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일홍의 클로즈업] '국민MC' 허참, 마지막까지 투병 숨기고 활동한 이유
입력: 2022.02.07 07:31 / 수정: 2022.02.07 07:31

자존심 강한 대중스타, 마이크 대신 가수로 재기 의지

방송인 허참의 갑작스런 죽음이 연예계 안팎에 충격과 안타까움을 안겼다. 가족오락관을 통해 그는 정겹고 푸근한 이미지를 시청자들에게 심어주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민 MC로 발돋움했다. /더팩트 DB
방송인 허참의 갑작스런 죽음이 연예계 안팎에 충격과 안타까움을 안겼다. '가족오락관'을 통해 그는 정겹고 푸근한 이미지를 시청자들에게 심어주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민 MC'로 발돋움했다. /더팩트 DB

[더팩트|강일홍 기자] 방송인 허참이란 이름 앞에는 늘 KBS '가족오락관'이 붙어다녔습니다. 그만큼 오랜 시간 트레이드마크처럼 각인됐기 때문인데요. '가족오락관'은 1984년부터 16년간 KBS 2TV에서 방송됐고, 2000년 10월부터는 1TV로 채널을 옮겨 2009년까지 방영됐습니다. 허참은 첫회부터 최종회까지 고정 진행자로 오유경 정소녀 손미나 김보민 등 20여명의 여성 MC와 호흡을 맞췄습니다.

'가족오락관'은 그의 감칠맛 나는 진행과 함께 방송사에 남을 가족예능의 상징 프로그램이었습니다. 한때 35% 전후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인기를 누렸고, 90년대 후반에는 KBS '9시 뉴스'와 맞물리는 시간대에 편성됐음에도 15~17%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가족오락관'을 통해 그는 정겹고 푸근한 이미지를 시청자들에게 심어주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민 MC'로 발돋움합니다.

반세기를 구수한 달변의 국민 MC로 산 허참이 지난 1일 세상을 떠났다. 그는 무대에서 쓰러질지언정 끝까지 마이크를 지키고 싶어했던 방송인이었다. /공동취재단
반세기를 구수한 달변의 국민 MC로 산 허참이 지난 1일 세상을 떠났다. 그는 무대에서 쓰러질지언정 끝까지 마이크를 지키고 싶어했던 방송인이었다. /공동취재단

정겹고 구수한 이미지로 26년간 '가족오락관' 진행한 국민MC

"말이 그렇지, 26년 동안 매주 한 차례씩 시청자들과 만나던 프로그램이잖아요. 그때까지만해도 저는 제가 그만 두지만 않으면 죽을 때까지 평생할 줄 알았어요. 종영되고 나서 상실감에 한동안 멍하더군요. 세상에 영원한 게 어딨겠어요? 내려놓을 줄도 알아야죠. 그런데 그걸 감내하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겉으론 대범한 척 해도 속으론 많이 울었죠."(방송인 故 허참 생전 스페셜인터뷰 중에서)

그가 진행한 수많은 프로그램 중 그가 꼽은 분신 같은 간판프로그램 역시 '가족오락관'입니다. 마이크를 내려놓은 뒤 내내 힘들었던 이유입니다. 전원생활을 좋아했던 허참은 MC로 바쁘게 활동하던 시절에도 경기도 남양주를 오가며 망중한의 여유로움을 자주 즐겼는데요. 이곳에서 텃밭을 일구고 닭을 키우는 재미로 위로받기도 했습니다. 애정이 깊었던 만큼 프로그램 폐지로 받은 상처가 컸던 거죠.

허참은 가족오락관을 통해 정겹고 푸근한 이미지를 시청자들에게 심어주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민 MC로 발돋움했다. 가수 데뷔 직후 필자와 인터뷰에서 그는 뭔가 다시 도약하고 싶은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사진 위는 전원생활을 즐기던 모습. /더팩트 DB
허참은 '가족오락관'을 통해 정겹고 푸근한 이미지를 시청자들에게 심어주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민 MC'로 발돋움했다. 가수 데뷔 직후 필자와 인터뷰에서 그는 "뭔가 다시 도약하고 싶은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사진 위는 전원생활을 즐기던 모습. /더팩트 DB

4년 전 말기 간암 판정 받고도 투병 감춘 채 활발한 방송활동

반세기를 구수한 달변의 국민 MC로 산 허참이 지난 1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마침 서설(瑞雪)이 세상을 하얗게 덮은 설날이었는데요. 그의 갑작스런 죽음은 연예계 안팎에 충격과 안타까움을 안겼습니다. 어찌된 영문인지 비교적 가까운 지인들조차도 간암 말기 판정을 받은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하는데요. 그가 마지막 순간까지 왜 투병사실을 주변에 감췄는지 배경이 궁금할 수밖에 없습니다.

허참을 가수로 데뷔시키며 돈독한 유대관계를 이어온 음반제작자 박웅 씨는 "유난히 자존심이 강한 대중 스타였다"면서 "마이크를 내려놓은 뒤 가수로 재기하겠다는 의욕이 컸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고희를 넘긴 나이에 음반을 낸 데는 결국 이런 상실감을 스스로 달래기 위한 방편이었던 셈인데요. 그래서인지 그는 세상을 떠나기 한달 전까지도 방송에 출연해 노래를 부를 만큼 열정을 쏟았습니다.

그의 죽음은 정상에 선 대중스타들이 남모르게 겪는 이면의 고충도 되돌아보게 합니다. 한번 올라선 인기사다리를 지키기 위해 늘 각고의 노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는데요. 불과 1년전 필자와 인터뷰에서도 "마음은 조용히 여생을 보내야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뭔가 다시 도약하고 싶은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다"고 토로했습니다. 그는 무대에서 쓰러질지언정 끝까지 마이크를 지키고 싶어했던 방송인이었습니다.

eel@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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