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미나리' 한예리, 모니카가 본 푸른 눈의 사람들
입력: 2021.03.02 05:00 / 수정: 2021.03.02 05:00
한예리가 미나리로 스크린에 돌아온다. 그는 미국 이민 가족의 어머니 모니카 역을 맡아 열연을 펼친다. /판씨네마 제공
한예리가 '미나리'로 스크린에 돌아온다. 그는 미국 이민 가족의 어머니 모니카 역을 맡아 열연을 펼친다. /판씨네마 제공

"이민 가족 이야기? 우리 모두의 이야기죠"

[더팩트 | 유지훈 기자] 남편 제이콥(스티븐 연 분)은 "아이들에게 무언가 보여주고 싶다"며 아메라칸 드림을 좇는다. 하지만 땀 흘려 키운 농작물은 쉽사리 시들고 은행 빚은 점차 불어난다. 큰딸 앤(노엘 케이트 조 분)은 팍팍한 미국 생활에 너무 일찍 철이 들었고 막내아들 데이빗(앨런 김 분)은 매사 천진하기만 하다. 푸른 눈동자의 사람들이 미리 터를 잡은 낯선 땅은 한줌의 희망도 없는 것만 같다.

이는 최근 연달아 미국 해외 시상식에서 낭보를 전해오고 있는 '미나리'(감독 정이삭)의 줄거리다. 한예리는 1980년대 미국 아칸소주(州)를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에서 모니카 역을 맡았다. 가장 한국적인 정서를 지닌 캐릭터다. 막무가내인 남편이 야속하지만 그럼에도 그 꿈을 지켜주려 노력하고 아이들을 위해 한국에 살고 있는 어머니 순자(윤여정 분)에게 도움도 요청한다. 90년대 안방극장에서 쉽게 마주했던 전형적인 어머니상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미나리' 캐스팅 당시 '할리우드 진출'이라는 거창한 수식어가 뒤따랐지만 한예리는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며 손사래를 친다. 독립영화와 견줄만한 적은 제작비가 투입됐다. 한정된 시간 안에 작품을 완성시켜야 한다는 목표 하나로 그는 배우, 스태프들과 열악한 촬영 현장에서 고군분투했다. 시작은 미약했지만 이제는 창대한 끝을 향해 나아간다. 연이은 수상에 이어 올해 미국 아카데미 노미네이트를 향한 기대감이 치솟고 있다. 팀 '미나리'를 대표해 취재진을 마주한 한예리는 "이렇게 많은 관심은 상상도 못 했다"며 그동안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미나리'를 처음 만난 순간부터 이야기하면 좋을 것 같다.

감독님을 만나기 전에 대본을 먼저 받았어요. 초기 시나리오였던 만큼 번역이 완벽하지 않았는데 천천히 읽으며 무언가 느껴졌어요. 빨리 감독님을 만나봐야겠다 싶었고 직접 마주하니 정말 좋은 사람이었어요. '이 사람이랑 뭐라도 해보고 싶다'는 느낌? 서로 부모님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고 각자의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모니카는 한국적인 정서를 많이 가진 캐릭터였고 제가 낳고 자란 곳이 한국이니 잘 표현해줄 수 있을 거라고 해주셨어요.

미나리는 희망을 찾아 낯선 미국으로 떠나온 한국 가족의 아주 특별한 여정을 담는다. 오는 3월 3일 국내 개봉한다. /판씨네마 제공
'미나리'는 희망을 찾아 낯선 미국으로 떠나온 한국 가족의 아주 특별한 여정을 담는다. 오는 3월 3일 국내 개봉한다. /판씨네마 제공

-정이삭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영화다. 그의 어머니 역할을 맡게 된 셈인데 특별히 주문 받은 것이 있나.

결코 본인의 어머니와 비슷한 행동이나 외모를 주문하지 않았어요. 그저 제가 생각해둔 모니카, 감독님이 생각해둔 모니카의 조율만 있었죠. 모니카와 제이콥이 다투는 장면이 좀 나와요. 그래서 과거 부모님이 다투던 때의 기억을 공유하곤 했어요. 나중에 감독님 어머니의 사진을 봤는데 정말 예쁘시더라고요. 그래서 '아 나랑 닮지 않아서 캐스팅한 건가?' 생각도 했어요(웃음).

-미국 시상식에서 상을 휩쓸고 있다. 배우로서 이토록 열광하고 있는 이유를 고민해봤을 것도 같다.

개인적으로는 '미나리'가 이민자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배경이 좀 다르지만 모두 겪어봤을 법한 내용이에요. 미국 반응이 뜨거운 이유는 그곳은 수많은 사람이 이민을 오고 다양한 문화가 섞여 부딪히게 되는 환경이잖아요. 밖에 나가면 영어를 쓰지만 집에서는 모국어를 쓰고 그러다 보면 소통의 부재가 생길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아이들은 미국인도 한국인도 되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으며 자랄 거고요. '미나리'는 그런 지점들을 건드린 게 아닐까 싶어요.

