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영 티아라 윤도현밴드 등 후배가수들 잇달아 리메이크
나미의 인생곡은 테크노 신스팝 장르의 댄스곡 '빙글빙글'. 84년 이른 시기에 발표된 이 곡은 빠르고 신나는 테크노 신스팝 장르로 당시로서는 다소 생소했지만 신선하게 와닿았다. /앨범재킷, 온라인커뮤니티 캡쳐 |
[더팩트ㅣ강일홍 기자] 나미(본명 김명옥)는 허스키한 비음 목소리로 80~90년대 가요계를 주도한 가수다. 어린 나이에 이미 미8군 무대에서 활동할만큼 뛰어난 음악적 자질을 보였고, 청소년 시기부터 '해피돌즈'라는 그룹의 보컬로 베트남 위문공연 등 대중적인 큰 무대에서 활약했다.
레코드 가게를 하던 부모의 영향을 받아 일찌감치 예인 감각을 보여줬다. 초등 학생이었던 1967년 가수 이미자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엘레지의 여왕'과 윤복희의 일대기를 다룬 '미니 아가씨'에 잇달아 출연해 각각 이미자 윤복희의 아역을 연기하기도 했다.
'해피돌즈' 해체 이후 솔로 활동을 시작하면서 '나미와 머슴아들'이라는 밴드를 새로 만들었다. 이때 '미운정 고운정' '영원한 친구' 등을 담은 첫 정규앨범을 발표했고, 잇달아 내놓은 '보이네' '빙글빙글' '슬픈 인연' '아리랑 처녀' 등이 히트하며 인기가수 반열에 오른다.
특히 그의 인생곡이 된 댄스곡 '빙글빙글'(84년, 박건호 작사)이 폭발하며 완전한 히트가수로 상승세를 탔다. 이 곡은 이듬해인 85년 상반기 한국 최고의 히트곡으로 꼽혔으며, 외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한국 노래 1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저 바라만 보고 있지 그저 눈치만 보고 있지/ 늘 속삭이면서도 사랑한다는 그 말을 못 해/ 그저 바라만 보고 있지 그저 속만 태우고 있지/ 늘 가깝지도 않고 멀지도 않은 우리 두 사람/ 그리워지는 길목에 서서 마음만 흠뻑 젖어 가네/ 어떻게 하나 우리 만남은 빙글빙글 돌고/ 여울져 가는 저 세월 속에 좋아하는 우리 사이 멀어질까 두려워'(나미 '빙글빙글' 가사 1절)
나미는 '빙글빙글' 이후 잠시 공백을 가졌다가 6집에 실린 '인디언 인형처럼'(김순곤 작사)이 뜨거운 반응을 내며 90년대 인기를 이어간다. 당시 붐붐과 함께 '나미와 붐붐'을 결성해 토끼춤 바람을 일으켰다. /온라인커뮤니티 |
84년 이른 시기에 발표된 이 곡은 빠르고 신나는 테크노 신스팝 장르로 당시로서는 다소 생소했지만 대중한테는 신선하게 와닿았다. 지금도 조용필의 '물망초'와 함께 한국 전자음악의 초창기 히트곡으로 재조명되고 있고, 백지영 티아라 윤도현밴드 등 수많은 후배가수들이 리메이크했다.
나미는 '빙글빙글' 히트와 함께 '슬픈인연' 등이 뒤를 이으며 전성기를 이어갔다. '슬픈 인연'은 훗날 작곡자 이름이 일본인으로 바뀐 것 때문에 표절설이 나돌았지만 애초 음반 발표당시 한일합작 프로젝트에 참가한 일본인 작곡가인 우자키 류도(宇崎竜童)가 나미에게 선물한 곡이다.
아마도 일본문화개방 이전이라서 일본인 작곡가를 올리는게 껄끄러워 한국인(김명곤) 이름으로 넣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서도 하시 유키오(橋幸夫)가 부른 일본어 버전이 있었지만 반응은 미미했고, 같은 멜로디에 한국어 가사를 붙인 나미의 '슬픈 인연'이 크게 히트됐다.
나미는 한동안 개인사정 때문에 가수활동을 중단했다가 89년 트로트 발라드 '미움인지 그리움인지'로 복귀했다. 같은 앨범(6집)에 실린 '인디언 인형처럼'(김순곤 작사)이 뜨거운 반응을 내며 90년대 인기를 이어간다. 당시 붐붐과 함께 '나미와 붐붐'을 결성해 토끼춤 바람을 일으켰다.
2013년 11월 11일, 신곡 'Voyeur'를 들고 잠시 컴백하기도 했으나 현재까지 10여년째 공식 활동을 쉬고 있다. 전성기 시절 매니저였던 최봉호 씨와 결혼해 두 아들 최정철 최정환을 두고 있으며 장남인 최정철은 어머니의 뒤를 이어 가수의 길을 걷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