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김혜수'] 충무로 여제가 견뎌낸 '삶의 무게'
입력: 2020.11.10 05:00 / 수정: 2020.11.10 05:00
김혜수가 영화 내가 죽던 날로 돌아온다. 벼랑 끝에 선 현수 캐릭터에 동질감을 느끼고 그는 진심을 다해 연기했다. /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강영호 작가 제공
김혜수가 영화 '내가 죽던 날'로 돌아온다. 벼랑 끝에 선 현수 캐릭터에 동질감을 느끼고 그는 진심을 다해 연기했다. /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강영호 작가 제공

정제되지 않은 스타는 어떤 모습일까. 요즘 연예계는 스타도 많고, 연예 매체도 많다. 모처럼 연예인 인터뷰가 잡혀도 단독으로 하는 경우도 드물다. 다수의 매체 기자가 함께 인터뷰를 하다 보니 대부분의 내용이 비슷하다. 심지어 사진이나 영상도 소속사에서 미리 만들어 배포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더팩트>는 순수하게 기자의 눈에 비친 그대로의 스타를 '내가 본 OOO' 포맷에 담아 사실 그대로 전달한다. <편집자 주>

"'내가 죽던 날', 운명처럼 다가온 영화죠"

[더팩트 | 유지훈 기자] 언제부터 그를 기억하게 됐는지 모르겠다. 내게 그는 처음부터 배우였고 지금도 그렇다. 다만 예전과는 조금 다른 게 있다면 오랜 경력의 배우라는 사실을 넘어 어떤 상징성을 지니게 됐다는 것이다. 대중의 마음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김혜수는 이제 '충무로를 대표'하는 얼굴이다.

김혜수는 오는 12일 영화 '내가 죽던 날'(감독 박지완)로 스크린에 돌아온다. 개봉에 앞서 그는 라운드 인터뷰를 통해 취재진을 만났다. 조금이라도 이야기를 더 나눠보고 싶은 마음에 인원이 비교적 적은 5일 오후 3시 타임을 신청했다. 하지만 그 시간대도 아홉 명이나 되는 취재진이 몰렸다. 후드티에 모자를 눌러 쓴 수수한 차림의 그가 "안녕하세요. 와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건넸다. 김혜수 특유의 기분 좋은 음성의 울림이 귓가를 맴돌았다.

"제안된 작품들을 검토하고 있었어요. 쌓인 시나리오들 가장 위에 '내가 죽던 날'이 있었어요. 제목부터 확 와 닿았어요. 제 개인적으로도 필요한 이야기였어요. 살다 보면 누구나 원치 않은 힘든 상황을 겪게 되잖아요. 시나리오에서 따뜻하고 우직한 위로를 느꼈어요. 작품을 통해 위로를 받는 게 처음 있는 일은 아니지만 이번엔 엄청 크게 다가왔어요."

내가 죽던 날은 유서 한 장만 남긴 채 절벽 끝으로 사라진 소녀, 삶의 벼랑 끝에서 사건을 추적하는 형사, 그들에게 손을 내민 무언의 목격자의 이야기를 담는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내가 죽던 날'은 유서 한 장만 남긴 채 절벽 끝으로 사라진 소녀, 삶의 벼랑 끝에서 사건을 추적하는 형사, 그들에게 손을 내민 무언의 목격자의 이야기를 담는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김혜수가 맡은 현수는 삶의 벼랑 끝에 내몰린 인물이다. 직장 동료들은 후배와 불륜을 저질렀다며 손가락질하고 남편은 이를 빌미로 이혼소송까지 제기했다. 괴로운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매진했던 경찰로서의 커리어는 출동 도중 일으킨 교통사고로 멈췄다. 김혜수는 위태롭게 서 있는 현수의 모습에서 자신을 마주했다. 그리고 이 영화를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크고 작은 일이 있었죠. 현실적인 문제들은 해결했지만 감정적인 부분들은 이겨내려고 하지 않았어요. 그 또한 지나가니까요. 마음이 아픈 건 그냥 그럴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고 받아들였어요. 많은 사람이 저처럼 감당하려고 할 거예요. 상처나 절망의 경험이 완전히 회복된다면 세상은 정말 아름답겠죠.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두루뭉술한 이야기다. 하지만 그에게 애정을 품고 있는 사람이라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김혜수는 과거 모친이 지인들에게 13억에 달하는 거액을 빌리고 갚지 않은 일로 지난해 '빚투' 논란에 휘말렸다. 차근차근 상황을 정리해 큰 파장이 없었을 뿐 홀로 무너지고 일어나길 반복하며 슬픔을 이겨냈다. 그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회피하고 싶었을 법도 하지만 그는 담담하게 털어놓았다.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쉴 틈 없이 활동하며 다진 내실이자 구력이다.

