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남은 "사기나 편취 같은 무시무시한 말을 들으며 범법자로 내몰릴 땐 대중스타로 살아온 시간들이 한없이 부끄럽고 창피했다"고 말했다. 최종 무죄 판결 후 한동안 자기성찰의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이동률 기자

대법원 최종 무죄 선고 후 개인전시회, 방송 등 활동 재개

[더팩트｜강일홍 기자] 가수 조영남(76)의 이미지는 자유분방함이다. 그는 52년이란 긴 연예계 생활을 '자유로운 영혼'처럼 살았다. 천성적으로 누구의 간섭받는 걸 싫어해 결혼도, 이혼도, 연애도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기방식의 삶을 지켰다. 이런 쿨한 스타일 때문에 조영남은 분명한 자기철학과 소신을 가진 연예인으로 비치기도 한다.

"5년간의 긴 법정 다툼이 많은 걸 바꿔놨다. 내 삶을 더 진중하고 깊이있게 만들어줬다. 그렇다고 일상의 유쾌함까지 멀리할 생각은 없다. 얼마 전 친한 친구들이 중심이 돼 저에 대한 위로와 격려를 겸한 파티를 열어줬다. 표정관리 때문에 굳이 피하고 싶지 않았다. 그건 내 방식이 아니다. 평소 모습 그대로, 지극히 자연스런 시간이었다."

미술계의 논란을 불러온 '그림 대작' 사건은 그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 판결이 난 뒤 그는 지인들과 조촐한 성찰의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고희를 훌쩍 넘겨 희수(77세)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그를 지탱하는 힘은 바로 변함없는 '조영남 스타일'이다. 삶을 관조하는 여유로움도 생겼다.

조영남은 10여년 전부터 인연을 맺은 조수 송 모씨의 도움을 받은 그림을 팔았다가 2016년 사기 혐의로 기소됐다. 1심 재판부는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지만, 항소심은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이 상고하면서 다시 지루한 법리 싸움으로 이어졌고, 마침내 지난 6월25일 대법원 최종 무죄 선고로 긴 어둠의 터널에서 벗어났다.

그림을 둘러싼 논란은 그에게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50여년간 가수로, 방송인으로 살아온 그의 정체성을 모두 부정당하는 상황으로 내몰렸기 때문이다. 그는 "솔직히 불안하고 초조했지만 오히려 그 기간 더 많은 그림을 그리며 마음을 다스렸다"면서 "매일 영화 한 두 편씩 보고, 나머지 시간은 오로지 그림에 매달렸다"고 했다.

조영남과의 대면 인터뷰는 몇차례 조율 끝에 어렵게 이뤄졌다. 조영남은 "강 기자를 포함해 수없이 많은 언론 인터뷰 요청이 있었지만 재판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는 어떤 얘기도 할 수 없었다"고 했다. 최종 무죄 판결 이후 한층 홀가분해진 그의 속내를 직접 들어봤다. 스페셜 인터뷰는 지난 13일 한강이 시원히 내려다 보이는 조영남의 자택(서울 청담동)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조영남은 "그림을 그리는 동안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는 방식으로 하자"고 제안했다. 인터뷰는 서울 청담동에 위치한 그의 자택 거실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이동률 기자

-오랜 법적 공방에 시달리며 심신이 지쳤을 법한데 매우 활기차 보인다. 논란에 휩싸인 이후 사실상 대외활동을 전혀 하지 못 했는데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하다.

네. 마치 긴 터널을 빠져나온 듯 광명을 다시 찾은 느낌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늘 불안하고 불편하고, 힘들고 고달픈 시간들이었죠. 모두 정리된 지금 마음은 편합니다. 5년이 짧진 않지만, 단지 헛되게 소비된 시간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더 단단히 저를 다지는 계기가 됐어요. 재판 기간 중에도 비공식적이나마 활동은 간간이 했어요. 디너쇼도 하고, 동료가수들 콘서트 게스트로도 가고, 무엇보다 시간 날 때마다 영화를 많이 봤어요. 아마 이 기간 만큼은 노래하는 시간보다 영화관람 시간이 더 많았을 겁니다.

