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고아성'] 스크린서 나온 '삼토반' 우등 수료생
입력: 2020.10.23 05:00 / 수정: 2020.10.23 05:00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개봉을 앞둔 고아성을 만났다. 마이크를 잡고 건넨 첫 마디가 농담아리니 통통 튀는 매력이 스크린을 뚫고 현실로 나왔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개봉을 앞둔 고아성을 만났다. 마이크를 잡고 건넨 첫 마디가 농담아리니 통통 튀는 매력이 스크린을 뚫고 현실로 나왔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정제되지 않은 스타는 어떤 모습일까. 요즘 연예계는 스타도 많고, 연예 매체도 많다. 모처럼 연예인 인터뷰가 잡혀도 단독으로 하는 경우도 드물다. 다수의 매체 기자가 함께 인터뷰를 하다 보니 대부분의 내용이 비슷하다. 심지어 사진이나 영상도 소속사에서 미리 만들어 배포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더팩트>는 순수하게 기자의 눈에 비친 그대로의 스타를 '내가 본 OOO' 포맷에 담아 사실 그대로 전달한다. <편집자 주>

"사회적인 영화 선호? 부정할 순 없죠"

[더팩트 | 유지훈 기자] 서울 올림픽 준비에 부산스러운 1988년, 설움 가득한 1919년 일제 강점기에 이어 이번에는 1990년대다. 그를 둘러싼 시대 배경도 맡은 캐릭터도 계속 변하는데 배우로서의 존재감은 그대로다. 그리고 이번에는 밝고 당찬 매력까지 더해졌다.

고아성은 지난 21일 개봉한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감독 이종필)을 통해 관객들을 만난다. OCN 드라마 '라이프 온 마스', 영화 '항거: 유관순 이야기'를 잇는 과거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 속 활약이다. 스크린에서 연기를 펼치기에 앞서 취재진을 마주한 그는 휴대용 마이크를 꺼내더니 이렇게 말했다.

"안녕하세요. 잘 들리세요? 하나 둘 셋. 하나 둘 셋. 제가 어제 '유희열의 스케치북' 촬영을 하고 왔거든요. 가창력을 좀 썼더니(웃음) 목이 많이 아파요."

진중하고 차분한 모습을 예상했지만 그는 이를 뒤엎었다. 작품을 통해 연기했던 이자영 캐릭터의 여운이 아직 가시지 않아서다. 그가 맡은 이자영은 상고 출신의 8년 차 사원으로 웬만한 보고서도 척척 쓸 만큼 실무 능력은 대졸 대리보다 나은 베테랑이다. 타고난 오지랖과 정의감으로 영화의 중심을 꽉 잡고 간다.

"저는 자영이와는 참 다른 사람이에요. 작품을 준비하며 의도적으로 외향성을 많이 끌어올렸어요. 말도 많이 하려고 노력했고요. 말 적은 사람이 그렇게 하는 게 정말 어렵더라고요. 촬영을 하며 많은 사람들이 '많이 외향적으로 변했다'고 말해줬어요. 이제는 억지로 끄집어내려고 하지 않아도 말이 나오는 것 같아요. 저도 주변 사람들도 모두 만족하고 있어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업무능력은 베테랑이지만 늘 말단인 세 친구 이자영(고아성 분) 정유나(이솜 분) 심보람(박혜수 분)이 힘을 합쳐 회사가 저지른 비리를 파헤치는 과정을 담는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업무능력은 베테랑이지만 늘 말단인 세 친구 이자영(고아성 분) 정유나(이솜 분) 심보람(박혜수 분)이 힘을 합쳐 회사가 저지른 비리를 파헤치는 과정을 담는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입사 8년 차 업무능력은 베테랑이지만 늘 말단인 세 친구 이자영 정유나(이솜 분) 심보람(박혜수 분)이 힘을 합쳐 회사가 저지른 비리를 파헤치는 과정을 담는다. 1995년 을지로를 배경으로 해 90년대의 향수를 스크린에 고스란히 옮겨냈다. 고아성은 시대극으로서의 현실감은 물론 낭만적인 분위기를 살려내기 위해 노력했다.

"90년대의 느낌을 내는 것만큼이나 어떤 부분은 빼는 것도 맞다고 생각했어요. 비주얼로 그 시대를 보여주는 건 다른 배우들이 더 잘해줄 것 같았어요. 자영이는 스토리를 끌고 가는 역할이니까 분위기 자체를 좀 더 살려보려고 했어요. 선한데 뻔하지 않고 매력적이라 계속 곁에 있고 싶은 캐릭터로 잡았어요."

