쳐주시더라고요. 아이러니하면서도 그만큼 새로운 걸 원하셨구나 싶었어요."
이날 인터뷰의 처음과 마지막 질문은 '늙지 않는 비결'에 관한 것이었다. 이를 들은 송승헌은 당황한 듯 웃어 보이면서 "다 똑같죠. 영양제 먹고 운동해요"라고 말했다. 그의 외모는 변하지 않았지만 행보는 계속 새로울 전망이다. 개봉을 앞둔 미스터리 스릴러 '히든 페이스'부터 촬영 중인 '플레이어 시즌2'까지, 색다르고 파격적인 모습을 자신한 만큼 앞으로 송승헌의 다채로운 얼굴이 어서 공개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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