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 인사이드①-라이언 전] "K팝의 성장, 'Lucifer' 인기로 확인"(상)
입력: 2021.02.07 00:00 / 수정: 2021.02.07 00:00
라이언 전은 신인 작곡가 시절 이효리의 타이틀곡을 쓰고 SM엔터테인먼트 대표 뮤지션들의 히트곡을 탄생시키며 이제는 K팝을 대표하는 프로듀서가 됐다. 현재는 그도, 그가 만든 음악도 모두 K팝의 중심에 있다. /이선화 기자
라이언 전은 신인 작곡가 시절 이효리의 타이틀곡을 쓰고 SM엔터테인먼트 대표 뮤지션들의 히트곡을 탄생시키며 이제는 K팝을 대표하는 프로듀서가 됐다. 현재는 그도, 그가 만든 음악도 모두 K팝의 중심에 있다. /이선화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2021년 신년사에서 '소프트파워에서 선도국가로 도약할 것'이라며 문화·예술과 스포츠를 대표적인 'K-콘텐츠'로 내세웠습니다. 특별히 BTS와 블랙핑크, 그리고 영화 '기생충'을 언급하기도 했죠. K-콘텐츠가 '한류'라는 이름으로 세계인을 매료시키고 있습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으로 여러모로 힘든 이들에게 잠시나마 행복을 주기도 하고 따뜻한 위로를 전하기도 합니다.

<더팩트>는 문화·예술 분야에서 한류를 이끄는 '한류 콘텐츠 메이커'를 직접 만나 K-콘텐츠의 성공과 가능성, 그리고 현실적인 문제와 해결법을 살펴보는 기획시리즈 '한류 인사이드'를 통해 글로벌 한류의 현주소를 조명합니다 . <편집자 주>

아이돌 히트곡 부자가 말하는 K팝의 태동

[더팩트 | 유지훈 기자] 아이돌 그룹의 앨범을 듣다가 인상적인 트랙의 크래딧을 확인하면 자주 마주하게 되는 이름이 있다. JHUN RYAN SEWON(전 라이언 세원), 잦은 방송 출연과 동료 뮤지션들의 샤라웃(Shout out) 덕분에 대중에게도 친숙한 라이언전이 자신의 창작물에 새기는 이름이다. 누군가는 그저 가끔 브라운관을 통해 본 프로듀서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그가 K팝에 남긴 족적은 뚜렷하다.

라이언 전은 자신의 손길이 닿은 노래의 진행만큼이나 드라마틱한 길을 걸었다. 신인 프로듀서 시절 우여곡절 끝에 한 유명 가수의 매니저에게 자신의 음악을 건넸다. 그렇게 발매된 'Chitty Chitty Bang Bang(치티치티 뱅뱅)'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2010년의 히트곡이자 이효리의 대표곡이 됐다. 이와 함께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로부터 가능성도 인정받았다. 전속 작곡가 계약을 맺기 전 수 차례 SM의 직원들과 함께 한국과 미국을 오갔다.

라이언 전은 당시를 회상할 때마다 "미국 작곡가들과 활발히 교류하는 프로듀서인데 부산 사투리를 구사하니 사기꾼인지 아닌지 확인이 필요했기 때문인 것 같다"며 웃는다.

"제발 한 번만 들어봐 달라"고 애원하던 패기의 신인 작곡가, 사기꾼 의심을 사던 프로듀서 시절을 거쳐 라이언 전은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샤이니의 'Lucifer(루시퍼)', 엑소 'Love Me Right(러브 미 라잇)', 레드벨벳의 'Dumb Dumb(덤 덤)', NCT 127 '영웅', 엑소 'Obsession(옵세션)', 태연 'I(아이)' 등 SM 뮤지션들의 히트곡을 비롯해 Mnet '프로듀스 101' 시즌2의 대표곡 '나야 나', 오마이걸 'Dolpin(돌핀)', 최근 발매돼 음원차트 1위를 달성한 아이유 'Celebrity(셀러브리티)'까지 모두 그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

그의 활약과 함께 K팝은 전 세계로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SM 소속 뮤지션들은 물론 한국 아이돌 그룹들의 해외 진출은 잦아졌고 라이언 전은 그 변화를 몸소 체험했다. <더팩트>는 그가 대표로 있는 소속사 A Team의 작업실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의 오랜 동료이자 한국과 해외 프로듀서들의 활발한 교류로 이제는 필수가 된 뮤직퍼블리싱사 Musikade(뮤직케이드)의 염민석 대표도 함께했다. 두 사람은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K팝이 막 해외에서 주목받던 2010년 즈음의 나날들을 되짚었다.

