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문진승이 KBS2 '달이 뜨는 강' 종영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는 뒤늦게 배우에 도전하게 됐다며 독일에서 결단을 내리게 된 배경을 공개했다. /임세준 기자 |
IT 개발자→독일 유학→31세 연기 도전, 늦깎이 신인배우의 의미 있는 여정
[더팩트ㅣ김샛별 기자] "뒤늦게 연기를 시작한 늦깎이 신인배우 문진승입니다."
수줍은 첫인사로 자신을 소개한 문진승은 반전의 연속이었다. 드라마 속 강렬한 캐릭터와 달리 다소 내성적인 성향을 지닌 그는 인터뷰의 모든 답변에서 신중하고 또 신중했다. 반면 기로 앞에서는 누구보다 강단 있는 성격을 보여준다. IT업계 개발자가 되기 위한 유학을 포기하고 배우의 길을 선택한 결단이 그러했고, '5~10년이 걸려도 좋다'는 각오로 약 2000번의 오디션 탈락 앞에서도 좌절하지 않았던 도전 역시 그의 강단에서 비롯됐다. 일상이 즐거워야 인생이 행복하다는 문진승의 뚜렷한 인생관은 이처럼 스스로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문진승은 20일 종영한 KBS2 월화드라마 '달이 뜨는 강'(극본 한지훈, 연출 윤상호, 이하 '달뜨강')에서 마태모 역으로 출연해 활약했다. 극 중 마태모는 살수 집단 천주방 내 최고 살수 자리를 놓고 평강(김소현 분)과 경쟁하던 인물이다. 평강의 출생 비밀이 밝혀지는 과정에서 훼방을 놓기도 했던 마태모는 방주 두중서(한재영 분)에게만큼은 충성을 다했고, 마지막까지 그를 지키다 죽음을 맞이해 강렬한 임팩트를 남겼다.
'달뜨강'은 문진승의 첫 상업 장편 드라마다. 이 기회를 얻기까지 문진승은 5년이라는 시간을 묵묵히 걸어왔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지만, 31세의 다소 늦은 나이에 데뷔한 문진승에게 결코 쉬운 시간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연기가 전문 분야는 아니었기에 더욱더 힘들었을 터다.
문진승의 본래 전공은 IT 개발이다. 자동차 어라운드뷰(=버드아이드뷰)를 개발하는 스타트업 회사에서 일하던 그는 독일에서 IT 개발자로서 살아가기 위해 유학길에 올랐다. 대학원 입학 전까지 시간이 비었던 문진승은 현지인들과 어울려야 독일어를 빠르게 배울 수 있다는 생각으로 독일 단편 영화에 지원했다.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에 다니던 친구를 만나러 갔다가 '독일어가 모국어가 아닌 배우를 뽑는다'는 공고를 봤어요. 영화에 참여하면 언어를 빨리 배울 수 있을 것 같아 지원했죠. 마침 대학교 때 내성적인 성격을 고치기 위해 연극부 활동을 했었고, 단편 영화도 찍었던 경험이 있었어요. 감독님께서도 그때의 단편 영화를 보고 절 만나셨더라고요. 다행히도 좋게 봐주셨는지 바로 주연을 맡게 됐어요."
그렇게 탄생한 문진승의 데뷔작은 'SUN SHINE MOON(선 샤인 문)'이다. 이 영화는 얼마 후 문진승의 인생에서 큰 전환점으로 작용했다. 예정대로 대학원 공부를 하던 문진승은 촉망된 미래를 앞두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문득 공허함을 느꼈다. 고민에 빠진 그는 자신의 인생관을 떠올렸다.
"일상이 행복해야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때 당시 전 이 길이 맞는지 확신이 없었어요. IT 기술자가 됐고, 독일에서 공부를 하고, 외국에서의 자유로운 직업도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등 막상 원하던 바를 이루니까 어느 순간 의구심이 생기더라고요. 앞으로 평생 IT 기술자로 살아가야 할 텐데, 가만히 앉아서 문제를 해결하고 프로그램 만드는 일이 행복한 일상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던 거죠. 그때부터 제 인생에서 가장 즐거웠고 보람찼던 일이 무엇이었는지 고민했어요. 영화에 참여했던 기억들이 좋았는지 연기를 했던 순간들이 떠오르더라고요."
배우 문진승이 KBS2 '달이 뜨는 강' 종영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는 약 4년간 2000편의 작품 오디션에 도전했고 대부분 탈락했지만, 좌절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임세준 기자 |
문진승은 곧바로 유학을 뒤로하고 연기를 위해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2016년, 문진승의 나이 31세 때 내린 결단이었다. 큰 결심이었던 만큼 각오도 단단히 했다. 문진승은 "최소 5년~10년은 힘들 거라고 예상했다"며 "혼자서 4년간 활동하면서 하루도 빠짐없이 필름메이커스 공고문을 확인했다. 프로필도 일주일에 한 번씩 수정했다"고 밝혔다.
모든 공고마다 지원하다 보니 도전한 작품만 2000편이 넘었으나 합격은 쉽지 않았다. 수천 번의 탈락 앞에서 좌절할 법도 했지만, 굳은 각오를 앞세웠던 문진승은 감정 소모 대신 다른 곳에서 에너지를 소비했다. 그는 "아무래도 장편 영화를 찍어봤으니 처음에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러나 잘하는 분이 너무 많다 보니 생각대로 잘 안 되더라. 각오했던 일인 만큼 낙담할 시간에 왜 떨어졌는지 이유를 분석했다. 혼자서 피드백을 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찾으려고 했던 것 같다"고 털어놨다.
