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일홍의 스페셜인터뷰117-김민희] '똑순이'로 산 40년 '아역 인생'
입력: 2020.11.30 05:45 / 수정: 2020.11.30 06:40
똑순이란 아역 시절 이름으로 각인된 김민희는 40년간 돌고 돌아 본래 김민희로 돌아왔다며 활짝 웃었다. 트로트 가수로 변신한 그는 곧 정통 트롯 천생연분으로 활동한다. /임영무 기자
'똑순이'란 아역 시절 이름으로 각인된 김민희는 "40년간 돌고 돌아 본래 김민희로 돌아왔다"며 활짝 웃었다. 트로트 가수로 변신한 그는 곧 정통 트롯 '천생연분'으로 활동한다. /임영무 기자

'똑순이→염홍→김민희', 똑순이 그림자 벗고 가수 데뷔

[더팩트|강일홍 기자] 배우 김민희(48)는 '똑순이'란 이름으로 더 유명한 연기자다. 동명 배우가 영화감독 홍상수의 연인으로 검색어에 오르내리면서부터는 자연스레 아역 시절 그의 닉네임이 소환돼 가르마를 타주는 지렛대가 됐다.

김민희는 6살 때인 1978년 MBC 드라마 '봄비'로 데뷔했다. 그리고 1980년 KBS 드라마 '달동네'에서 '똑순이'로 출연하면서 국민 아역스타가 됐다. 강부자 노주현 장미희 차화연 김형자 등이 출연한 당대 최고 인기드라마였다.

그의 원래 이름은 김윤경이다. 하필 유명 중견탤런트 김윤경과 이름이 같아 '김민희'란 예명으로 활동했다. '똑순이'의 유명세와 함께 아예 법적 개명을 거쳐 본명으로 굳었다. 연예계에서는 이미 알려진 이름을 피하는 경우가 많다.

가수 데뷔 직후 '염홍'이란 이름으로 잠시 활동한 적이 있다. 염홍은 그의 노래 '낯선 여자'를 작사 작곡하고 프로듀싱한 가수 최백호가 지어준 이름이다. 하지만 그는 최근에 다시 본명 김민희로 활동을 재개했다.

"가수는 노래도 중요하지만 이름에서 풍기는 이미지가 매우 중요해요. 작년에 '전국노래자랑'에 초대가수 염홍이란 이름으로 출연했는데 낯설어 하시더라고요. 대번에 '똑순이' 김민희를 알아보신 거죠. 역시 김민희만큼 좋은 이름은 없는 것 같아요."

김민희의 아역 시절은 스스로에게도 희미한 기억 저편에 있다. 그는 "정작 저는 강부자 선생님 품에서 꾸벅꾸벅 졸던 기억밖에 없는데 '똑순이'란 이름으로 40여년의 긴 시간을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과거와 현재를 직접 들어봤다. 스페셜 인터뷰는 지난 27일 서울 상암동 <더팩트> 사옥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6살 때 엄마 손을 잡고 아역배우를 시작한 김민희는 안타깝게도 별로 생각나는 게 없다고 했다. 스페셜 인터뷰는 지난 27일 서울 상암동 더팩트 사옥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임영무 기자
6살 때 엄마 손을 잡고 아역배우를 시작한 김민희는 "안타깝게도 별로 생각나는 게 없다"고 했다. 스페셜 인터뷰는 지난 27일 서울 상암동 더팩트 사옥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임영무 기자

-지금도 많은 분들이 기억할 만큼 아역 시절은 강렬했다. 그만큼 유명세를 많이 탔다는 얘긴데 혹시 당시 모습이 기억나는 게 있나?

6살 때 데뷔해 엄마 손을 잡고 방송사를 다녔을 텐데 안타깝게도 별로 생각나는 게 없어요. 기억나는 대사는커녕 어떤 분들과 함께 연기했는지도 모르겠어요. 요즘 유튜브를 통해 그 시절을 다시 보면 신기하기만 하죠. 초등학교 2학년 때 '달동네'에 출연했을 때는 강부자 선생님이나 추성웅 아저씨(85년 작고)가 귀엽다며 안아주던 기억은 있어요. 또래 아이들이 같이 놀아주지 않아 속상해서 울던 일도 있고요.

