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 인사이드⑦-구범석] 기술과 예술, 그리고 미래를 품다(하)
입력: 2021.05.09 00:00 / 수정: 2021.05.09 00:00
구범석 이사는 최근 VR콘텐츠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그는 영화를 체험케 하고 디지털휴먼과 교감하는 세상을 꿈꾼다. 그리고 잊혀져서는 안 될 사람을 디지털로 아카이빙하는 특별한 목표도 가지고 있다. /이동률 기자
구범석 이사는 최근 VR콘텐츠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그는 영화를 '체험'케 하고 디지털휴먼과 교감하는 세상을 꿈꾼다. 그리고 잊혀져서는 안 될 사람을 디지털로 아카이빙하는 특별한 목표도 가지고 있다. /이동률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2021년 신년사에서 '소프트파워에서 선도국가로 도약할 것'이라며 문화·예술과 스포츠를 대표적인 'K-콘텐츠'로 내세웠습니다. 특별히 BTS와 블랙핑크, 그리고 영화 '기생충'을 언급하기도 했죠. K-콘텐츠가 '한류'라는 이름으로 세계인을 매료시키고 있습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으로 여러모로 힘든 이들에게 잠시나마 행복을 주기도 하고 따뜻한 위로를 전하기도 합니다.

<더팩트>는 문화·예술 분야에서 한류를 이끄는 '한류 콘텐츠 메이커'를 직접 만나 K-콘텐츠의 성공과 가능성, 그리고 현실적인 문제와 해결법을 살펴보는 기획시리즈 '한류 인사이드'를 통해 글로벌 한류의 현주소를 조명합니다. <편집자 주>

"VR 기술이 시기상조? 세상은 변해가고 있어요"

[더팩트 | 유지훈 기자] 구범석 EVR스튜디오 이사의 시선은 늘 미래로 향해있다. 청년기 낯선 땅 미국으로 향해 VFX(Visual Effects, 시각 특수효과) 할리우드 진출 1세대로 활약하며 자신이 꿈꾸던 세상을 스크린에 펼쳤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는 굴지의 게임사들을 거쳐 EVR스튜디오에 둥지를 틀었다. 단순히 VFX 기술을 활용한 화려한 게임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는 지금까지 쌓아온 노하우, 발전을 거듭하는 VR 기술로 특별한 미래를 그려나가고 있다.

2016년 구범석 이사는 옛 간송미술관인 '보화각(葆華閣)'을 현대의 기술로 재현했다. 미술품을 VR로 구현해 설명을 덧붙이는 데에서 한발 더 나아가, 관객이 미술품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VR 시네마로 가닥을 잡았다. 오랜 준비기간 끝에 신윤복의 미인도, 김홍도의 염불서승도, 겸재 정선의 금강내산 등과 같은 작품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이렇게 탄생한 '보화각'은 2017년 부산국제영화제와 2018년 프랑스 칸 영화제 VR섹션에 상영됐고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시연하는 영광도 누렸다.

EVR스튜디오와 함께한 구 이사의 도전은 계속됐다. 2018년 직접 감독을 맡은 세계 최초의 4DX VR 영화 '기억을 만나다'로 미래 영화 시장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최근에는 차세대 콘솔 게임인 '프로젝트TH'도 개발 중이다. 웹툰 '무당(작가 석정현)'의 스토리를 기반으로 하고, 허성태 이홍내 등 배우들도 실제와 같은 비주얼의 캐릭터로 선보인다. 누군가는 '시기상조'라고 치부하는 사이 구범석 이사는 가상현실 속에서 명확한 미래를 조금씩 구현해나가고 있다.

보화각(위쪽)은 2017년 부산국제영화제 VR섹션에 초청받아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시연해 화제를 모았다. /EVR스튜디오, 청와대 제공
'보화각'(위쪽)은 2017년 부산국제영화제 VR섹션에 초청받아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시연해 화제를 모았다. /EVR스튜디오, 청와대 제공

-'보화각 VR'은 참신한 시도들로 무장돼있는 것 같다. 어떻게 기획하게 됐나.

삼성전자에서 본격적으로 VR 사업을 진행하기 시작할 때 간송미술관과 협업으로 만들어진 플래그십 프로젝트로 했던 작업이에요. 간송미술관 미디어디렉터로 활동하고 있을 때라 자연스럽게 기획을 맡게 됐어요. 초기 VR은 롤러코스터를 타거나 호러 장르 같은 이벤트성 콘텐츠가 많았어요. 그러다 보니 시각적으로 과하다는 인상을 줬죠. '보화각VR'은 이전 VR콘텐츠들과 결이 달랐고, 미술적 의미도 잃고 싶지 않았어요. 안 그래도 VR이라고 하면 다들 어떤 벽을 느낄 텐데 단순 정보전달이라면 특별한 체험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한국 미술을 대표하는 작품들이기도 하고 새로운 걸 보여주기 위해 한국고전미술 공부를 깊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 시간만 6개월을 쏟았어요.

-'보화각' 공개 당시 반응들은 어땠나.

무엇보다 미술을 즐기는 분들의 반응이 좋았어요. 협업을 하면 한쪽 니즈에 맞춰서 콘텐츠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어요. 하드웨어 쪽은 화질을 부각하고 싶어 하고, 미술 쪽은 작품 의도 왜곡 우려가 크죠. 나름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보고 싶었어요. 완성하고 보니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은 독립적인 작품이 된 것 같아요. 저와 EVR스튜디오는 진취적이기도 하지만 과거의 어떤 행위나 역사에 대한 사유도 많아요. 그걸 동시에 보여주는 작품으로 남게 됐어요.

-영화 '기억을 만나다' 역시 참신한 시도였다.

