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모범가족' 박희순, 힘 빼고 만든 차별화된 캐릭터
입력: 2022.08.29 07:00 / 수정: 2022.08.29 07:00

"같은 직종 연달아 맡는 게 부담...열연하지 않으려 해"

박희순은 넷플릭스 모범가족에서 마약 조직 2인자 광철 역을 맡아 극의 몰입도를 높였다. /넷플릭스 제공
박희순은 넷플릭스 '모범가족'에서 마약 조직 2인자 광철 역을 맡아 극의 몰입도를 높였다. /넷플릭스 제공

[더팩트|박지윤 기자] 배우 박희순이 '마이네임' 조직의 보스로, '모범가족' 조직의 2인자로 연이어 시청자들과 만났다. 이는 자가복제의 늪에 빠질 수 있고, 작품 또한 비슷한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 하지만 누구보다 이를 가장 경계했던 박희순은 힘을 빼는 전략으로 차별화를 두며 같은 듯 다른 매력을 선보였다.

박희순은 지난 12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모범가족'(극본 이재곤, 연출 김진우)에서 사라진 돈 가방의 행적을 좇아 추적하는 마약 조직 2인자 광철 역을 맡았다. 작품은 파산과 이혼 위기에 놓인 평범한 가장 동하(정우 분)가 우연히 죽은 자의 돈을 발견하고 범죄 조직과 처절하게 얽히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OTT 플랫폼을 통해서 국내뿐 아니라 해외 관객까지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좋았고 영광이었죠. '모범가족'을 봤는데 만족스러웠어요. 매 장면 인물의 심리가 잘 표현됐더라고요. 그동안 화려하고 돈이 많이 들어간 미장센은 봤지만, 날 것 그대로의 미장센을 보여주는 작품은 드물었거든요. 이국적이면서도 우리의 삶을 잘 담고 있어서 '한국에서 찍은 게 맞나?' 싶은 정도였어요."

지난해 공개된 넷플릭스 '마이네임'에서 조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보스 최무진으로 분했던 박희순은 친구의 딸 지우(한소희 분)에게 만큼은 약한 면모를 보이며 많은 이들을 설레게 했고, '지천명 아이돌'이라는 수식어를 얻기도 했다.

하지만 '모범가족'에서도 조직에 몸을 담은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두 개의 작품이 비슷한 결로 보이지 않을까라는 우려도 공존했다. 이에 박희순은 "'마이네임'이 오픈한 후에 '모범가족'을 제안받았으면 안 했을 가능성이 높아요"라고 솔직하게 말하면서 연기에 차별화를 둔 포인트를 짚었다.

"전작을 찍으면서 이번 작품을 받았어요. 극의 분위기가 다르기 때문에 작품은 다른 점이 분명히 있었지만, 제가 같은 직종을 연달아 맡는 게 부담스러웠죠. 감독님을 만나서 솔직하게 말했는데 감독님께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고, 저 또한 '그럼 힘 빼고 가겠다. 열연하지 않겠다'고 했어요. 전작과 다른 느낌을 주기 위한 차원에서 열심히 하지 않겠다는 뜻이었죠. '마이네임' 무진과 다르게 연기하면 분명히 차별화를 둘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박희순은 전작과 차별화를 두기 위해 힘을 빼고 연기했다. 열연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넷플릭스 제공
박희순은 "전작과 차별화를 두기 위해 힘을 빼고 연기했다. 열연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넷플릭스 제공

그의 말대로 광철이 가진 매력과 개성은 뚜렷했다. '조직에 몸담고 있는'이라는 설정으로 유추할 수 있는 일반적인 범주를 벗어난 광철은 완전한 악도 선도 아닌 입체적인 인물이다. 자신의 진짜 가족을 가지지 못한 광철은 그로부터 오는 외로움과 공허함을 느꼈고, '실제 가족은 무엇일까'라는 물음을 가진 채 자신의 결핍을 채우려고 노력한다. '모범가족'에서 힘을 빼고, 열연하지 않겠다고 말한 박희순은 캐릭터의 감정을 오롯이 눈빛에 담아냈다.

"광철은 악인이에요. 손가락을 자르고 마약도 파니까 나쁜 사람이죠. 그러나 가족만 생각하면 약해지고 생각이 많아져요. 이게 그 사람의 장점이자 단점이 될 수 있어요. 악인이지만 문득 나오는 순수함을 표현하기 위해서 눈빛에 집중했어요."

