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박찬욱'] 영화과 교수님의 명강의를 한 편 듣는 듯한
입력: 2022.07.01 07:00 / 수정: 2022.07.01 09:10

"학교 현수막 쑥스러워…'헤어질 결심', '아가씨'보다 많이 봐주셨으면"

영화 헤어질 결심을 연출한 박찬욱 감독의 화법은 직관적이고 구체적이며 듣는 내내 흥미를 유발했다. /CJ ENM 제공
영화 '헤어질 결심'을 연출한 박찬욱 감독의 화법은 직관적이고 구체적이며 듣는 내내 흥미를 유발했다. /CJ ENM 제공

정제되지 않은 스타는 어떤 모습일까. 연예계는 대중의 관심을 받는 스타도 많고, 이들을 팔로우하는 매체도 많다. 모처럼 인터뷰가 잡혀도 단독으로 대면하는 경우가 드물다. 다수의 매체 기자가 함께 인터뷰를 하다 보니 내용도 비슷하다. 심지어 사진이나 영상마저 소속사에서 만들어 배포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런 현실에서도 <더팩트>는 순수하게 기자의 눈에 비친 느낌을 가공하지 않은 그대로의 모습으로 전달한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이한림 기자] 6월 어느 주말 서강대 정문 앞을 걸었다. 건너편에서도 널찍이 보이는 대형 현수막이 한 눈에 들어왔다. 현수막에는 영화 '헤어질 결심'으로 칸 국제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박찬욱 감독이 한 손에 칸 트로피를 들고 정문 앞을 오가는 후배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대뜸 그에게 "모교 정문 앞에 걸린 대형 현수막을 보셨는지"라고 물었다. 박 감독은 "(지인들이 보내준)사진을 통해 봤다. 제일 먼저 (사진을)보내준 사람은 백현진(박찬욱 감독 영화 '복수의 나의 것' 음악감독) 씨다. 지인들이 저를 놀리려고 지나다닐 때마다 사진을 보내준 통에 여러 개를 갖고 있다. 제가 너무 쑥쓰러워서 제발 이런 것좀 보내지 말라고 했는데 사람들이 제 반응이 재밌나보더라. 자꾸 보낸다"며 머쓱해했다.

24일 화상으로 진행된 박찬욱 감독과 인터뷰는 영화과 교수님의 명강의를 한 편 듣는 듯한 느낌으로 진행됐다. 박 감독의 화법은 직관적이고 구체적이며 듣는 내내 흥미를 유발했다. '헤어질 결심'을 찍기로 다짐하고 구상했던 밑그림부터 찍으면서 느꼈던 감정, 찍은 후에 신경썼던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엿들었다.

배우들과 만나 인터뷰 할 때보다 더 집중해 받아 적었다. 탕웨이 박해일을 비롯해 이정현 박용우 고경표 김신영 박정민 서현우 등 여러 배우들의 캐스팅 비화, 정훈희 송창식의 노래 '안개'를 사용한 의미 등도 들었지만, 작품을 구상하고 점검한 감독의 시선에 중점을 뒀다. 138분의 러닝타임 중 초단위 프레임 단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했던 박 감독의 눈과 판단이 이번 강의의 제목이었다.

박 감독의 색깔이 가장 뚜렷하게 나타났다는 평론가들의 일부 평가와 영화를 본 관객들의 호평 등이 강의평가 결과를 대신 답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모든 공을 배우들에게 돌렸다. 그리고 자기는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힘줘 말했다. "감독님에게 '헤어질 결심'이란"이라고 묻자, 그는 "박해일 탕웨이가 출연한 영화"라며 웃었다.

6월 어느 주말 서울 마포구 서강대학교 정문 앞에는 동문 박찬욱 감독의 칸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하는 대형 현수막이 걸려있다. /이한림 기자
6월 어느 주말 서울 마포구 서강대학교 정문 앞에는 동문 박찬욱 감독의 칸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하는 대형 현수막이 걸려있다. /이한림 기자

-마침내 '헤어질 결심'이 개봉했다. 극 중 '마침내'라는 대사가 화제인데.

