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제훈, '무브 투 헤븐'을 통해 바라본 세상
입력: 2021.05.30 00:00 / 수정: 2021.05.30 00:00
이제훈은 SBS 모범택시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무브 투 헤븐으로 시청자들을 만나고 있다. 그는 개성 넘치는 캐릭터로 사회적 약자를 대변해 세상에 메세지를 던지고 있다. /넷플릭스 제공
이제훈은 SBS '모범택시'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무브 투 헤븐'으로 시청자들을 만나고 있다. 그는 개성 넘치는 캐릭터로 사회적 약자를 대변해 세상에 메세지를 던지고 있다. /넷플릭스 제공

"시간이 지나도 작품의 힘은 그대로일 거예요"

[더팩트|박지윤 인턴기자] '무브 투 헤븐' 조상구는 우연치 않게 유품정리사 일을 하게 되며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로하고 배웅한다. '모범택시' 김도기는 억울한 피해자를 대신해 가해자에게 짜릿한 복수를 선사한다. 전혀 다른 성격의 두 인물은 배우 이제훈을 만나 사회적 약자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하며 시청자들에게 큰 공감과 위로를 안기고 있다.

이제훈은 지난 14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무브 투 헤븐: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극본 윤지련 연출 김성호, 이하 '무브 투 헤븐')에서 상구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상구는 아스퍼거 증후군이 있는 유품정리사 그루(탕준상 분)의 후견인이자 불법 격투기 선수로 세상과는 어울리지 못하는 인물이다.

자신이 살기 위해 남을 때리는, 링 위에서 거친 싸움이 익숙한 상구는 누군가와 더불어 사는 삶을 알지 못했다. 처음 방문한 그루 집에서 아무렇지 않게 냉장고에 있는 우유를 꺼내 먹는가 하면 아무 데나 쓰레기를 버린다. 세상을 떠난 이들이 남기고 간 물건의 의미도 당연히 모른다. 아니 알려고조차 하지 않는다. 그런 그가 순수한 그루를 만나 세상을 삐딱하게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고 사람에게 기대는 법을 배운다. 이제훈은 이런 상구를 보자마자 강한 끌림을 느꼈다.

"상구는 사람을 보는 관점이 부정적이고, 안하무인에 말도 함부로 하는 성격이에요. 그런 상구와 그루는 물과 기름처럼 전혀 섞이지 않을 것 같지만 함께 유품 정리를 하면서 서로 스며들고 이해하게 되죠. 그래서 저는 작품이 시작할 때 상구가 더 비호감이고 부정적이게 비치길 원했어요. 여러 사연을 통해 부정적인 면이 긍정적으로 바뀌게 되는 것을 드라마틱하게 그리고 싶었어요."

무브 투 헤븐에서 이제훈은 상구 역을 맡았다. 상구는 아스퍼거 증후군이 있는 유품정리사 그루(탕준상 분)의 후견인이자 불법 격투기 선수다. /넷플릭스 제공
'무브 투 헤븐'에서 이제훈은 상구 역을 맡았다. 상구는 아스퍼거 증후군이 있는 유품정리사 그루(탕준상 분)의 후견인이자 불법 격투기 선수다. /넷플릭스 제공

긴 뒷머리와 요즘에는 볼 수 없는 촌스러운 옷, 장소를 불문한 흡연과 아무 때나 내뱉는 욕설 그리고 고생이 느껴지는 다부진 몸까지. 이러한 외적인 연출은 그가 이번 작품에서 모든 걸 내던졌다는 걸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초등학생 때 맥가이버처럼 뒷머리를 길렀었어요. 성인이 돼서 작품에 뒷머리를 기르고 나오면 재밌을 것 같아서 하게 됐죠. 또 요즘에 보기 어려운 올드한 패션으로 시청자들에게 '대체 왜 저런 걸 입지?'하는 의아함도 주고 싶었어요. 처음에는 다가가기 힘들고 공감하고 싶지 않은 상구지만 여러 사연을 통해 성장하는 부분을 극적으로 담고 싶었거든요."

이런 상구에게 누군가와 더불어 사는 법을 알려준 그루 역의 배우 탕준상은 2003년생으로 올해 19세다. 1984년생 이제훈과는 무려 19살의 나이 차가 나지만 두 사람의 호흡에서 그 차이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단순히 뛰어난 연기력으로 극복한 게 아니라 정말 삼촌과 조카처럼 지냈던 두 사람의 '케미'가 빛을 발휘한 것이다.