"광철은 진짜 가족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이를 동경하면서 자신의 가족이 될 수 있는 사람을 그리워했던 거 같아요. 결국 그리움의 대상이 조직이 된 거고요. 하지만 가족의 결핍에서부터 파생된 유사 가족이다 보니까 '진짜 가족은 무엇일까?'라는 의문을 늘 품고 있었죠. 복수에 관한 이야기보다는 가족에 대한 결핍과 그리움으로부터 시작하면 다른 걸 보여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광철은 진짜 가족을 동경하면서 자신의 가족이 될 수 있는 사람을 그리워했던 거 같아요."

'모범가족'에는 결혼과 혈연으로 이루어진 동하와 은주(윤진서 분)의 가정뿐 아니라 광철의 범죄 조직, 주현(박지연 분)의 경찰 등 의리와 책임 그리고 충성심으로 연결된 유사 가족이 등장한다. 피 묻은 돈 가방에 얽혀든 네 사람이 각자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 발버둥 치는 이들의 이야기는 범죄 스릴러의 전형적인 룰을 파괴하며 '가족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희로애락을 같이 하는 게 가족인 거 같아요. 극 중 실제 가족이 모범적이지 않고 불량하지만 끝까지 버티고 깨지지 않으려고 노력하잖아요. 하지만 유사 가족은 서로 배신하고 복수하면서 결국 사건이 일어나요. 이런 걸 보면서 '가족은 기쁠 때뿐 아니라 힘들고 어려울 때도 곁에 있어 주는 거지'라고 생각했죠."

박희순은 SBS 새 드라마 트롤리로 시청자들과 만날 예정이다. /넷플릭스 제공
박희순은 SBS 새 드라마 '트롤리'로 시청자들과 만날 예정이다. /넷플릭스 제공

총 10부작으로 구성된 '모범가족'은 사건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는 듯했지만, 광철과 동하가 상선으로부터 전화를 받으며 열린 결말로 끝맺음했다. 이를 본 시청자들은 자연스럽게 시즌 2를 기대하게 됐고, 박희순 또한 시즌 2에 관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며 OTT의 장점을 전했다.

"모든 배우들이 시리즈를 하게 되는 이유가 시즌2에 대한 기대가 있어서고, 저도 마찬가지예요.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펼쳐질 수 있고, 캐릭터도 괜찮았기 때문에 시즌2를 하면 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OTT의 장점은 숫자에 연연하지 않는 거예요. 관객 수나 시청률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죠. 그렇기에 작품에 더 집중할 수 있어요 물론 많은 분들이 보시면 좋지만 정확한 숫자가 나오지 않기 때문에 마음이 편안해져요. 예술은 주관적이라 정답이 없다고 생각하죠. 그렇기 때문에 그 잣대에 갇히지 않는 OTT에 매력을 느껴요. 물론 흥행 부담은 항상 있지만, OTT를 하면서 그런 부담을 덜고 있죠."

'마이네임'과 '모범가족'으로 전 세계 시청자들과 동시에 만난 박희순은 SBS 새 드라마 '트롤리'로 안방극장에 컴백한다. 또한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무빙'에도 출연을 확정 지으며 '열일' 행보를 예고했다. 이렇게 꾸준한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그에게 작품을 고르는 기준을 묻자 "제가 이 나이에 마다할 게 있나요"라고 너스레를 떨면서도, 뚜렷한 기준과 소신을 말해 눈길을 끌었다.

"재미죠. 어떠한 예술 작품이라도 재미가 없으면 대중들과 만나기 어렵죠. 예전에는 제가 재밌는 게 더 중요했는데 이제는 대중들이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을 더 많이 생각하고 있어요. '이 작품에서 이 캐릭터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사랑받을 수 있는가, 그렇지 못하다면 내가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어야 하는가'를 많이 생각하고 출연을 결정하고 있죠."

"'모범가족'은 한국적이지만 이국적인 작품으로 기억됐으면 좋겠어요. 새로운 시도를 했다는 평가를 받고 싶어요. '트롤리'에서는 3선 출마를 앞둔 재선 국회의원 남중도 역을 맡았어요. 이제까지 보여준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일 거 같아요. 이 나이에 작품이 들어오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해요. 일이 있는 한 쉬지 않고 열심히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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