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응수를 지지하는 주된 팬층은 2030의 젊은세대다. 그는 영화 '타짜'의 '곽철용 신드롬'에 이어 최근 종영한드라마에서 '꼰대 이만식'으로 다시한번 저력을 확인시켰다. /이덕인 기자 |
2030 세대 공감 매력, 극중 캐릭터 싱크로율 100% '빙의 연기'
[더팩트|강일홍 기자] 김응수(59)는 연극무대에서 잔뼈가 굵은 정통파 배우다. 그의 연기에는 깊이가 있다. 무작정 풀어놓는 것보다는 때론 주워 담는 게 미덕일 수 있듯 연기에도 절제와 강약조절이 중요하다. 수많은 작품에서 그가 보여준 차진 대사와 애드리브는 대배우의 역량을 여실히 입증하는 대목이다.
김응수의 연기는 색깔이 분명하고 뚜렷하다. 그를 지지하는 주된 팬층 또한 놀랍게도 2030의 젊은세대다. 그의 연기매력에 빠져드는 이유는 많다. 무엇보다 극 중 캐릭터를 마치 실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한 완벽한 빙의다. 영화 '타짜'의 곽철용이 그랬고, 드라마 '임진왜란 1592'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그랬다.
연기는 흉내만으로는 감동을 줄 수 없다. 시청자와 교감하고 공감대를 이루는 것도 알고 보면 오롯이 연기자 몫이다. 김응수는 무려 14년 만에 역주행한 지난해 영화 '타짜'의 '곽철용 신드롬'에 이어 최근 종영한 MBC 드라마 '꼰대인턴'에서 '꼰대 이만식'으로 다시 한번 힘과 저력을 확인시켰다.
"가까운 지인들이 한결같이 이번 드라마 속 이만식을 언급해 놀랐어요. 자주 보는 친구들조차도 '어쩌면 하는 짓이 그렇게 똑같으냐, 평소 네 모습 그대로를 본 듯 착각했다'고 하더군요. 실감나게 연기를 했다는 칭찬보다는 뭔가 좀 섭섭하게 들리기는 하더라고요. 저 역시 헷갈릴 때가 있었으니까요."
그가 연기한 '꼰대' 이만식은 적당한 유머와 감동을 주는 귀여운(?) 이미지로 시청자들 사이에 깊이 각인됐다. 하필이면 과거 자신이 괴롭히던 인턴을 직속 상사(팀장)로 모시게(?) 된 얄궂은 운명의 시니어 인턴, '갑을관계 역전'이라는 반전 인물로 자신만의 독특한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대기만성형 배우 김응수는 80년대 초인 대학 1학년 때 연극계로 데뷔했다. 극단 '목화'에 입단해 정통의 길만 고수하며 순수 창작극 중심으로 활동했다. 세대를 뛰어넘는 연기로 조명을 받고 있는 그를 지난해 '타짜' 곽철용의 '역주행 인기 신드롬' 이후 두 번째 스페셜인터뷰이로 만났다. 인터뷰는 지난 24일 서울 혜화동의 한 카페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실제 저는 꼰대 짓을 하고 싶어도 꼰대짓 할 대상이 없어요." 지난해 '타짜' 곽철용의 '역주행 인기 신드롬' 이후 두 번째 필자와 마주한 김응수는 매우 적극적으로 인터뷰에 임했다. 스페셜 인터뷰는 지난 24일 서울 혜화동의 한 카페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이덕인 기자 |
-드라마 '꼰대인턴'이 종영된 지 한달이 다 돼간다. 시청자들은 유쾌한 공감대를 이룬 만큼 여전히 강렬한 여운을 아쉬워한다. 이런 반응에 대한 소감부터 듣고 싶다.
한마디로 짜릿합니다. 마치 작품 속 인물에 빠져든 느낌이에요. 결과도 좋았고 배우로서 만족감도 최상이에요. 40년 연기생활을 하면서 가족한테 칭찬을 받아보기는 처음이에요. 방영되는 날이면 아내와 두 딸 등 온 가족이 둘러앉아 본방을 사수했는데, 칭찬에 인색한 딸들이 '우리 아빠 최고'라고 하더군요. 연기를 오래 하다 보니 '이런 날도 있구나' 싶었죠. 아내가 재미있는 '짤방' 영상을 친구들과 돌려보며 깔깔거릴 만큼 저한테 관심을 보인 것도 예전에 없던 일이에요. 연기자로 모처럼 보람과 행복을 느낍니다.