'마침내'는 말그대로 '마침내'인데 상황에 따라서 다르게 들릴 수도 있다. '드디어' '결국' '기어코' 등 여러가지 단어로 대체할 수 있지만 무엇보다도 '올 것이 왔다'는 운명적인 느낌을 살리고 싶었다. 운명이 정해져 있고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다는 주장을 하는 건 아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그런 생각을 해야만 할 때가 있지 않은가. 그런 상황에서 곱씹어보게 만들고 싶은 대사였다.

-'헤어질 결심'은 수사극과 멜로극이 결합된 장르라는 평가가 나온다. 또 다소 선정적이거나 폭력적이었던 전작들과는 달리 가장 상업적인 영화라는 평도 있다. 대체로 호평이 이어지는데, 이야기 구상은 어떻게 했는지 궁금하다.

제 영화 중에 제일 낫다고 말씀해주시는 분들이 영화인 중에 많이 있더라.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희소식이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 전에 영화들과 뭐가 다른가 하는 생각도 든다(웃음). 늘 비슷한 자세로 작품을 해오고 있다.

이야기 구상은 제가 '마틴 베크'라는 스웨덴 소설을 읽으면서 이런 형사를 참조하게됐다는 말씀을 여러번 드렸었다. 그런데 '마틴 베크' 팬들이 이 영화를 보면 닮은 구성을 느끼실 지는 모르겠다. 사실 이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뭔가 영감을 받아 시작했지만 최종 목적지는 다른 것이지 않나. (정서경)작가에게 한 번 보라고 추천했던 영화는 '밀회'(1949)라는 작품이었고, 역시 '마틴 베크' 시리즈처럼 '밀회'도 이 영화를 보시면 닮은 점이 별로 없다고 느끼실 것이다.

그러나 일을 시작할 때 (참조가)도움이 되는 경우가 있다. 작가에게는 '밀회'를 얘기했고, 남자 배우로 "박해일 같은 사람을 상상해보자"고 제시했다. '마틴 베크'에게 배운점은 수사의 과정을 천재적인 영감이나 폭력적인 행동을 통해서가 아니라 정해진 절차에 의해서 차근차근 해나가는 것이다. 절차 중심의 수사 기법이라고 해야할까. 저도 해준(박해일 분)의 모습에 극적인 반전이라던가 천재적인 영감이라던가 그런 게 아닌 주변 탐문, 자료 조사, 미행, 잠복근무, 관찰, 심문 등 형사라는 직업이 늘 하는 과정들을 다 나열하고 거쳐가게 하자고 생각했다. 근데 '헤어질 결심'에서는 그 것이 전부 연애의 과정이 된다. 수사와 멜로가 분류될 수 없다. 이게 가장 중요한 목표였다.

절차라는 것은 말이 쉽지 영화에서 하나하나 보여준다는 게 사실 지루한 일이다. 하지만 이 것이 사랑의 행동이고 밀당의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흥미진진하지 않은가.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 탕웨이와 박해일은 각각 살인사건 피해자의 아내이자 용의자 서래와 사건을 수사하는 예의바른 형사 해준 역을 맡아 열연했다. /CJ ENM 제공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 탕웨이와 박해일은 각각 살인사건 피해자의 아내이자 용의자 서래와 사건을 수사하는 예의바른 형사 해준 역을 맡아 열연했다. /CJ ENM 제공

-후반 작업에 굉장한 공을 들였다고 들었다.

모든 과정이 그랬다. 편집도 (제 영화 중)제일 오래 했다. 영화감독 노릇을 30년 해놓고도 아직도 시간 계산을 정확히 못해서 그런가 (처음에는)좀 길게 만들어졌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압축을 해보려고 갖은 애를 썼다. 편집실에서도 오래 머물렀지만, 편집본을 집에 가져와서 그걸 보고 또 보고 글자 그대로 24분의 1초라도 프레임을 줄일 수 있는 데를 다 줄여봤다.

그렇게 만져보니까 물리적 시간도 줄었지만 어떤 과정에 순간순간이 늘어지는 감이 없게 되는 결과물이 나온 것 같다. 마치 기계의 나사를 꽉 조여놓은 것처럼 분산이 없다고 해야할까. 찍힌 것 가지고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던 것 같다.

