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계 '학투'] 과거가 바꾼 현재…엔터 업계 자정작용②
입력: 2021.03.17 05:00 / 수정: 2021.03.17 05:00
달이 뜨는 강(왼쪽)과 모범택시는 학폭 논란에 휘말린 배우의 하차를 결정했다. 모두 사전 제작으로 기획돼 많은 촬영을 마쳤음에도 내린 과감한 선택이다. /KBS, SBS 제공
'달이 뜨는 강'(왼쪽)과 '모범택시'는 학폭 논란에 휘말린 배우의 하차를 결정했다. 모두 사전 제작으로 기획돼 많은 촬영을 마쳤음에도 내린 과감한 선택이다. /KBS, SBS 제공

연예기획사의 가장 큰 역할을 꼽는다면 단연 '리스크 관리'다. 소속 아티스트가 사건 사고에 휘말리면 공식 입장을 발표하고 발 빠르게 사태를 수습한다. 그런데 그 사건 사고가 '과거'의 언행에서 시작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최근 스타들의 학교 폭력 의혹이 봇물처럼 쏟아지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학투'(학교 폭력 미투)로 몸살을 앓고 있는 연예가 현실을 진단한다. [편집자 주]

학폭 가해자가 넘어야 할 문턱, '피할 수 없는 극복의 대상'

[더팩트 | 유지훈 기자] 연예인의 학창 시절 비행은 과거 그저 수많은 가십거리 중 하나에 불과했다. 대부분 '끼가 많으니 당연히 그랬겠지'라며 넘어갔고 몇몇 연예인은 TV에 나와 "소문보다 더했다"며 자랑스럽게 떠들기도 했다. 그때 그 시절에는 당연한 일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뜨악한 광경이다.

최근 연예계는 스타들의 잇단 학교 폭력(이하 학폭) 의혹에 뒤숭숭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전과 달리 그저 소문이 도는 데 그치지 않는다. 피해를 입은 당사자가 직접 인터넷 커뮤니티 혹은 SNS를 통해 과거에 당했던 피해 내용을 하나하나 나열하는 식이다. 이후 펼쳐지는 공방은 대동소이하다. 폭로 당한 팬들의 증거 요구, 소속사의 반박, 폭로자의 재반박, 소속사의 "법적 대응하겠다"는 입장문 발표가 이어진다.

과거라면 그저 논란이 불거지고 이미지에 타격을 입는 데 그쳤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아무리 능력 있더라도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혔다면 연예인으로서의 활동은 용납할 수 없다'는 데 무게가 실렸다. 최근 KBS2 '달이 뜨는 강'은 주인공 온달 역의 지수, SBS '모범택시'는 주요 배역 중 하나인 고은 역의 이나은을 하차시켰다. 지수와 이나은이 작품 촬영 도중 학폭 논란에 휘말렸기 때문이다.

지수(왼쪽)와 이나인은 최근 학폭 논란에 휘말렸다. 두 사람은 결국 출연 중이던 작품에서 하차하게 됐다. /더팩트 DB
지수(왼쪽)와 이나인은 최근 학폭 논란에 휘말렸다. 두 사람은 결국 출연 중이던 작품에서 하차하게 됐다. /더팩트 DB

'달이 뜨는 강'과 '모범택시'는 모두 사전 제작으로 기획됐다. 이미 대부분의 촬영을 마쳤음에도 '학폭 배우가 출연한 작품'이라는 흠집을 지우기 위해 결단을 내린 셈이다. 설령 비용과 제작 기간이 초가 되더라도 제작사가 지우고자 하는 것은 학폭 논란이다. 모든 촬영을 마친 작품도 다르지 않다. KBS2는 첫 방송을 앞둔 사전 제작 드라마 '디어엠(Dear.M)'의 여자 주인공 박혜수가 학폭 의혹에 휘말리자 편성 전면 보류라는 강수를 두기도 했다.

"이전에는 학창시절 품행이 좋지 않았다는 것을 알더라도 캐스팅을 하고 전속계약도 맺었다. 최근 학폭 논란이 거세지며 인식이 바뀌고 있다. 과거의 비행은 연예인의 활동에 제약을 걸고 크게는 작품 전체까지 악영향을 끼친다. 예전과는 인식이 다소 달라졌다."(연예 기획사 대표 A씨)

'과거야 어쨌든 끼만 있다면 그만'이라는 안일했던 생각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A씨는 이번 일을 계기로 업계가 긍정적으로 변화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게 됐다. 그는 "연예 종사자들이 터부시했던 도덕성이라는 측면은 이제 무엇보다 중요해졌다"며 "업계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한 번쯤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였다. 이번 일로 나 역시 회사 소속 연예인들의 과거를 다시 한번 체크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드라마 제작 시스템도 재정비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 출연 배우가 하차하면 재촬영은 필수고 이에 따라 추가 제작비가 발생한다. 최근 대부분의 작품이 사전 제작으로 기획되고 논란의 당사자가 주연급이라면 재촬영에는 예상을 웃도는 커다란 제작비가 투입된다. 제작사들은 발 빠르게 계약서에 학폭 관련 항목을 추가하고 있다. 때문에 학폭에 얽힌 연예인이라면 앞으로는 활동에 난항을 겪게 될 전망이다.

디어엠은 이미 모든 촬영을 마쳤음에도 박혜수가 학폭 논란에 휘말리자 편성 전면 보류라는 강수를 뒀다. /KBS 제공
'디어엠'은 이미 모든 촬영을 마쳤음에도 박혜수가 학폭 논란에 휘말리자 편성 전면 보류라는 강수를 뒀다. /KBS 제공

"지금까진 논란이 생기면 사과하고 하차 수순을 밟는 게 전부였다. 별도 손해 배상 같은 것은 없었다. 하지만 최근 학폭 논란이 계속되면서 제작사가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래서 출연 계약서에 '과거 학교 폭력을 행사한 사실이 없음을 인정한다'는 항목을 추가하게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만약 사실이 아닐 시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된다. 이미 계약서가 완료됐다면 추가 서약까지 받는다고 하더라."(매니저 B씨)

몇몇 연예인들의 과거 철없이 행했던 행동이 커다란 돌풍이 되어 돌아왔다. 그들의 활동에 제약을 거는 것을 넘어 연예계 전체의 자정작용까지 만들어내고 있다. 물론 아직 갈 길은 멀다. 앞으로 더 많은 연예인이 비슷한 의혹에 휘말리고 진실공방을 벌이게 될 전망이다.

"최근 학폭 사태가 계속되며 학폭을 전문으로 다루는 법무법인까지 나왔다. 그만큼 학폭은 뜨거운 감자가 된 것 같다. 업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불편하겠지만 앞으로 논란이 계속돼 자정작용이 크게 일어야 한다'는 의견과 '연예인들뿐만 아니라 제작사 같은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하니 이제는 멈춰야 한다'는 의견으로 나뉜다. 개인적으로는 전자의 손을 들고 싶다. 명색이 대중의 사랑으로 먹고사는 연예인인데 누군가를 신랄하게 괴롭혔던 가해자라하는 게 가당키나 하겠나."(기획사 대표 A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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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부 | ssent@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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