Musikade 염민석 대표(왼쪽)와 라이언 전은 과거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K팝이 막 해외에서 주목 받던 2010년 즈음의 나날들을 되짚었다. /이선화 기자
Musikade 염민석 대표(왼쪽)와 라이언 전은 과거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K팝이 막 해외에서 주목 받던 2010년 즈음의 나날들을 되짚었다. /이선화 기자

-소속된 회사도 불리는 명칭도 너무 많다. 본격적인 대화에 앞서 정리가 좀 필요하다.

라이언전(이하 라): 방송도 나오고 유튜브도 하고, 엔터테인먼트사 A TEAM의 제작 대표, 프로듀서팀 마캔엔터테인먼트의 대표이사까지 많긴 많네요(웃음). 그냥 음악 프로듀서 라이언 전이라고 생각해주세요. 그리고 옆에 있는 분은 가족과 같은 형이자 제 반쪽입니다.

염민석(이하 염): 라이언이랑은 고등학교 때부터 인연이 있었고 라켄엔터테인먼트를 2009년부터 함께 운영했어요. 지금은 뮤직에이드의 대표예요. 라이언이 전면에 나와 있다면 저는 안에서 실무를 본다고 보시면 돼요. 뮤직퍼블리싱의 설명이 좀 필요할 것 같아요. 저희는 해외 프로듀서들과 교류가 많으니 그들의 저작권 관리가 꼭 필요해요. 그들과 사인을 하고 저작권을 받아 돌려주고 그런 일들을 한다고 보시면 돼요. 얘기 나누시다가 가끔씩 저도 설명을 도울게요.

-이효리의 타이틀 곡을 쓰는 것을 시작으로 수많은 K팝을 만들었다.

라: 'Chitty Chitty Bang Bang'으로 알려지긴 했는데 아직도 오해하는 분들이 있어요. 꼭 바로잡고 싶어요. 그 앨범에 표절시비가 있었는데 제 노래는 아니에요. 꼭 기억해주세요. 이효리 씨 앨범을 작업하는 동시에 많은 기획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어요. 하지만 대부분 '아닌 것 같다'는 말만 돌아왔어요. 그런데 SM에서 저를 알아봐 주셨어요. 아직도 SM 분들에게 감사하다는 마음으로 음악을 하고 있어요.

라이언 전은 샤이니의 Lucifer를 최고의 효자곡으로 꼽았다. /SM엔터테인먼트 제공
라이언 전은 샤이니의 'Lucifer'를 최고의 효자곡으로 꼽았다. /SM엔터테인먼트 제공

-SM과 작업에 본격적인 물꼬를 튼 노래, 자리를 잡게 해준 노래는 무엇인가.

라: 당시 휴대폰 광고를 아이돌의 음악과 함께하는 트렌드가 있었어요. 2009년 f(x) '롤리팝'을 작업했던 게 물꼬를 튼 것 같아요. 그 당시에 저는 택시보다 비행기를 많이 탔어요(웃음). 저에 관한 검증이 필요했고 그 검증이 모두 끝난 후에 계약을 했죠. 당시 검증을 위해 저랑 미국에 다녀오시던 분들은 이제 다 SM의 중역이 되셨어요. 샤이니의 'Get Down(겟 다운)' 작업은 아직도 기억에 많이 남아요. 민호, 키랑 같이 가사도 쓰고(웃음). 샤이니의 'Lucifer'가 지금의 저를 만들어준 것 같아요. 저랑 다른 팀원들이 트랙을 썼고 유영진 이사님이 멜로디를 완성시켜주셨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Lucifer'가 제일 큰 효자곡인 것 같아요.

염: 'Get Down'은 미니앨범에 수록됐고 'Lucifer'는 정규앨범 메인 타이틀곡이었어요. 정말 많이 사랑해주고 있다는 걸 느낀 노래예요. 전현무 씨가 안무 따라 해주시고 그랬죠. 그리고 그 노래가 나온 즈음부터 아이돌 노래는 가요가 아니라 K팝이 됐다고 생각해요.

-'Lucifer'가 발매된 2010년부터 K팝의 해외 진출이 본격화됐다고 보나.

라: 그전까지 인종차별의 느낌이 있었어요. 팝 느낌의 한국 노래가 나오면 '동양인이 뭐 하는 거야' 하는 반응들이었죠. 그걸 꼭 깨보고 싶었는데 현실이 된 거예요. 그전에도 어떤 노래가 인기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Lucifer'의 인기는 직접 우리가 목격했어요. 2011년 SM타운 프랑스 파리 콘서트 때요.

염: 라이언과 함께 SM에 초대받아서 콘서트에 갔었어요. 그때 K팝 붐이 일기 시작했어요. 프랑스 사람들은 물론 노르웨이 덴마크 유럽 아프리카 모로코 등 수많은 나라에서 온 팬들을 봤어요. 샤이니가 'Lucifer'를 부르는데 그 어떤 노래보다 함성이 뜨거웠어요. 외국인들이 한국 노래에 열광하는 게 처음이었고 그걸 직접 봤으니까 정말 신기했죠. 그때 '아 이거 장르가 되겠구나'라고 생각했어요.