-이민자의 이야기지만 결국 가족에 관한 이야기기도 하다.

혼란스러운 상황에 '미나리'는 부모를 집중해요. 어머니 아버지가 어떤 희생을 해왔는지 왜 소통이 어려웠는지 알게 되고. 어쩌면 막연했던 기억들이 되살아나는 게 아닐까 해요. 여러 감정이 혼재돼서 부딪히게 되는 것 같더라고요. 이 영화를 보기 힘들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유년기를 보듬어주고 치유해주는 부분들이 있어요.

한예리는 미나리가 이민자들만의 이야기가 아닌 모든 가족의 이야기라고 강조했다. /판씨네마 제공
한예리는 '미나리'가 이민자들만의 이야기가 아닌 모든 가족의 이야기라고 강조했다. /판씨네마 제공

-모니카 캐릭터를 어떻게 이해하고 연기하고자 했나.

그 누구보다 가정의 해체를 원치 않는 캐릭터인 거죠.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아이들을 보다 나은 환경에서 기르고 싶고 제이콥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그 관계도 유지하고 싶었다고 봐요. 연기를 하면서 모니카가 정말 제이콥을 사랑하고 가족을 지키고 싶어한다는 걸 체험할 수 있었어요.

-'미나리' 촬영 환경이 열악했다는 이야기가 많다.

할리우드 진출이라고도 하셨는데 결코 그렇지 않았어요(웃음). 시스템도 한국이랑 비슷했고요. 집을 하나 빌려서 모든 스태프가 같이 살았죠. 지금으로서는 그렇게 지낸 게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만약 호텔에서 각자 생활했다면 이렇게 많이 영화에 관해 이야기하며 친해질 수 없었을 거예요. 집은 어느 순간부터 다 함께 모여 식사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아지트 같은 공간이 됐어요. 요즘 다시 그 사람들과 밥을 먹고 싶어요. 참 기억에 남고 그리워지는 순간들이에요.

-함께 연기 호흡을 맞춘 선배 윤여정도 70년대에 미국으로 이민을 갔었다. 이야기를 나누며 참고한 부분들이 있나.

뭔가 듣고 연기에 반영했다기보다는 경험을 들을 수 있는 기회였어요. 그때만 해도 비행기를 타고 이민을 가고 하는 일들은 정말 큰 용기였대요. 다시는 가족을 못 볼 수 있다는 결심도 필요했고요. 윤여정 선생님도 당시 큰 결심을 하고 한국의 모든 것들을 정리하고자 하는 마음이셨대요.

-'미나리'의 OST인 'Rain Song(레인 송)'을 직접 불렀고 이 노래가 아카데미 주제가상 후보에 올랐다.

감독님께서 제가 노래를 불러줬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저는 '영화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좋다'고 했어요. 에밀 모세리 음악감독님이 멜로디를 들려줬는데 너무 아름다운 거예요. 자장가처럼 편안하게 부르면 된다고 하셔서 부담은 없었어요. 후보에 오른 게 신기했는데 감독님도 그렇대요. '이게 무슨 일이야!' 하면서(웃음).

한예리는 스티븐 연과 부부로 호흡을 맞춘다. /판씨네마 제공
한예리는 스티븐 연과 부부로 호흡을 맞춘다. /판씨네마 제공

-한국인 이야기지만 담백한 미국적인 이야기기도 하다. 감정을 담담히 표현하는 게 어렵지 않았나.

후반부 주차장에서 제이콥과 감정적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있죠. 그 전에 다 같이 식료품점 장면을 찍었는데 그때부터 제이콥과 아이들만 보면 눈물이 나는 거예요. 배우 한예리는 울고 있을지라도 모니카는 울면 안 되잖아요. 감정 호소가 아니라 자기 의사를 분명히 밝혀야 하는 장면이라 꾹 참았어요.

-극 중 병아리 감별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감별 방법을 배웠나.

연기를 위해 배우긴 했어요. 병아리를 어떻게 집고 그 이후에 이런저런 손짓을 하는 걸 연습한 다음에 촬영했어요. 감별 방법을 실제로 알려주시기도 했는데 그 조그만 아이들의 성별을 어떻게 아시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요(웃음). 다 귀엽고 똑같고 조그맣고. 감별사분들 정말 대단하구나 싶었어요.

'미나리'가 정말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예상을 했나. 그리고 끝으로 예비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제가 미국에 살아보거나 이민을 가보거나 하지 않았잖아요. 그래서 이렇게 마음을 울리게 될지는 몰랐어요. 이민을 경험해보지 않은 분들 또한 따뜻한 위로를 받고 있는 것 같아 감사해요. 코로나19 때문에 힘든 시기예요. 그 시간을 잠시나마 어렸을 때의 기억, 부모님에 관한 추억, 가족 소통의 부재를 겪어본 분들이라면 많은 생각과 따뜻함을 얻어가실 거예요. 매일 좋은 소식이 들려 선물 같은 나날이에요. 덕분에 즐겁게 지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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