영화의 주인공 현수는 자신이 죽은 모습을 마주하는 꿈을 꾼다. 그 꿈은 실제 김혜수가 시달려왔던 악몽이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영화의 주인공 현수는 자신이 죽은 모습을 마주하는 꿈을 꾼다. 그 꿈은 실제 김혜수가 시달려왔던 악몽이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현수는 수면장애를 겪고 있는 캐릭터에요. 약에 취해 잠을 청하지만 자신이 죽어있는 모습을 보는 악몽을 꾸죠. 사실 그건 예전 제 이야기에요. 저도 현수도 의도치 않은 일로 자신의 인생이 뚝 하고 부러진 것 같은 시기가 있었어요. 하지만 그게 과거가 됐고 다시 용기를 가지게 됐어요. 이제는 악몽에 시달리지 않아요."

인터뷰 내내 김혜수의 노련함이 돋보였다. 아픈 속내를 꺼내면서도 그는 감정에 함몰되지 않았다. 그저 담담하게 과거의 일들을 짚고 현재를 설명하며 '내가 죽던 날' 속 현수로, 그리고 배우 김혜수로 물 흐르듯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저도 사실 평범한 사람이에요. 코로나 때문에 외출이 어려우니까 한 달 넘게 집에 있다 살찌고 (웃음) 똑같아요. 많이 심심했어요. 그래도 무언가를 해야 하지 않나 싶어서 태어나서 운동을 처음 해봤어요. 재미있진 않더라고요. 체력이 나쁜 건 아니지만 이럴 때 더 좋은 컨디션으로 만들어두는 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김혜수는 그냥 눈앞에 있는 것만을 잘하자는 마음으로 34년이라는 긴 시간을 보내왔고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라고 했다. /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강영호 작가 제공
김혜수는 "그냥 눈앞에 있는 것만을 잘하자"는 마음으로 34년이라는 긴 시간을 보내왔고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라고 했다. /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강영호 작가 제공

"다들 제 위치나 커리어를 이야기하시는 데 저는 잘 모르겠어요. 거대한 꿈은 없고 특별한 목표도 없어요. 어쩌다 성장했고 그래서 여기까지 온 거 같아요. 연기는 제 직업이니까 이번 '내가 죽던 날'로 많은 분이 위로를 받으셨으면 좋겠어요. 그런 마음으로 촬영한 영화입니다."

때로는 작품이 빛을 발하지 못했을지라도 김혜수는 배우로서 연기로 늘 좋은 성적을 받아왔다. "그냥 눈앞에 있는 것만을 잘하자"는 마음으로 34년이라는 긴 시간을 보내왔고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라고 했다. 다소 무거운 이야기가 오간 인터뷰였지만 그는 취재진을 배웅하며 활짝 미소 지었다. "감사합니다. 건강 꼭 챙기세요"라는 마지막 인사가 그 어떤 인터뷰에서보다 진심처럼 다가왔다.

한편, '내가 죽던 날'은 유서 한 장만 남긴 채 절벽 끝으로 사라진 소녀 세진(노정의 분), 삶의 벼랑 끝에서 사건을 추적하는 형사 현수, 그들에게 손을 내민 무언의 목격자 순천댁(이정은 분)의 이야기를 담는다.

tissue_hoon@tf.co.kr
[연예기획팀 | ssent@tf.co.kr]

발로 뛰는 <더팩트>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카카오톡: '더팩트제보' 검색
▶이메일: jebo@tf.co.kr
▶뉴스 홈페이지: http://talk.tf.co.kr/bbs/report/write
- 네이버 메인 더팩트 구독하고 [특종보자▶]
- 그곳이 알고싶냐? [영상보기▶]
AD
인기기사
실시간 TOP10
정치
경제
사회
연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