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일홍의 스페셜인터뷰120-정동남] '기인'처럼 산 50년 배우 인생
입력: 2020.12.21 05:45 / 수정: 2020.12.21 06:49
액션 배우로 연기를 시작한 정동남은 극한의 퍼포먼스를 많이 해 기인 괴물 초인간이란 별명이 붙었다. 괴력의 콧바람 명성은 TV를 통해 익히 알려져 있다. /임세준 기자
액션 배우로 연기를 시작한 정동남은 극한의 퍼포먼스를 많이 해 '기인' '괴물' '초인간'이란 별명이 붙었다. 괴력의 콧바람 명성은 TV를 통해 익히 알려져 있다. /임세준 기자

액션 무술-재난 구조-코믹 감초연기-가수까지, 만능스타 '점백이'

[더팩트|강일홍 기자] 정동남(鄭東南·70)은 방송가에서 소문난 '팔방 미인'이다. 정통연기에서부터 무술액션, 차력, 재난 구조, 최근엔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 무대에 도전하는 등 말그대로 만능 탤런트(Talent)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그는 71년 스턴트 단역 배우로 처음 연기를 시작한 뒤 차츰 정극 드라마의 메인 캐릭터로 변신했다. 90년대 초 안방극장 시청률을 장악한 KBS1 일일극 '서울뚝배기'는 그에게 50년 배우 활동의 최고 인생작으로 아로새겨져 있다.

"청춘스타 최수종 도지원과 오지명 주현 서승현 김애경 길용우 등 중견들이 포진한 화제 드라마였어요. 그때까지 액션 단역 또는 무술 조연으로만 간간이 얼굴을 내밀다 20년 만에 처음으로 제 이름 '정동남'을 세상에 두루 알린 드라마가 됐으니까요."

사실 그는 30년이 지난 지금도 '서울뚝배기' 시절 극중 이름 '점백이'가 본명보다 더 익숙한 배우다. 당시의 닉네임이 워낙 강렬하게 각인된 덕분이다. 그는 감초 캐릭터인 약장수 점백이로 등장해 마치 물 만난 물고기처럼 코믹한 연기를 선보이며 인기를 이어갔다.

그는 천부적으로 '유쾌함'을 타고났다. 젊은시절부터 재간둥이로 소문날 만큼 마이크를 잡으면 전문 MC를 능가할 입담으로 유명하다. 정통 배우를 꿈꾸며 처음 연기자의 길을 걸었지만, 만능 이미지로 굳은 데는 이처럼 내면에 감춰진 다재다능한 끼를 분출하기 시작하면서다.

극한의 퍼포먼스를 많이 해 '기인' '괴물' '초인간'이란 별명도 붙었다. 괴력의 콧바람 명성은 TV를 통해 익히 알려져 있지만, 각종 사건사고 현장을 누비며 앞장 선 재난 구조 봉사활동은 해외에서도 인정할 정도다. 그를 만나 50년 배우의 삶을 조명해봤다. 스페셜인터뷰는 지난 18일 서울 상암동 <더팩트> 사옥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고희요? 나이가 대수인가요, 제 열정은 이제부터 시작이에요. 배우 정동남은 여전히 열정을 분출하는 만능 탤런트였다. 스페셜인터뷰는 지난 18일 서울 상암동 <더팩트> 사옥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임세준 기자
"고희요? 나이가 대수인가요, 제 열정은 이제부터 시작이에요." 배우 정동남은 여전히 열정을 분출하는 만능 탤런트였다. 스페셜인터뷰는 지난 18일 서울 상암동 <더팩트> 사옥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임세준 기자

-'정동남' 하면 우선 강력한 힘을 분출하는 슈퍼맨 이미지가 있다. 콧바람으로 불붙은 성냥갑을 통째로 끄는 마술같은 묘기는 지금까지 수십년째 회자되고 있지 않나.

사실 키는 작달막 해도 덩치가 있어서 제 몸에서 분출하는 파워는 보통 사람 서너 명과 맞먹습니다. 젊은 시절엔 거인들과 맞서도 절대 두렵지 않았어요. 남들이 못하는 한계 이상의 힘을 쏟아내다보니 자연스럽게 주목을 받게 되더라고요. 방송에 잇달아 출연한 뒤엔 전국적인 스타로도 대접받았어요. 당시 일부 언론사 기자들이 '믿기지 않는다' '혹시 트릭이 있는 게 아니냐'며 별도의 장소에서 시연을 하게하는 해프닝도 벌어졌죠.

