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진선규'] 앞으로 더욱 빛날 '대세 배우'
입력: 2023.02.19 00:00 / 수정: 2023.02.19 00:00

'카운트'로 데뷔 19년 만에 단독 주연으로 '우뚝'

배우 진선규가 데뷔 19년 만에 첫 단독 주연을 맡은 카운트로 관객들고 만난다. /CJ ENM 제공
배우 진선규가 데뷔 19년 만에 첫 단독 주연을 맡은 '카운트'로 관객들고 만난다. /CJ ENM 제공

정제되지 않은 스타는 어떤 모습일까. 연예계는 대중의 관심을 받는 스타도 많고, 이들을 팔로우하는 매체도 많다. 모처럼 인터뷰가 잡혀도 단독으로 대면하는 경우가 드물다. 다수의 매체 기자가 함께 인터뷰를 하다 보니 내용도 비슷하다. 심지어 사진이나 영상마저 소속사에서 만들어 배포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런 현실에서도 <더팩트>는 순수하게 기자의 눈에 비친 느낌을 가공하지 않은 그대로의 모습으로 전달한다. <편집자 주>

[더팩트|박지윤 기자] 얼굴을 갈아 끼우는 게 아닐까. '범죄도시'(2017)부터 '공조2:인터내셔날'(2022)까지. 배우 진선규의 연기를 보면 늘 이런 생각이 들었다.

결이 다른 빌런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두 개의 작품 사이에는 하루아침에 닭을 튀기게 된 '극한직업'(2019) 마형사와 '승리호'(2021)의 엔진실을 제어하는 기관사 타이거 박 등 진선규의 다채로운 얼굴이 존재했다.

매 작품 한계 없는 자기 변주를 꾀하며 폭넓은 캐릭터 소화력을 보여준 그를 직접 마주하니 새롭고 신기했다. 매 순간 선한 미소를 잃지 않으며 환한 분위기를 자아낸 진선규는 연기할 때보다 한 톤 정도 높은 목소리로 신중하게 답변을 이어갔고, 재치 있는 멘트도 놓치지 않으며 소소한 웃음을 안겼다.

쉬지 않고 '열일'하며 매번 전작의 이미지를 지워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진선규에게는 아직 갈아 끼울 수 있는 얼굴이 많이 남아있는 것 같다. 이는 오는 22일 개봉하는 영화 '카운트'(감독 권혁재)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진선규는 과거 올림픽 국가대표였지만 은퇴 후 남은 건 고집뿐인 시헌 역을 맡아 열연을 펼친다. /CJ ENM 제공
진선규는 과거 올림픽 국가대표였지만 은퇴 후 남은 건 고집뿐인 시헌 역을 맡아 열연을 펼친다. /CJ ENM 제공

작품은 금메달리스트 출신, 한번 물면 절대 놓지 않는 마이웨이 선생 시헌(진선규 분)이 오합지졸 핵아싸(아웃사이더) 제자들을 만나 세상을 향해 유쾌한 한 방을 날리는 이야기를 그린다.

진선규는 과거 올림픽 국가대표였지만 은퇴 후 남은 건 고집뿐인 시헌으로 분해 극을 이끈다. 지난 15일 이른 시간부터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위치한 카페에서 많은 취재진을 만난 그는 "다른 작품과 홍보 일정은 비슷한데 저의 부담감이 크다 보니까 조금 지쳐 보이나 봐요"라고 개봉을 앞둔 심정을 솔직하게 내비쳤다.

그가 그동안 했던 작품과 다른 무게의 부담을 안고 있는 이유는 분명했다. 데뷔 19년 만에 첫 단독 주연을 맡아 작품 전면에 나서서 일정을 소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리더보다는 팀의 구성원으로서 리더를 돕는 역할이 편하다고 털어놓은 그는 "제가 잘하고 있는지 계속 의심하고 있어요"라고 운을 뗐다.

