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 韓 영화 '스위치'로 11년 만에 스크린 복귀
배우 이민정이 영화 '스위치'로 약 11년 만에 스크린에 돌아왔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
정제되지 않은 스타는 어떤 모습일까. 연예계는 대중의 관심을 받는 스타도 많고, 이들을 팔로우하는 매체도 많다. 모처럼 인터뷰가 잡혀도 단독으로 대면하는 경우가 드물다. 다수의 매체 기자가 함께 인터뷰를 하다 보니 내용도 비슷하다. 심지어 사진이나 영상마저 소속사에서 만들어 배포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런 현실에서도 <더팩트>는 순수하게 기자의 눈에 비친 느낌을 가공하지 않은 그대로의 모습으로 전달한다. <편집자 주>
[더팩트|박지윤 기자] 최근 SNS상에서 단 한 줄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배우를 직접 만났다. 인형 같은 비주얼에 재치와 입담까지 겸비한 그는 쓰는 글마다 네티즌들을 '빵' 터뜨리고 있다. 그 특유의 털털함은 인터뷰에서도 볼 수 있었다. 참 따뜻하고 유쾌한 배우 이민정이었다.
대게 인터뷰는 홍보를 위한 자리로 여겨진다. 작품을 끝내고 진행되는 드라마와 달리 관객들과 만나기 전에 인터뷰하는 영화의 경우 더더욱 그렇다.
그런 관점에서 '스위치' 개봉을 앞두고 만난 이민정과의 인터뷰는 새로웠다. 그는 작품과 관련된 이야기뿐 아니라 최근 대학 동기들을 만난 에피소드부터 남편이자 배우 이병헌과의 일, 아들의 근황 등 자신의 소소한 일상까지 편하게 전했다. 뻔한 질문과 대답이 아닌 대화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유쾌한 '수다 한 판'이 펼쳐졌다.
이민정은 성공한 아티스트이자 박강의 추억 속 첫사랑에서 뒤바뀐 세상 속 생활력 만렙인 아내 수현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
지난 4일 개봉한 영화 '스위치'(감독 마대윤)는 캐스팅 0순위 천만 배우이자 자타공인 스캔들메이커, 화려한 싱글 라이프를 만끽하던 톱스타 박강(권상우 분)이 크리스마스에 인생이 180도 뒤바뀌는 순간을 맞이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이민정은 성공한 아티스트이자 박강의 추억 속 첫사랑에서 뒤바뀐 세상 속 생활력 만렙인 아내 수현으로 분했다.
'스위치'는 2021년 3월에 크랭크업했지만 코로나19 여파로 개봉을 미루다가 약 2년 만에 스크린에 걸린 작품이다. 이에 이민정은 2012년 영화 '원더풀 라디오' 이후 11년 만에 관객들과 만나는 중이다. 그동안 많은 시나리오를 받은 이민정이 '스위치'에 끌린 이유는 무엇일까.
뜨뜻미지근한 가족 영화가 아닌 웃음과 따뜻함이 적재적소에 잘 들어간 작품. 이민정은 단 한 줄로 '스위치'의 매력을 담백하게 전했다. 이후 그는 '스위치'에 대한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는 대신 작품과 배우의 인연을 언급했다.
그는 "제 의지와 주변 상황이 잘 맞았어요. 제가 뜻이 있다고 해도 물 흐르듯이 되지 않으면 어려울 때가 있거든요. 잘될 거는 가만히 있어도 잘되고 안될 일은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더라고요. '스위치'처럼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게 배우에게 중요해요. 저희는 의견 충돌도 없었고 촬영 펑크도 없이 척척 진행됐어요"라고 설명했다.
이민정은 답변 중간중간 툭툭 던지는 말로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마치 SNS상에서 짧은 문구나 댓글로 '쿨함'을 드러내며 네티즌들을 사로잡는 것처럼 말이다. 예를 들어 극 중 남편을 위해 마트에서 몰래 일하고 이를 알게 된 남편이 화를 내니까 미안해하는 수현을 보며 "불자가 앉아있는 느낌이었다", "이건 진짜 상상일 뿐" 등과 같이 솔직한 반응으로 취재진을 폭소케 했다.
이민정은 "지금도 연극을 하고 싶어요. 연극 경험은 평생의 자양분"이라고 대학 시절을 회상했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
2001년 성균관대학교 연기예술학과에 입학한 이민정은 연기가 아닌 연출에 관심이 많은 학생이었다. '공연해야 학점을 받을 수 있다'는 학칙에 따라 연기 연습을 시작한 그는 관객들에게 바로 피드백을 받으며 연극의 매력을 느꼈다. "지금도 연극을 하고 싶어요"라고 말한 이민정에게 무대 경험은 평생의 자양분이 됐다.
