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이보영'] 똑부러진 고아인보단 잘 버틴 '엄마 이보영'
입력: 2023.03.01 00:00 / 수정: 2023.03.01 00:00

JTBC 드라마 '대행사' 흥행 주역
'도도한 이보영' 연기 변신 성공적


22일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배우 이보영을 만나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JTBC 드라마 대행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제이와이드컴퍼니 제공
22일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배우 이보영을 만나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JTBC 드라마 '대행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제이와이드컴퍼니 제공

정제되지 않은 스타는 어떤 모습일까. 연예계는 대중의 관심을 받는 스타도 많고, 이들을 팔로우하는 매체도 많다. 모처럼 인터뷰가 잡혀도 단독으로 대면하는 경우가 드물다. 다수의 매체 기자가 함께 인터뷰를 하다 보니 내용도 비슷하다. 심지어 사진이나 영상마저 소속사에서 만들어 배포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런 현실에서도 <더팩트>는 순수하게 기자의 눈에 비친 느낌을 가공하지 않은 그대로의 모습으로 전달한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이한림 기자] 단아함의 대명사 배우 이보영이 그간 필모그래피에 없던 독한 캐릭터를 만났지만 '믿보배'(믿고 보는 배우) 타이틀을 사수했다. '똑단발' 헤어스타일부터 똑 부러지는 성격과 차가운 눈빛, 독설도 서슴치 않는 도도한 말투까지 드라마 '대행사'에서 그가 맡은 고아인 캐릭터는 이보영을 만나 오히려 매력이 배가 됐다.

26일 종영한 JTBC 드라마 '대행사'는 '원톱' 주연 이보영의 활약에 힘입어 최종회(16회) 시청률 16%로 종영했다. 이는 역대 JTBC 드라마 중 시청률 6위 해당하는 수치다. 첫 회 시청률은 4.8%에 불과했지만 입소문을 타고 꾸준히 상승하면서 8회부터 두 자릿수 시청률을 끝까지 유지했다. 지난해 모든 방송사를 통틀어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재벌집 막내아들, 26.9%)의 후속으로 방송됐다는 부담에도 JTBC 주말극 연착륙의 주역이 된 셈이다.

강렬한 캐릭터 고아인을 중심으로 뻔한 오피스물이 아닌 '오피스 전투극'이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매회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이 이어진 탓이다. 마지막회에 비로소 환한 미소를 보인 VC기획 대표 고아인을 연기한 이보영의 독한 연기 변신은 대성공이었다.

22일 이보영을 서울 강남구 소재 한 카페에서 만났다. 취재진을 직접 만나 마스크를 벗고 인터뷰한 게 펜데믹 이후 처음이라지만 대화가 거듭될수록 두 아이 육아에서 잠시 탈출(?)한 엄마다운 수다력을 뽐냈다. 어느덧 데뷔 20년차 배우가 된 이보영은 똑부러진 고아인과 자신이 닮은 점이 얼굴말곤 없다면서도 "언제 또 이런 캐릭터를 연기 해보겠어요"라며 유쾌하게 웃었다.

이보영은 대행사에서 극중 대기업 광고대행사 중 최초로 여성 임원이 된 고아인 역을 맡아 독해진 이보영이라는 찬사를 받으면서 믿보배 수식어를 지켰다. /하우픽쳐스, 드라마하우스 스튜디오 제공
이보영은 '대행사'에서 극중 대기업 광고대행사 중 최초로 여성 임원이 된 고아인 역을 맡아 '독해진 이보영'이라는 찬사를 받으면서 '믿보배' 수식어를 지켰다. /하우픽쳐스, 드라마하우스 스튜디오 제공

-16부작 드라마 '대행사'가 대장정을 마쳤다. 시청률도 잘 나왔는데 종영 소감이 어떤지.

촬영이 예전에 끝난 거라 잘 기억은 안나지만 작년 여름에 정말 재미있게 찍었던 기억이 난다. 처음에 대본을 9부까지 보고 시작했다. 조직생활이나 사내 정치 이런걸 해본 적이 없어서 신기했고, 고아인 캐릭터가 워낙 직설적이다보니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했다.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시청자분들이 너무 좋아해주셔서 놀랐다.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시청률이 잘 나와서 조금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저는 한 7%정도만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3회부터 7%를 넘어가더라. 감독님도 놀라긴 마찬가지 였다. 너무 감사했다.