비전이 보였고 콘텐츠 흐름이 언젠가는 VR로 향해 갈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어요. 영화 관람형태가 변하고 있잖아요. 주로 극장에 갔는데 코로나19로 그 벽이 허물어져 OTT 시장이 커지고 있어요. 물론 선호하는 관람 형태는 남아있겠죠. 스트리밍 시장이 커졌다고 LP와 CD가 없어진 것은 아니잖아요. 영화사들도 그즈음부터 VR로 영화를 만들어보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었어요. 당시 VR 콘텐츠를 만드는 회사도, 의미 있는 작품도 드물었어요. 제게 기회가 주어졌고 저는 기술과 연출 쪽을 주로 담당했어요. 기본 이야기는 작가님이 써주셨고요.

구범석은 세계 최초의 4DX VR 영화 기억을 만나다의 감독이기도 하다. /EVR스튜디오 제공
구범석은 세계 최초의 4DX VR 영화 '기억을 만나다'의 감독이기도 하다. /EVR스튜디오 제공

-최초의 도전이었던 만큼 어려움도 많았을 것 같은데.

사실 모든 게 힘들었죠(웃음). 현시대 사람들은 지금까지 프레임 안에 있는 콘텐츠를 관람해왔어요. 제작자도 프레임에 콘텐츠를 담았고요. 그렇게 적립된 문법들이 있는데 VR은 그 문법에 속해있지 않아요. 배우들도 저도 그 누구도 경험이 없었죠. 시스템상 촬영 현장에는 연기하는 배우들만 있어야 했어요. 조명과 마이크를 숨겨야 했고 촬영 후 리뷰하는 방법조차 새로 만들었어요. 촬영에서 후반작업 그리고 상영까지 어느것 하나 쉬운 파트가 하나도 없었지만 모든 과정이 새로운 도전이었어요.

-'기억을 만나다'의 성적을 어떻게 생각하나. 최초의 도전인 만큼 일반적인 시선으로 성패를 가늠하기 어렵다.

24회 상영을 했고 좌석 점유율이 75%가 나왔어요. 저도 이 숫자가 어떤 의미인지는 잘 몰랐어요. 하지만 관계자분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의아한 성적이래요. 평일에 주말까지 포함해서 이 정도로 많이 볼 줄은 몰랐다고요(웃음). 실험적인 작품이었어요. 당시에 돌렸던 설문지를 봤는데 관계자보다 일반 관객이 훨씬 많더라고요. 참 신기한 경험이었어요.

-VR관련 콘텐츠에 매진하기에는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존재한다.

일부 인정해요. '기억을 만나다' 같은 경우에는 3년이 지난 지금 나와도 시기상조예요(웃음). 그럼에도 도전했던 이유는 이 영화가 탄생 후의 변화들 때문이에요. 영화 관계자와 관객들 등 각자의 포지션으로서 VR 영화를 경험했던 거죠. 경험해보기 전에는 앞으로의 일을 쉽게 예측할 수 없어요. 저는 앞으로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요즘 아이들에게 VR을 체험하게 하면 기성세대가 느끼는 어지러움을 거의 겪지 않아요. 그래서 저는 이 아이들을 신인류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이 아이들이 어른이 될 때 즈음이 되면 시기상조라는 말이 사라지겠죠. 저는 그 시대가 분명히 올 것이라고 믿어요.

구범석 이사는 창작자로서의 불꽃을 죽이지 않고 앞으로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이고 싶다고 밝혔다. /이동률 기자
구범석 이사는 "창작자로서의 불꽃을 죽이지 않고 앞으로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이고 싶다"고 밝혔다. /이동률 기자

-EVR스튜디오의 이사 구범석, 그리고 아트 디렉터 구범석의 목표는 무엇인가.

하나는 초현실적 경험 제공, 다른 하나는 전통문화의 재해석이에요. 초현실적인 작품의 전시가 될 수도 있고, 상호작용이 가능한 예술이 될 수도 있겠죠. 정말 많은 것들을 준비하고 있어요. 그리고 회사가 추구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디지털 휴먼 아카이브에요.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실의 기록도 중요하다고 봐요. 당장은 인간문화재를 포커스로 잡고 있어요. 사람이 죽고 나면 과거에는 글과 구전, 최근에는 사진, 영상, 소리로 남았죠. 저는 그분들을 디지털 휴먼으로 남기고 싶어요.

-디지털로 남는 인간문화재라니 다소 파격적이다. 하지만 상업성과는 거리가 먼 것도 같은데.

상업적인 부분은 게임을 비롯한 콘텐츠에게 기대해야겠죠. 저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창작자로서 디지털 휴먼 아카이브가 정말 커다란 의미를 지닌 일이라고 생각해요. 최근 고령의 인간문화재분들이 많이 돌아가셨어요. 물론 기존 매체들로 남긴 했지만 그 사람의 원형, 목소리, 모공 하나하나까지 아카이브 된 것이 없더라고요. 보편적인 기술은 아니지만 EVR스튜디오가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그 책임감을 느끼고 있어요.

-끝으로 앞으로의 포부, 계획하고 있는 것을 간략히 소개해주자면?

가까운 프로젝트로는 세계적인 영화 거장의 작품을 VR 아트 필름으로 제작하고 있어요. 열심히 준비하고 있으니 기대해주셨으면 해요. 포부는, 말씀드렸던 것처럼 시대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저를 태우고 어딘가로 가요. 저는 새로운 것을 마주했을 때 두렵거나 걱정하거나 지레짐작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가지고 살아왔어요. 무언가 시작하면 뜨겁게 불태우고자 해요. 앞으로도 창작자로서 그 불꽃을 죽이지 않고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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