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홍춘이에요." 배우 최란은 환갑의 나이가 된 올해 본업을 잠시 접고 트로트 가수로 변신했다. 홍춘이는 드라마 '허준'의 극중 인물로, 남편인 전 농구감독 이충희가 추천했다. /이동률 기자 |
강함과 부드러움 동시 갖춘 연기파, "가수는 또다른 삶을 위한 터닝포인트"
[더팩트|강일홍 기자] 배우 최란(60)은 강함과 부드러움을 동시에 간직한 연기파다. 30대 초반 연기한 MBC 의학드라마 '종합병원'부터 가장 최근작인 KBS 일일극 '여자의 비밀'까지 카메라 앞에만 서면 카리스마가 뚝뚝 묻어난다.
"배우의 자존심은 카메라 앞에 서 있을 때 지켜진다고 생각해요. 덩달아 연기력으로 좋은 평가를 받는다면 이보다 행복한 일이 없겠죠. 그동안 저는 비교적 과분한 사랑을 많이 받았어요. 다만 한 가지, 세월이 쌓일수록 나이에 걸맞는 배역은 오히려 줄어드는 것 같아 늘 아쉽죠."
평소 누구보다 배우의 자존감을 강조해온 그다. 연기자 데뷔 40년, 변화를 위한 돌파구가 필요했을까. 최란이 본업을 잠시 접고 트로트 가수로 변신했다. 그는 "자발적으로 연기를 중단하거나 포기한 게 아닌 인위적인 공백이니 만큼 전업이란 표현보다는 겸업이 맞을 것"이라고 했다.
최란은 천성적으로 흥을 타고났다. 트로트 데뷔곡 '그럴 줄 알았지'는 예능 전문 MC 김승현이 작사하고 싱어송라이터 신수아가 곡을 썼다. 과거 드라마 '허준'에서 연기한 극중 캐릭터 홍춘이를 '부캐'(부 캐릭터) 이미지로 차용했다. 남편 이충희 전 농구감독이 적극 추천했다고 한다.
"코로나로 모두가 힘든 시기잖아요. 미래에 대한 희망과 기대가 오히려 더 간절해졌다고 생각해요. 제 노래는 활짝 웃는 새로운 인생을 만들자는 각오가 담긴 곡이에요. 20년지기 절친인 (김)승현씨가 가사를 썼는데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음반을 냈죠."
그에게 올해는 그래서 더 색다른 의미가 아로새겨져 있다. 그는 "가수 도전은 안주가 아닌 또다른 인생의 터닝 포인트"라고 말했다. 환갑의 나이에 '40년 배우' 외길을 뛰쳐나온 그의 용기가 궁금했다. 스페셜 인터뷰는 지난 10일 서울 청담동 위워크 디자이너클럽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최란은 "가수 도전은 안주가 아닌 또다른 삶을 개척하기 위한 새로운 터닝 포인트"라고 말했다. 스페셜인터뷰는 지난 10일 서울 청담동 위워크 디자이너클럽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이동률 기자 |
-우선 성공적인 가수 데뷔를 축하한다. 트로트 가수 '홍춘이'란 캐릭터가 왠지 정겹다는 느낌이다. 이유가 있나?
네 고마워요. 가수 데뷔 축하보다 강 기자님 스페셜 인터뷰에 초대받은 것만으로 만족해요. 다시 주목을 받는 느낌이거든요. 홍춘이 캐릭터는 20년 전 사극 '허준'에 등장했던 인물이에요. 당시 임현식 선배가 '홍춘이'를 부르며 저를 졸졸 따라다니는 바람에 유명해진 역할이었죠.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시청자들한테는 남녀 주인공들보다 깊게 각인돼 익숙한 이름으로 남아있는 것같아요. 실제로 가족들이나 주변 지인들은 한동안 저를 '홍춘이'로 부르기도 했거든요.
'홍춘이'는 지난 2000년 MBC에서 방영됐던 드라마 '허준'에서 최란이 맡았던 배역 이름이다. 최란은 '홍춘이'라는 예명으로 지난 7월 첫 트로트곡 '그럴 줄 알았지'를 발표했다. 남편인 전 농구선수 이충희가 작명했다. 이 전 감독은 최근 KBS1 '아침마당'에 출연해 "감독 생활할 때 어디 가면 최란 남편보다 홍춘이 남편으로 불릴 때가 많았다"며 "오히려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이름인 것 같아 홍춘이를 예명으로 추천했다"고 털어놨다.
-최근 방송 출연이 부쩍 늘었다고 들었다. 보기에도 매우 활력이 넘쳐보이는데 가수로 데뷔한 뒤 어떤 변화가 생겼나?
