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 인사이드②-모칸] '승리호'를 타고 바라본 K-콘텐츠 풍경(하)
입력: 2021.03.07 00:00 / 수정: 2021.03.07 00:00
유강서애(왼쪽) 윤승민은 모칸이라는 이름으로 조성희 감독과 함께 승리호 시나리오를 작업했다.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승리호는 전세계 스트리밍 1위라는 쾌거를 달성했다. /이동률 기자
유강서애(왼쪽) 윤승민은 모칸이라는 이름으로 조성희 감독과 함께 '승리호' 시나리오를 작업했다.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승리호'는 전세계 스트리밍 1위라는 쾌거를 달성했다. /이동률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2021년 신년사에서 '소프트파워에서 선도국가로 도약할 것'이라며 문화·예술과 스포츠를 대표적인 'K-콘텐츠'로 내세웠습니다. 특별히 BTS와 블랙핑크, 그리고 영화 '기생충'을 언급하기도 했죠. K-콘텐츠가 '한류'라는 이름으로 세계인을 매료시키고 있습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으로 여러모로 힘든 이들에게 잠시나마 행복을 주기도 하고 따뜻한 위로를 전하기도 합니다.

<더팩트>는 문화·예술 분야에서 한류를 이끄는 '한류 콘텐츠 메이커'를 직접 만나 K-콘텐츠의 성공과 가능성, 그리고 현실적인 문제와 해결법을 살펴보는 기획시리즈 '한류 인사이드'를 통해 글로벌 한류의 현주소를 조명합니다. <편집자 주>

"홀로 이야기를 만드는 시대는 저물고 있어요"

[더팩트 | 유지훈 기자] 새로운 시도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한국 최초의 블록버스터 우주 SF 영화 '승리호'(감독 조성희)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국 콘텐츠는 꾸준히 성장해왔지만 우주 SF는 제대로 시도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누구도 성공을 보장하지 못했지만 가능성을 엿본 수많은 영화인들이 의기투합했고 240억 원의 제작비가 모였다.

윤승민과 유강서애로 구성된 작가 법인 모칸은 2016년 겨울부터 조성희 감독과 함께 '승리호'의 시나리오를 써 내려갔다. '승리호' 작업기는 '어마어마한 모험'과도 같았다. 상상력은 마음껏 펼칠 수 있어 행복했지만 "이렇게 열심히 작업한다고 해도 영상화가 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은 계속해 이들을 괴롭혔다. 우여곡절 끝에 탄생된 '승리호'는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190여 개국에 공개됐다. 모칸은 '승리호'로 넷플릭스 영화 부문 스트리밍 1위라는 달콤한 열매를 맛봤다. 이와 동시에 한국 콘텐츠가 더 높은 곳에 올라서기 위해 풀어야 할 숙제들도 깨닫게 됐다.

-'승리호'가 한국에서 시도된 적 없는 장르이다 보니 어려움도 있었을 것 같다.

윤승민(이하 윤): '나는 수백억짜리 SF영화를 만들 거야'라고 한다면 그 누구도 믿지 않을 시기였어요. 이제 '승리호'가 나왔으니 달라지겠죠. 당시 메이저 투자 배급사들은 '승리호' 프로젝트를 긍정적으로 보지 않았을 거예요. 비단길(제작사)과 메리크리스마스(배급사)가 정말 큰 모험을 한 거죠. 저희도 솔직히 막막했어요(웃음). 배우들도 마찬가지였대요. 아무 글자도 쓰여있지 않은 A4용지에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걸 만들어야 한다는 느낌이었어요.

유강서애(이하 유): 저도 마찬가지였죠. 그래서 '이건 시도 자체가 영광이다' 하는 마음으로 작업했어요.

승리호는 한국 영화 최초의 우주 SF 블록버스터라는 점으로 큰 관심을 모았다. /넷플릭스 제공
'승리호'는 한국 영화 최초의 우주 SF 블록버스터라는 점으로 큰 관심을 모았다. /넷플릭스 제공

-'승리호'는 한국 최초의 우주 SF지만 이미 할리우드는 수많은 명작 SF를 만들었다. 할리우드의 SF와의 유사성을 피해가야 한다는 고민은 없었나.

