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학대' 논란 거세지자, 정부 "가이드라인 마련" 발표
KBS가 1TV 대하사극 '태종 이방원' 관련 '동물 학대' 논란에 2차 사과문을 발표하고 재차 고개를 숙였다. /KBS 제공 |
[더팩트|원세나 기자] 잘 나가던 '태종 이방원'에 급브레이크가 걸렸다. '동물의 생명권'에 대한 제작진의 안일한 인식이 상승세를 이어가던 드라마의 발목을 잡았다.
'태종 이방원' 제작진의 '동물 학대' 관련 논란이 거세지자 KBS는 지난 24일 2차 사과 입장을 발표하고 동물 안전과 관련한 제작 규정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KBS 1TV 대하사극 '태종 이방원'(극본 이정우, 연출 김형일·심재현)은 고려라는 구질서를 무너뜨리고 조선이라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가던 '여말선초(麗末鮮初)' 시기 조선의 건국에 앞장섰던 리더 이방원의 모습을 새롭게 조명한 작품이다.
KBS는 "생명존중의 기본을 지키는 KBS로 거듭나겠다"며 "최근 태종 이방원 촬영 과정에서 불미스러운 사고가 발생했다. 드라마 촬영에 투입된 동물 생명을 보호하지 못한 책임을 통감한다. 시청자 여러분과 국민께 다시 한번 깊이 사과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이어 "이번 사고를 생명 윤리와 동물 복지에 대한 부족한 인식이 불러온 참사라고 판단하고 있다"면서 "유사 사고의 재발을 막기 위해 동물의 안전과 복지를 위한 제작 관련 규정을 조속히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시청자 여러분과 관련 단체들의 고언과 질책을 무겁고 엄중하게 받아들이겠다. 자체적으로 사고의 정확한 경위를 파악하고 외부기관 조사에도 성실히 임하겠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이번 일을 교훈 삼아 콘텐츠 제작에 있어 다시는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제작 현장 전반 점검과 개선에 최선을 다하겠다"며 "신뢰받는 공영미디어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앞서 '태종 이방원'은 지난 1일 방송된 이성계(김영철 분)의 낙마 장면을 촬영하던 중 강제로 쓰러트린 말이 일주일 뒤 사망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동물 학대' 논란이 일었다.
동물자유연대가 지난 19일 공개한 '태종 이방원' 7회 촬영 비하인드 영상에는 이성계를 연기한 대역 배우를 태운 말이 전속력으로 달리다 머리가 바닥에 곤두박질쳐질 정도로 고꾸라지는 모습이 담겼다. 동물자유연대에 따르면 촬영 당시 제작진은 말 다리에 와이어를 묶어 강제로 넘어뜨렸다.
'태종 이방원'은 지난 1일 방송된 낙마 장면을 촬영하던 중 강제로 쓰러트린 말이 일주일 뒤 사망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동물 학대' 논란이 일었다. /동물자유연대 SNS 캡처 |
영상이 공개되자 비판 여론이 일었고 이에 20일 KBS는 "촬영 중 벌어진 사고에 책임을 깊이 통감한다"며 사과했다. 그러나 동물자유연대는 21일 '태종 이방원' 측을 상대로 동물보호법 위반 관련 고발장을 제출했고, 정치인과 연예인을 비롯한 각계각층의 목소리가 더해지며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제작진은 지난 22일부터 2주간 결방을 결정했다. KBS 홈페이지에서 '태종 이방원' 7회 다시 보기 서비스도 중단했다. 관계자에 따르면 제작진은 현재 드라마 촬영을 멈추고 시스템을 재정비하고 있다. 향후 촬영 및 방송 재개 일정 등은 논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사태의 후폭풍은 여전히 거세다. 21일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방송 촬영을 위해 안전과 생존을 위협당하는 동물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제목의 청원 글은 현재 14만 명(24일 정오 기준) 이상의 동의를 얻었다.
여러 동물단체와 네티즌들은 이번 사태가 보여주는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비단 이번뿐만 아니라 드라마 촬영 중 동물이 죽은 사례가 종종 있으며, 특히 사극의 경우 말에 타는 배우는 물론 말의 안전도 보장되지 않는 위험한 상황이 자주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가 꾸준히 발생하고 지적이 이어져 왔지만 촬영 현장의 개선은 요원하다. 동물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가이드라인 설정과 함께 촬영 대신 컴퓨터그래픽(CG)을 활용하는 방안 등이 거론돼 왔지만 예산 문제 등으로 실행에 옮겨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건이 공론화되고 사회적인 관심이 쏟아지자 정부가 대책 마련에 나섰다. 농림축산식품부는 25일 영화, 드라마, 광고 등에 등장하는 동물을 보호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안내 지침)을 마련한다고 밝혔다. '태종 이방원' 촬영과정에서 벌어진 동물 사망 사고의 재발을 막겠다는 취지다. 농림축산식품부가 공개한 기본원칙은 '살아있는 동물의 생명권을 존중하고, 소품으로 여겨 위해를 가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태종 이방원'은 KBS가 '정통 사극의 부활'을 목표로 야심 차게 내놓은 작품이기에 이번 사태는 여러모로 아쉬움을 남긴다. 열악한 드라마 제작환경의 문제가 어제 오늘의 얘기는 아니지만 결국 한 동물이 죽음에 이르러서야 촉발된 상황과 이후 진행된 일련의 과정이 안타깝다. 제작진이 밝힌 다짐대로 이제라도 '생명 윤리'에 대한 깊은 성찰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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