김응수는 이번 인터뷰에 매우 적극적으로 임했다. 남다른 각오로 뛰어든 작품이 잘 마무리됐다는 안도감 탓일까. 자신감이나 여유로움이 표정에서부터 드러났다. 그는 "오랜 연기 경험상 처음 대본을 받아보는 순간 대번에 느낌이 온다"면서 "우선 '꼰대인턴'의 이만식은 캐릭터가 특별해서 딱 맘에 들었다"고 했다. 다만 인물 성격을 구체적으로 표현해내는 데는 고민이 많았다. 김응수는 "처지가 극과 극으로 뒤바뀌는 모습을 보여주려다 자칫 지나치게 과장하거나 오버해 역효과가 날까 걱정했다"고 털어놨다.
-'꼰대인턴'은 줄곧 수목 드라마 1위를 지키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사람들이 왜 극 중 이만식이란 캐릭터에 열광했다고 생각하나.
배우들은 새로운 배역이 주어질 때마다 항상 긴장을 해요. 과연 캐릭터를 잘 살려낼 수 있을지 두렵기 때문이죠. 극중 이만식이 딱 제 연배인데 연기를 하면서 저도 깜짝 놀랄 정도였어요. 픽션의 인물치고는 너무 흡사하게 닮았다고 할까요.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제 안에 내재된 꼰대스러움이 표출됐는지도 모르죠. 평소 경험과 경륜의 잔소리 쯤으로 생각했는데 그런 설명이 오히려 꼰대라는군요. 어느덧 60을 바라보는 나이에요. 어쩌면 꼰대라는 소리를 듣는 게 당연한지도 모르지요. 세대차이를 누가 비켜갈 수 있겠습니까.
'꼰대인턴'은 지난 5월 20일부터 7월 1일까지 MBC에서 24부작으로 방영됐다. 온라인 속 2030세대들 사이에 '꼰대 열풍'을 불러모았다. 누리꾼들의 가장 많은 시청평은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진진했던 보기드문 작품'이었다. 이 드라마의 관심요소 중 하나는 '꼰대'라는 시대적 사회적 현상에 대한 시원하고도 명쾌한 조명이다. 여배우 없는 '남남주인공'의 환상 조합도 돋보였다. 이만식으로 환생한 김응수의 걸출한 연기는 꼰대가 돼가는 박해진(가열찬)의 모습과 대비되면서 재미를 더했다.
드라마 '꼰대인턴'은 김응수가 데뷔 40년 만에 처음 만난 주연작으로 기록됐다. '꼰대'라는 타이틀 롤의 진한 공감대는 연기파 배우 김응수라서 가능했다. /MBC 제공 |
-이번 '꼰대인턴'의 이만식은 15년 전 개봉돼 화제를 모은 영화 '타짜'의 곽철용과 많이 비교됐다. 혹시 두 캐릭터에 닮은 곳은 없나?
왜요, 닮은 데가 많죠. 우선 두 인물에 관심을 주는 팬층이 젊다는 겁니다. 2030 세대가 유난히 많아요. 제 나이대를 생각하면 파격이죠. 권위적이란 점도 닮았어요. 둘 다 아랫사람들이 위압적으로 느낄 만큼 절대적 힘을 과시하는 인물이에요. 물론 다른 구석도 있어요. 조직의 보스로 부하들을 주먹과 폭력, 욕설로 제압하는 곽철용과 달리 이만식은 유머가 있어요. 곽철용이 힘으로 강하게 누르다가 스스로 죽을지언정 부러지지 않는 스타일이라면 이만식은 부드러움과 섬세함, 형편과 처지에 따라 친화력과 싹싹함으로 변화할 수 있는 캐릭터거든요.