조영남은 2016년 그림 대작 논란의 중심에 선 이후 험난한 법적 공방 속에서도 꾸준히 붓을 들었다. 그는 "정치적 이유로 낙도 또는 변방에 귀양간 선비들이 시화에 몰입하며 지내듯 지난 5년은 저한테 호화로운 귀양의 세월이었다"고 에둘러 표현했다. 인터뷰 차 방문한 조영남의 청담동 자택 거실은 거대한 화실로 꾸며져 있었다. 그가 틈나는 대로, 마음이 내키는 대로 작품 활동하는 공간이다. 그는 "정색하고 마주 앉아 인터뷰 하는 건 나한테 어울리지 않는 일"이라며 "그림을 그리는 동안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는 방식으로 하자"고 제안했다.

-그림 대작이 논란으로 번지고 기소까지 된 사례는 전 세계적으로도 유일무이하다. 그만큼 파장이 컸다. 최종 무죄판결로 보상은 받았지만 사건 자체에 대한 억울함은 없나.

처음엔 답답하고 암담했어요. 아무리 설명을 해도 다들 이해를 못해요. 우선 미술계 입장이 확연하게 엇갈렸잖아요. 국내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도 판례가 없는 사건이다 보니 법조계조차도 확신을 갖지 못한 듯하고요. 제 그림은 화투나 마분지를 여러가지 형태로 잘라붙인 콜라주예요. 시간이 지나면 일부 변색이 돼 아크릴로 보완하는 부분을 고민하다 기술 좋은 조력자의 도움을 받았고, 자연스럽게 협력관계가 됐어요. 이런 과정은 미술계에 널리 통용되는 방식이에요. 함께 일하면서 한번도 '박하다'는 얘기를 들어본 일이 없을 만큼 미술계 관행에 비춰 대가를 소홀히 한 적도 없어요.

그는 "새삼스럽게 그 일을 다시 왈가왈부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면서도 "나쁜 의도로 누군가에게 피해를 끼친 것도 아닌데 '사기'나 '편취' 같은 무시무시한 형틀을 쓴 범법자로 내몰릴 때는 반세기 넘게 대중스타로 살아온 시간들이 한없이 부끄럽고 창피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억울함보다는 대중스타로 주목받은 만큼 충분한 대가를 치렀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재판 기간 중 그는 답답한 마음을 달래며 책을 썼다. '이 망할 놈의 현대미술'은 10여년 전에 이미 출간한 '현대인도 못 알아먹는 현대미술'을 더 이해하기 쉽게 풀어썼다.

"그림을 그릴 때 가장 편안하고 자유로워요." 조영남은 "내게 그림은 폼을 잡거나 실력을 인정받으려는 수단이 아니라 애증과 연민이 스민 가족이자 친구"라고 했다. /이동률 기자

-SNS 인플루언서로 자주 이슈의 중심에 서는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처음 논란이 불거졌을 때 '대작 관행'을 두둔하는 입장이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 같다.

저보다 더 잘 아시겠지만 여론은 항상 반대하는 쪽의 목소리가 훨씬 큽니다. 적극 표현을 안 해서 그렇지, 찬성하고 지지하시는 분들이 더 많아요. 그 점에서 진중권 씨는 용기가 있는 분이라고 생각해요. 찬반 논란이 있는 사안에 대해 언급하는 순간 표적이 될 수도 있잖아요. 실제로 SNS에 글을 올리고 얼마 안 가 반대하는 쪽 사람들로부터 집중 공격을 받아 계정을 닫았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사전에 저와 알던 사이도 아니고, 같이 밥 한번 먹어본 일이 없는 분이에요. 일부러 제 편에 서서 두둔해줄 이유가 없는데 조목 조목 제 입장을 대변하는 걸 보고 솔직히 좀 놀랐어요.

조영남은 "70살을 넘게 살면서 몰랐던 중요한 깨달음이 있다"고 했다. 그림 대작 사건은 그를 둘러싼 수많은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자연스럽게 정리하는 계기가 됐다. 조영남은 음악과 공연, 그림 등 자신이 좋아하는 몇가지 영역 외엔 특별히 관심을 두지 않는 무관심형 스타일이다. 그는 "진정한 아군과 적군은 어려운 일을 당해보면 알게 된다는 사실을 절감했다"면서 "이번 일이 없었다면 끝내 모르고 살았을 것"이라고 했다. 그가 이전과 달리 한결 여유로워져 보이는 것은 바로 이런 부분 때문이다.

-그림은 조영남에게 어떤 존재인가? 미술계가 끝내 인정하지 않으려는 부분에 대한 본인의 입장은?

