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정은채'] 마침내 '안나'로 인정받은 연기 열정
입력: 2022.07.19 05:00 / 수정: 2022.07.19 05:00

악의도 배려도 없는 현주 役 완벽히 소화

정은채는 쿠팡플레이 시리즈 안나에서 유미의 전 직장 상사 현주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쿠팡플레이 제공
정은채는 쿠팡플레이 시리즈 '안나'에서 유미의 전 직장 상사 현주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쿠팡플레이 제공

정제되지 않은 스타는 어떤 모습일까. 연예계는 대중의 관심을 받는 스타도 많고, 이들을 팔로우하는 매체도 많다. 모처럼 인터뷰가 잡혀도 단독으로 대면하는 경우가 드물다. 다수의 매체 기자가 함께 인터뷰를 하다 보니 내용도 비슷하다. 심지어 사진이나 영상마저 소속사에서 만들어 배포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런 현실에서도 <더팩트>는 순수하게 기자의 눈에 비친 느낌을 가공하지 않은 그대로의 모습으로 전달한다. <편집자 주>

[더팩트|박지윤 기자] "보여준 연기를 또 하는 거에 흥미를 못 느껴요."

배우 정은채는 늘 새로운 얼굴을 선사하고 있었다. 했던 걸 또 하는 반복에서 오는 지루함을 경계하면서 말이다. 이 과정이 마냥 순탄했던 건 아니지만, 결국 '안나'를 만나 자신의 무한한 가능성을 증명해냈다.

지난 7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배우 정은채를 만났다. 청바지에 흰 와이셔츠를 입고 나타난 그는 이날 오전 10시부터 인터뷰를 소화했고, 오후 3시까지 이어진 일정 탓에 다소 지친 듯했다. 하지만 '안나'를 본 주변 반응을 묻자 "연락이 많이 왔어요. 저의 기존 이미지와는 너무 달라서 그런지 신선한 피드백이 많이 왔죠"라며 금세 미소 지어 보였다.

정은채는 쿠팡플레이 시리즈 '안나'(극본·연출 이주영)에서 배려도 악의도 없이 오직 자신의 우월한 인생을 즐기며 사는 유미(수지 분)의 전 직장 상사 현주로 분해 열연을 펼쳤다. 그는 캐릭터에 관해 "처음부터 현주는 누군가의 삶에 악영향을 끼치거나 곤경을 빠트리는 인물은 아니라고 느꼈어요. 연기하면서 새로운 걸 채울 수 있는 재미난 지점이 많을 거 같았죠"라고 설명했다.

그의 말처럼 현주는 단순한 '악역'이 아닌, 이제껏 보지 못한 결의 캐릭터였다. 유복한 집안의 외동딸인 현주는 유학을 다녀온 후 아버지의 갤러리를 함께 운영하며 인생을 즐긴다. 익숙하고 뻔한 '재벌 집 딸'로 보일 수 있지만 현주는 달랐다.

늘 천진난만했던 그는 유미가 자신의 인생을 훔쳐 살았다는 사실을 알고 유미의 숨통을 조이고, 금전적 압박에 시달리자 대가도 요구한다. 또한 이혼을 앞둔 상황에서도 딸은 끔찍이 아끼며 극과 극의 모습을 드러냈다. 이렇게 정은채는 극 중 유해한 감정을 일으키는 인물임에도 매 등장 변주를 꾀하며 인물의 감정선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정은채는 안나는 그 시기에 읽었던 글 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작품이었다고 말했다. /쿠팡플레이 제공
정은채는 "'안나'는 그 시기에 읽었던 글 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작품이었다"고 말했다. /쿠팡플레이 제공

"악의 없는 예측 불가함은 상대에게 당혹감을 주죠. 이 인물이 다음에 무슨 말을 할지 예상할 수 없고, 전혀 가늠이 안 되니까요. 저는 모든 장면을 다 다른 식으로 연기하고 싶었어요. 목표를 조금씩 바꾸면서 말이에요. 유미의 이야기다 보니까 현주가 계속 등장하지는 않아요. 그래서 현주가 등장할 때마다 공기를 환기시키고 싶었죠. 이게 극 중 현주의 몫이기도 했고요."