김응수는 연기에 대한 신념과 가치관이 분명한 배우다. 그동안 출연한 모든 작품마다 자신만의 연기스타일 고수하며 연기파다운 면모를 보여줬다. 그가 작심하고 출연에 열의를 보였던 대표적인 인물이 팩추얼드라마 '임진왜란 1592'(2016년) 속 도요토미 히데요시(풍신수길)다. 당시 김응수는 대본을 받아들고 고민하다 연출자의 의도가 분명하다는 사실만으로 선뜻 응했다. 그는 "원숭이라는 별명으로 멸시받지만 일본 역사상 최고 전쟁 영웅으로 추앙받은 풍신수길의 인간적 측면을 다른 시각으로 그려보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기왕에 '꼰대' 얘기가 나온 김에 개인적인 취향이나 스타일, 성향도 궁금하다. 드라마 속 인물이 아닌 자연인 김응수는 어떤 사람인가.
드라마 방영한 뒤 그 부분에 대해 오해하시는 분들이 참 많아요. 저와 '꼰대인턴' 이만식을 동일시 하는 건데요. 전혀 사실과 다른 얘깁니다. 이만식의 '꼰대성'과 저 김응수의 꼰대성 싱크로율은 1%도 안 되요. 아이들은 학업 때문에 한때 떨어져 살았고, 집사람(와이프)은 자기 일이 따로 있는 데다 저는 저대로 연기활동으로 바빠요. 더구나 회사 같은 조직에서 한번도 근무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실제 제 꼰대성은 제로에 가까워요. 꼰대 짓을 하고 싶어도 꼰대 짓 할 대상이 없었어요. 제가 보이는 것과는 달리 사고가 확 트였습니다. 젊은 친구들이 좋아할 쿨하고 명쾌한 스타일이에요.
김응수는 솔직하고 담백하다. 연극계 후배들 사이에서는 '인간미 넘치는 배우'란 평가를 받는다. 자신보다 후배들을 먼저 챙기기 때문이다. 이는 오랜 연기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몸에 뱄다. 애주가인 그는 이런 후배들과 종종 술자리를 가지며 인간적 소통을 나누는 게 또 다른 즐거움이다. 물론 강렬하고 깊은 연기를 발산하기 위한 체력관리는 필수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매일 이른 새벽 기상해 집에서 멀지 않은 북한산 자락 진관사까지 속보로 뛰면서 땀을 흠뻑 흘리는 게 그의 건강비결이다.
"응수야, 그만 고민하고 하산해서 묻고 떠블로 가라." 김응수는 과거 최동훈 감독으로부터 영화 '타짜'(2006년 개봉) 시나리오를 받았을 당시 북한산 비봉에 올라 경험한 에피소드를 밝히며 활짝 웃었다. /이덕인 기자 |
-북한산은 연기자로서도 특별한 사연이 있다고 들었다. 필자도 산행을 좋아해 주말에는 자주 북한산을 찾는 편인데 어떤 비하인드가 있는가.
살다 보면 누구나 운명적인 상황은 한번씩 만나게 마련이잖아요. 2005년 최동훈 감독으로부터 영화 '타짜'(2006년 개봉)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예요. 느낌은 오는데 아무리 용을 써도 갈피를 못잡겠더라고요. 머리를 식히러 김밥 한 줄이랑 시나리오를 들고 북한산으로 향했어요. 9월 중순, 땀을 뻘뻘 흘리며 북한산 비봉에 올라 막 숨을 돌리고 있는데 진흥왕이 나타나 '응수야, 그만 고민하고 하산해서 묻고 떠블로 가라' 이러더라고요. 마치 계시를 받은 듯 생생한 느낌이었거든요. 비봉에서는 날씨가 좋으면 멀리 인천 앞바다까지 내려다보이는데 한 마디로 진흥왕의 크고 넓은 배포를 느꼈죠. 곽철용의 캐릭터는 그렇게 탄생한 겁니다.
한때 그는 별명이 '북한산 청솔모'일 만큼 북한산을 자주 올랐다고 한다. 북한산 비봉에는 진흥왕 순수비(眞興王 巡狩碑) 터가 자리하고 있다. 신라의 진흥왕이 새로 공략한 국경지대를 순시한 다음 세운 비(碑)이다. 원래 북한산 비봉에 자리하고 있었으나 보존하기 위해 경복궁에 옮겨 놓았다가, 1970년부터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김응수가 곽철용으로 출연한 영화 '타짜'는 동명의 만화 '타짜'를 원작으로 최동훈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화투를 이용한 도박판을 배경으로 조승우, 김혜수, 백윤식, 김응수, 김윤석, 유해진, 등이 출연했다.