미술계가 저를 배격하고 마뜩잖게 생각한다는 건 저도 이해할 만해요. 정식으로 공부를 한 것도 아니고, 취미 삼아 그림을 그렸잖아요. 그런데 전시회를 하면 정식 미술가들보다 그림이 비싼 값에 팔려요. 그래서 더 '가수가 노래나 할 일이지 왜 돼먹지 않게 화가 행세를 하느냐'며 배척하려 한다는 것도 알아요. 하지만 저한테 그림은 폼을 잡거나 실력을 인정받으려는 수단이 아니라 애증과 연민이 스민 가족이자 친구예요. 저는 그림을 그릴 때 가장 편안하고 자유로워요. 제가 사는 방식과 닮았기 때문인지도 모르죠. 자유분방하잖아요.

그는 "음악은 박자 음정 리듬 등 반드시 정해진 룰이 있고 이를 벗어나면 이도 저도 안 되지만 미술은 다르다. 형식도 규격도 없고 오로지 느낌만으로 뭐든 표현할 수 있다. 내가 취미삼아 시작한 그림이 음악 못지 않게 좋아진 이유이기도 하다. 이덕화나 이용식이 낚시를 좋아해 수시로 강과 바다를 간다. 그들이 동적인 취미를 가졌다면 나는 정적인 취미를 즐긴다. 누군가 내 작품에 공감하고 공유하고 싶어한다면 그것만으로 보람과 만족을 느낀다"고 했다.

조영남은 조수의 도움을 받은 그림을 팔았다가 사기 혐의로 기소됐다. 1심은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 항소심은 무죄를 선고했다. 사진은 2년 전 법정 공방 당시 모습. /이덕인 기자

-개인전과 특별 초대전 등에 잇달아 작품을 전시한다고 들었다. 무죄 확정 이후 미술활동이 더 바빠진 건가?

네, 많이 바빠질 것 같아요. 그동안 소소한 제안들은 종종 있었지만 논란이 해소되기까지는 자중할 수밖에 없었어요. 다행히 위기를 벗고 본래 모습을 되찾은 것 같아 안도해요. 살면서 터득한 철학이 있다면 그건 우리 조물주가 슬픔을 주면 기쁨도 같이 준다는 사실입니다. 행복도 불행도 마찬가지예요. 여기서 저 앞에 보이는 영동대교까지 걸어가는데 5분도 안 걸려요. 누구라도 막막할 땐 극단적 생각을 할 수 있어요. 우린 어려서부터 '꿈과 야망을 가지라'는 말만 들었지 절망의 상황에 빠졌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배운 적이 없어요. 그런 부분들이 참 아쉬워요. 스스로 경험을 통해 극복할 수밖에 없잖아요.

조영남은 '현대미술가 조영남의 예술세계'라는 제목의 전시회를 지난 12일부터 충남 아산시 아산갤러리에서 오픈했다. 5년 만의 첫 개인전이다. 2021년 8월까지 약 1년간 열리는 전시회는 총 4부로 구성되며 지난 5년여간 새로 그린 40여점 등 총 70여점이 전시될 예정이다. 10월부터는 인사아트페어에서 조영남 특별초대전도 갖는다. 그는 "취미로 시작한 그림활동을 나이들어 깊이 몰두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면서 "그동안 구상해온 더 많은 작품을 소화하기 위해 조만간 정식으로 함께 호흡할 조수를 공모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대작 논란 사건 이전까지 왕성하게 방송활동을 하다가 중단했다, 방송을 다시 해야한다는 생각은 없나.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사실 저는 대중 가수 겸 방송인으로 오래도록 많이 누렸어요. 좀 내려놨다고 해서 억울하거나 아쉬울 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논란이 해소됐다고 해서 금방 뭘 하겠다는 생각도 안해요. 좀더 솔직히 얘기하면 방송 쪽에서 이미 여러 차례 제안이 들어왔어요. 서둘러 출연할 생각도 없지만, 일부러 피할 생각도 없어요. 자연스러운게 가장 무난하다고 생각해요. 또 요즘엔 방송이 아니라도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장치가 꽤 많더라고요. 주변에서 권유를 많이 받고 있는데 조만간 유튜브에도 도전해볼까 해요. 제 스타일과 잘 맞는 것 같아요.