김민희는 1980년 KBS '달동네'(81년까지 1년간 방영)에 출연하면서 당차고 똘똘한 '똑순이' 캐릭터로 전국민적 사랑받았다.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이었다. 앞서 6살 때인 78년 MBC 드라마 '봄비'에서는 고 김자옥의 딸로 등장했다. 당시 꼬마 김민희의 아역 연기는 정평이 나 청사초롱'(MBC)에선 배우 박원숙의 딸로, '오똑이 분대'(MBC 어린이 드라마)에서는 부모없는 여덟 남매(김영애 이계인 박종범 손창민 박성미 윤유선 황치훈 김민희) 막내를 연기했다.

-똑순이란 이름으로 큰 인기를 누렸어도 워낙 어린 시절이라 실감이 나지 않았을 것 같은데 당시 활동에 대해 아쉬움은 없나.

왜 없겠어요. 아쉬운 게 너무 많아요. 골목에서 또래 친구들과 뛰어놀아보지를 못했어요. 어린 시절 누구나 누리는 행복을 저만 못 누려본 거죠. 친구들이 술래잡기 같은 걸 하면서 끼워주지를 않았거든요. 아마도 TV에 나오는 딴 세상 아이로 저를 멀리했을 거같아요. 어른들의 기준으로 보면 유명했는지 몰라도 저한테는 맘껏 뛰놀지 못한 게 더 불만이었던 것 같아요. 드라마 녹화 시간이 밤까지 이어질 때면 잠을 못 자서 힘들어했던 기억이 지금도 띄엄띄엄 나거든요.

김민희는 "워낙 어린 나이에 방송사를 오가다 보니 매니저 역할을 한 엄마의 컨트롤이 전부인 줄만 알고 살았다"고 했다. 중고시절 흔한 소풍이나 수학여행도 못 가봤다고 했다. 엄마가 항상 껌딱지처럼 붙어다녀 사춘기 시절엔 물론이고 대학에 진학해서도 이성 친구와 한번도 썸을 타보지 못했다. 그는 "엄마의 깊은 사랑이 저한테는 오히려 되돌릴 수 없는 아쉬움으로 남았다"면서 "그걸 거울삼아 저는 제 딸한테만큼은 완벽한 자율성을 보장한다"고 털어놨다.

시행착오 겪으며 예행연습 충분히 했어요. 김민희는 감성 발라드 곡인 낯선 여자를 잠시 접고, 조만간 빠른 EDM을 장착한 네오 트롯 천생연분을 발표할 예정이다. /임영무 기자
"시행착오 겪으며 예행연습 충분히 했어요." 김민희는 감성 발라드 곡인 '낯선 여자'를 잠시 접고, 조만간 빠른 EDM을 장착한 네오 트롯 '천생연분'을 발표할 예정이다. /임영무 기자

-아역 시절 인기 프리미엄에 비하면 꽤 오랜 기간 브라운관에서 모습을 볼 수 없었는데 어떤 이유라도 있었나?

연기 활동은 중학교 때 '사랑이 꽃피는 나무'에 출연한 게 마지막이었어요. 대학 진학을 위해 활동을 중단했죠. 원래 계획은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동국대 연영과)에 들어가면 다시 연기를 하려고 했는데 현실은 달랐어요. 과선배들이 연예인이 돼 들어온 후배라며 청소 같은 허드렛일을 더 혹독하게 시키더라고요. '가족오락관' 같은 몇몇 예능에 출연한 뒤론 아예 눈밖에 벗어나서 방송출연을 못했어요. 그런데 공교롭게도 대학 졸업 후엔 곧 결혼까지 하게되면서 공백이 길어질 수밖에 없었죠.

아역 배우의 역할은 중요하다. 주인공이라도 꼭 필요한 윤활유로 활약하는 경우가 많다. '똑순이'처럼 아예 '드라마의 감초'로 주목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성인연기자로 연착륙 하는 것은 쉽지 않다. 성인으로 진입하기까지 10여년 이상 탄탄한 연기력을 갖추게되는 과정에서 아역 때 심어진 이미지를 벗기 쉽지 않아서다. 이 때문에 아역 스타들은 사춘기 시절 아예 활동을 접고 학교 생활에만 매진하는 전략적 공백기를 갖기도 한다.

-드라마는 3년 전 SBS '사임당, 빛의 일기'에 출연한 게 마지막이다. 돋보일 만큼 이슈의 중심에 서진 않아도 꾸준히 연기활동을 해온 것으로 안다.