고아성은 이번 작품을 통해 이솜 박혜수라는 든든한 동료가 생겼다. 함께 주연을 맡은 비슷한 또래의 배우다. 의기투합해 제작진에 합숙을 자처했고 촬영 기간 동안 동고동락했다. "일을 하지 않을 때 무엇을 가장 많이 하냐"는 질문에 한참을 고민하더니 "솜 언니를 만나는 것 같다"며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솜 언니는 저희한테 요리를 해줬고 큰언니처럼 많이 챙겨줬어요. 혜수는 막내인데 정신적 지주 같은 느낌이 있어요. 되게 단단한 친구랄까. 자기중심이 정확히 있는데 그렇게 또 겸손할 수가 없어요. 또래 배우들과 친근하게 지내며 작업했다는 사실이 두고두고 뿌듯할 것 같아요. 든든한 버팀목이 생겼어요."

고아성은 이솜 박혜수(왼쪽부터)와 영화의 주인공으로서 연기 호흡을 맞췄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고아성은 이솜 박혜수(왼쪽부터)와 영화의 주인공으로서 연기 호흡을 맞췄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을 향한 애정도 인터뷰 현장에 고스란히 전달됐다. 기억에 남는 순간들을 떠올리고 몇 마디를 꺼내더니 "그런데 이거 좀 길게 이야기해도 돼요?"라며 이야기를 쏟아냈다. 캐스팅 전 이종필 감독이 정성스레 써서 건넸던 편지, 이솜 박혜수와 함께 보냈던 즐거운 나날들, 묵음 처리가 될 줄 알고 했던 대사가 영화에 그대로 실렸던 일 등이 그의 맛깔스러운 표현과 함께 앞에 눈앞에 그려졌다.

"예전에는 캐릭터를 많이 봤어요. 이제는 시나리오에 초점을 두고 있어요. 밝은 톤의 작품을 원했고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이 왔어요. 제목부터 독특했고 명랑했죠. 제가 배우라는 게 행복하고 좋아요. 작품을 잘 이해해주고 알아주는 사람들을 보며 보람을 느껴요. 제가 중요하게 신경 쓴 부분을 알아주는 것도 그래요."

최연소 신인상이라는 타이틀과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다 문득 그의 영화 데뷔작 '괴물'이 떠올랐다. 2006년 당시 가족들 손에 이끌려 아무것도 모른 채 영화를 봤고 '한국에서 괴수 영화도 나오는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기억 저편에 치워둔 작품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많은 수많은 의미를 숨기고 있는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고아성의 필모그래피들도 모두 그런 식이었다. SBS '풍문으로 들었소'의 상류층 풍자, MBC '자체발광 오피스'의 청년실업, '설국열차'의 계급투쟁, '오피스'의 뜨거운 인간관계 등 모두 그저 재미있게 보고 나서 곱씹다 보면 숨겨 숨겨진 메시지가 비죽 튀어나온다. 그는 "의도했던 것은 아니"라고 답했다. 마치 진짜 하고 싶은 말을 끝까지 감추고 싶어 하는 영화 감독처럼.

고아성은 2021년 30대를 맞아 현대를 배경으로 하는 멜로 영화를 해보고 싶다고 밝혔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고아성은 2021년 30대를 맞아 "현대를 배경으로 하는 멜로 영화를 해보고 싶다"고 밝혔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돌이켜보니 부정할 수 없어요. 제가 사회적인 이야기에 끌리고 작가님 감독님들도 제게서 그걸 끌어내고 싶어하시는 것 같아요. 이번 영화도 마찬가지에요. 참 밝고 명랑한데 그게 전부는 아니더라고요. 사회적인 문제도 많이 있고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사람이 일하는 이유'를 짚어주더라고요. 거기에 반했어요."

고아성은 과거로 향해있는 배우로서의 시간을 다시 현재로 조금씩 돌려가고 있다. 앞으로 하고 싶은 작품으로 현대물로 꼽았다. 그리고 "내년에 제가 30대거든요. 진득한 멜로 한번 해보고 싶어요"라며 웃음과 함께 양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고개를 숙인 채 웃는 그 모습을 보니 배우 고아성이 아니라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의 생기 발랄한 이자영을 마주하는 기분이 들었다.

꿈꾸는 것은 현대 로맨스인데 그 예시가 90년대를 풍미한 할리우드 멜로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사랑한다면 이들처럼'이다. 쉽게 그려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고아성이라 믿음이 갔다. 늘 그의 선택에 실패는 없었으니까. 부디 유능한 감독이 이 인터뷰를 보고 시나리오 작업에 착수해 그의 선택을 받길 바라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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