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재가 오는 5일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로 돌아온다. '이정재가 악역을 맡으면 흥행한다'는 공식은 2020년에도 통할까. 그는 자신이 맡은 레이라는 캐릭터에 남다른 자신감을 내비쳤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
"악역 레이, 한계 뛰어넘고 싶었죠"
[더팩트 | 유지훈 기자] "내가 왕이 될 상인가?", "경성에서 데라우치 총독 암살 때 총맞은 자립니다. 구멍이 두 개지요."
각각 2013년 '관상', 2015년 '암살'에서 열연을 펼치며 탄생시킨 명대사다. 수양대군과 염석진 모두 악역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고 그는 그때마다 중저음의 보이스 톤으로 묵직하게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2020년 여름 스크린 속 이정재가 맡은 악역은 여기에 파격적인 비주얼이 더해졌다.
이정재는 오는 5일 개봉하는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감독 홍원찬, 이하 '다만 악')의 무자비한 추격자 레이 역을 맡았다. 화려한 색감의 옷에 특이한 모양의 선글라스 그리고 목덜미를 덮는 문신이 더해져 퇴폐미마저 물씬 풍긴다. 영화는 이 극악무도한 악당이 탄생하기까지의 설명 과정을 생략했고 그래서 그의 면면은 신비롭기까지 하다.
"같은 악역이지만 레이만큼은 뭔가 다르게 표현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어요. 캐릭터는 매력적인데 시나리오에는 그의 배경 정보가 얼마 없으니까 '이 묘함은 뭐지?' 싶더라고요. 배우가 찾아 만들어낼 수 있는 요소들이 있는 게 분명해 보였어요. 한계를 뛰어넘고 싶은 욕구는 모든 배우가 있을 거에요.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래서 레이라는 캐릭터에 도전했어요."
이정재를 만나기 전 레이는 보편적인 누아르 영화 속 킬러였다. 어두운 톤에 군중에 섞이면 존재감이 미미한 평범한 비주얼을 갖춘 인물. 이정재는 레이에 몇 가지 요소를 첨가하기로 했다. 상식을 벗어나는 악역이기에 파격적인 패션을 감행했고 아이스 커피를 들고 다니는 작은 재미도 첨가했다. 개인 스타일리스트를 영화에 합류시키는 특별한 도전도 있었다.
레이는 지금까지 이정재가 맡은 악역과 결이 다르다. 파격적인 패션에 무자비한 면면으로 중무장했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
"레이는 아이디어가 필요했어요. 참 폭력적인 캐릭터인데 그렇게만 비춰지는 게 싫었어요. 일본에 도착하자마자 연출부에게 얼음이 담긴 아메리카노를 준비해달라고 부탁했어요. 킬러가 빨대로 커피를 빨아 먹는 게 생활적이라는 느낌을 줄 것 같았고 얼음이 달그락거리는 소리도 좋았어요."
'다만 악'은 '신세계'에서 끈끈한 브로맨스를 발휘했던 황정민과 이정재의 재회로 많은 영화 팬들의 기대를 모았다. 두 사람은 태국으로 향했고 카메라가 켜지면 서로를 향해 미칠 듯 달려들어 흉기를 휘둘렀다. 하지만 촬영이 끝나고 숙소에 마주앉은 두 사람은 그저 행복했다고 한다. 함께 작품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며 이전보다 더 끈끈한 '브라더'가 됐다.
"'신세계'가 정말 즐거웠기 때문에 '다만 악' 역시 즐거울 거라고 생각했어요. 해외 촬영이었으니까 오랜 시간을 같이 보내니 더 친해질 수밖에 없더라고요. 작품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점점 더 깊은 사이가 되고 있어요."
레이가 가장 빛나는 순간은 태국에 도착 후 인남을 찾던 도중 괴한들에게 붙잡히는 장면이다. 흉기를 든 채 달려드는 괴한들을 제압하고 피를 씻겨내는 모습은 그 어떤 영화에서의 활약보다 강렬하다. 여기에 그가 악역을 맡을 때 내왔던 중저음 톤의 목소리가 더해지니 반갑고 또 매력적이다.
이정재(왼쪽)은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를 통해 황정민과 7년여 만에 작품에서 재회했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
"처음에는 가벼운 목소리를 생각했어요. 그런데 의상과 헤어, 메이크업을 하고 나니 느낌이 잘 안 맞더라고요. 동영상으로 촬영하며 여러 톤의 목소리를 시도해봤어요. 역시나 잘 맞아 떨어진 게 굵은 목소리였어요. '관상'의 수양대군은 생각이 폭력적이었고 레이는 겉으로 폭력성이 드러나야 했어요. 목소리 톤은 유지하되 비주얼과 디테일로 다르게 했죠."
이정재는 오랜 친구인 정우성과 2020년 각자의 작품으로 선의의 경쟁을 펼치게 됐다. 정우성은 '강철비2: 정상회담'에서 대한민국 대통령 한경재 역을 맡아 열연을 펼치고 있다. 그와 경쟁을 하게 된 소감을 물으니 "다른 결의 영화로 함께 관객을 만나게 돼 즐거울 뿐"이라며 기분 좋게 미소 지었다.
"친하게 지내는 이유는 간단해요. 서로 아끼고 서로 그걸 느끼니까요. '내 편이구나'라는 생각이 들고 동질감도 들어요. 참 고맙고 든든해요. 매번 다채로운 연기를 하고 관객의 호응도 얻는 친구가 제 곁에 있다는 게, 같은 시기에 연기 생활을 시작해서 지금까지 함께 하고 있다는 게 참 뿌듯해요."
2013년 개봉한 '신세계' 이후 7년 만에 황정민과 재회에 성공한 이정재는 이제 '절친' 정우성과 작품에서의 만남을 꿈꾼다. 그와 함께하기 위해 오랫동안 작품을 준비했고 습작 끝에 '헌트'(가제)를 탄생시켰다. 1999년 '태양은 없다' 이후 21년만의 만남이라 관심을 모으지만 아직 정우성은 확답을 내놓지 않았다. 이정재와 정우성이 한 스크린에 담기게 된다면 두 사람에게도 영화 팬들에게도 모두 의미 있는 순간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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