이제 며칠 남지 않은 올해가 경자년 쥐해였잖아요. 제가 바로 60년 만에 맞는다는 그 백쥐띠예요. 신기하게도 저는 올해 모든 게 술술 풀렸어요. 배우로 자존심을 지키며 40년을 보냈어도 여전히 캐스팅이 모든 걸 좌지우지 해요. 더 이상 감나무에서 감 떨어지기를 마냥 기다리는 게 싫어 음반을 냈는데 그게 '신의 한 수'가 됐어요. 이미 노래 잘 하는 가수들과 경쟁하려는 게 아니라 코로나로 힘든 시기를 함께 극복하자는 저의 의지가 시청자들한테 어필되는 것 같아요.
요즘 그는 TV 건강프로그램과 아침교양 토크 등에 단골 패널로 출연하고 있다. 최란은 "주부들이 관심있게 시청하는 프로그램은 방송사별로 거의 한 바퀴 돌았다"면서 "워낙 많이 출연해 노래가 소개된 덕분인지 길거리에서 만나면 '그럴 줄 알았지'를 먼저 언급할 정도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찬원 영탁 등 '미스터 트롯' 출신 트롯맨들의 인생역전에 누구보다 큰 박수를 보냈다"면서 "생각해 보면 그들의 활약상을 보면서 가수로 데뷔할 용기를 냈다"고 털어놨다.
-스포츠 스타 중에서도 농구선수와 커플로 탄생한 연예계 첫 번째 주인공 아닌가? 잉꼬부부로 소문이 나있는데 비결이 뭔가?
남편한테는 늘 고마운 마음이죠. 흔한 스캔들 한 번 없는 모범 가장이었으니까요. 몇 십년 살다 보면 부부끼리는 이심전심 다 안다고 하잖아요. 서로에게 갖는 신뢰와 존경은 하루아침에 생기는 게 아니니까요. 물론 30~40대만 해도 서로 각자의 일이 바빠서 한 눈 팔 시간도 없긴 했죠. 환갑을 넘은 요즘에는 남편이 애정어린 장난도 많이 해요. 젊은시절엔 쑥쓰러워서 오히려 애정표현을 잘 하지 않았거든요. 직접 얘길 하려니 쑥쓰럽긴 한데 콘크리트 부부금실은 갈수록 단단히 굳고 있어요.
두 사람은 84년에 결혼식을 올렸다. '연애 기간을 건너뛰고 바로 결혼하자'며 프러포즈할 만큼 남편 이충희가 적극적으로 매달렸다고 한다. 최란은 "처음엔 남편이 전혀 남자로 보이지 않았다"면서 "오죽하면 제 가장 친한 친구까지 소개해줬겠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이충희의 불도저식 구애를 뿌리치지 못했고 결국 부부 인연으로 이어졌다. 현역 시절 이충희는 대한민국 농구 국가대표를 지냈고, KBL 프로농구 감독을 거쳐 체육교육학 교수로도 활동했다.
-내년에 새로 선보일 2집에는 남편 이충희를 위한 헌정곡이 담겼다고 들었다. 어떤 곡인지 살짝 귀띔해줄 수 있나?
아내가 남편 기를 살리고 위로하는 곡인데 일종의 사부곡(思夫曲)이라고 보시면 될 것같아요. 대한민국 남자들이 집집마다 나이들어가면서 너무 기죽어 사는 게 안타까워요. 가족을 위해 평생을 소처럼 일하고도 은퇴하면 대접받기는커녕 찬밥신세로 전락하잖아요. 현역시절에도 남자들은 바쁜 일상에 쫓겨 치열하게 사는데 이름난 맛집이나 골프장엘 가면 모두 여자들이에요. 노래는 이런 세태와 현실을 꼬집으면서 남자들을 위로하는 내용이고, 가사는 제가 직접 쓰려고 해요.
최란은 농구스타 이충희 선수와 결혼한 이후 36년째 스포츠 연예계를 대표하는 잉꼬부부로 꼽힌다. 그는 "현역시절에는 물론이고 요즘에도 남편 기를 살려주기 위해 일주일에 두 번 이상은 20첩 반상을 차린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과거 인기 있고 돈 잘 벌 때보다 더 정성을 담는다"고 했다. 실제 그의 맛깔스런 손맛은 연예계에서도 소문났을 정도다. 그는 요리솜씨가 좋은 친정 어머니 어깨너머로 배운 실력이라고 한다.
최란은 농구스타 이충희 선수와 결혼한 이후 36년째 스포츠 연예계를 대표하는 잉꼬부부로 꼽힌다. 내년 상반기 중 남편 기를 살리는 신곡(사부곡)을 선보일 예정이다. /최란 이충희 부부 제공 |
-드라마는 가장 최근작이 4년 전 KBS2 일일극 '여자의 비밀'이다. 당시 박복자 역을 연기해 주목을 끌었는데 연기공백이 길어 아쉽다.