"잘하지 못하는 걸 잘하려고 하니까 그 자체가 부담되더라고요. 모든 화살이 저에게 돌아올 것 같았어요. 이런 기분을 처음 느꼈죠. 리더로서 부족하지 않나라는 걸 많이 느꼈어요. 이게 앞으로 계속된다면 얼른 익숙해져야 할 것 같아요. 리더의 자질을 습득해야죠."

소위 말하는 배우의 위치부터 작품의 비중까지 모든 게 달라졌다. 그러나 유일하게 변하지 않은 게 있었다. 바로 주변 사람들과 맞추는 호흡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진선규의 마음가짐이다. '혼자 잘하는 것 보다 함께하는 친구들을 잘할 수 있게 만들면 나 또한 돋보인다'. 이 굳건한 믿음은 이번 작품에서도 이어졌다.

진선규는 범죄도시 이후로 첫 단독 주연까지 너무 짧은 시간이라고 느낀다고 솔직하게 전했다. /CJ ENM 제공
진선규는 "'범죄도시' 이후로 첫 단독 주연까지 너무 짧은 시간이라고 느낀다"고 솔직하게 전했다. /CJ ENM 제공

특히 진선규는 '카운트' 촬영을 앞두고 단역 배우들과 대본 리딩을 하며 모든 부분을 세심하게 신경 썼다. 작품을 준비했던 과정을 들어보면 그는 리더의 자질을 충분히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영화를 보니까 제가 부족한 게 많이 보이더라고요. 그런데 상대 배우들이 잘해주니까 영화가 좋게 잘 흘러갔던 거 같아요. 이런 걸 보면서 함께 했던 모든 배우들께 다시 한번 감사했어요"라고 공을 돌리며 겸손한 면모를 드러냈다.

앞서 진선규는 13일 열린 '카운트' 언론 시사회 및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질의응답에 임했다. 데뷔 첫 단독 주연을 맡은 작품을 최초로 공개하는 자리인 만큼, 떨리는 감정을 숨김없이 드러내는가 하면 끝내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날의 눈물은 부담이 아닌 감동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진선규는 일정을 앞두고 시헌 쌤에게 '떨린다'고 문자를 보냈고, '대한민국 최고 진선규가 링에 올라가는데 떨면 어떡하냐. 그러면 옆에 있는 선수들도 같이 떨린다'는 답을 받았다. "이 말이 저에게는 너무 힘이 됐어요. 말하다가 또 감동받아서 눈물을 흘렸죠"라고 설명했다.

이날 진선규가 언급한 '시헌 쌤'은 '카운트'의 모티브가 된 인물이다. 그는 88서울올림픽 복싱 라이트미들급 결승전에서 스스로 예상하지 못했던 판정승을 거두고 그 누구도 인정하지 않는 불명예스러운 금메달을 목에 걸게 됐다.

계속된 편파 판정 논란으로 인해 결국 선수 생활 은퇴를 선언한 박시헌 선수는 모교인 경남 진해중앙고 체육 교사로 부임하고 복싱팀을 창단해 제자들을 키우는데 열정을 쏟는다. 이후 2001년 국가대표팀 코치를 시작으로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복싱 국가대표 총감독을 역임하며 진짜 금메달을 향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2004년 연극 거울공주 평강이야기로 데뷔한 진선규는 2017년 개봉한 영화 범죄도시로 대중들에게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CJ ENM 제공
2004년 연극 '거울공주 평강이야기'로 데뷔한 진선규는 2017년 개봉한 영화 '범죄도시'로 대중들에게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CJ ENM 제공

진선규와 박시헌 선수는 비슷한 점이 많았다. 고향부터 체육 교사를 꿈꿨던 어린 시절, 또한 가족과 동료를 사랑하고 자신이 잘하는 것만 바라보는 순수함까지. 그렇기에 본능적으로 작품과 캐릭터에 끌렸다.