윤: 할리우드 작품과의 유사성을 이야기하기 전에 과거부터 존재해왔던 SF소설부터 말했으면 좋겠어요. 세계인의 사랑을 받은 할리우드 SF들 대부분 그 소설과 비슷한 것들이 많아요. 우리도 마찬가지였어요. 영화보다는 SF 관련된 수많은 서적을 참고했어요. 그리고 이야기의 원형을 발견하려고 노력했어요.

유: '승리호'를 보시고 이미 할리우드에서 나온 영화들을 떠올리실 수 있어요. 관객들의 반응도 유사성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았고요. 하지만 '승리호'는 영화가 아니라 '오즈의 마법사'라는 소설에서 많은 부분을 참고했어요. 몇몇 관객분들은 이미 그걸 깨닫고 관련 글을 쓰시기도 했더라고요. '오즈의 마법사'의 우주 버전이라고 생각하고 '승리호'를 보신다면 새로운 재미를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승리호' 선원들은 화투를 하고 된장찌개를 먹는다. 한국적인 요소를 특별히 넣고자 했던 것인가.

유: 한국을 부각시키고자 했던 게 아니라 당연한 행동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몇몇 분들이 '굳이 우주까지 가서 된장찌개를 먹어야 해?'라고 비난하시더라고요. 문화라는 건 계속해 이어지는 것이에요. 2092년이 배경일 뿐 주인공들은 한국인이잖아요. 이건 '승리호'의 취향이 아니라 객관적인 구성요소예요.

윤: 100년 전에도 한반도 사람들은 된장찌개를 먹고 있었잖아요(웃음). 부디 이 부분에 관해서는 큰 거부감을 느끼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모칸은 2013년에 만들어졌는데 '승리호' 전에는 이름을 보지 못했던 것 같다.

윤: '승리호'는 자포자기 상태에 있는 인물에 관한 이야기예요. 그리고 모칸도 마찬가지였어요(웃음). 박찬욱 감독님과 시나리오는 썼는데 영화가 제작되기까지 과정이 너무 어려운 거예요. 그래서 대안을 찾았던 게 TV 드라마였어요. KBS2 '아빠니까 괜찮아'라는 드라마는 영상화가 됐어요. 안내상 선배님께서 출연도 해주셨고요. 그 이후에 '프로메테우스'라는 작품을 썼고 제작이 코앞이었는데 이건 결국 무산됐어요. 그때 정말 힘들었는데 조성희 감독님이 '승리호'를 제안 주셨던 거죠.

유: 우리랑 비슷한 일을 겪은 작가분들이 정말 많을 거예요. 이미 완성돼서 논의 중인 작품들은 좀 있어요. 아직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뿐이에요.

윤승민 작가는 승리호 작업 당시 영화 속 인물들처럼 자포자기 상태였다고 밝혔다. /이동률 기자
윤승민 작가는 "'승리호' 작업 당시 영화 속 인물들처럼 자포자기 상태였다"고 밝혔다. /이동률 기자

-보통은 스타 작가 아래 수많은 보조가 일하는 도제 시스템이 정착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모칸은 특이하게 팀 체제다.

윤: 2000년대 중반에 한국 영화 시스템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의견이 커진 시기가 있어요. 그리고 기획 개발을 체계적으로 해야 한다는 의견도 컸죠. 이때 작가들이 팀을 꾸리거나, 기업들이 작가 풀을 만드는 움직임이 있었어요. 하지만 대부분 도제 시스템에 익숙했고 한 이야기에 대해 다 함께 토론하는 방식이 미숙했죠. 그래서 잘 안 됐어요. 모칸은 그래도 잘 버텼네요(웃음). 저희 외에 몇 팀이 더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앞으로는 모칸처럼 팀으로 움직이는 작가 시스템이 정착할 것이라고 보나.

윤: 저는 이제 개인 영역의 시대는 끝났다고 봐요. 전에는 어떤 창작자의 이름 하나만으로 관심을 끌어낼 수 있었어요. 지금은 플랫폼이 다양해지고 콘텐츠가 전 세계로 뻗어나고 작품 완성도가 상향 평준화됐죠. 그래서 어떤 작품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스타 작가를 향한 기대보다는 장르적 충족에 관한 욕구가 더 강해진 것 같아요.

