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철은 90년대 '봉선화 연정' 히트 후 KBS 가요대상을 수상하면서 눈물을 펑펑 쏟아내 시청자들 마음까지 울렸다. 80년대 가요계는 현철이 트로트로 한 축을 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요무대 캡처 |
독특한 바이브레이션 창법, 트로트 오디션 단골레퍼토리
[더팩트|강일홍 기자] 트로트 가수 현철은 나이에 비하면 늦깎이로 대중스타가 됐다. 69년 '무정한 그대'를 발표하며 데뷔했지만 애초 인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60~70년대를 휩쓴 당시 남진과 나훈아의 아성은 남자 신인가수들에게 넘볼 수 없는 벽이었다.
그는 데뷔 5년만인 74년에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고향인 부산으로 돌아간다. 그에게 음악은 피할 수 없는 운명같은 것, 이번엔 그룹 '현철과 벌떼들'을 결성하고 리더로 활동한다. 팝송을 리메이크 해 클럽 등에서 아무리 열심히 뛰어도 역시 인기는 남의 얘기였다.
80년 솔로로 전향해 그룹시절 아내를 생각하며 불렀던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으로 마침내 주목을 받았고, 그로부터 3년 뒤인 83년 '사랑은 나비인가봐'를 발표하며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현철만의 구성진 꺾기 창법과 부드러운 보이스 가창력의 진수를 보여준다.
80년대 가요계는 현철이 트로트로 한 축을 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5년 뒤 발표한 '봉선화 연정'의 폭발적 인기로 그는 봉황의 날개를 단다. 이 곡으로 KBS 가요대상을 수상하면서 20년의 무명 시절을 떠올린듯 눈물을 펑펑 쏟아내 시청자들까지 울렸다.
'손대면 톡하고 터질것만 같은 그대 봉선화라 부르리/ 더이상 참지못할 그리움을 가슴깊이 물들이고/ 수줍은 너의 고백에 내 가슴이 뜨거워/ 터지는 화산처럼 막을수 없는 봉선화 연정'(현철의 '봉선화 연정' 가사 1절)
현철은 송대관, 태진아, 설운도 등과 함께 '트로트 4대 천왕'으로 불리게 되면서 침체기로 접어들던 트로트 장르를 활성화하는데 결정적인 역할로 작용했다. /온라인커뮤티티(팬카페) |
김동찬이 작사하고 박현진이 작곡한 '봉선화 연정'은 우선 가삿말부터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감미로우면서도 편하고 애절하게 와닿는 리듬 역시 친숙하다. 현철의 독특한 바이브레이션 창법에 실려 이듬해 주현미의 '짝사랑'(89년)이 나오기까지 대중 인기를 독차지했다.
정통트로트의 교과서 같은 이 곡은 이찬원이 '뽕숭아학당'에서 불러 갈채를 받았고, '미스트롯2' 홍지윤을 비롯한 박서진 유지희 백청강 신승태 등 오디션프로그램 단골 레퍼토리로 등장하기도 했다. 아무리 젊은 신예들이 부르는 커버송의 색다른 느낌도 원곡가수 현철의 깊은 맛은 흉내내지 못한다는 평가다.
'봉선화 연정'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현철의 인생곡으로 자리매김한다. 이후부터는 말그대로 거칠 것없는 탄탄대로의 인기가도를 달린다. 90년 '싫다 싫어'로 다시한번 KBS 가요대상을 수상하며 2년 연속 최정상 가수의 자존심을 굳건히 다졌다.
현철의 급부상은 송대관, 태진아, 설운도 등과 함께 '트로트 4대 천왕'으로 불리게 되면서 침체기로 접어들던 트로트 장르를 활성화하는데 결정적인 역할로 작용했다. 앞서 그가 발표했던 대부분의 노래들이 덩달아 인기를 얻고, 이후론 발표하는 곡마다 히트로 이어졌다.
90년대에는 무려 6년간 연속으로 10대 가수상을 수상하며 인기를 독식했다. 98년에 발표된 '사랑의 이름표'는 솔직한 가사와 구성진 트로트 리듬의 곡으로 그 해 한국 여론 설문조사에서 '가장 인기있는 가수' 부분에서 40대와 50대 선호도 1위를 기록했다.
2002년 발표한 '아미새'는 남녀노소 누구나 선호하는 다세대의 인기곡으로 떠오르며 국민 트로트가수의 위상을 확고히 다졌다. 2010년에 제11회 대한민국 연예문화상 성인가요부문 대상, 제16회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연예발전공로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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