기자님이 더 잘 아시는 것처럼 배우의 존재는 카메라 앵글을 떼어놓고 얘기할 수 없어요. 그만큼 작품활동이 중요하죠. 늘 준비된 마음가짐과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만 선택을 저울질하다 잠깐 타이밍을 놓치면 인터벌이 길어지는 것 같아요. 결혼을 일찍하면서 성인 배우로 거듭날 기회를 놓친 게 아쉽지만 후회한 적은 없어요. 대신 복귀 이후론 공백 없이 지속적으로 작품활동을 하고 있고,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에 만족하는 편이에요.

김민희는 25살 때인 97년 결혼했다. 대학 졸업 후 연기자로 복귀할 기회를 갖지 못한 상태에서 결혼을 하고 3년 뒤인 2000년 출산과 함께 한동안 육아에만 전념했다. 2004년 MBC '대장금'으로 복귀한 뒤 KBS2 '두번째 프로포즈'와 '인생이여 고마워요'(배우 김윤석의 TV 데뷔작), SBS '애자언니 민자'(차화연 복귀작) 등에 연달아 출연했다. 그는 "의도적으로 강한 캐릭터를 만들고 싶은 욕심보다는 물흐르듯 조용한 연기를 하는 게 바로 제 색깔"이라고 말했다.

김민희는 트로트 가수 변신 후 올해 MBN 보이스트롯에 출전했다. 그는 부족한 게 많다는 걸 깨달은 게 큰 수확이었다고 털어놨다. 사진 위는 2015년 드라마 마녀의 성 출연 당시 동료들과. /김민희 제공
김민희는 트로트 가수 변신 후 올해 MBN '보이스트롯'에 출전했다. 그는 "부족한 게 많다는 걸 깨달은 게 큰 수확이었다"고 털어놨다. 사진 위는 2015년 드라마 '마녀의 성' 출연 당시 동료들과. /김민희 제공

-2018년 '낯선 여자'란 곡을 들고 트로트 가수 '염홍'으로 데뷔했다. 최근 다시 본명 김민희로 되돌아간다고 밝혔는데 무슨 사연이라도 있나.

말씀하신 '염홍'은 한자로 고울 염(艶)에 붉을 홍(紅)이에요. 예쁘게 빛나라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최백호 선배가 직접 작사 작곡한 감성 발라드 스타일의 '낯선 여자'를 데뷔곡으로 주면서 이름까지 지어준 건데요. 이름에 담긴 뜻은 너무 예쁘고 좋은데 그동안 느낌이 올드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이미지가 어울리지 않다는 거죠. 다시 제 본명으로 활동하면서 곡 분위기도 기존 애잔한 멜로디 대신 빠르고 신나는 리듬으로 180도 확 바꿀 계획이에요.

김민희가 가수로 데뷔하게 된 건 최백호와의 인연이 계기가 됐다. 그는 "12년 전에 라디오를 같이 진행하며 친분이 있었다"면서 "당시 '선생님 저 노래하면 웃기겠죠'라며 툭 한번 던진 말이 훗날 '(제가) 안 웃기게 하면 되죠'로 되돌아왔다"고 했다. 최백호 작사 작곡의 '낯선 여자'는 사랑하는 사람과 이루어 질 수 없는 가슴 시린 노래다. 김민희는 감성 발라드 곡인 이 노래를 잠시 접고, 조만간 빠른 EDM을 장착한 네오 트롯 '천생연분'을 발표할 예정이다.

-아역시절부터 '바늘과 실'처럼 지낸 어머니와는 요즘 '딸 같은 엄마' 의 느낌으로 바뀌었다는데 어떤 의미인가?

엄마가 저밖에 모르고 살았듯이 뒤집으면 저 역시 마찬가지예요. 엄마라는 울타리가 전부였으니까요. 아주 어려서부터 아빠의 부재가 만든 영향일 수도 있어요. 저도 이젠 스물한 살 된 대학생 딸(서지우)을 둔 중년이 됐지만, 엄마의 존재는 지금도 저한테 하늘처럼 커요. 다만 세월이 흘러 케어하고 돌봐주는 역할이 바뀐 것 뿐이에요. 일로 바쁘고 힘들어도 필요할 땐 꼭 챙겨드려야 마음이 놓여요. 맛있는 음식이나 예쁜 옷이 있으면 저는 엄마부터 먼저 생각나는데, 딸도 이런 제 마음을 이해를 할거라 믿어요.