-최근 한국의 서사 콘텐츠가 장르적 정체성이 강해졌고 완성도도 높아졌다는 평가를 자주 보게 된다. 어떤 촉발요인 같은 게 있다고 보나.

유: 개인적으로는 2010년 넘어오면서 미국 드라마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대중의 눈높이가 높아졌고 그걸 충족시켜야 하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OCN과 tvN이 장르 드라마에 주력하면서 자리를 잡았잖아요. 지상파도 그 흐름에 따르게 됐고 이제는 이 상황이 정착됐어요.

윤: 저도 유강서애 작가의 말에 동의해요. 그리고 요즘 작품들의 템포가 많이 빨라졌어요. 6부까지 끌고 갈 서사를 1부 만에 다 소화해서 속도감이 빨라요. 우리 모칸도 그 템포를 따라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한국 콘텐츠의 해외 진출이 많아지는 만큼 작가로서 신경 써야 하는 부분도 많아지지 않았나.

유: 지금 보면 예전에는 문제가 될 콘텐츠가 많았어요. 종교 문화 인종 성별에 관한 몰이해에서 나오는 것들이었어요. 대부분이 혐오 표현이었던 것 같아요. 저희야 뭐 수많은 작업을 하고 의견을 주고받으며 단련됐죠(웃음). 평등에 관해 늘 예민한 채로 있고 따로 공부도 계속하고 있어요. 재미를 드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불쾌감을 드리지 않는 게 더 중요해요.

윤: '승리호'에서는 수많은 국가와 다양한 인종의 인물들이 나와요. 그래서 조 감독님이랑도 많이 검토했어요. 세계인이 함께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는 동시에 균형감도 유지하고 싶었어요. 그 어떤 나라의 사람도 불쾌감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게 공통된 생각이었어요. 세계적인 흐름을 파악하고 그에 잘 따라가야 하는 세상이에요.

유강서애 작가는 재미를 드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불쾌감을 드리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동률 기자
유강서애 작가는 "재미를 드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불쾌감을 드리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동률 기자

-작업 초기부터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두진 않나.

윤: 어떤 작품들이 해외에서 성공하는지 공부는 해봤죠. 하지만 어디까지나 한국 시청자가 만족하는 게 우선이에요. 세상 사람들이 좋아해 줘도 가족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면 마음이 허할 거잖아요. 작가도 마찬가지예요.

-작가라는 직업에 있어 고된 부분이 있다면?

윤: 영화는 두 시간이라는 제약을 가진 단일 콘텐츠에요. 기획부터 최종 상영에 이르기까지 감독 제작자 투자자 배우 스탭 등 스토리에 정말 많은 사람들이 개입을 해요. 혼자 하는 창작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죠.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이 정말 중요한 직업이고 늘 어려워요. 그리고 큰 작품을 하게 되면 좋을 것이라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스케일이 큰 영화일수록 준비 과정이 길고 복잡해요. '프로메테우스'는 첩보물이라 가보지도 않은 7개 나라에 관해 알아야 했어요. 여행 서적을 수없이 뒤져가면서 썼어요.

유: 정말 극한직업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작가라면 제 말에 모두 공감할 거예요(웃음). 그리고 아무리 작업을 열심히 해도 영상화된다는 보장이 없어요. 모칸도 8년 작업했는데 이제 '승리호' 하나 건졌잖아요. 한 작품의 크래딧을 얻기까지 세상에 나오지 못한 수많은 작품이 있었어요. 이건 모든 작가가 겪는 일이에요.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윤: 음, 우선 저희가 각자 준비하고 있는 드라마가 있어요. 그게 꼭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콘텐츠 제작에 있어 우리 모두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승리호'처럼 부딪혀볼 가치가 있는 기획들이 많아요. 이 외에 다른 이야기는 작가니까, 작품으로 이야기할게요(웃음).

유: 보통 저희 같은 창작자는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아요. 이야기의 원형이 되는 고전은 늘 존재해왔어요. 하지만 그 원형을 현대적으로 해석하거나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면 새로운 이야기가 돼요. 다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고들 하잖아요. 하지만 하늘에서 보면 새롭게 보일 수 있어요. '승리호'를 통해 그걸 알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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