"미술은 나이들수록 소중한 삶의 일부가 됐어요." 조영남은 '현대미술가 조영남의 예술세계'라는 제목의 전시회를 지난 12일부터 충남 아산시 아산갤러리에서 오픈했다. 5년 만의 첫 개인전이다. /이동률 기자

-'대중이 바라보는 조영남'은 늘 호불호가 엇갈린다. 노래 잘하고 자유분방한 삶이 부럽다면서도 호감은 안 간다고 말한다, 왜그럴까요?

질문이 갈수록 직격탄이네요. 좀 부담스럽지만 솔직히 말하죠. 저도 그런 시선을 많이 느껴요. 그냥 주는 거 없이 밉상이라는 겁니다. 그동안 여러 구설에 오르고 논란의 중심에 섰던 것들이 누적돼 그런 이미지로 비쳤을테니 누굴 탓할 수도 없어요. 본처와 헤어진 것도 대중이 나를 부정적으로 보는 이유 중 하나예요. 모두 제가 감수해야할 부분이에요. 연예인들은 자기관리를 위해 하고 싶은 말도 참거나 줄이고, 아예 맘에 없는 말로 바꾸기도 하잖아요. 잘 보이려면 그런 이미지 관리를 할 수는 있겠지만 저는 천성적으로 가식과 꾸민 얘기를 싫어해요. 있는 그대로 행동하고 말하고 하다보니 그런 부분에서는 늘 마이너스인 거죠.

최근 5년간 벌어진 불필요한 논란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는 "허비된 시간들은 억울하지만 한편으론 국가가 나서서 정식 화가로 인정해준 긍정적인 부분도 없지 않다"고 말했다. 그의 표현 방식은 언제나 직설법이다. 웬만해선 감추거나 에둘러 표현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과거에도 일본관련 발언이나 성적 표현 등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주변에서는 전달 방식의 문제이지 '조영남의 주장' 자체가 틀린 건 아니라고 말하기도 한다(조영남도 본래 자신이 언급한 말의 의미가 다르게 와전됐다고 함). 다만 사회적으로 민감한 이슈에 대해서는 유명인의 파급력까지 고려돼야 한다는 전제는 있다.

조영남은 음악과 그림 외에도, 영화, 저술 등 본업과 취미를 구분할 수 없을 만큼 관심사가 다양하다. 사진은 패티김 자서전 '그녀 패티김(조영남 패티김 공저)' 출간기념회 당시. /더팩트 DB

조영남은 뭔가 한 가지에 몰두하면 깊이 빠져드는 스타일이다. 음악과 그림 외에도, 영화, 저술 등 본업과 취미를 구분할 수 없을 만큼 관심사가 다양하다. 최근엔 육상과 쇼트트랙 관련 영상을 찾다 무궁무진한 유튜브 공간에 흠뻑 빠졌다. 이는 스스로 유튜버가 되고 싶은 이유가 됐다.

그는 골프 애호가이기도 하다. 건강과 핸디를 묻자 "이 나이에 누구와 실력을 다툴 정도는 아니다. 지인들과 어울리는 즐거움에 만족한다. 작대기 하나 들고 산 대신 필드에서 등산한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했다. 그는 집 부근 영동대교 아래에서 팔담댐까지 종종 자전거로 왕복하기도 한다.

스스로는 '꿈꾸는 노인'이라고 칭한다. 그가 곧 출간을 앞둔 픽션 '시인 이상과 5명의 아해들'은 시인 이상(李箱)을 주인공(싱어)으로, 피카소(기타), 니체(피아노), 아인슈타인(바이얼리니스트), 구스타프 말러(지휘자)를 등장시켜 상상 속의 5인조 음악그룹을 만들어냈다. 그는 "아무런 이유도 없다, 단지 내 가슴에 담겨있는 위대한 천재 시인을 좀 더 띄워야겠다는 마음이 들어 책을 썼다"고 했다.

그는 돌출적인 언행으로 구설이나 논란에 휩싸여도 '조영남 스타일'이란 이유로 양해되고 이해되는 경우가 많았다. 마지막으로 그 이유를 당사자한테 직접 듣고 싶었다. "이장희나 전유성이 젊은 여자와 돌아다니면 금방 구설수가 나겠죠. 저는 있는 그대로, 생긴 그대로 감추거나 숨기지 않고 살잖아요. 때론 그게 덫이 되기도 하지만 제 삶의 방식이니 어쩌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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