-히트작 또는 히트 캐릭터로 주목을 받을수록 연기자는 새로운 작품에 대한 부담이 커진다. 그만큼 기대치가 상승하기 때문이다. 현재 고민하고 있는 작품은 없는가.
과연 대기자답게 배우들의 속내와 고민을 정확히 집어내시네요. '이만식' 캐릭터에 만족하고 보람을 느낄 틈도 없이 벌써 새로운 작품 선택에 대한 무게감이 짓누릅니다. 특정 캐릭터가 너무 강렬하게 각인되면 그래서 부담스러울 때가 있어요. 연기자라면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고 생각해요. '꼰대인턴'이 끝나자마자 2개 드라마와 1개 영화를 놓고 저울질하고 있어요. 드라마는 아직 밝힐 수 없는 단계이고, 출연을 확정 지은 영화는 '귀선'입니다. 4년 전 드라마 '임진왜란1592'를 연출했던 KBS 김한솔 PD가 다시 메가폰을 잡는 작품이에요.
'귀선'에서 김응수는 드라마에서와 마찬가지로 이순신과 일전을 벌이는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연기한다. 이번 영화에서는 이순신 중심의 역사적 사실 외에 김응수의 생생한 연기력을 통해 총칼로 맞서야했던 침략군 수장의 인간적 고뇌도 세밀하게 묘사된다. '귀선'에는 조선의 최고 함대라는 '거북선'의 거북(龜), '귀신' 잡는 배(鬼), 총칼을 버리고 하루빨리 '고향에 되돌아가고 싶은' 병졸들의 소망(歸) 등 세 가지 중의어를 갖고 있다. 김응수는 "지금까지 제작돼온 임진왜란 당시 전쟁영화와는 차원이 다르다"며 기대감을 표시했다.
김응수는 지난해 '곽철용 역주행 신드롬'을 몰고오면서 주목을 받았다. 강렬한 연기내공에 젊은층이 더 환호했고, 무려 100여개의 광고출연 제의가 들어왔다. /OS엔터테인먼트 제공 |
김응수는 지난해 '곽철용 역주행 신드롬'을 몰고오면서 이미 한 차례 뜨겁게 주목을 받았다. 영화 '타짜' 속 캐릭터인 '곽철용'이 유튜브를 통해 뒤늦게 재조명되면서다. 강렬한 연기내공에 젊은층이 더 환호했다. 그의 존재감은 상승했다. 무려 100여개의 광고출연 제의가 들어올 만큼 뜨겁게 달아올랐다.
김응수는 '꼰대인턴' 이만식을 자신의 연기 인생 최고 '인생 캐릭터'로 꼽았다. 맘 먹은 이미지를 완벽하게 소화했다는 만족감 때문이다. 스스로는 120% 이상 발휘했다고 믿는다. 그는 "좋은 재료를 잘 요리한 것 같은 기분"이라면서 "가까운 지인들의 관심과 호평은 덤"이라고 했다.
"저를 통해 뜨거운 관심의 대상이 된 '꼰대' 이만식은 모두가 공감하는 갑질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준 인물이었다고 생각해요. 드라마 종영 직후 여러 매체들과 동시에 만나 라운드 인터뷰를 했는데 쏟아지는 질문공세에 귀찮기는커녕 마냥 행복했어요. 40년 연기를 하며 처음으로 뿌듯함을 느꼈어요."
'꼰대인턴'은 김응수가 1981년 연극 무대를 통해 데뷔한 이래 무려 40년 만에 처음 만난 주연작으로 기록됐다. '꼰대'라는 타이틀 롤의 진한 공감대는 연기파 배우 김응수라서 가능했다. 필자와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도 그는 이미 새 작품 속 이미지 만들기에 골몰하고 있었다.
"빨리 이만식을 잊고 다시 거듭나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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