-주변 반응도 뜨거웠을 것 같다.

저는 고아인이라는 캐릭터가 현실에서 만나기 어려운 캐릭터다보니 대리만족을 하면서 찍었다. 사람들이 조직생활을 하면서 이런 것들을 하기 어렵지 않나. 반응을 막 그렇게 찾아보지는 않았지만 보시는 분들이 속이 시원했다고 하셨던 반응들이 기억에 남는다.

주변 분들 같은 경우는 잘 모르겠다. 사실 저도 데뷔한지 오래됐다보니 이쯤되면 저에게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신다. 그냥 제가 먼저 전화해서 "재미있었어?" 먼저 물어보곤 한다. 어릴 때는 TV에 나오는게 신기하니깐 주변 반응도 많이 찾아보고 했는데 이제 그렇지는 않는 것 같다.

이보영은 대행사에서 고아인과 자신이 닮은 점에 대해 얼굴 말고 없다고 답해 웃음을 자아냈다. /제이와이드컴퍼니 제공
이보영은 '대행사'에서 고아인과 자신이 닮은 점에 대해 "얼굴 말고 없다"고 답해 웃음을 자아냈다. /제이와이드컴퍼니 제공

-그동안 했던 역할들과 결이 다르다보니 '연기 변신'이라는 수식어가 많이 따라 붙었다. 덕분에 몰입도가 더 올라갔다고 보는 이도 많은데. 고아인과 이보영이 닮은 점이 있다면?

얼굴? (웃음). 저는 그런 성격이 못된다. 그냥 보면서 난 이렇게 살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상하게 저는 아인이가 텅 빈 집에 들어가는 신 찍을 때 항상 아프더라. 이렇게 살면 너무 외롭겠다는 생각을 했다.

많은 분들이 고아인을 자기가 닮고 싶은 캐릭터라고 해주셨는데 사실 저는 닮고 싶은 점이 하나도 없다. 아인이 늘 강강강이니깐. 똑부러지는 성격이나 행동같은 걸 닮고 싶다고 하시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게 실력이 베이스가 돼서 나오는 것들이기 때문에 또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들을 보고 카타르시스를 느끼셨다거나 좋게 봐주신 듯하다.

-촬영장 분위기는 어땠나.

이렇게 좋아도 되나 싶을 정도로 너무 좋았다. 종이를 찢으면서 '나 밟히는 애 아니야'라며 내뱉는 신이 있었는데 그 신이 기억에 남는다. 연기하면서 뭔가 막 그렇게 표출해본 적이 없었는데 종이를 찢을 때 소리도 재밌고 좋더라. 종이를 찢다가 상처가 나기도 했는데 현장 분위기가 좋아서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세트장에서 촬영을 마치면 세트장 앞에 있는 치킨집에 다같이 모여 회식을 자주했다. '떼샷'을 그렇게 많이 찍어본 현장도 처음이었던 것 같다. 그날 다같이 지지고 볶고 하면서 함께 만들어가는 분위기가 재미있었다.

-드라마를 직접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궁금하다. 남편(지성)도 모니터를 해줬을 것 같은데 반응이 어땠는지.

저는 제가 나온 드라마를 보면 객관화가 잘 안된다. 방송을 보면 재미있다거나 아쉽다거나 해야할텐데 그런 느낌이 없다. '저 때 저 연기를 조금 다르게 해볼껄' '아 저때 되게 추웠는데' 하는 생각? 이런 쪽으로 포커싱이 되다보니 객관화가 잘 안된다.

(지성)오빠는 재미있다거나 잘했다고 말해줬다. 이런 이야기하면 뭐라할 것 같긴 한데 아인이 엄마를 만나는 신에서 저도 많이 울었지만 지성 씨도 많이 울었다. 아이를 키우다보니까 자연스럽게 그런 것 같다. 한나(손나은 분)랑 박차장(한준우 분)이 헤어지는 신에서도 되게 감정몰입을 하면서 울더라. 그 모습을 제가 보고 "저게 슬퍼?"라고 묻기도 했다(웃음). 원래 지성 씨가 눈물이 많다.

