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코 퀸'이 마주한 좀비 세상은 어떨까. 사랑스러운 매력으로 위기를 헤쳐나갈까. 아니면 그저 주저 앉을까. '#살아있다' 속 박신혜의 활약은 그 해답이다. /솔트엔터테인먼트 제공 |
"기존 좀비물과 다른 전개, 매력적이었죠"
[더팩트 | 유지훈 기자] 좀비 영화 '#살아있다'의 초반부는 철저히 주인공 유아인의 시선으로 펼쳐진다. 물과 식량은 점점 떨어져가고 가족들의 연락마저 두절되자 그는 나락으로 추락한다. 외로움에 사무쳐 삶의 문턱에 선 유아인을 향해 박신혜는 레이저 포인터로 첫인사를 건넨다. 그가 가리킨 글자는 다름 아닌 '바' '보'. 좀비가 들끓는 세상에서도 그는 당차고 또 사랑스러운 사람이다.
박신혜는 지난 24일 개봉한 영화 '#살아있다'에서 주인공 유빈 역을 맡았다. 중반부 등장한 그는 준우(유아인 분)와 함께 아파트에서의 탈출 그리고 생존을 꿈꾼다. 목적은 같지만 방식은 다르다. 준우가 스마트기기를 활용한 임기응변에 능하다면, 유빈은 담대하고 또 계획적이다. 집의 모든 공간을 활용하기보다는 그 안에 자신만의 아지트를 만들고 혹시 문을 부수고 습격해올 좀비를 붙잡을 덫도 준비해둔다. 철두철미해 보이지만 아껴둔 물을 화분과 나눠 마시는 따뜻한 마음도 겸비했다.
유빈이라는 캐릭터가 더욱 매력적인 이유는 그 역할을 맡은 박신혜가 지금까지 차근차근 쌓아온 이미지 때문일 것이다. 살아남기도 그 이후 커리어를 쌓아 올리기도 어려운 아역 배우로 시작해 SBS '미남이시네요', MBC '넌 내게 반했어', tvN '이웃집 꽃미남', SBS '피노키오' 등 젊은 시청자들이 열광했던 로맨스 드라마의 여주인공으로 활약해왔다. 여기저기 곡성이 울려 퍼지는 '#살아있다' 속 그의 존재는 그래서 더 독보적이다. 좀비 세상 홀로 살아남은 '로코 퀸'이니 빛이 날수밖에 없다.
Q. '#살아있다'는 좀비 영화다. 지금까지 해왔던 작품들과 결이 다른데 출연을 결심하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기존 좀비물과 달라서다. 어떤 계기로 감염자가 발생하고 다양한 인물들이 모여서 갈등을 만드는 게 기존 형식이다. 그런데 '#살아있다'는 오롯이 집이라는 개인적인 공간에서 사건이 펼쳐진다. 캐릭터 혼자서 겪는 고민과 갈등, 이야기 전개가 흥미로웠다. 마주 보는 아파트에서 다른 생존자 준우와 조우 후의 고군분투는 비슷하기도 하지만 접근 방식이 달랐다."
Q. 큰 규모로 압도하는 블록버스터의 느낌도 아니다. 등장하는 인물도 별로 없다. 그런데 비어 보이지 않는다.
"유아인 씨의 힘이 크다. 초반부 준우가 혼자서 영화를 끌어간다. 이걸 해낼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일지 궁금했다. 그때 유아인의 캐스팅 소식을 듣고 기대가 됐다. 그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유아인 씨 혼자 40분 동안 활약하는 데 그 이후에 내가 등장한다. 서로의 템포가 어색하지 않을까 고민이 많았다. 촬영을 준비하며 유아인 씨의 촬영 편집본을 받아 봤었다. 현장 분위기를 미리 보면서 익혔다. 그게 많은 도움이 됐다."
박신혜가 맡은 유빈은 준우와 상반된 캐릭터다. 준우가 자유분방하고 임기응변에 능하다면 유빈은 차분하면서도 계획적이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
Q. 작품이 개봉했으니 평가들도 좀 찾아봤을 것 같다.
"코로나 시기와 맞물렸다. 어느 정도 염두에 두긴 하겠지만 이렇게 크게 맞물린 경우는 처음이다. 그래서 이와 관련된 말씀을 드리는 게 조심스럽기도 하다. '준우의 고립된 모습이 우리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리뷰를 많이 봤다. 고립되어있다는 게 유쾌한 상황은 아니다. 영화에서 준우와 유빈은 살아야겠다는 희망을 얻는다. 보시는 분들도 비록 지금 힘들지만 '오늘 하루를 잘 살아냈다' '견뎌냈다' 고 생각하고 힘을 얻었으면 좋겠다."
Q. 유빈이라는 캐릭터를 어떻게 이해했나.
"등산과 암벽등반을 좋아하는 캐릭터다. 물론 등반하다가 떨어져서 공포증이 있지만 그 높이를 즐겼다. 근력이 필요한 취미인 만큼 체력도 좋았을 거다. 유빈은 본인이 처한 상황을 이성적으로 판단한다. 준우와는 다르다. 요새를 만들고 부비트랩을 설치하기도 한다. 이 상황에서 이렇게 할 수 있을까 대단하다 생각했다. 시나리오 작가분께서는 본인의 모습을 준우에 투영했다고 한다. 유빈은 작가님이 되고 싶은 사람이었다."
Q. 유아인이 캐릭터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아이디어를 많이 냈다고 했었다. 당황스러웠던 아이디어는 없었나.
"시나리오를 읽다 보면 저 또한 어떤 이미지를 상상하게 된다. 유아인 씨도 같았을 거다. 그의 아이디어가 당황스러웠던 적은 없다. 내가 상상했던 그림보다 더 좋았던 게 많았다. 나와는 다르게 접근했구나 했다. 유아인을 보고 많이 배웠다. 함께 끌고 가는 후반부에 우리 두 사람의 아이디어가 많이 담겼다."