그는 90년대 초 김병찬이 진행하던 KBS '홈런 일요일'이란 프로그램에 출연해 기상천외한 차력술을 처음 선보였다. 성냥갑 콧바람 불끄기는 물론 캔맥주 옆구리를 이빨로 뜯어 마시기, 맨손으로 뚜꺼운 전화번호부 절단하기 등 다양한 묘기를 선보였다. 이후 주병진이 진행하던 MBC '일요일 일요일밤에' 신년특집에 특별 게스트로 초빙돼 날계란을 깨지 않고 덥석덥석 먹어치우는 묘기로 또 한번 화제를 모았다.

-벌써 고희의 나이인데 최근에는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에 출전해 화제를 모았다. 끝없는 열정을 쏟아내는 비결이 궁금하다.

고희란 건 옛말이고, 저는 지금껏 살면서 나이를 의식해본 일이 없어요. 아직도 차력술을 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고 콧바람도 쌩쌩 잘 나옵니다. 제 열정은 이제부터 시작이에요. 남들은 저더러 '이미 다방면으로 이름값을 낸 성공한 인생'이라고들 치켜세우는데 정작 저는 아쉬움이 많아요. 연기자로는 물론이고, 늦었지만 노래로도 제대로 인정을 받고 싶은 거죠. 그렇다고 음반을 내서 기성 가수들과 경쟁할 생각은 없어요. 실력을 인정받는 아마추어로 재능기부를 하면서 인생 후반전을 더 알찬 삶으로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정동남은 지난 7월부터 3개월간 방영된 MBN '보이스트롯'에 도전해 뛰어난 노래실력을 뽐낸 데 이어 특유의 익살 코멘트로 주목을 받았다. 그는 1라운드에서 '용두산 엘레지'를 완벽하게 열창해 올크라운(15개)을 받고 2라운드에 진출했다. 심사위원 남진이 "'보이스트롯' 최고의 무대"라며 역대급 극찬을 퍼부었을 정도다. 이에 대해 정동남은 "80명 중 1등으로 올라갈 만큼 자신이 넘쳤는데 2라드에서 그만 목소리에 문제가 생기는 바람에 제대로 겨뤄보지도 못하고 탈락해 아쉬웠다"고 말했다.

가황 나훈아 형님 곡이라면 어떤 노래든 자신이 있어요. 정동남은 90년대 초 KBS1 일일극 서울뚝배기에 출연한 이후 밤무대 가수로도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정동남 제공
"가황 나훈아 형님 곡이라면 어떤 노래든 자신이 있어요." 정동남은 90년대 초 KBS1 일일극 '서울뚝배기'에 출연한 이후 밤무대 가수로도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정동남 제공

-이번 오디션에서 가황 나훈아 히트곡들을 안 불렀는데 혹시 선곡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한때 밤무대에서 나훈아 모창가수로 유명했다고 들었다.

과연 대기자답게 바로 질문이 들어오시네요, 하하, 맞습니다, '사랑은 눈물의 씨앗' '울긴 왜 울어' 등 나훈아 형님 곡이라면 어떤 노래든 자신이 있어요. 그렇다고 선곡에 잘못이 있었던 것은 아니에요. 초반에 승기를 잡으려면 송가인이 부른 '용두산 엘레지'와 '한많은 대동강'으로 1, 2라운드에서 기선을 제압하고 3라운드부터 천천히 부르려던 참이었어요. 그런데 하필 첫 소절을 부르자마자 기도가 막혀 캑캑 거리는 바람에 탈락하고 다음 기회마저 놓친 거죠. 요즘 같으면 아마도 '테스형'이 메인 레퍼토리가 됐을 텐데 정말 아쉬워요.