배우의 존재는 카메라 앵글을 떼어놓고 얘기할 수 없잖아요. 김민희는 결혼을 일찍하면서 성인배우로 거듭날 기회를 놓친 게 아쉽지만 후회하진 않는다고 했다. /임영무 기자
"배우의 존재는 카메라 앵글을 떼어놓고 얘기할 수 없잖아요." 김민희는 "결혼을 일찍하면서 성인배우로 거듭날 기회를 놓친 게 아쉽지만 후회하진 않는다"고 했다. /임영무 기자

-마지막으로 평소 스타일과 성격이 궁금하다. 또 쉰 살이 가까운 나이에도 여전히 동안을 자랑하는 비결이 있나?

성격이 워낙 복합적이라 딱 잘라 설명하기가 어려워요. 제 주변에 누가 있느냐에 따라 다르거든요. 성격은 밝고 유쾌한데 추구하는 스타일은 차분하고 조용한 걸 더 좋아해요. 그러다 보니 깊은 사색에 빠져들 만큼은 아니라도 감정기복이 좀 있는 편이에요. 듣는 노래도 조용하고 애잔한 느낌이 드는 곡이 좋더라고요. 동안 비결이요? 체구가 아담한 데다 피부가 아직은 깨끗한 편이라 그렇게 보일 뿐이죠. 열심히 걷고 움직이는 거 외엔 따로 관리하는 운동은 없어요.

김민희는 운동도 가벼운 스트레칭 같은 정적인 걸 좋아한다. 주로 집안에 머무는 시간이 많기 때문이다. 골프나 등산도 그에겐 남의 일이다. 유일한 야외 활동은 한강변 걷기다. 그는 "집이 동부이촌동이어서 바로 앞에 있는 한강 둔치에 나가 운동도 하고 기분전환을 한다"면서 "도보 20분 거리에 가까이 거주하시는 엄마를 보러 운동삼아 한강변을 따라 항상 걸어서 다녀온다"고 말했다.

김민희(오른쪽 아래)는 79년 MBC 드라마 오똑이 분대에서 부모없는 여덟 남매 중 막내 김금지로 출연해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드라마 방영 당시 경향신문에 신린 광고. /온라인 커뮤니티 캡쳐
김민희(오른쪽 아래)는 79년 MBC 드라마 '오똑이 분대'에서 부모없는 여덟 남매 중 막내 김금지로 출연해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드라마 방영 당시 경향신문에 신린 광고. /온라인 커뮤니티 캡쳐

중장년 시청자들에게는 70∼80년대 인기 드라마 속 '똑순이' 캐릭터가 지금도 생생하다. 당시 어머니들은 자녀들에게 "너도 똑순이만큼만 돼라"는 주문을 했을 정도다. 그런 인기를 누린 주인공이었지만 어른이 되면서 숱한 좌절을 겪어야 했다.

무엇보다 '아역 배우는 성인 배우로 성공하기 힘들다'는 징크스를 피하지 못했다. 똑순이라는 이미지가 너무 강했기 때문이다. 작은 키도 콤플렉스였다. 80년대 인기 드라마 '사랑이 꽃피는 나무'는 스타 등용문이었지만 같은 아역 출신이라도 이미연 최수지 이상아 등과 달리 그는 예외였다.

"긴 공백을 끝내고 '대장금' 출연 제의가 들어왔는데 자신이 없어 처음엔 많이 망설였어요. 사극을 하려면 고무신을 신어야 하잖아요. 근데 막상 촬영장에 가보니 문제는 키가 아니라 연기력이더라고요. 솔직히 말하면 배우생활 40년이 넘은 요즘에도 연기는 어려워요."

그는 가수 데뷔와 관련해서도 속내를 털어놨다. 김민희는 "올해 트롯 오디션프로그램(MBN '보이스트롯')에 출전하면서 난생처음 보컬트레이닝이란 걸 받아봤다"면서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채 프로 가수로 데뷔한 게 부끄러웠다"고 말했다.

김민희는 여전히 소녀 같은 맑고 순수한 감성으로 자신의 지난 시간들을 되짚었다. "제가 걸어온 길을 후회하지 않아요. 이제라도 부족한 걸 알았으니 만회할 기회는 많아요. 판을 뒤집을 시기가 임박했어요." 필자가 인터뷰를 하면서 느낀 그는 하나부터 열까지 때 묻지 않은 '솔직함', 그 자체였다.

eel@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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