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재(왼쪽)에 이어 신현준이 매니저 '갑질' 논란으로 구설에 올랐다. 높은 업무 강도부터 계약사항 미준수까지 연예계에 깊게 뿌리내린 잘못된 관행을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었다. /더팩트 DB |
매니저 ㄱ씨가 원로배우 이순재로부터 갑질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사태가 수습되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신현준의 전 매니저 ㄴ씨가 배턴을 이어받아 비슷한 내용의 폭로전을 벌이고 있다. '미투' '빚투'에 이어 '갑투'로 번져가는 연예계의 또 다른 그림자다. <더팩트>는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 중인 현직 매니저들의 의견을 통해 사태를 짚어봤다. <편집자 주>
연예계 폐쇄성이 만든 '갑질'과 관행
[더팩트 | 유지훈 기자] 법에 저촉됐는데 잘못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 공과 사의 경계가 모호한 업무를 지시하는 것. 의문을 가지면 '원래 이런 거야'라고 말하는 것. 이의를 제기하면 낙인찍는 것.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휘두르는 폭력이다.
배우 이순재와 신현준의 매니저의 갑질 폭로는 한국 연예계에 뿌리 깊게 박힌 잘못된 관행을 여실히 보여줬다. 이순재의 전 매니저 ㄱ씨는 지난 6월 28일 SBS '8뉴스'를 통해 한 달 근무에 주말을 포함한 단 5일의 휴무만 받았고, 주 55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일했으나 인한 추가 수당을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매니지먼트 외 이순재 부인의 사적인 부탁을 들어줘야 했으며 계약서는 물론 4대 보험도 가입되어있지 않은 채 노동했다고 폭로했다.
주당 법정근로시간은 52시간이다. 하지만 업무 특성상 이를 그대로 지킬 수 없는 것이 연예 매니지먼트다. 배우 가수 매니저들 모두 "52시간 근무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많다"고 의견을 모은다. 가수의 경우 성수기 시즌에 가능한 많은 행사를 소화해야 수익이 나고 배우는 작품 촬영과 공개 시기에 일이 몰리기 때문이다.
하루 평균 8시간도 어렵다. 뮤지션의 뮤직비디오 촬영이 그 예다. 현장 감독 및 스태프를 직접 컨택하고 그들과 아티스트의 의견을 조율했던 매니저가 노동시간이 넘었다고 해서 퇴근한다면 현장에서 발생할 사건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가수 매니저 A씨는 다른 매니저와 근무를 교대하는 것 역시 위험 부담이 너무 크다고 말한다.
이순재의 전 매니저 ㄱ씨는 SBS에 계약서를 쓰지 않은 것을 비롯해 이순재 부인의 사적인 심부름을 해야 했다고 폭로했다. /방송 캡처 |
그는 "결국 사람과 사람이 만나 하는 일이다. 대하는 사람에 따라 화법도 조율하는 방식도 다르다. 체력적으로 버겁지만 사건사고가 발생하면 처음 조율했던 사람에게 책임이 돌아가 어쩔 수 없다. 물론 그렇지 않은 일정의 경우 근무 시간이 넘으면 매니저 교체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배우 매니저 B씨는 배우의 지방 촬영을 예로 들었다. "일터가 무조건 수도권이라는 보장은 없다. 멀리 가면 왕복 운전만 10시간 가까이하게 된다"며 "급박한 일정을 맞추다 보면 당연하게 밤샘 촬영을 하게 된다. 이런 일은 부지기수"라고 말했다.
이순재의 전 매니저가 월 180만원만을 받고 4대 보험도 가입하지 못했다는 것 역시 공감했다. 매니저 C씨는 "별도의 회사 설립도 없이 바로 현장에 투입시키는 경우도 한번 겪었다. 그러니 당연히 4대 보험도 없었다. 잠시 몸을 담았던 한 회사는 4대 보험을 들어줬지만 월급이 100만원도 안 됐다. 세금과 기본 생활비를 제외하면 남은 돈이 하나도 없었다"고 회상했다.
매니저 ㄴ씨의 폭로는 신현준의 '언어 폭력'으로 큰 충격을 안겼다. 지난 9일 ㄴ씨는 스포츠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신현준으로부터 '갑질'에 시달렸다고 폭로했다. ㄴ씨는 잦은 불만과 욕설 그리고 무리한 작품 압박을 받았다며 신현준의 욕설이 담긴 문자 메시지도 공개했다.
이 역시 ㄴ씨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A씨는 금전적인 문제나 고용 안전성보다 상식을 넘어선 가혹행위를 겪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매니저 일을 시작한 초기 한 아이돌의 매니저 일을 맡았지만 다른 회사 직원들의 인격모독적인 발언을 참아야 했고 숙소 생활을 하는 동안 잠을 자지 못하게 하는 가혹행위까지 겪었다. 결국 그는 상식 밖의 업무 환경에 결국 회사를 그만뒀다.
업계 관계자들은 ㄱ씨와 ㄴ씨의 폭로에 기시감을 느꼈다. 낮은 임금과 사적인 심부름, 심지어 가혹행위를 겪은 현직 매니저도 있었다. /더팩트 DB |
이순재의 전 매니저 ㄱ씨가 '머슴살이'라고 표현했던 매니지먼트 업무 외에 연예인의 사적인 영역에서의 업무는 오랜 업계의 관행이다. 다른 관계자 D씨는 "모 배우의 경우 스케줄을 마치고 미술관에 가는 것은 물론 쇼핑도 매니저를 대동한다. 이 외에도 담당 연예인이 먹고 싶은 음식을 사러 운전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고 말했다.
이어 "업무와 사적인 심부름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연예인과 오랜 유대가 있는 매니저라면 투덜거리고 말 일이지만 신입 매니저의 경우 '이게 내가 맡은 일이 맞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는 매니저 인력난으로 귀결된다. "10명을 뽑으면 두 명 정도가 남는다. 그런데 그렇게 남는 매니저 대부분 지방 출신이다. 서울로 혼자 올라와 연고가 없으니 끝까지 버티는 것"이라며 최근 신입 매니저 채용에 있어 지방 출신을 선호하는 경향까지 생겼다고 꼬집었다.
연예계는 늘 종사자들에게 입을 조심하라고 말한다. 작은 실수도 쉽게 확산되고 이 과정에서 크게 부풀려지는 업계 특성 때문이다. 스타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만 그들의 조력자들은 점점 폐쇄적이게 되는 아이러니다. 폐쇄적인 환경은 수많은 관행을 만들었지만 피해자들의 목소리도 내지 못하게 했다. B씨는 "업계가 좁다 보니 이의를 제기하면 좋지 않은 소문이 나서 다른 회사 취직이 힘들어질 거라고 생각해 당시에는 참았다"며 "다른 매니저들 역시 같은 이유 때문에 쉬쉬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예기획팀 | ssent@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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