이를 위해 정은채는 목소리를 한 옥타브 높였고, 손을 쓰는 제스처와 화려한 스타일링을 선보였다. 자칫 과해 보일 수 있는 설정도 자연스럽게 소화한 그는 "나랑은 너무 달라서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희한하게 글이 잘 써졌다고 생각한다"며 "내가 소화할 수 있는 리듬감이었고, 납득할 수 있어서 연기도 할 수 있었다. 현실에서는 하기 어려운 행동을 연기하면서 통쾌한 지점도 있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저는 목소리에 성격이 담겨 있다고 생각해요. 목소리나 어법, 톤이 그 사람을 보여주죠. 극 초반에는 현주가 이 세상 사람 같지 않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약간 붕 떠 있달까. 후반부로 가면서 세월의 흐름을 느낄 수 있게 변주했던 거 같아요. 극의 시간이 흐른 만큼 무게감을 싣고 싶었어요. 그리고 잘 볼 수 없던 색감을 매치하거나 화려한 패턴의 옷을 과감하게 데일리룩으로 입으면서 유미와 상반된 느낌을 더 살리려고 했어요. 손짓으로 감정을 표출하는 건 캐릭터에 활기를 넣고 싶은 저의 애드리브였죠."

작품은 사소한 거짓말을 시작으로 완전히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게 된 한 여자의 이야기로, 장편소설 '친밀한 이방인'을 원작으로 한다. 대본을 받고 단숨에 읽었다는 그는 "그 시기에 읽었던 글 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인물의 묘사가 깊고 세밀하게 표현돼있었다"고 했다.

"현주의 무게감은 일관됐어요. 감독님이 더하거나 빼지 않으셨고, 본인이 생각하는 그림이 확실했어요. 원래 '안나'는 8부작이었는데 함축적인 6부작으로 공개됐어요. 사실 후반부에는 각자의 서사가 많이 나와요. 청소년기의 현주가 나오고, 본성이 어떤 아이인지 알 수 있어요. 자기의 기분을 참지 못하고 표출하는 기질은 어릴 때부터 갖고 있더라고요."

정은채는 매 작품 자기 변주를 꾀하며 새롭고 신선한 얼굴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쿠팡플레이 제공
정은채는 매 작품 자기 변주를 꾀하며 새롭고 신선한 얼굴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쿠팡플레이 제공

끊임없이 캐릭터를 연구하고 변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배우 정은채의 도전은 그의 필모그래피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2010년 영화 '초능력자'로 데뷔한 그는 2018년 방영한 드라마 '손 the guest'부터 '안나'의 전작 '파친코'까지 최근 몇 년간 쉼 없는 작품 활동을 펼쳤고, 직업적인 설정부터 시대적 배경까지 뭐 하나 겹치는 게 없는 새로운 캐릭터로 다채로운 얼굴을 선보였다.

"저는 보여준 연기를 또 보여주는 거에 흥미를 느끼지 못해요. 아무리 잘하는 거일지라도요. 솔직히 처음 현주를 만났을 때 당황스러웠지만 분명히 내재된 또 다른 면을 극적으로 끌어낼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어요. '새로운 면을 보여드리겠다'는 말은 쉽지만, 사람들은 직접 봐야 알 수 있잖아요.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해소 시키고 싶은 마음이 들거라고 생각해서 도전하는 마음으로 해보지 않은 결의 캐릭터를 선택했죠."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취재진의 질문에 골똘히 생각하고 신중하게 답하던 정은채는 연기 가치관에 관해 묻자 망설임 없이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다. 약 12년간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면서 자신의 뚜렷한 소신과 배우이기 전에 한 사람으로서 앞으로의 바램을 솔직하게 전했다.

"저는 캐릭터보다 작품이 먼저예요. 글이 재밌어야 해요. 그 안에서 제가 어떤 역할을 맡는지는 그 다음이죠. 결국 이야기가 제일 중요해요. 작품이 오래 남고, 오래 사랑받아야 그 안에 있는 캐릭터도 사랑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삶은 매 순간 기회의 장이에요. 꼭 배우로서의 삶이 아니라 모든 삶에서요. 그렇기 때문에 제가 상상하지 못했던 선택을 해야 하는 지점에서 좋은 것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여유가 생겼으면 좋겠고, 많은 경험을 통해서 지휘를 발휘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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