"극 중 '다운당했다고 해도 끝이 아니다. 카운트가 있다. 그러니까 힘들고 고된 그 자리에서 잠깐 쉬었다가 숨이 돌아오면 딛고 싸우면 된다'는 대사가 있어요. 그리고 편집됐지만 '내 인생도 아마 5나 6일 거다'라는 대사가 있어요. 저는 이 말이 좋았거든요. 자신의 인생이 진행형이라는 시헌 쌤의 가치관과 지금 하고 계신 것들이 저와 너무 비슷했어요."

이번 작품을 받고 나서야 박시헌 선수의 일화를 알게 된 진선규다. 하지만 이로부터 오는 부담은 없었다. 그의 실추된 명예를 되찾아주는 게 아니라 차근차근 견디고 이겨낸 과정에 더 집중했기 때문이다.

"시헌 쌤은 자신의 이야기가 세상에 다시 나오는 걸 겁내셨어요. 저도 그런 마음을 가진 분의 이야기를 하게 됐다 보니까 관객들에게 더 좋은 느낌으로 다가가길 바랐죠. 이분의 이야기가 좋은 방향으로 치유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임했어요. 실제로 만나 뵌 시헌쌤은 강하고 이기려는 분이 아니었어요. 약하고 부드러웠죠. 가족과 동료를 생각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복싱만 바라보는 순수한 분이었어요. 제가 받았던 느낌을 작품에 잘 녹여내고 싶었어요."

지난 2004년 연극 '거울공주 평강이야기'로 데뷔한 진선규는 무대와 스크린, 안방극장을 오가며 내공을 쌓아왔다. 그리고 마침내 '범죄도시'에서 조선족 조폭 위성락으로 분해 확실한 눈도장을 찍었다.

강렬한 민머리부터 착 붙는 언변 사투리까지, 실제 조선족이 아니냐는 오해까지 받을 만큼 완벽한 캐릭터 소화력을 보여준 그는 해당 작품으로 제38회 청룡영화제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이후 '극한직업'으로 천만 관객을 사로잡았고, '공조2:인터내셔날'에서 메인 빌런으로 활약하며 또 다른 얼굴을 선보였다.

진선규는 제가 좋아하는 작품이 왔을 때 잘 해내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각오를 내비쳤다. /CJ ENM 제공
진선규는 "제가 좋아하는 작품이 왔을 때 잘 해내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각오를 내비쳤다. /CJ ENM 제공

이렇게 대학로 극단에서 오랜 무명 시절을 견디고, 마침내 '믿고 보는 배우'로 거듭난 진선규는 '범죄도시' 이후 지금까지의 시간을 되돌아보며 "너무 짧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범죄도시' 이후로 저에게는 성장이 아니라 변화와 변신이 있었어요. 너무 급하게 올라와 있는 거 같았어요. 그래서 지금 더 큰 부담을 느끼는 건가 봐요. 단역에서 갑자기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이에요"라고 덧붙였다.

진선규는 여전히 하고 싶은 게 많은 배우다. '멀고 먼 이야기지만 주연으로서 멜로를 해보고 싶다'며 수줍게 웃어 보이기도 했다. 단독 주연으로 우뚝 섰다고 해도 앞으로 그가 작품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이 타이틀이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 거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대중들에게 자신의 첫 단독 주연작을 보여줄 모든 준비를 끝냈다. 어떠한 평가도 묵묵히 받아들일 자세도 함께 말이다. 그는 "'카운트'를 보고 '진선규는 주인공 감이야' 혹은 '아직은 조연이다' 등 반응이 나뉠 거라고 예상해요. 또 나눌 수도 있다고 생각하죠. 저는 그걸로 '주인공을 해야지'라는 목표는 없어요"라고 힘주어 말했다.

"극의 톱니바퀴가 되든 시곗바늘이 되든 중요하지 않아요. 저에게 좋아하는 작품이 왔을 때 잘 해내고 싶어요. 그리고 실패해도 누군가는 저에게 또 제안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이 일을 계속하고, 제 갈 길을 묵묵히 가다 보면 또 기회가 올 거예요. 저는 그저 필요한 곳에 필요한 사람으로 있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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