라이언 전은 언어가 달라도 정서가 같다면 음악으로 호흡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이선화 기자
라이언 전은 "언어가 달라도 정서가 같다면 음악으로 호흡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이선화 기자

-하지만 그 이후에 모든 K팝이 사랑받았던 것은 아니다.

라: SM콘서트 때랑 K콘 때랑 전체적인 반응이 달라요. SM은 외국 작곡가와의 협업에 적극적이었어요. 그래서 다른 K팝과는 정서가 달랐죠. 다른 언어를 써도 정서가 같다면 음악으로 호흡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많은 사람이 아이돌 그 자체에 열광한다고 생각하지만 저는 결국 답은 음악이라고 봐요. 그때부터 외국의 정서를 적극적으로 넣으려고 노력했어요.

염: SM은 1세대 아이돌인 H.O.T. SES 시절부터 외국 작곡가들과 협업을 해왔어요. 그게 차근차근 쌓여서 2010년대에 들어 그 수확을 거둔 거죠.

-외국 정서를 위해 라이언 전 역시 해외 프로듀서들과 협업을 늘렸나.

라: 원래부터 하긴 했지만 더 적극적이었어요. 저는 트랙에는 자신 있었지만 멜로디는 약했어요. 원래 둘이서 곡을 썼다면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작업 인원을 다섯까지 늘리고 그렇게 열 명, 열다섯, 스무 명까지 사람이 늘어났어요. 그때 해외 정말 많이 다녔어요. 뉴욕 동네방네 작곡가 찾으러 다니고 그랬죠.

-해외 작곡가들과의 교류가 활발해지니 뮤직케이드와 같은 퍼블리싱 회사의 역할도 필요해진 것인가.

염: 맞아요. 라이언처럼 직접 소통할 플레이어도 필요하지만 계약이나 행정적인 것도 같이 가져가야 해요. 국내 뮤지션들도 해외에서 발생하는 저작권료를 직접 가져가기 어려워요. 뮤직케이드는 그들을 대신해 저작권료를 징수하고 다시 분배해줘요. 우리와 같이 하는 작곡가들이 지금은 300명이 좀 안 될 거예요.

라이언전은 해외 곳곳을 돌며 실력 있는 작곡가를 찾으러 다녔다고 말했다. /이선화 기자
라이언전은 "해외 곳곳을 돌며 실력 있는 작곡가를 찾으러 다녔다"고 말했다. /이선화 기자

-K팝 해외 진출의 해답이 정서라고 말했지만 사실 쉽사리 이해하긴 어렵다.

라: 정서와 문화는 섞여 있어요. 한국은 한(恨)의 문화예요. 마음에 맺힌 것들이죠. 그런데 해외는 쉽게 말하면 팝 문화예요. 얼터네이티브,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것이죠. 힙합이면서도 록이고 록이면서도 재즈고요. 한국의 노래는 가요이고 거기에 해외의 색이 얹혀지면 K팝이 된다고 봐요.

염: 쉽게 말하면 퓨전 음식, 해외의 음식이지만 친근한 맛을 내야 해요. 팝 시장에는 후크송이 많아요. 한국의 아이돌 음악도 어느 순간부터 반복적인 후렴구를 많이 사용해요. 소녀시대 'Gee(지)', 원더걸스 'Tell Me(텔 미)' 이런 노래의 후렴구는 반복적이고 가사는 영어죠. 그리고 트랙은 팝이지만 멜로디는 한국적인 것들도 있어요. 이런 노래는 데모 녹음부터 영어로 해요. 여기에 한국 가사들이 들어가고 그러니 정서들이 섞이게 되는 거죠.

-그저 정서만 맞춘다고 해서 해외 팬들의 사랑을 받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음악 외에 어떤 영향들이 K팝의 상승세를 도왔나.

염: 해외 보이 밴드의 부재, 유튜브의 등장이 컸다고 봐요. 백스트리트 보이즈, 뉴키즈 온 더 블록이 한때 시장을 휩쓸었고 그 이후는 보이 밴드가 거의 없었어요. 트렌드가 바뀐 거죠. 그런데 다시 트렌드가 돌아왔고 K팝이 그 자리를 대체했어요. 그리고 해외의 보이밴드보다 마스크도 음악도 춤도 화려하죠.

라: 섹스와 마약, 돈을 노래하는 시장이 된 거죠.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자기 첫 경험을 노래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그 트렌드가 식상해진 사람도 있을 거예요. 우리는 잘 생기고 예쁜 사람들이 사랑, 설렘이라는 정서에 집중해요. K팝을 좋아하는 이유가 궁금해서 해외 팬들에게 직접 물어보기까지 해서 얻은 해답이에요. 그리고 우리가 동양 사람이라 신기해서 좋아하고 그런 게 아니래요. 음악엔 국경이 없다는 걸 다시 느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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