"처음에는 탕준상 배우와 '잘 소통할 수 있을까' 생각이 들었죠. 그런데 오히려 이 친구가 저를 너무 편하게 대해줬어요. 격식 있는 선후배가 아닌 편한 형·동생으로 각자의 생각이나 표현을 가감 없이 이야기했죠. 그렇게 서로 의지하면서 자연스럽게 '케미'가 나온 거 같아요. 또 준상이가 제 표현이나 애드리브를 잘 받아줘서 더 즐길 수 있었어요. 그루로서 대사적인 부분이나 극을 이끌어가는 게 부담이 됐을 텐데 너무 소화를 잘 해줬고요. 준상이 덕에 이 작품이 많이 사랑받을 수 있을 거 같아요."

이제훈과 탕준상은 19살의 나이차가 나지만, 편한 형 동생으로 지내며 촬영할때 서로 의지했다고 밝혔다. /넷플릭스 제공
이제훈과 탕준상은 19살의 나이차가 나지만, 편한 형 동생으로 지내며 촬영할때 서로 의지했다고 밝혔다. /넷플릭스 제공

작품은 국내 1세대 유품정리사 김새별의 논픽션 에세이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을 모티브로 한다.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남긴 물건에서부터 시작하는 각자의 사연은 매번 새로운 감동과 울림을 전한다. 이제훈은 이런 '무브 투 헤븐'이 가진 이야기의 힘에 매료됐다.

"모든 에피소드가 의미 있지만 그중에서 2회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홀로 돌아가신 할머니의 유품 중에 아들이 첫 월급으로 선물한 내복이 그대로 있는 거예요. 같은 경험은 없지만 이를 보면서 문득 누군가에게 편지를 썼던 경험이 떠오르더라고요. 예전에 썼던 편지를 시간이 지나서 보면 순수했던 자신의 모습도 함께 떠오르잖아요. '아 나는 어렸을 때 이랬는데, 지금은 이렇구나' 하는 변화요. 이런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르면서 눈물을 참을 수 없더라고요."

어머니는 장판 아래에 아들 양복을 사기 위한 오만원권 지폐를, 젊은 의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하지 못한 편지를, 연고자가 없는 노부부는 아파트 주민들이 버린 화분과 꽃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물건은 말을 할 수는 없지만 주인들의 오랜 세월과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그런 물건을 차분하게 들여다보는 그루와 상구는 그 속에서 주인의 진심을 발견한다.

이렇게 떠난 이들의 물건을 보다 보면 문득 내가 남기고 가게 될 것들에 관한 생각에 잠기곤 한다. 인생 대부분을 배우로서 보여준 이제훈이 남기고 싶은 일 번은 역시 작품이었다.

"저도 고민을 많이 했는데 아무래도 저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고 제 전부인 것은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출연했던 작품을 DVD 모음집으로 묶는 거예요. '아 이런 배우가 이런 작품을 했구나', '이런 삶을 살았구나' 이런 것을 직간접적으로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요. 예를 들어서 넷플릭스 구독권에 고(故) 배우 이제훈의 작품 모음집이 나오면 너무 영광스러울 것 같아요."

2007년 영화 밤은 그들만의 시간으로 데뷔한 이제훈은 올해 데뷔 14주년을 맞이했다. /넷플릭스 제공
2007년 영화 '밤은 그들만의 시간'으로 데뷔한 이제훈은 올해 데뷔 14주년을 맞이했다. /넷플릭스 제공

2007년 영화 '밤은 그들만의 시간'으로 데뷔한 이제훈은 올해로 데뷔 14년 차를 맞이했다. 그동안 많은 작품으로 대중을 만났던 그는 지나온 세월만큼 연기에 관한 가치관도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만나게 된 이번 작품. 거기에 생소한 직업 유품정리사와 10회의 에피소드가 한 번에 공개된 점까지. 모든 것이 새롭게 다가온 만큼 '무브 투 헤븐'을 더 특별하게 남기고 싶은 이제훈이다.

"직업에 귀천은 없지만 유품정리사는 정말 특별하고 고귀하다고 느꼈어요. 고인의 메시지나 그의 사연을 남겨진 사람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고인과 남겨진 사람들을 깊게 생각하는 마음을 느꼈어요. 또 그런 마음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직업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이런 마음이 삶을 살아가면서 꼭 가져야 하는 자세라고 느꼈어요."

"스스로 잘 먹고 잘살기 바쁜 시대에서 누군가를 먼저 생각하고 이해하는 자세를 갖는 게 정말 힘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남을 이해하고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넨다면 삶이 조금은 더 긍정적이고 희망적이지 않을까요.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이 가진 힘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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