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빌레라' 박인환 "나도 한번 날아보고 싶었던 거지" [TF 인터뷰]
입력: 2021.04.22 05:00 / 수정: 2021.04.22 05:00
박인환이 발레복을 입고 시청자 앞에 섰다. 나빌레라에서 주인공 덕출 역을 맡으면서다. 80을 앞둔 중견 배우의 이 특별한 도전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tvN 제공
박인환이 발레복을 입고 시청자 앞에 섰다. '나빌레라'에서 주인공 덕출 역을 맡으면서다. 80을 앞둔 중견 배우의 이 특별한 도전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tvN 제공

데뷔 56주년 베테랑 배우가 발레복을 입기까지

[더팩트 | 유지훈 기자] 56년 차 베테랑 배우에게도 꿈은 여전히 남아있다. 다만 여느 신인 배우들이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보여주는 날 선 경쟁, 뼈를 깎는 고통과 같은 치열함에서 다소 벗어나 있을 뿐이다. 조금은 우스꽝스러운 차림에 엉거주춤한 자세, 그럼에도 유려한 몸짓으로 박인환은 2021년 조용히 날아올랐다.

박인환은 최근 방영 중인 tvN 월화드라마 '나빌레라'(극본 이은미, 연출 한동화)에서 주인공 덕출 역을 맡아 열연을 펼치고 있다. 작품은 나이 일흔에 발레를 시작한 덕출(박인환 분)과 스물셋 꿈 앞에서 방황하는 발레리노 채록(송강 분)의 성장을 그린다. 오랜만에 보게 된 '가슴 뭉클한 드라마'라는 평가와 함께 순항 중이다. tvN이라는 채널 특성상 시청률에 크게 영향을 받진 않지만 박인환은 4%대를 밑도는 성적에도 못내 아쉬운 모양이다.

"잘 보고 있다고 말을 많이 듣는 데 시청률이 안 나와서 어떻게 해요(웃음). 우리 애들도 본방송은 안 보고 넷플릭스로 보고 그래요. 제가 지금까지 지상파만 했거든요. 주말드라마, 일일드라마는 20%, 30% 막 넘기는데. 제가 걱정하니까 방송국 분들이랑 감독님도 '좋은 작품이니까 시청률 걱정 말라'고 그래요. '나빌레라'는 사회를 정화시키는 드라마잖아요. 시대의 거울이고 사회상을 보여준단 말이에요. 좋은 작품인데 시청률이 잘 안 나오니까. 이렇게 인터뷰를 해서라도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보고 싶었어요."

1965년 드라마 '긴 귀향 항로'로 데뷔한 박인환은 올해 데뷔 56년 차를 맞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나빌레라'로 케이블채널 미니시리즈의 주연이 됐다. 송출되는 채널도 작품의 형태도 10대, 20대를 겨냥하고 있다. 작품을 보고 있는 사람들의 속마음이 궁금했던 그는 평생 담을 닿고 지내왔던 인터넷 댓글 창도 들여다봤다. 도무지 의미를 알 수 없는 신조어를 찾아봤고 그 뜻을 알고 미소를 짓기도 했다.

박인환(왼쪽)은 송강과 나빌레라를 통해 세대의 벽을 허문 연기 호흡을 자랑한다. /tvN 제공
박인환(왼쪽)은 송강과 '나빌레라'를 통해 세대의 벽을 허문 연기 호흡을 자랑한다. /tvN 제공

"저한테 '입덕'했다고 하더라고요. 모르는 단어니까 찾아봤지. 알고 보니까 나한테 빠졌다는 말이었어요. 젊은 친구들이 이렇게 큰 관심을 가져 줄지 몰랐어요. 아마도 채록(송강)이 때문 아닌가 싶어요. 젊은 친구들이 보는 작품이고 나한테는 큰 도전이었으니까 처음엔 망설였어요. '내가 이걸 해낼 수 있을까' 걱정했고. 그런데 한편으로는 내 나이에 이런 작품을 또 할 수 있을까 싶더라고요. 나중에 후회하느니 해보자 했죠."

그저 주연이라는 부담이 됐던 게 아니다. 그는 이번 작품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발레를 선보이게 됐다. 그가 맡은 덕출은 평생을 가족을 위해 집배원으로 일하다가 퇴직 후 늘그막에 어린 시절 꿈이었던 발레리노에 도전한다. 박인환은 지난해 여름부터 발레 교습소에 다녔다. 일주일에 두 번, 무더운 날씨 때문인지 연습이 끝나고 나면 발레복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근육통에 시달렸지만 집에서도 연습은 계속됐다. 꿈을 향한 그 열정 하나만큼은 박인환과 덕출의 완벽한 교집합이다.

"80살 앞둔 노인네가 운동이라니 누구도 상상을 못 하죠. 덕출처럼 '한번 날아보고 싶다'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시작하고 싶다' 하는 마음이었어요. 기둥에다가 몸을 풀기만 해도 쥐가 나고 그랬어요. 안 쓰던 근육이니까요. 방법이 없어요. 계속 몸을 써야 풀리는 게 근육이에요. 손자 손녀가 초등학생인데 제가 하는 발레를 따라 하고 그래요. 그런데 드라마가 재미있는지는 잘 모르겠대. 이러니 시청률이 안 나오지(웃음)."