사실 이민정은 무명 생활 없이 단번에 스타덤에 오른 배우는 아니다. 여러 작품의 조·단역으로 출연했던 그는 영하 30도에서 망사스타킹을 신고 추위에 떨며 촬영했음에도 편집된 적이 있을 정도로 다양한 경험을 축적해왔다. 이를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본 아버지는 '야, 고생 그만해'라고 했지만, '서른이 되기 전까지 세상이 나를 모르면 배우를 그만두겠다'고 굳은 의지를 내비친 이민정이다.
그렇게 28세에 '꽃보다 남자'를 만나 대중들에게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당시 최고 시청률 32.9%(닐슨코리아 전국 가구 기준)를 기록하며 전국적인 인기를 끌었던 작품인 만큼, 이민정은 방송 다음 날부터 바로 인기를 체감할 수 있었다. 이에 그는 '인지도를 쌓을 수 있는 손쉬웠던 방법'이라고 너스레를 떨었지만,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고생의 시간을 통해 일희일비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
"저는 '꽃보다 남자' 전에도, 그 이후에도 정말 열심히 했어요. 10년 차까지는 작품이 잘 안되면 상처를 많이 받았는데 이제는 오로지 제 탓만을 하지 않을 수 있게 됐어요. 생사를 걸어도 안 되는 경우가 있거든요. 동전의 앞뒤처럼 한 끗 차이죠. 작품의 흥행에 배우의 노력만 필요한 건 아니에요. 좋은 작품을 선택하는 건 당연하지만 제가 열심히 했는데도 안 되는 건 어쩔 수 없어요. 이렇게 털어낼 수 있는 걸 배웠죠. 그런 점에서 일사천리로 진행된 '스위치'가 더욱 뜻깊고요."
이민정은 "'스위치'가 잘 돼서 영화관에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
그런가 하면 이민정은 '스위치'의 박강처럼 인생을 180도 뒤바꿀 수 있다면 어떤 인생을 살아보고 싶냐는 취재진의 질문을 받자, 단 1초도 망설이지 않고 "제 아들이요"라고 의외의 답변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를 납득하기까지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요즘 아이들의 교육은 저희 때에는 상상할 수 없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어요. 늘 아들에게 '엄마가 너처럼 공부했으면 애플을 만들었을걸'이라고 해요(웃음). 아들은 축구랑 농구, 하키를 배우고 있는데 지금 거의 자기가 마이클 조던이자 손흥민이에요. 저는 예의 말고는 아이의 의견을 존중하는 편이거든요.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아들이 느끼는 하루의 행복이에요. 이를 위해 모든 걸 다 해주려는 엄마죠."
이민정은 2013년 이병헌과 결혼해 2015년 아들을 낳았다. 이렇게 결혼과 출산, 육아로 잠시 일과 멀어졌었던 그는 '한 번 다녀왔습니다'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남편으로부터 연기 조언을 받았다고 밝혔다. '배우가 텍스트에 국한되면 안 된다'는 조언은 그동안 이민정이 단추를 잘 못 끼웠던 걸 모르고 지나쳤음을 깨닫게 해줬다.
"저는 보수적이라 작가의 생각을 존중해야된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오빠가 '지문이 어색하면 다른 걸로 쓸 수 있어야 한다. 어색함을 참고 연기하는 건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숨은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대사를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말하기를 원하는 작가님도 있어요. 그렇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배우가 불편하게 있으면 시청자들에게도 느껴진다는 거죠. 그동안 나를 위주로 생각하지 않았던 걸 깨달았어요."
이렇게 2023년을 '스위치'로 힘차게 시작한 이민정은 바쁜 나날을 보낼 전망이다. ENA '오은영 게임' MC로 활약할 예정이며 이미 촬영을 끝낸 티빙 '빌런즈' 오픈까지 기다리고 있다. 이 외에도 미스터리한 스릴러나 액션 연기에 도전하고 싶다고 말하며 앞으로의 활약을 더욱 기대하게 했다.
"'스위치'가 새해 첫 한국 영화라 사명감이 들어요. 저희 작품이 잘 돼서 영화관에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총대를 멘 것처럼 잘 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빌런즈'에서 저는 아빠 같은 사람을 잃고 악당들과 싸우는 캐릭터예요. 엄청난 액션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느낌이 있고, 단 한 번도 웃는 모습이 안 나와요. '스위치'와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실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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