연기는 오래 할수록 깊이가 달라진다는 게 저의 연기관이에요. 장맛처럼 연륜이 묻어는거죠. 청춘스타들이 드라마 주인공을 맡는 건 연기보다 대중적 인기 때문인데요. 요즘 드라마 제작 추세는 지나치게 스타 중심으로 흘러갑니다. 소위 스타급 젊은 남녀주인공들도 경험많은 연기파 배우들이 뒤를 받쳐주지 않으면 빛이 바랠 수밖에 없어요. 배우란 직업은 나이에 제한이 없지만, 시대적 흐름이나 트렌드에 따라 부침이 심해요. 중견배우들의 설 자리가 갈수록 줄어드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그는 데뷔 직후 출연한 KBS 일일연속극 '달동네'(1980년)를 시작으로 '사랑이 꽃피는 나무' '파천무' '사랑이 꽃피는 계절' '목소리를 낮춰요' '종합병원' '사랑과 이별' '허준' '상도' '쾌걸 춘향' '슬픔이여 안녕' '101번째 프러포즈' '쾌도 홍길동' '동이' '여자를 몰라' '영광의 재인' 등 200여편의 드라마에 출연했다. 푼수 이미지와 억척아줌마에서 카리스마 눈빛 연기까지 등장하는 역할마다 주연보다 빛나는 감초 캐릭터로 정평이 나 있다.
-연예계에선 재테크 여왕으로도 알려져 있지 않나. 배우로서 자존감을 잃지 않고 선택적 활동을 할 수 있는 건 탄탄한 경제적 기반 때문인가.
꼭 그렇지만은 않지만 이 부분은 늘 감사한 마음이죠. 연예인은 수입이 일정치 않잖아요. 경험을 해보니 많이 버는 것보다 적은 돈이라도 이를 얼마나 관리를 잘 하느냐에 엄청난 차이가 있더라고요. 연예인이나 운동선수가 겉은 화려해 보여도 일이 없을 땐 늘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있거든요. 평소 성실하게 저축하는 습관을 갖지 않으면 언제든 경제적 어려움에 빠져들 가능성이 큽니다. 그 점에서 보면 우리 부부는 처음부터 여유롭지 못한 게 저절로 '저축 마인드'를 갖게 된 셈이에요.
최란 이충희 부부는 결혼 당시 전세금 270만원으로 출발해 200억원 대 규모의 강남 빌딩주가 됐다. 비결은 규모있는 저축과 소비 패턴이었다. 작품 출연료 등으로 받은 돈을 최대한 쓰지 않고 저축을 했다. 그는 "어느 순간 집안에 굴러다니는 적금 통장만도 100개가 넘더라"고 했다. 운도 따랐다. 2000년대 초반 부부가 함께할 수 있는 운동을 찾다 골프 회원권을 사들였는데 가격이 껑충껑충 뛰었다. 회원권을 처분한 수익금이 재테크의 종자돈이 됐다.
나눔 아이콘. 최란은 남모르게 소외 어린이들을 위한 봉사와 기부, 건강한 결혼문화에 꾸준히 앞장서왔다. 사진 위는 스토리온 결혼 체험 리얼리티 '세기의 커플' 출연 당시. /더팩트 DB |
최란은 연예계가 인정하는 통 큰 배우다. 무엇보다 남자처럼 호탕하고 시원시원하다. 물론 요리와 패션 등 천성적으로 간직한 섬세한 여성스러움도 넘친다. 연예계 안팎을 폭넓게 넘나드는 마당발 친화력은 이런 성격과 스타일을 살린 그의 또다른 매력이기도 하다.
"똑 부러지는 성격이긴 한데 그렇다고 완벽한 걸 추구하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두루뭉술 넘어가는 부분도 많아요. 안 그러면 가수 데뷔도 하지 못했겠죠. 좀 부족하더라도 열심히 노력하면 언젠가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는 나눔 아이콘이기도 하다. 남모르게 소외 어린이들을 위한 봉사와 기부, 건강한 결혼문화에 꾸준히 앞장서왔다. 그는 "이웃과 나누다 보면 오히려 내가 얻는 게 더 많다"면서 "작은 나눔이라도 서로 존중하고 격려해주는 문화가 우리 사회를 더 따뜻하게 감싸줄 것"이라고 말했다.
가수 데뷔 후 자신감 탓일까. 최란은 이전의 모습보다 한층 더 밝고 유쾌해 보였다. 그는 "이게 다 이찬원 영탁 등 트롯맨들로부터 힐링받은 덕분"이라면 웃었다. 10여년 만에 스페셜 인터뷰이로 다시 만난 그는 더 겸손해진 '연예계 선한 영향력' 이미지를 보이며 주위를 따뜻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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