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바람 여인'은 2000년 발표된 '외로운 여자' 음반에 함께 실렸고, 타이틀 곡을 젖히고 당당히 빛을 봤다. 94년 처음 발표한 지 8년만이다. /더팩트 DB |
트로트가 밝고 젊어졌다. 최근 몇 년 사이 방송가에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이 활성화되면서다. 전통적으로 중장년층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트로트 팬층도 훨씬 넓고 깊고 다양해졌다. 덕분에 잊혔던 곡들이 리바이벌 돼 역주행 신화를 만들기도 한다. 누구나 무명시절은 있기 마련이고 터닝포인트도 있다. 수많은 히트곡을 낸 레전드 가수들 역시 인생을 바꾼, 또는 족적을 남긴 자신만의 인생곡에 각별한 의미를 두고 있다. 단 한 두 곡의 히트곡만을 낸 가수들이라면 더욱 애틋할 수밖에 없다. 가수 본인한테는 물론 가요계와 팬들이 인정하는 자타공인 트로트 인생곡들을 조명한다. [편집자 주]
히트 이후 매년 전국 지자체 꽃축제 'VIP 가수'로 단골 초대
[더팩트|강일홍 기자] "2002년 월드컵 열기가 한창 고조됐을 때, 이 노래도 인기 절정이었어요. 전국이 온통 축제 분위기였는데 사람들이 붐비는 곳이면 어김없이 제 노래가 흘러나왔고, 매일 꽃 구름에 올라탄 기분이었죠. 가수 이름은 몰라도 노래만 나오면 금방 탄성이 터져나왔으니까요."
2002년 가요계 최고 히트곡으로 자리매김한 '꽃바람 여인'은 가수 조승구의 인생곡이다. 89년 데뷔 이후 10년 넘게 무명가수의 길을 걷던 그는 이 곡이 히트하면서 일약 가요계 정상급 가수로 부상했다.
트로트 곡은 히트 사이클이 길고 더디다. 톱스타급 가수라도 신곡이 대중에 각인되려면 통상 2~3년은 기본이다. 더구나 무명가수가 긴 어둠의 터널을 뚫고 첫 히트곡을 낸다는 건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렵다. 가수 이애란은 '백세인생'을 히트하는데 자그마치 20년 역주행 신화를 쓴 인간승리의 주인공으로 남아있다.
'꽃바람 여인'이 터지기까지 조승구 역시 참으로 험난하고 모진 시간을 보내야 했다. 94년 이 곡이 처음 발표한 지 8년만이다. '꽃바람 여인'은 2000년 발표된 '외로운 여자' 음반에 다시 실렸고, 타이틀 곡을 젖히고 당당히 빛을 봤다.
조승구는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꽃바람 여인'이 전국을 강타하던 그 무렵만 떠올리면 신바람이 난다. "뭐든 처음이 어렵다고 하잖아요. 첫 히트곡이 한번 폭발하고나니 다른 노래들까지 바람을 타더라고요. 대중성이 짙은 곡은 언젠가 반드시 히트한다는 믿음을 갖게 해줬어요."
이 곡은 2000년대 초부터 중후반까지 수년간 노래방 애창곡 1위를 지켰다. 성인 가요차트에서도 3년 이상 정상을 지키며 각종 상을 휩쓸었다. Inet '성인가요베스트30'에는 당초 5주 1위 후 퇴장하는 룰을 깨고 무려 9주 연속 1위에 오르기도 했다.
"특정 지역에 한번 초대되면 주변에서만 일주일씩 맴돌곤 했다." 조승구는 '꽃바람 여인' 히트 이후 매년 4월이면 꽃 축제를 비롯한 전국 지자체의 각종 행사에 VIP 가수로 단골 초대됐다. /더팩트 DB |
'가슴이 터질 듯한 당신의 그 몸짓은/ 날 위한 사랑일까 섹시한 그대 모습/ 한 모금 담배연기 사랑을 그리며/ 한 잔의 샴페인에 영혼을 팔리라/ 세월에 향기인가 다가선 당신은/ 꽃바람 여인인가 나만의 사랑/ 사랑의 노예가 되어 버렸어/ 어쩔 수 없었네 꽃바람 여인'(조승구 '꽃바람 여인' 1절)
'꽃바람 여인'은 조승구가 직접 작사하고 MBC 악단 출신 작곡가 김영철이 곡을 썼다. 조승구는 "음폭이 커 쉽게 부르기는 어렵다"면서 "중년 남성들이 음주후 주로 2차 노래방에서 많이 불렀는데, 오리지널 EM 키로 부르면 나중엔 악을 써야 간신히 소화할 수 있는 노래"라고 했다.
이 노래가 대박 히트를 기록한 뒤 조승구는 매년 4월이면 꽃 축제를 비롯한 전국 지자체의 각종 행사에 VIP 가수로 단골 초대됐다. 애창곡으로 워낙 많이 불리다보니 행사장에서 해당 지자체 기관장 레퍼토리를 눈치없이 아랫사람이 먼저 불렀다가 혼쭐이 나는 웃지 못하는 상황도 벌어지기도 했다고 한다.
"워낙 부르는 곳이 많다보니 한번 특정 지역에 초대되면 그 지역 주변에서만 일주일씩 머물러야했고, 다른 지역 행사는 아예 갈 수 없는 지경이었어요. 예를 들어 전라도 광주에서 행사가 있으면 장성 화순 나주 해남 진도 목포 찍고 다시 광주로 스케줄이 마무리 되곤 했죠."
조승구는 1집 '여명의 종소리'로 데뷔한 뒤 '들풀 같은 여자'(2집) '애가'(3집)를 거쳐 '꽃바람 여인'(4집)으로 히트가수 반열에 오르기까지 13년이란 긴 시간이 걸렸다. 이후 '외로운 여자' '사랑의 꽃' '난' '구멍난 가슴' '나그네' 등을 히트시켰고, 최근엔 '신나는 하루'와 '그래도 진실' 등의 곡으로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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