"발레복 입는 게 참 민망했어요. 제작진이 신발이랑 옷을 사왔는데 '연습할 때는 안 입으면 안 돼요?' 했어요. 채록이나 입히라고(웃음). 그런데 익숙해지기 위해서 입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선이 딱 나오잖아요. 채록이는 날씬하고 나는 두꺼비처럼 배가 불룩하고. 나는 단점이 더 명확해졌어요. 그런데 그게 또 대조가 되더라고요. 티비에 나오니까 그 대조가 참 보기 좋았어요."

박인환은 지난해 여름부터 발레 연습에 매진했다. /tvN 제공
박인환은 지난해 여름부터 발레 연습에 매진했다. /tvN 제공

박인환은 채록 역의 송강과 연기 호흡을 맞춘다. 현실에서는 박인환이 까마득한 선배지만 드라마 속에서 그는 송강의 발레 제자다. 서로의 제자이자 선생으로 두 사람은 '나빌레라'를 통해 교감했다. 박인환은 촬영 당시를 회상하더니 "20대 청년과 70대 노인이 서로를 위로해주고 보완해주는 게 시청자들에게 좋게 느껴졌으면 좋겠다"며 '나빌레라'가 가진 이야기의 힘을 강조했다.

"요즘 젊은 사람들 참 살기 힘들어요. 취직이 어렵고, 일을 하게 돼도 '너는 왜 그걸 못해?' 하면서 혼나고, 미래가 없다고 생각하는 친구들도 있더라고요. 그런 힘든 점을 잘 보여주는 드라마니까 위안을 얻을 것도 같아요. 앞으로 방송될 인상적인 장면들이 많아요. 세대 단절이 심해지고 있잖아요. 메말라가는 이 시점에 '나빌레라'로 노인과 청년이 서로 도와가며 공생하는 과정이 잘 전달되길 바래요."

극 중 청년 시절 덕출은 집배원으로서 인정받기 위해 밤을 새워가며 판자촌의 주소를 외워낸다. 그리고 70대가 돼 그 순간을 곱씹으며 발레 연습에 매진한다. 과거의 박인환도 치열하게 살았다. 신인 시절 연극 무대에서는 자신감 넘쳤지만 카메라 앞에만 서면 대사를 잃어버려 자신을 질책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를 다시 카메라 앞으로 떠민 것은 가족이다. "내가 일을 하지 않으면 가족이 굶는 데 방법이 없었다"며 굴곡진 배우 생활을 되짚었다.

박인환은 서 있을 힘만 있다면 카메라 앞에 서서 연기를 하고 싶다고 밝혔다. /tvN 제공
박인환은 "서 있을 힘만 있다면 카메라 앞에 서서 연기를 하고 싶다"고 밝혔다. /tvN 제공

"방송에 나가서 연기하는 건 경쟁이 치열한데 거기서 살아남지 못하면 연기를 그만둬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역할 작은 걸 꾸준히라도 했고 당시 단막극 붐이라서 개성 강한 연기자가 필요하니까 계속 저를 찾아주더라고요. 그렇게 휘뚜루마뚜루(웃음) 연기했어요. 연속극에 들어가면 6개월 생활이 보장돼요. 그래서 더 열심히 했더니 여기까지 왔어요."

"젊었을 때는 50살, 60살까지만 하면 많이 하는 거 아닌가 생각했어요. 그 이상은 못 하고 내가 할 배역도 없을 거니까요. 그런데 뭐 신구 선배, 이순재 선배도 여전히 잘하고 계시더라고. '나는 환갑까지만 해야겠다' 했는데 이제 보니 내일모레 80살이에요. 연기라는 걸 이제 탁 털어낼 수가 없어요."

덕출은 퇴직 후 발레라는 꿈을 찾아 떠났지만 박인환은 은퇴 후 마땅한 계획이 없다. "설 힘만 있다면 카메라 앞에 서서 연기하고 싶다"고 한다. '나빌레라'는 그 희망을 더욱 견고하게 만든 의미 있는 작품이다. 연기 인생 50년이 넘었지만 드라마 속 자신의 연기를 보며 조금 더 자연스러워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직도 성장할 게 남았다는 걸 알았으니 그는 배우로서 이미 높이 날아올랐다고 자신한다.

"손녀가 '나빌레라'에서 내 연기가 참 보기 편하대요. 알게 모르게 긴장을 많이 하는 스타일이라 저도 알고 있었거든요. 연기 말고는 딱히 해보고 싶은 게 없어요. 재주가 딱히 없어서 그냥 지금이 좋아요. 지금 왕성하게 활동하는 또래 배우들이 있어요. 아카데미에 간 윤여정도 그렇고. 대부분 신인 때는 빛을 못 봐서 식모 역할 하고 그랬어요(웃음). 참 치열하게 연기했던 사람들이에요. 지금 생각해보면 나도 그 사람들도 한번 날아보고 싶어서 그렇게 치열했던 거 아닌가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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