두드리면 열리는 것처럼 문진승 역시 계속된 도전을 통해 독립 영화와 웹드라마 등 몇몇 작품에 꾸준히 출연했다. 2017년도에는 '나비'를 비롯해 연극만 8개월을 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광고나 영상 등 촬영과 관련된 일이면 어떤 일이든 찾아다녔다. 이러한 과정에서 소중한 인연들도 만났다. 그리고 문진승의 성실함과 꾸준함은 기회로, 인연은 귀인이 돼 돌아왔다.
"아무래도 혼자 활동하다 보니 샵도 혼자 찾아다녔어요. 그때 인연을 맺었던 헤어 및 메이크업 스태프들과 지금까지 같이 성장한 셈이죠. 그분들이 2019년에 소속사를 소개해줬는데, 너무 좋은 느낌을 받아서 바로 계약했어요. 덕분에 지금은 해와달엔터테인먼트 소속 배우가 됐죠. 그리고 오늘도 그분들에게 헤어와 메이크업을 받고 왔어요."(웃음)
배우 문진승이 KBS2 '달이 뜨는 강' 종영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는 운이 좋았던 덕분에 소속사와도 계약을 했으며 작품에도 출연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임세준 기자 |
이듬해에는 본인의 첫 상업 장편 드라마 '달뜨강' 합류라는 기회를 얻었다. 운이 좋았다고 운을 뗀 문진승은 "다른 배우들은 이미 픽스가 됐지만, 마태모라는 역할은 비어 있었다. 마침 감독님과 오디션을 봤을 당시 내 이미지가 마태모 역에 가까웠던 것 같다. 다만 삭발이 괜찮냐고 물어보셨다. 걱정은 됐지만 당연히 하겠다고 했다"며 "다시 생각해도 내가 가진 것보다 운이 좋았던 결과"라고 작품 참여 소감을 밝혔다.
고구려 시대 살수 마태모 역을 맡게 된 문진승은 첫 공중파 데뷔부터 사극과 액션 등 어려운 장르에 도전해야 했다. 부담은 당연히 클 수밖에 없었다. 문진승은 "너무 좋은 역할인 데다 감독님과 회사 식구들의 기대가 크다 보니 솔직히 욕심도 나고 부담도 많았다. 하지만 처음부터 잘할 수는 없지 않나. 시행착오도 겪었지만, 덕분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경험이었다"고 전했다.
"제게 '달뜨강'은 의미 있는 작품으로 기억될 거예요. 첫 데뷔작이자 배우의 자세를 배울 수 있었던 현장이었어요. 좋은 감독님과 좋은 스태프들 사이에서 연기를 할 수 있었고, 부족하지만 이끌어주신 많은 분들을 통해서 더 성장할 수 있었던 경험이었어요. 다음 작품을 할 때나 앞으로 배우로서 살아가는 데 있어서 좋은 마음가짐을 갖게 해준 작품이에요."
반대로 시청자들에게는 '달뜨강'이 "평강과 온달의 사랑 이야기를 오랫동안 기억하며 더 나아가 역사적으로 교훈이 됐던 작품으로 남았으면 한다"고 바랐다. 문진승은 "평강은 공주이지만 주체적으로 고구려를 지킨 캐릭터다. 이처럼 역사적으로도 고구려 때부터 주체적인 여성이 있었다는 교훈만으로도 좋은 사극이 아닐까 싶다"고 설명했다.
배우 문진승이 KBS2 '달이 뜨는 강' 종영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는 앞으로 인성이 좋은 배우가 되고 싶다는 바람과 함께 꼭 한 번 연기해보고 싶은 캐릭터를 밝혔다. /임세준 기자 |
앞으로 더 많은 도전이 남은 문진승은 '인성이 된 배우'가 되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시청자는 배우의 역할만 보는 게 아니라 배우의 일상도 바라본다. 때문에 일상에서도 실망을 주지 않고 싶다. 물론 완벽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통념적인 선은 최대한 지키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배우로서의 욕심도 전했다. 그는 "이중적인 역할을 해보고 싶다. 겉으로는 정의롭지만 뒤로는 악한 행동을 하는 인물 혹은 악한 집단에 있지만 정의로운 행동을 하는 인물 등을 소화해보고 싶다. 단편적인 캐릭터보다는 입체적인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고 말했다. 이내 "그렇지만 어떤 작품이든 기회가 된다면 감사하다. 실망하지 않게끔 더 열심히 해서 보답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배우로서 할 수 있는 것들을 다 해보고 싶어요. 가장 기본적으로는 지금 제 나이에서만 할 수 있는 역할들을 모두 소화했으면 해요. 지금 이 순간에 할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열심히 하다 보면 나중에 뒤를 돌아봤을 때 그 나이에 그 역할이 남아있겠죠. 때문에 쉬지 않고 작품을 하고 싶어요. 기회는 한 번뿐이니 주어졌을 때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sstar1204@tf.co.kr
[연예부 | ssent@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