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복'이 지난 15일 베일을 벗었다. 극장과 OTT에서 동시 공개된 한국 최초의 블록버스터다. 관계자들은 '서복'의 흥행 여부를 떠나 비슷한 시도가 한동안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CJ ENM, 티빙 제공 |
"극장·온라인 동시 공개, 현재로선 가장 합리적인 모델"
[더팩트 | 유지훈 기자] 코로나19 여파로 등이 떠밀린 모양새지만 언젠가는 해봤어야 할 시도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콘텐츠가 소비되지 않는다면 콘텐츠가 직접 소비자를 찾아 나서야 하는 법이다.
4월 개봉한 영화 가운데 가장 큰 관심을 모은 작품은 단연 '서복'(감독 이용주)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 공유 박보검의 연기호흡, '건축학개론' 이용주 감독이 8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이라는 점은 관객들의 기대를 끌어올리기 충분했다.
지난해 12월 개봉 예정이었던 이 작품은 코로나19 3차 대유행 여파로 모든 일정을 취소했다. 사전 홍보 콘텐츠를 대부분 선보인 시점 내린 결정이었기에 대중의 관심은 더 커졌다. 그리고 4월 개봉을 확정 지으며 극장과 OTT(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플랫폼 티빙을 통한 동시 공개라는 파격적인 행보를 택했다.
국내 블록버스터가 OTT 극장 동시 공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해외에서는 이미 같은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디즈니는 '뮬란'을, 워너브러더스는 '원더우먼 1984'를 극장 개봉하는 동시에 각각 자사 OTT인 디즈니플러스, HBO맥스를 통해 공개했다. 이 과정에서 HBO맥스는 800만 명 수준이었던 구독자가 두 배에 가까운 1700만 명까지 치솟는 성공을 맛봤다.
디즈니는 '뮬란'(왼쪽)을, 워너브러더스는 '원더우먼 1984'를 극장과 자사 OTT를 통해 동시에 공개했다.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
'서복'이 공개되는 티빙 역시 배급사 CJ ENM의 자사 플랫폼이다. 표면적으로는 그저 할리우드의 추세에 발을 맞춰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관계자들은 "'서복'의 시도를 단순한 유행 편승이라고 봐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기본적인 시스템과 시장이 할리우드와는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 관계자는 "많은 할리우드 영화들은 기획단계부터 전 세계 시장을 겨냥한다. 그 작품의 배급사들이 보유한 OTT 플랫폼도 세계 시장을 기반으로 한다"며 "하지만 우리 영화는 한국 관객에 초점을 맞춰 기획되고 티빙 역시 한국을 중심으로 서비스되고 있다. 해외에서의 사례가 성공했다고 해도 '서복' 역시 당연히 성공할 것이란 보장이 없다. 한국 영화의 OTT 극장 동시 개봉은 리스크를 감수한 시도"라고 짚었다.
'서복'은 지난 15일 개봉해 줄곧 1위 자리를 지켰으나 21일 서예지 김강우 주연의 신작 '내일의 기억'에 그 자리를 내줬다. 21일 기준 '서복'의 누적 관객 수는 25만 8491명이다. 극장 수치만 본다면 아쉬움을 남기지만 티빙 플랫폼을 통해 본 관객도 있다. 아직까지 티빙은 '서복'의 스트리밍, 작품 공개 후 회원 추이 등 관련된 수치를 공개하지 않았다.
'해피 뉴 이어'도 '서복'에 이어 극장과 티빙을 통해 동시 공개된다. 강하늘 이동욱 이진욱 임윤아 한지민 등 내로라 하는 배우들을 대거 캐스팅한 작품이다. /각 소속사 제공 |
때문에 '서복'의 OTT 극장 동시 공개 전략이 성공했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개봉한 지 이제 막 일주일을 넘어섰고 이번이 첫 시도인 만큼 여유가 필요할 터다. 여기에 티빙이 최근 '여고추리반' '당신의 운명을 쓰고 있습니다' '백종원의 사계' 등 공격적으로 오리지널 콘텐츠를 선보인 영향도 있으니 '서복'과 서비스 가입자 상승세의 상관관계를 짚어내는 것은 섣부르다.
이번 실험의 성패를 떠나 CJ ENM은 '서복'을 이을 극장·티빙 동시공개를 목표로 하는 다음 영화의 첫 삽을 떴다. 제목은 '해피 뉴 이어'로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호텔 엠로스를 찾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인연을 만들어가는 이야기를 담는다. 실패를 걱정해 무심코 툭 던지는 작품은 아니다. 한지민 이동욱 강하늘 임윤아 원진아 서강준 이광수 김영광 고성희 이진욱 등 초호화 배우 라인업을 자랑한다.
코로나 여파로 전통적인 영화 시장이 흔들린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OTT 시장은 성장을 거듭했다. 바이러스가 종식되더라도 영화계가 2019년 상황으로 돌아가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당장의 생존을 위해서 이런 시도는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한 영화 관계자는 "어떻게든 소비자에게 다가가야 하는 세상이다. 때문에 콘텐츠 소비의 온라인화는 영화뿐만 아니라 모든 문화업계의 필수사항이 됐다. 특정 플랫폼에 집중하는 대신 멀티플랫폼으로 나아가는 중이다. 현재로서 영화가 택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모델은 OTT와 극장 동시 공개"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