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을 다한 작품, 관객들 반응 궁금하고 긴장돼"
이정재가 데뷔 첫 장편 연출작 '헌트'로 돌아왔다. 그는 "제가 할 수 있는 역량 안에서 최선을 다했다 보니 더 떨리지는 않는다. 어떤 반응을 보여주실지 궁금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제공 |
정제되지 않은 스타는 어떤 모습일까. 연예계는 대중의 관심을 받는 스타도 많고, 이들을 팔로우하는 매체도 많다. 모처럼 인터뷰가 잡혀도 단독으로 대면하는 경우가 드물다. 다수의 매체 기자가 함께 인터뷰를 하다 보니 내용도 비슷하다. 심지어 사진이나 영상마저 소속사에서 만들어 배포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런 현실에서도 <더팩트>는 순수하게 기자의 눈에 비친 느낌을 가공하지 않은 그대로의 모습으로 전달한다. <편집자 주>
[더팩트|박지윤 기자] 4년. '헌트' 시나리오가 완성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배우 이정재가 2017년 영화 '대립군'부터 2021년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까지 7개의 작품으로 대중들과 만날 동안 감독 이정재의 손에 늘 들려 있었던 '헌트'가 드디어 세상에 나왔다.
지난 10일 개봉한 영화 '헌트'(감독 이정재)는 이정재의 데뷔 첫 장편 연출작이자, 이정재와 정우성이 '태양은 없다' 이후 23년 만에 함께 출연하는 작품으로 관심을 모았다.
이정재는 개봉에 앞서 이틀 동안 진행된 라운드 인터뷰를 통해 취재진을 만났다. 감독 그리고 배우 이정재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상대적으로 취재진이 적은 시간대인 4일 오후 2시 타임을 신청했다. 하늘색 스트라이프 셔츠에 흰색 바지를 입은 깔끔한 차림의 그는 "안녕하세요"라고 먼저 인사를 건넸다. 그동안 영화에서만 들었던 이정재 특유의 중저음 목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이날 기준으로 영화 개봉을 6일 앞두고 있었던 이정재는 "다른 작품보다 2~4배 정도 더 떨릴 줄 알았어요. 그런데 제가 할 수 있는 역량 안에서 최선을 다했다 보니까 더 떨리지는 않아요. 어떤 반응을 보여주실지 궁금하고 긴장되네요"라고 담담하게 소감을 전했다.
작품은 조직 내 숨어든 스파이를 색출하기 위해 서로를 의심하는 안기부 요원 박평호(이정재 분)와 김정도(정우성 분)가 '대한민국 1호 암살 작전'이라는 거대한 사건과 직면하며 펼쳐지는 첩보 액션 드라마다.
'헌트'는 이정재(왼쪽)와 정우성이 1988년 영화 '태양은 없다' 이후 23년 만에 함께 출연하는 작품으로 관심을 모았다.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제공 |
'헌트'는 제75회 칸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공식 초청돼 월드 프리미어로 첫선을 보였다. 하지만 호불호가 갈리는 반응과 함께 '스토리를 따라가기 어렵다'는 평이 나왔고, 이정재는 결국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휴식이 아닌 편집을 택했다.
"'이 정도는 이해하겠지'라는 내부인들이 빠질 수 있는 오류였어요. 10~20대분들이 쉽게 이해하고 따라온다면 해외 분들도 잘 볼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쉽게 쓴다고 썼는데(웃음). 칸에서 약 30% 분들이 전혀 따라오지 못하더라고요. 한국 10~20대의 30%가 영화를 따라오지 못하면 이건 큰 문제가 되겠다 싶었죠. 일주일 정도의 시간을 갖고, 가능한 범위 내에서 편집하기 시작했어요."
관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 오히려 힘을 뺀 이정재다. 입술이 안 보이는 컷을 이용해 대사를 수정했고, 시대적 설명과 안기부의 악행 묘사를 덜어내고 두 주인공의 대립 관계에 집중했다. 그는 이 같은 편집을 두고 "신의 한 수는 아니지만 큰 도움이 된 건 사실"이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이정재와 '헌트'의 만남은 20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연출이 아닌 제작을 목표로 원작 시나리오 '남산' 판권을 구매한 그는 많은 감독을 만났지만 숱한 거절을 당했고, 결국 직접 메가폰을 잡았다. 이정재는 "다 안 한다고 하니까 결국 제가 했어요. 누군가는 해야 되니까요. 판권을 산 사람이 해야죠"라며 웃어 보였다.
이정재는 30년 동안 쌓아온 경험과 내공으로 현장을 이끌었다. 그는 "현장에서 보고 배웠던 게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제공 |
이렇게 계획에 없던 도전을 한 이정재는 30년 동안 배우로서 쌓아온 경험과 내공으로 현장을 진두지휘했다. 각본과 제작, 연출 그리고 출연까지 모든 걸 도맡으며 제작비라는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혔지만, 최소한의 투자로 최대한의 효과를 내는 노하우를 활용하며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들었다.
"'서스펜스만 있는 영화를 얼마나 많은 관객들이 좋아할까'라는 의문을 가지고 있었어요. 서스펜스와 함께 볼거리도 풍부하면 더 많은 관객들이 볼 거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제작비를 줄이기보다는 한정된 부분만 연출하고, 나머지는 세팅을 하지 않는 식으로 비용을 절감했어요. 그동안 현장에서 보고 배웠던 게 많은 도움이 됐죠."
작품의 배경은 1980년대로, 실제 군부 정권이 인권 유린을 저지르고 민주화 운동을 탄압했던 시기다. 이에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북한 조종사 이웅평 월남 사건, 아웅산 테러 사건 등 근현대사의 주요 사건들이 작품에 자연스럽게 담겼다. 하지만 스파이물에 역사적 사실을 녹이는 건 위험한 선택이 될 수 있었고, 이정재 또한 많은 고민을 거듭했다.
"분명 과감한 시도죠. 저에게 비난으로 돌아올 수도 있고요. 제가 나쁜 의도를 가지고 영화적 상상력에 숨어서 이를 사용했다면 배우 생활에 치명타를 입을 거예요. 하지만 정도와 평호의 잘못된 신념을 바꾸는 거에 있어서 중요한 모티브가 될 거라는 생각에 넣었어요."
"'남산' 판권 구매할 때부터 아웅산은 반드시 바꿔야한다고 생각했어요. 피해자가 너무 많은 사건이고, 유족들도 살아계시니까요. 이걸 재현하는 건 용납되지 않았고 각색 과정에서 태국으로 설정을 바꿨어요. 거대 폭발이 일어나기 전에 행사장에 참여한 국내 내빈들이 버스를 타고 나가는 장면도 굉장히 중요했죠. '이웅평 월남 사건'도 걱정되고 두려웠어요. 하지만 두 주인공이 가지고 있는 목적과 신념이 잘못된 거라는 걸 깨닫는 게 이 시대 배경과 맞을 거라고 생각했죠. 실제 사건을 그대로 가져오기 보다는 모티브로서, 영화적 상상력으로 풀어내면 더 힘이 있을 거 같았어요."<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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