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 오디션 열풍 이후 '가요 100년' 롤모델 재확인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는 1959년 '열아홉 순정'으로 데뷔해 대한민국의 희로애락을 함께했다. 가요계에서는 그가 존재하는 것만으로 큰 의미를 부여한다. /더팩트 DB |
트로트가 밝고 젊어졌다. 최근 몇 년 사이 방송가에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이 활성화되면서다. 전통적으로 중장년층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트로트 팬층도 훨씬 넓고 깊고 다양해졌다. 덕분에 잊혔던 곡들이 리바이벌 돼 역주행 신화를 만들기도 한다. 누구나 무명시절은 있기 마련이고 터닝포인트도 있다. 수많은 히트곡을 낸 레전드 가수들 역시 인생을 바꾼, 또는 족적을 남긴 자신만의 인생곡에 각별한 의미를 두고 있다. 단 한 두 곡의 히트곡만을 낸 가수들이라면 더욱 애틋할 수밖에 없다. 가수 본인한테는 물론 가요계와 팬들이 인정하는 자타공인 트로트 인생곡들을 조명한다. [편집자 주]
[더팩트|강일홍 기자] "사실 저는 사랑스러운 후배 가수들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격려하는 마음으로 축하 무대를 준비했다. (그런 자리에서 제가 대상을 받게 돼) 미안한 생각도 든다. 앞으로의 100년은 후배들의 몫이다. 세계적으로 뻗어나가길 빌겠다."
이미자는 2년전 TV조선이 주최한 '가요100년사, 2020 트롯어워즈'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그는 트로트 붐을 일으킨 후배들을 언급하며 자신이 대상을 받는데 대한 미안함을 표시했다. 하지만 한국가요사를 관통하는 대중적, 역사적, 장르적 기여도 등을 고려한 심사기준대로라면 역시 대상은 그의 몫이었다.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는 1959년 '열아홉 순정'으로 데뷔해 대한민국의 희로애락을 함께했다. 560여 장의 음반(약 2500곡)을 발표, 여성 가수 최초로 음반 100만 장 판매라는 대기록을 남기며 한국 최다 앨범 및 노래 발표 기록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미스트롯' 이후 트로트 열풍이 불면서 그의 대표곡 '동백 아가씨'를 비롯해 '섬마을 선생님', '기러기 아빠', '여자의 일생', '한 많은 대동강', '찔레꽃' 등 400여 개의 히트곡들이 재조명되고 역주행했다. 가요계에서는 그가 존재하는 것만으로 신구 세대를 연결하는 보이지 않는 저력을 발휘하고 있다.
'미스트롯' 이후 트로트 열풍이 불면서 그의 대표곡 '동백 아가씨'를 비롯해 '섬마을 선생님', '기러기 아빠', '여자의 일생', '한 많은 대동강', '찔레꽃' 등 400여 곡의 히트곡들이 재조명되고 역주행했다. /더팩트 DB |
데뷔 전부터 애절하고 구성진 목소리로 주목받은 이미자는 64년 영화 주제가 '동백아가씨'(한산도 작사 백영호 작곡)로 가요계를 뒤흔들었다. 당시 그는 임신 9개월의 힘든 상황이었지만 서울 스카라 극장 근처 목욕탕 건물 2층에서 얼음물에 발을 담가가며 녹음을 끝냈다.
'동백아가씨'는 신성일, 엄앵란이 열연한 동명의 영화 주제가였다. 곡 자체도 좋았고, 특별한 감정을 붙이지 않아도 저절로 감동이 우러나왔다. 특히 가사의 내용에 충실한 감정을 가지고 부르다 보니 애절한 노래가 탄생한 것이다. 당시 라디오나 길거리, 어디에서든 '동백 아가씨'가 흘러나왔다.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 얼마나 울었던가 동백아가씨/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오/ 동백꽃잎에 새겨진 사연/ 말못할 그 사연을 가슴에 안고/ 오늘도 기다리는 동백아가씨/ 가신 님은 그 언제 그 어느날에/ 외로운 동백꽃 찾아 오려나'(이미자의 '동백아가씨' 가사 1, 2절)
이 곡은 국내가요사상 최초로 가요프로그램에서 35주 동안 1위를 기록, 당시로서는 25만 장이란 엄청난 음반 판매고를 올리며 대박 히트를 이어갔다. 일약 신데렐라 스타가수로 부상한 이미자 역시 집과 전화 그리고 자동차를 장만할만큼 부와 명예를 동시에 거머쥐었다.
이미자의 매력은 매끈한 창법, 고운 비단 옷감을 만져보는듯한 부드러운 촉감같은 목소리에 있다. 사진은 지난 2017년 KBS '전국노래자랑' 서울 서초구편에 출연할 당시 모습. /더팩트 DB |
이미자의 매력은 매끈한 창법, 고운 비단 옷감을 만져보는듯한 부드러운 촉감같은 목소리에 있다. 그가 부른 모든 노래에는 인생의 슬픔과 고통이 배어있다. 다만 그는 이를 자신만의 깊은 감성으로 완전히 용해해 듣는 이들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맛보게 하는 마력을 갖고 있다.
10세 이전부터 출중한 재능을 보였던 이미자는 여고졸업 무렵 아마추어 노래 콩쿨에서 1등에 입상하면서 가수의 길로 들어섰다. 1958년 '행여나 오시려나'를 포함해 4곡을 담은 데뷔 음반을 발표한 후 '님이라 부르리까'로 기반을 확보했다.
'동백 아가씨'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뒤 '지평선은 말이 없다(66년) '섬마을 선생님'(67년) '빙점'(67년) '서울이여 안녕'(68년) '기러기 아빠'(69년), TV주제가 '아씨'(70년) 등을 발표하며 70년대 이후 한국가요사를 풍미했다.
세종문화회관에서 88년 데뷔 30주년 기념 공연을 한 뒤 99년 데뷔 40주년 기념 음반 발매와 함께 자전 수필집 '인생 나의 40년'을 출간했다. 2002년 국내 가수로는 처음으로 평양특별공연을 남한과 북한에 동시 생중계하는 기록을 남겼다.
eel@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