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트롯' '미스터트롯' 이후 방송가에서는 트로트가 대세 장르로 굳었지만 출연 무대가 사라진 대다수 기성 트로트 가수들은 울상이다. 사진은 2019년 '미스트롯 & 백령도 평화 콘서트' 당시. /더팩트 DB |
트로트 오디션 스타 등장 이후 '갈 곳 없는 가수들'
[더팩트|강일홍 기자] "아니, 이 코로나 보릿고개에 찬밥 더운밥을 가릴 때가 아니지 않나요? 지역 행사라면 노래 3~4곡 부르는 게 전부일 텐데 그 개런티가 2500만 원이면 적은 돈도 아니고요. 1년 내내 개점휴업한 우리 같으면 무대에 설 기회가 생긴다는 것만으로 그냥 행복할 것 같은데 특급 라이징스타들 중에는 웬만한 금액에는 꿈쩍도 안 한다고 하네요."(가수 B)
올해로 데뷔한 지 30년을 넘긴 트로트 가수 B는 히트곡 부자다. 한때 지상파 10대 가수상을 받으며 승승장구했고, 코로나19 이전까지만해도 그를 향한 대중적 관심도는 꾸준했다. 덕분에 그는 신곡이 나오면 트로트 가수들이 선호하는 '전국노래자랑'이나 '가요무대' 등에 주기적으로 출연하는 것으로 존재감을 인정받곤 했다. 그런 그도 코로나 이후 갈 곳을 잃었다.
아예 설 무대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코로나 확산 이후 주 수입원인 행사가 전무한 데다 방송도 어쩌다 한 두 번 주부대상 아침프로그램 등에 게스트로 초대받은 게 전부다. 트로트 오디션프로그램 '단골 마스터' 남진 설운도 진성 김연자 주현미 장윤정 등 이른바 레전드급 가수로 대접받는 몇몇을 제외하면 기성가수들 중 대부분은 B 가수의 처지와 별반 다르지 않다.
임영웅 영탁 장민호 등 '미스터트롯' TOP6는 최근 오디션프로그램 이후 TV CHOSUN의 각종 방송을 통해 프로그램 활성화에 기여한 공로로 방송사 측으로부터 공로패를 받았다. /TV조선 제공 |
◆ 트로트 활성화 이후 되레 설자리 잃게 된 트로트 가수들의 '이율배반' 현실
'미스트롯' '미스터트롯' 이후 방송가는 트로트가 대세 장르로 굳었다. 트로트를 장착한 다양한 음악예능이 우후죽순 등장해 시청률을 싹쓸이하면서 토크예능에도 트로트 가수 한 두명 등장하지 않으면 경쟁력을 잃을 만큼 트로트의 위상과 판도는 크게 달라졌다. 그럼에도 대다수 트로트 가수들은 울상이다. '트로트 바람이 불수록 더 배 고프다'고 한다. 왜 그럴까.
"오디션 출신 라이징스타들의 아성은 이제 기성가수들도 넘볼 수 없게 됐어요. 대중적 인지도가 워낙 견고하게 굳었기 때문이죠. 처음엔 히트곡 없는 오디션 출신 신인들의 인기가 얼마나 가겠느냐며 애써 무시하는 분위기도 없지 않았어요. 행사 무대에서는 히트곡을 가진 기성가수들이 우선이라는 믿음 때문이었죠. 마침 불어닥친 코로나가 변수였어요."(가수 C)
'개런티 욕심보다는 단지 노래할 무대만 생겨도 좋겠다'는 B 가수나 '시간이 갈수록 트로트 라이징 스타들의 위상이 커져 두려움마저 느낀다'는 C 가수는 모두 심경이 복잡하다. 이는 수십년에 걸쳐 한걸음 한걸음 '인기사다리'를 딛고 올라선 자신들의 자리가 무너지고 있는 반면 라이징 스타들의 인기몰이는 점차 대세로 굳어가고 있다는 위기감과 무관치 않다.
트로트 오디션프로그램 단골 마스터 진성 남진 설운도(사진 왼쪽부터) 김연자 주현미 장윤정 등 레전드급 가수로 대접받는 몇몇을 제외하면 코로나 이후 대부분의 기성가수들 중 대부분은 설 무대가 없는 처지다. /더팩트 DB |
◆ 레전드급 가수들 "오디션프로그램 아닌 직접 노래할 무대가 있어야 행복해"
그렇다면 레전드급 가수들은 이런 분위기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최근 라이징스타 임영웅이 불러 대박 히트를 기록한 '별빛 같은 나의 사랑아' 작사 작곡자인 가수 설운도는 "트로트가 활성화되고 방송 대세 장르로 자리매김한 지금의 상황은 트로트 가수로서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일"이라고 했다. 다만 그는 긍정적 평가와 함께 우려의 목소리도 동시에 냈다.
"대중 트렌드는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고 생각해요. 한때 트로트 가수들이 방송사를 상대로 읍소도 하고, 트로트 살리기 국회세미나도 했지만 씨알이 먹히지 않았잖아요. 누군가 인위적으로 주도해 만들어낼 수 없다는 거예요. 전국의 트로트 숨은 고수들이 많이 발굴돼 지금 열기를 이어가주기를 바라지만 한편으론 그 이면에 또다른 그늘이 생기는 게 걱정스럽습니다."
가요계 또다른 레전드급 가수로 인정받는 진성도 "방송에 자주 출연해도 알고보면 오디션 프로그램에 도전한 신인가수를 평가하는 게 전부"라면서 "가수는 인기가 있든 없든 직접 노래할 무대가 없으면 슬픈 일"이라고 말했다. 올해도 다양한 형태의 오디션 프로그램이 진행 중이지만 트로트가 활성화될수록 가수들의 설자리가 사라진다는 건 매우 이율배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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