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생곡(91)] 계은숙 '기다리는 여심', 매력의 허스키 음색
입력: 2022.10.27 00:00 / 수정: 2022.10.27 00:00

데뷔 직후 '노래하며 춤추며'와 함께 공전의 히트 '인기폭발'

계은숙이 꼽는 인생곡은 80년 발표한 공식 2집 노래하며 춤추며에 실렸던 기다리는 여심이다. 이 곡은 노래하며 춤추며와 함께 데뷔 직후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폭발했다. /더팩트 DB
계은숙이 꼽는 인생곡은 80년 발표한 공식 2집 '노래하며 춤추며'에 실렸던 '기다리는 여심'이다. 이 곡은 '노래하며 춤추며'와 함께 데뷔 직후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폭발했다. /더팩트 DB

[더팩트ㅣ강일홍 기자] 가수 계은숙은 '한국 가수 7년 연속' 일본 NHK '홍백가합전' 무대에 오른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갖고 있다. 한국 가수 중에는 김연자 보아 동방신기 카라 소녀시대 등 극히 일부만 초대됐을 정도로 일본 인기 가수들에게도 영예로운 무대로 정평이 나 있다.

그만큼 일본에서의 활약은 화려하다. 계은숙은 일본의 유명 작곡가 하마 케이스케에게 발탁돼 꿈을 키우다 85년 '오사카 황혼'으로 데뷔했다. '참새의 눈물', '꿈 여자' 등이 잇달아 히트하면서 일본 팬들이 좋아하는 한국 가수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すずめの涙'(스즈메노나미다), '夢おんな'(유메온나), '酔いどれて'(요이도레테), '真夜中のシャワー'(마요나카노샤와), 'ベサメムーチョ'(베사메무초) 등의 곡들을 차례로 발매해 히트시켰고, 각종 음악상들을 휩쓸었다. 2008년 귀국하기까지 그는 일본 내 최고 스타가수였다.

당연히 국내보다 일본에서 더 유명하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가 한때 계은숙의 팬클럽 회장을 맡을 만큼 그는 일본 무대에서 전성기를 보냈다. 각성제 복용 혐의로 추방당한 지 14년, 그에게 일본은 여전히 짙은 애증의 그림자다.

계은숙은 뛰어난 음악적 자질을 확인한 뒤 78년에 유니버설레코드에서 가수로 데뷔했고, 1980년 노래하며 춤추며, 기다리는 여심을 발표하면서 그해 MBC 10대가수가요제 신인상을 수상했다. /프로미스엔터테인먼트 제공
계은숙은 뛰어난 음악적 자질을 확인한 뒤 78년에 유니버설레코드에서 가수로 데뷔했고, 1980년 '노래하며 춤추며', '기다리는 여심'을 발표하면서 그해 MBC '10대가수가요제' 신인상을 수상했다. /프로미스엔터테인먼트 제공

계은숙은 1977년에 광고 모델로 처음 연예계에 발을 내디뎠다. 뛰어난 음악적 자질을 확인한 뒤 78년에 유니버설레코드에서 가수로 데뷔했고, 1980년 '노래하며 춤추며', '기다리는 여심'을 발표하면서 그해 MBC '10대가수가요제' 신인상을 수상했다.

그가 꼽는 인생곡은 80년 발표한 공식 2집 '노래하며 춤추며'에 실렸던 '기다리는 여심'이다. 이 곡은 '노래하며 춤추며'와 함께 데뷔 직후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폭발했다. 이후 '나에겐 당신밖에', '다정한 눈빛으로' 등의 곡으로 국내 팬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

'내 마음 외로울땐 눈을 감아요 자꾸만 떠오르는 그대 생각에/ 가슴에 느껴지는 사랑에 숨결 멀리서 아득하게 전해 오네요/ 사랑이 끝났을 때 남겨진 이야기는/ 시들은 꽃잎처럼 흐르는 세월이 아쉬워 하겠지/ 내 마음 서러울땐 하늘을 봐요 흐르는 구름 위에 마음 띄우며/ 내 곁에 와 달라고 기원하면서 오늘도 기다리는 여인입니다'(계은숙 '기다리는 여심' 가사 1절)

'노래하며 춤추며'가 빠르고 경쾌한 리듬으로 사랑받았다면 잔잔한 발라드 풍의 '기다리는 여심'은 그의 참신한 외모와 허스키한 보이스 매력과 어울려 대중의 공감대를 이끌어냈다. 당시 컬러TV 보급도 비주얼 가수의 인기에 한몫을 했다.

일본 무대에서 최정상의 인기를 누린 계은숙의 마음 한구석에는 더 큰 허허로움이 남아 있다. 국내 무대에서 자신의 본 모습을 되찾고 싶은 가수로서의 소망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계은숙 팬카페 캡처
일본 무대에서 최정상의 인기를 누린 계은숙의 마음 한구석에는 더 큰 허허로움이 남아 있다. 국내 무대에서 자신의 본 모습을 되찾고 싶은 가수로서의 소망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계은숙 팬카페 캡처

62년 충남 서산에서 태어난 계은숙은 유년시절을 힘들고 불우하게 보냈다. 어머니 혼자 작은 매점 등을 운영하며 두 딸을 키웠고 계은숙은 어린 나이에도 언니와 함께 비닐 우산이나 신문팔이를 하며 생계를 도왔다. 애초 아버지 존재를 모르고 살았던 셈이다.

귀국 후에도 계은숙한테는 어머니가 유일한 '희망'이고 삶의 목표였다. 자신의 불찰로 수감생활을 하던 중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 임종마저 못본 터라 회한이 없을 리 없다. 훗날 필자와 인터뷰에서 그는 "그렇게 어머니를 떠나 보냈기 때문에 노래로 다시한번 가슴의 한을 풀고 싶다"고 했다.

최정상의 인기를 누리며 누구보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만큼 계은숙의 마음 한구석에는 더 큰 허허로움이 남아 있다. 국내 무대에서 자신의 본 모습을 되찾고 싶은 가수로서의 소망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eel@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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