정동남은 90년대 초 KBS1 일일극 '서울뚝배기'에 출연한 이후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그를 향한 인기는 곧 밤무대로 이어졌다. 서울의 유명 나이트클럽 무대를 하룻밤 4~5개씩 출연했다. 그는 "가수들이 주로 밤무대에 많이 섰지만 가창 실력이 있는 배우나 연기자들은 드라마 등에서 대중적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 몸값이 더 치솟았다"면서 "당시는 마치 호랑이 등에 올라 내달리고 있는 것 같아서 떨어지면 죽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단지 진기명기만으로만 주목을 받은 게 아니라 지금껏 수많은 재난현장을 몸소 뛰어다니며 인명 구조활동을 벌여왔다.

돌이켜 보면 죽을 고비도 수없이 넘겼지만 제 일에 대한 자부심 때문에 중단할 수 없었어요. 또 생계를 위해서라거나 누군가에게 보답을 받으려고 시작한 게 아니어서 오히려 더 큰 보람으로 남는 것 같아요. 봉사활동이라는 본래 목적이 훼손되는 순간 원래 의미는 퇴색된다고 생각해요. 저도 처음엔 사고를 당해 생사를 모르는 유족들의 안타까운 심정으로 무작정 뛰어들었는데 어느 순간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생업을 포기하고 현장으로 달려가게 되더라고요.

정동남은 1993년 3월 부산 구포역 인근 열차 탈선 전복 사고 현장 재난구조에 뛰어든 걸 시작으로 삼풍백화점 붕괴와 성수대교 붕괴, 세월호 침몰 등 대형 사고 현장 등에 투입돼 맹활약했다. 처음엔 자원봉사 차원이었지만 97년 8월에 발생한 대한항공(801편) 괌 추락사고부터는 시신 수습 등 구난 전문가로 활동했다. 당시 미국연방교통안전위원회 (NTSB)는 시신 수습 책임자로 유가족 측이 동의하고 일임한 그를 파트너십으로 인정해 사고현장 수습을 함께 진행하기도 했다.

정동남은 각종 사건사고 현장을 누비며 재난구조 봉사활동에 나서 해외에서도 인정할 정도다. 사진은 1997년 8월 대한항공 801편 괌 추락사고 당시 미국 NTSB(미 교통안전위원회) 관계자와 사고 현장. /정동남 제공
정동남은 각종 사건사고 현장을 누비며 재난구조 봉사활동에 나서 해외에서도 인정할 정도다. 사진은 1997년 8월 대한항공 801편 괌 추락사고 당시 미국 NTSB(미 교통안전위원회) 관계자와 사고 현장. /정동남 제공

-재난 현장에서의 구조활동은 의욕만 갖고 하는 게 아니지 않나. 그만큼 전문성을 갖춰야하는 영역이기 때문인데 혹시 기억에 남는 구조현장이 있다면 말해달라.

1993년으로 기억하는데요. 그해엔 유독 대형 인명사고가 많이 났죠. 제가 본격적으로 구조활동에 나선 시점이기도 해서 늘 잊을 수가 없어요. 서해 페리호 침몰, 구포열차 전복, 아시아나항공 추락 등 하늘과 땅 바다에서 연달아 발생했죠. 지금도 선명히 기억나는 사고는 여성 생존자를 헬기로 구조하는 과정에서 속옷이 그대로 생중계된 아시아나 여객기 추락입니다. 엉덩이와 허리까지 밧줄을 묶어야 할 매뉴얼을 무시하고 어깨에만 구조밧줄을 묶어 끌어올리는 바람에 구조과정에서 허리가 이완되는 2차 사고가 발생했다고 들었어요. 워낙 다급한 상황이다보니 그런 실수가 생겼겠지만 그 장면은 사고 현장을 갈 때마다 늘 한번씩 되새김질을 하게되는 반면교사가 됐어요.

구포역 무궁화호 열차 전복 사고는 1993년 3월 부산광역시 경부선 하행선의 구포역 인근 삼성종합건설의 공사현장에서 발생해 78명의 사망자와 198명의 부상자를 냈다. 그해 7월에는 아시아나 OZ733편이 전남 해남군 화원면 마산리 운거산 인근 232m 지점에 추락했다. 승무원들을 포함해 66명이 사망하고 44명이 중상을 입었다. 다시 3개월 뒤 10월엔 110t급 여객선 서해페리호가 전북 부안군 위도 해상에서 침몰해 모두 292명의 사망자를 냈다. 구조현장을 지킨 정동남은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친 사고 현장을 뛰어다니느라 어떻게 1년을 보냈는지 모를 지경이었다"고 회상했다.

