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트로트 레전드급 가수들의 방송 출연료는 방송사들이 오디션프로그램에 아마추어 신인들을 견인하고 컨트롤할 마스터 역할로 '모셔가기' 경쟁을 벌이면서 최근 폭발적 주가 상승을 기록하고 있다./더팩트 DB |
'경쟁적 몸값 부풀리기' 불안, 미사리 카페 흥망성쇠 '재연?'
[더팩트|강일홍 기자] "미사리에 카페촌이 불야성을 이룬 적이 있었어요. 전성기엔 30개가 넘었는데 처음엔 가볍게 커피 한 잔 하면서 라이브로 유명 가수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는 게 매력이었죠. 입소문이 나고 호젓한 데이트 명소로 소문이 나면서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새로운 카페가 생길 때마다 가수들 몸값도 덩달아 치솟았어요. 경쟁적으로 인기가수를 무대에 세우려다 보니 출연 개런티를 올릴 수밖에 없었죠."(가요매니저 O씨)
미사리는 한때 '통기타와 낭만'의 상징이었다. 80년대 후반부터 한강변을 낀 미사리 조정경기장 앞 미사대로에 라이브 카페가 줄줄이 들어서면서다. 90년대 이후 발라드 가수들이 TV를 장악하자 무대가 줄어든 통기타 가수들은 카페촌에 둥지를 틀었고, 통기타 선율을 따라 수많은 연인들이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애초 가수들은 팬들과 노래할 공간을 공유하는 것만으로 행복했지만, 수요가 급속히 확대되면서 위상마저 바꿔놨다.
몸값이 치솟았고, 대접이 달라졌다. 몇몇 인기 가수들은 하루에 서너곳씩 교차 출연하며 수천만원 씩의 개런티를 보장받았고, 라이브의 순수함 대신 상술과 개런티의 높낮이로 변질됐다. 이에 따라 카페 주인들은 커피 값을 열 배 스무 배로 올리고도 초대가수의 고액 출연료를 감당하기 힘들었다. 카페 업주들은 경영난에 시달리다 결국 하나 둘 씩 떠났고, 가수들도 빠르게 무대를 잃어갔다. 결과적으로 당장의 이익에 매몰돼 스스로 발등을 찍은 셈이 됐다.
경기 하남시 미사동 주변에 한때 번성했던 '미사리 라이브 카페촌'은 라이브의 순수함 대신 상술과 개런티의 높낮이로 변질되면서 붕괴됐다. 현재는 1~2개만 남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더팩트 DB |
◆당장 눈 앞 이익에 매몰, '물 들 때 노 젓는다' 생각하면 공멸
가요계는 70~80년대의 통기타, 90년대 이후론 발라드가 흐름을 주도했다. TV와 라디오 등 방송 매체가 윤활유 역할을 하면서 일종의 트렌드로 굳어졌다. 반면 트로트는 전통가요 100년사를 굳건히 이어온 으뜸 장르로 평가받으면서도 소위 '뽕짝'으로 불리며 비주류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다. 방송에서도 아이돌 음악프로그램에 밀려나곤 했다. 이 때문에 트로트 가수들조차 늘 서운함과 아쉬움을 떨쳐버리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불과 1년 전까지도 방송사들은 트로트를 홀대했다. 광고 구매력이 없는 장르라는 이유를 들어 TV에 이어 라디오까지 외면했다. 설 무대가 줄어든 가수들의 존재감은 있으나마나다. 대중에 접근할 통로가 막히면 신곡을 발표해도 더는 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가수들이 트로트에 관심을 기울여달라며 방송사를 찾아가 눈물로 읍소하고, 일부 국회의원들은 이런 목소리에 화답해 '트로트 살리기 캠페인'에 적극 동참하기도 했다.
트렌드는 바뀌게 마련이고 대중의 입맛도 유행 따라 돌고돈다. 요즘 가요계는 트로트가 대세다. TV는 종편과 지상파 구분 없이 온통 트로트 물결로 넘친다. 예능토크는 물론이고 시사 교양 정보 프로그램에까지 트로트 가수가 단골 멤버다. 말 그대로 트로트 가수 한 두명 출연시키지 않고는 시청률 경쟁이 안되는 분위기다. TV CHOSUN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 '미스트롯'과 '미스터 트롯'이 한순간에 바꿔놓은 연예계 풍경이다.
'방송사와 오랜 의리보다 출연료가 먼저'. 모 여가수는 고액 출연료를 앞세우며 '의리'와 '약속'을 져버려 눈총을 사기도 했다. 사진은 MBN '보이스트롯' 패널로 출연한 김연자 남진 혜은이. /보이스트롯 |
◆특정 가수들 고액 출연료, '미사리 카페촌 교훈' 제살깎기 부메랑
누구도 예상치 못한 가운데 이제 트로트는 현실 속 가장 핫한 대중문화 콘텐츠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마침 불어닥친 코로나19의 우울함마저 떨쳐내는 전국민 관심사가 됐다. 가요계에서는 트로트 바람이 향후 최소 5년에서 10년은 거뜬히 갈 것으로 예상한다. 남녀노소가 좋아하는 공통 장르인데다 가장 늦게, 가장 오랜 기간에 걸쳐 서서히 달궈진 열기라는 점 때문이다. 모처럼 맞이한 이런 트로트 물결에도 우려의 목소리는 있다.
바로 불균형과 치우침이다. 일부 레전드급 가수들의 방송 출연료는 최근 폭발적으로 상승했다. 방송사들이 새로 론칭하는 오디션프로그램에 아마추어 신인들을 견인하고 컨트롤할 마스터 역할로 '모셔가기' 경쟁을 벌이면서다. 몇몇 기성 가수들의 회당 출연료는 이미 1000만원을 넘어섰다. '가요무대' 출연료와 비교하면 자그마치 20배 이상 뛴 급작스런 인플레다. 심지어 출연료와 의리를 놓고 저울질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과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는 말이 있지만, 정도가 지나치면 부작용은 생기게 마련이다. 설 무대가 없어 방송에 출연하는 것만으로 만족했던 게 불과 1~2년 전이다. 특정 가수들의 '출연료 독식'을 바라보는 대다수 중간급 가수들은 상대적 박탈감에 빠져있다. 미사리 카페촌의 흥망성쇠를 언급한 가수매니저 O씨는 "미사리의 어제와 오늘을 깊이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레전드 트로트 가수들의 고액 출연료는 결국 트로트 제살깎기의 부메랑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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