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진은 가요계의 '영원한 오빠'로 인정받는 국민가수. 그의 인생곡 '님과 함께'는 빠르고 신나는 탱고 음악이 남진 특유의 유쾌한 이미지와 잘 어울린 곡이다. /강일홍 기자 |
'한국의 엘비스 프레슬리' 명명, 반세기 넘게 가요계 풍미
[더팩트|강일홍 기자] "정신적으로 만족하고 행복하니 육체도 반응을 하는 것같아요. 작년만해도 드라이버 비거리가 150m 밖에 안나갔어요. 요즘 올해는 50m는 더 나갑니다. 젊은 골퍼들한테도 웬만해선 밀리지 않아요. 이 나이에도 여전히 건강하게 노래할 수 있다는 건 축복이죠. 감사하고 또 감사한 일이죠."
가수 남진은 가요계의 '영원한 오빠'로 인정받는 국민가수다. 그가 진정한 국민적 대중가수로 평가받는 이유는 누구와도 격의없이 소통하고 만나는 스타일 덕분이다. 최근 2~3년간 트로트 열기가 급속히 확산된 이후 가장 주목을 받은 주인공이기도 하다.
'울려고 내가 왔나' '가슴 아프게' '너와 나' '미워도 다시 한 번' '그대여 변치마오' '둥지' '나야 나' 등 데뷔 56년간 수많은 히트곡을 낸 그에게도 인생곡은 따로 있다. 바로 '님과 함께'다. 이 곡은 전성기 시절을 군복무로 부득이 공백을 가진 뒤 복귀하면서 탄생시킨 노래다.
'저 푸른 초원위에 그림같은 집을짓고/ 사랑하는 우리님과 한백년 살고싶어/ 봄이면 씨앗뿌려 여름이면 꽃이피네/ 가을이면 풍년되어 겨울이면 행복하네/ 멋쟁이 높은빌딩 으시대지만 유행따라사는것도 제멋이지만/ 반딧불 초가집도 님과 함께면 나는 좋아 나는 좋아 님과 함께면/ 님과 함께 같이산다면'(남진의 '님과 함께' 1절)
빠르고 신나는 탱고 음악이 남진 특유의 유쾌한 이미지와 잘 어울린 곡이다. 군 전역 직후인 72년 발표하자마자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이 곡을 시작으로 그는 그해 '목화 아가씨' '해바라기 마음' '젊은 초원' '아랫마을 이쁜이' 등을 연달아 선보이며 승승장구한다.
"요즘 같으면 인기 관리 때문에 입영연기를 했겠죠. 당시엔 그런 생각보다는 어차피 가야할 군대라면 빨리 다녀와서 재기하는게 낫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내친김에 군생활동 제대로 해야겠다는 생각에 해병대 베트남 전선 배치를 자원했고요."
올해로 데뷔 56주년을 맞은 남진은 살이던 65년 데뷔 후 '한국의 엘비스 프레슬리'로 불리며 70년대 가요계를 풍미했다. /더팩트 DB |
남진은 목포 제일의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유복하게 자랐다. 스무 살이던 65년 데뷔 후 '한국의 엘비스 프레슬리'로 불리며 70년대 가요계를 풍미했다. 그의 아버지는 목포일보 발행인이자 제5대 국회의원을 지낸 故 김문옥이다.
이 때문에 흔히 비슷한 시기에 데뷔해 활동한 나훈아와 비교되기도 한다. 한때 라이벌 구도를 이끌었던 나훈아가 신비주의를 고수한 것과는 정 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반면 남진은 '대중가수는 늘 대중과 가까이 숨쉬고 호흡해야한다'는 게 소신이다.
남진은 어려서부터 노래를 좋아하긴 했지만 원래 꿈은 배우였다. 인기 배우가 되고 싶다는 소망으로 아버지 몰래 한양대 연극영화학과에 입학한다. 학자가 돼주길 바란 아버지 뜻이나 배우를 꿈꾼 자신의 의지도 천성적으로 타고난 음악적 기질을 바꾸지는 못했다.
그의 매력은 다름 아닌 유쾌함이다. 흔히 진정한 삶의 멋을 알고 즐길 줄 아는 대중 스타라고 말한다. 후배가수들을 만나면 상대가 인기가 있든 없든 "어이 동상(동생) 잘 지냈는가" 하고 먼저 손을 내민다. 이런 소탈하고 낙천적인 성격은 그를 젊고 건강한 롱런 가수로 활동할 수 있게 했다.
조만간 그는 '영원한 내사랑' '그러면 안되잖아요' '인생은 낙엽' 등 신곡을 연달아 발표할 계획이다. 이중 타이틀곡 '영원한 내사랑'은 황혼에 접어든 인생 후반기 아내에 대한 애틋함을 담은 노래로 한껏 기대를 모으고 있다. 남진은 "신곡을 낼 때마다 새로운 의욕과 활력이 넘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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