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뷔작 '화녀'부터 아카데미 수상작 '미나리'까지[더팩트 | 유지훈 기자] 한국 배우들의 아메리칸 드림이 현실이 됐다. 관록의 배우 윤여정의 저력은 데뷔 50주년을 훌쩍 넘긴 2021년, 전 세계 영화인들에게 인정받았다.
윤여정은 25일(한국시간 26일)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유니온 스테이션과 할리우드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아시아 배우로는 '사요나라'(1957)의 우메키 미요시에 이어 오스카상 역사상 두 번째, 한국 배우로는 최초의 기록이다.
1966년 TBC 3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윤여정은 1967년 드라마 '미스터 곰'으로 대중에 눈도장을 찍은 후 1969년 MBC로 이적했다. 1971년은 신인 배우 윤여정의 전성기다. 그해 MBC '장희빈'에서 주인공 장희빈을 맡았고 김기영 감독의 영화 '화녀'로 스크린에 데뷔했다.

'장희빈'이 그를 스타덤에 올린 드라마라면 '화녀'는 윤여정을 향한 평단의 극찬을 끌어낸 기념비적인 영화다. 한 가정을 파멸로 몰고 가는 가정부 명자 역할을 맡아 캐릭터의 광기와 집착을 과감하게 표현한 윤여정은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대종상 신인여우상, 제4회 시체스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아쉽게도 이 상승세는 계속되지 않았다. 그는 1974년 가수 조영남과 결혼 후 이민생활을 시작하며 배우로서 공백기를 가지게 됐다. 조영남과 13년 만에 이혼했고 두 아들을 양육하기 위해 다시 한국 연예계에 발을 들였다. 한 때는 톱스타였지만 복귀 과정은 혹독했다. 조연, 단역으로 출연하는 게 고작이었다. '생계형 배우' 윤여정은 짧은 대사도 밤새워 외우며 복귀에 매진했다.
동료 배우들은 당시 치열하게 연기했던 윤여정을 기억한다. 특히 그와 여러 작품에서 호흡을 맞췄던 박인환은 최근 <더팩트>와 인터뷰에서 "윤여정이 다시 복귀를 했던 만큼 절박함과 치열함이 느껴졌다. 죽기 살기로 연기했다. 적당히 하는 법이 없다. 작품에 들어가면 늘 대본만 보고 살았다"고 회상했다.

윤여정의 복귀를 향한 열정에 김수현 작가가 화답했다. 윤여정은 1987년 MBC '사랑과 야망'을 시작으로 1991년 '사랑이 뭐길래', 1995년 KBS2 '목욕탕집 남자들' 등 김수현 작가의 작품에서 활약하며 다시 안방극장에서 입지를 다졌다.
2000년도부터는 스크린도 접수했다. 영화 '바람난 가족'에서 욕구에 충실한 홍병한 역할을, '가루지기'에서는 과부 역을 맡아 봉태규와 34살 나이 차를 극복하고 베드신을 선보이는 등 파격적인 연기로 중견 배우의 관록을 보여줬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의 모니카 수녀, '그것만이 내 세상'의 인숙 등 대중성도 놓치지 않았다.
임상수 감독은 '바람난 가족'에서 윤여정의 저력에 매료됐다. '그때 그 사람들' '오래된 정원' '하녀' '돈의 맛' '나의 절친 악당들' '헤븐:행복의 나라로' 등의 차기작에서 연달아 그를 택했다. 이 외에도 홍상수 감독은 '하하하' '다른 나라에서' '자유의 언덕' 등을, 이재용 감독은 '여배우들' '죽여주는 여자' 등을 윤여정과 함께했다.

최근의 윤여정은 대한민국 대중에게 친숙한 할머니다. 2013년 tvN '꽃보다 누나'로 유쾌한 해외 여행기를 보여주더니 2017년 '윤식당', 2021년 '윤스테이'까지 연달아 출연하며 예능프로그램을 종횡무진 중이다. 첫 인상은 다소 까칠하지만 프로그램이 진행될수록 사려깊고 따뜻한 매력의 중견 배우 윤여정을 엿보게 된다.
1947년생으로 올해 74세를 맞이한 배우 윤여정의 전성기는 계속된다. '미나리'에 이어 애플TV의 오리지널 드라마 '파친코'로 다시 한번 전세계인들 앞에서 연기를 펼친다. 작품은 4대에 걸친 한국인 이민 가족의 이야기를 역사적 배경과 함께 8부작으로 담아낸다. 그가 맡은 역할은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어떤 캐릭터를 맡게 되더라도 지금까지 그랬듯 그의 연기는 합격점을 받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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