데뷔 20년차, 결혼 10년차 배우 이보영은 배우의 남편이자 두 아이의 엄마로 육아와 연기를 병행하는 게 초반보다는 점점 잘 돼가고 있다며 유쾌하게 웃었다. /제이와이드컴퍼니 제공
데뷔 20년차, 결혼 10년차 배우 이보영은 배우의 남편이자 두 아이의 엄마로 육아와 연기를 병행하는 게 초반보다는 점점 잘 돼가고 있다며 유쾌하게 웃었다. /제이와이드컴퍼니 제공

-벌써 결혼 10년차다. 연기와 육아를 병행하는 게 쉽지 않을텐데. 결혼 생활과 육아에 대한 이야기도 더 듣고 싶다.

작품을 마치고 보면 이런 작품을 또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저도 뭉클해진다. 그런데 끝나고 나면 바로 육아에 돌입하다보니 그런 마음들이 금방 사라진다. 아이 때문이라도 흔들리지 않고 살아야 하니깐 제 멘탈이 더 건강해지는 것 같다.

예전에 연기할 때는 육감이 섬세해지고 예민해지는 부분이 많았는데 아이가 생기다 보니 지금은 더 단단해진 느낌이다. 어쨌든 연기가 제 일이기도 하지만 아이들이 울고 있는 와중에도 대본을 볼 수 있는 그런 건강함? 연기와 육아 병행이 초반보다는 점점 잘 돼가고 있는 것 같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육아가 더 힘들긴 하다. 예전에는 안아주기만 하면 됐는데 이제는 반박을 하니깐(웃음).

좋은 엄마가 되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제가 에너지가 부족해서 막 극성 열혈 엄마까진 아니지만 그래도 좋은 엄마가 되려 노력한다. 저와 남편 작품이 번갈아가면서 방송되다보니 '교대 육아'라는 말이 있는 것도 아는데 절대 의도한 건 아니다. 오빠가 아직 차기작을 정하지 않았을 때 그런 것이고 여태까지는 운이 좋게 잘 맞아서 그렇게 된 것 같다.

그래도 결혼은 정말 추천한다. 저의 가장 베스트프렌드와 모든 것을 함께 하기 때문이다. 애를 낳는건 선택이지만 결혼은 '강추'한다. 저희 부부 화두는 거의 아이들 이야기다. 딸이 이가 2개 빠졌는데 지금 말을 너무 안듣는다. 요즘 저희가 아이한테 '하지 말라'는 말을 많이 한 것 같아서 '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어떻게 하면 좋게 말할지가 주된 대화 주제다.

-'대행사'를 아껴준 시청자들에게 한 마디 한다면. 차기작 힌트도 궁금하다.

기대 이상으로 좋아해 주셔서 너무 감사드린다. 저는 엔딩이 너무 좋았다. 모두가 현장에 가는 느낌이랄까. 엔딩이 좋으면 행복하지 않나. 다같이 성장하는 상황 속 이야기가 끝나서 좋았다. 보시는 분들이 주말 밤을 '대행사' 덕분에 더 재미있게 보냈다면 그만큼 좋은 이야기가 없는 것 같다.

차기작은 곧 들어갈 것 같다. 다음 작품도 전문직이고 또 부모 복 없는 사연 많은 캐릭터다. 요즘 멜로가 잘 안들어 온다. 멜로를 잘하게 안생겼다는 생각이 드시는 걸까(웃음). 장르나 캐릭터는 가린 적이 없다. 저도 밝은 작품 잘 할 자신이 여전히 있다.

(요즘에는)채널도 확대되고 작품이 많으니까 배우로서 장단점이 있는 것 같다. 배우로서 기회가 많이 주어지는 것 같아 좋으면서도 겁이 덜컥 나기도 한다. 더 잘해야하기 때문이다. 아인이를 연기하면서 '애도 이렇게 지금까지 잘 버티고 있는데 나도 잘 버티자'는 생각을 했다. 신인 시절 생각도 많이 났다. 내 삶을 책임지는 순간부터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여전히 '잘 버티자'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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