특히 영상과 음악을 신경썼다. 필름 룩을 구현하기 위해 촬영감독과 함께 프레임 단위로 색을 하나하나 만졌고, '공동경비구역 JSA'(2000)부터 계속 함께 해온 현실에서도 제일 친한 친구인 조영욱 음악감독과 음악 작업을 했다.

그래서 이번 작품도 늘 하던 대로 시작했다. 한 곡 한 곡을 들어보면 괜찮았다. 그런데 영화에 붙여놓으니 잘 안붙고, 또 잘 붙었다고 해도 전체를 보면 영 작동하지 않고 안어울리더라. 그래서 고민을 많이 했다. 결국에는 그 것을 다 버렸고, 완전히 원점에서 새롭게 시작했다. 그 결과, 귀에 잘 들어오는 멜로디 라인과 풍성한 오케스트라가 동원되고, 이럴 때는 바로크같고 저럴 때는 고전주의같은 음악들이 다 없어졌다. 더 현대적이고 미니멀리즘하게 바꼈다고 해야할까. 타악기를 많이 쓰고 리듬 위주의 음악이 나왔다. 악기 하나하나의 음색이 중시되는 그런 류의 음악으로 바뀌게 됐다. 그러니 좀 맞더라.

절 데이트 장면과 호미산 키스 신. 마지막 바다 장면 등은 사실상 한 곡이 사용됐다. 예전에 했던 음악과 비슷한 정서적인 풍이다. 이 것 빼고는 (음악들이)더 현대적으로 바뀌었다. 왜 그런가 생각해봤더니 제 이전 영화는 폭력적이거나 선정적인 신들이 많아서 아름답고 풍성한 음악이 서로 대비가 되는 흥미로운 결과를 만들었는데, '헤어질 결심'은 배우들의 캐릭터나 연기 감정 등 모든 것이 더 절제돼 있고 안으로 숨고 과시돼 있지 않았기 때문인 듯하다. (관객분들이)이들의 속내를 더 들여다 봐야하기 때문에 음악이 주위를 뺐으면 안되면서, 음악이 앞서가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과는 잘 맞게 됐고, 이전에 음악과는 다르게 된 것 같아서 흡족한다.

박찬욱 감독은 29일 개봉한 영화 헤어질 결심에 대해 428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아가씨(2016)보다 많은 관객들이 극장에서 봐줬으면 한다고 내심 기대했다. /CJ ENM 제공
박찬욱 감독은 29일 개봉한 영화 '헤어질 결심'에 대해 428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아가씨'(2016)보다 많은 관객들이 극장에서 봐줬으면 한다고 내심 기대했다. /CJ ENM 제공

-결말을 두고 여러 이야기가 나온다. 반전 없는 결말인가.

반전 없는 결말? 저도 그렇게 생각한다. 우리도 편집 단계에서 서래(탕웨이 분)가 물에 잠기는 모습까진 보이지 않으니까, '그 사이 바위 뒤에 숨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했다.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을 위해서라도 (장면을)자세히 보여주지 않았다. 관객분들 자기 자신의 성격과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에 따라 이렇게 또는 저렇게 보시면 될 것 같다.

-박찬욱 감독에게 '헤어질 결심'은 어떤 영화인가. 마지막으로 국내 관객들에게 영화가 어떻게 비춰질 지 궁금하다고 했는데 희망하는 결과가 있는지, 관객분들이 어떻게 봐주시길 바라는지 궁금하다.

항상 말했지만 저는 영화 하면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이 배우들이다. '박쥐'(2009) 하면 김옥빈이 떠오르듯이 '헤어질 결심'은 박해일 탕웨이가 출연한 영화다.

(희망하는 결과를)희망한다고 그렇게 되는가(웃음). 예상은 무의미한 것 같다. 그래도 지금 관객분들이 극장에 돌아오고 있는 시기이기 때문에 어느정도 희망은 있다. '헤어질 결심'은 제가 과연 개봉이나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후반 작업을 꾸준히 한 영화다. 개봉하는 것만으로도 감개무량하다. 그래도 15세 관람가니까 '아가씨'(2016)보다 많이 봐주셨으면 좋겠다. 심각한 영화 아니라는 거 이제 잘 아실테니 잘 봐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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