Q. 유아인 박신혜 모두 10대 배우로 시작했다. 같은 아역 출신으로서 공감대도 형성됐나.
"시작은 아역이었지만 이후 우리의 촬영 현장은 달랐을 거다. 유아인 씨는 선배들과 작품을 많이 해온 배우다. 반면 나는 내 또래들과 했던 작품이 참 많았다. 그런데도 유아인과의 연기 호흡이 자연스러웠다. 다른 배우와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작품을 만들어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참 소중한 경험이었다."
Q. 대사 이상의 표현이 필요한 작품이었다.
"단순히 대사라면 '나 지금 너무 무서워'라고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안에 압박감을 표현해내야 한다는 건 어렵더라. 그런데 현장이 잘 준비되어 있어서 몰입하기 수월했다. 캐릭터가 듣고 두려워해야 할 발자국 소리, 집의 흔들림과 같은 효과가 실제로 전해졌다. 그리고 진짜 좀비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무서운 순간들이 있었다. 그런 부분들이 영화에 자연스럽게 담겼다."
'#살아있다'이 최대 관전포인트는 유아인 박신혜의 연기 호흡이다. 뚜렷한 개성의 두 사람은 생존본능을 발휘하며 위기를 헤쳐나간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
Q. 실제로 마주한 좀비들은 어땠나. 기억에 남거나 가장 섬뜩했던 좀비는 무엇인가.
"덫에 걸려서 발버둥 치는 좀비는 내가 실제로 아는 분이었다. 오랜만에 만나서 정말 반가웠는데 하필 감염자였다(웃음). 묘한 느낌이었다. 내가 도끼로 내려쳐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아는 사람이라 더욱 착잡했다. 후반부라 말하기 어렵지만 등장하는 좀비가 하나 있다. 그분이 고생을 많이 해서 기억에 남아 있다."
Q. 실제 영화와 같은 상황이라면 인간 박신혜는 어떤 선택을 했을 것 같은가.
"아마 며칠 정도는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다. 바로 생을 포기하고 싶진 않을 거다. 엉성함에 있어서는 준우를 더 많이 닮았다."
Q. 유빈이 준우에게 전하는 첫 인사가 '바보'다.
"유빈도 비슷한 고민을 했던 친구다. 그래서 그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 준우를 말리고 싶었을 거다. 그리고 레이저 포인터로 전할 수 있는 메시지가 한정돼 있었으니 그게 최선이지 않을까 싶다."
Q. 캐릭터의 활약이 분명히 있지만 엄청난 임팩트를 주진 않는다.
"뭔가 재미있을 것 같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작품이다. 임팩트나 깊이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기보다는 즐기자는 느낌이었다. 대신 준우와 유빈의 호흡에 중점을 뒀다. 두 사람은 동떨어져 있고 고립됐지만 서로를 알게 되고 희망을 찾는다. 그 모습이 우리의 삶과 비슷했다."
Q.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에 이어 '#살아있다'까지 컴퓨터 그래픽이 많이 들어가는 작품들에 자주 나오고 있다.
"요즘 블루 스크린에서 살고 있다. 신기하게 '콜'도 블루스크린 촬영이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컴퓨터 그래픽이 많이 들어간 작품들을 하게 됐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정말 새롭다. 기회가 온다면 앞으로도 해보고 싶다."
박신혜 스스로 '살아있다'고 느끼는 순간은 주변 소중한 사람들과의 평범한 일상이었다. /솔트엔터테인먼트 제공 |
Q. 코로나19로 미리 찍어뒀던 '콜' 개봉이 미뤄졌고 대신 '#살아있다'가 먼저 개봉했다.
"여러 작품들이 미뤄졌다. 아쉬운 감이 없지는 않다. 그래도 준비했던 작품들이 올해 안에는 개봉하지 않을까 싶다. 열심히 농사를 지었는데 수확의 시기만 조금 늦춰졌다고 생각하고 있다. 기다린 분들에게는 죄송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한 번에 몰아서 보여드릴 수 있다는(웃음) 긍정적인 생각을 하기도 한다."
Q. 배우 박신혜가 '살아있다'고 느낄 때는 언제인가.
"가족 친구들과 시간을 보낼 때다. 각자 직장 생활에 바쁘고 결혼한 친구들도 있다. 어렸을 때는 몰랐지만 그 시간이 참 소중하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시간을 내서 만나는 게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아침에 눈을 떠서 하루를 시작할 때도 살아있다고 느낀다."
Q. 멜로부터 좀비물까지 연기 스펙트럼이 참 넓어졌다.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 같다. 넓히고 싶다고 넓어지지 않는 게 스펙트럼이다. 해오지 않았던 것을 조금씩 도전하고 싶긴 하다. 이번 작품에서도 누군가가 내 새로운 모습을 캐치한다면 또 새로운 도전을 하지 않을까 싶다. 일단 지금 눈앞에 있는 작품에 집중하고 싶다."
Q. 지금 앞에 있는 작품만 집중하고 싶다는 말이 무언가 내려놓았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맞는 말이다. 내 선택도 있지만 그 이전에 선택을 받아야 하는 게 배우라는 직업이다. 욕심은 늘 가지고 있지만 떼쓴다고 되는 건 아니다. 경험을 해봐서 알고 있다. 어떤 실패가 마냥 담담하지는 않다. 아픈 건 아픈 거다. 그래서 내게 주어진 작품을 하게 됐을 때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만 한다. 아픔을 겪는 것도 이겨내는 것도 모두 내가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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