-배우로 데뷔한 뒤 전혀 다른 방향의 일에 몰두하면서 유명해졌다. 어떤 계기로 인명 구조활동에 뛰어들게 됐는지 궁금하다.

세상을 살아보니 인생이란 게 매 순간 하나 하나가 모두 선택이더라고요. 우연히 누군가와 인연이 닿아 평생을 함께 하듯 저도 모르게 뭔가에 빠져들 때가 많아요. 사소한 경험이나 만남이 인생을 통째로 바꾸기도 하고요. 50여년 전 제가 갓 스무살 무렵 남동생이 한강에 빠져 사망한 일이 있었어요. 황망한 가운데서도 어렵게 돈을 마련해 쥐어준 뒤에야 시신을 찾았는데 그게 두고 두고 가슴속 한으로 남았죠. 인명을 구하려면 돈보다 무조건 뛰어들어야 한다는 게 제 신조가 됐어요.

그의 친 동생은 60년대 후반 한강에서 물놀이를 하다 익사 사고를 당했다. 모래 준설을 하면서 파놓은 웅덩이에 빠져 끝내 나오지 못했다. 당시는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 통학하던 시절이었다. 정동남은 "다들 어렵고 가난하던 시절이라 그랬겠지만 사람이 빠져 죽는 상황인데도 돈을 안 주면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면서 "사과상자를 주워다 널판지로 얼기설기 관을 짜서 아버지와 단둘이 동생을 떠나보냈다"고 말했다. 이를 계기로 그는 75년 '특수인명구조단'을 만들어 직접 익사구조에 나서기 시작했다.

정동남은 지난 7월부터 3개월간 방영된 MBN 보이스트롯에 도전해 뛰어난 노래실력을 뽐낸 데 이어 특유의 익살 코멘트로 주목을 받았다. 왼쪽은 특별게스트로 출연한 가수 김용임. /정동남 제공
정동남은 지난 7월부터 3개월간 방영된 MBN '보이스트롯'에 도전해 뛰어난 노래실력을 뽐낸 데 이어 특유의 익살 코멘트로 주목을 받았다. 왼쪽은 특별게스트로 출연한 가수 김용임. /정동남 제공

45년째 비영리단체 '특수인명구조단'을 이끌고 있는 정동남은 "수익이 없는 순수 봉사단체이다 보니 맡을 사람이 없다"고 했다. ㈔한국구조연합회 회장과 세계합기도연맹과 국제경찰무술연맹 중앙총재도 맡고 있다. 국가공인 잠수사 자격증 소지자이기도 하다.

방송 드라마 스턴트의 시초는 사실상 정동남이 발판을 마련했다. 70년대 초 그는 무술 실력을 인정받아 액션 연기자로 드라마에 특채됐다. 마침 TBC 황은진 PD가 설립한 연기프로덕션을 수료한 직후다. 그는 "당시는 엑스트라 조합같은 게 따로 없어서 독자적으로 실력을 인정을 받아야 가능했다"고 말했다.

이후 배우로서는 '서울뚝배기'가 인생작으로 남아있지만 그는 '밥을 태우는 여자' '사랑의 유람선' 등 다양한 작품을 통해 코믹 이미지로 각인돼 있다. 합기도 9단의 무술유단자이기도 한 그는 '적색지대' '무풍지대' 등에서도 액션 무술 연기를 선보이는 등 드라마 고정 출연작만 30여편에 이른다.

정동남은 올 하반기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대중 앞에 왕년의 끼를 되살렸다. 최근엔 국내 차력 1인자답게 MC 박나래와 박소현을 치아로 들어 올려 눈길을 끌기도 했다. 드라마 '서울뚝배기' 이후 오랜만에 만난 그는 인터뷰 시작부터 끝나는 순간까지 필자를 웃겼다. 여전히 넘치는 활력을 가진 그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슈퍼맨 모습' 그대로였다.

eel@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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