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인터뷰] '#살아있다' 유아인, 좀비 세상의 친절한 이웃
입력: 2020.06.24 05:00 / 수정: 2020.06.24 05:00
유아인이 좀비 영화 #살아있다로 돌아온다. 옆집에 살고 있을 것만 같은 친근한 청년 준우에 분한 그는 영화의 초반부를 홀로 견인하며 맹활약을 펼친다. /UAA 제공
유아인이 좀비 영화 '#살아있다'로 돌아온다. 옆집에 살고 있을 것만 같은 친근한 청년 준우에 분한 그는 영화의 초반부를 홀로 견인하며 맹활약을 펼친다. /UAA 제공

"좋아하던 좀비 영화 주인공…욕심 좀 냈어요"

[더팩트 | 유지훈 기자] 좀비 영화의 묘미 중 하나는 인물들이 보여주는 각양각색의 표정이다. 놓여있는 절박한 상황에 슬피 울고 갑작스럽게 등장한 좀비들에 경악하며 마침내 구조돼 안도하는 얼굴을 표현하는 것은 오롯이 배우의 몫이다. 그래서 '#살아있다'는 늘 자기 몫 이상을 해내는 유아인의 빈틈없는 변검 극이기도 하다.

유아인은 24일 개봉하는 영화 '#살아있다'에서 주인공 준우 역을 맡았다. 잘 나가는 게이머이자 인터넷 방송 스트리머로 활동하는 준우는 가족이 모두 외출을 떠난 어느 날 아파트에 홀로 고립되고 만다. 정체불명의 사람들이 공격을 시작하고 도시가 통제 불능에 빠지면서다. 전기와 물은 물론 인터넷과 데이터도 끊기자 준우는 나락으로 떨어진다.

유아인은 중반부 또 다른 생존자 유빈(박신혜 분)이 등장하기까지 홀로 영화를 끌고 간다. 방금 옆집에서 나온듯 친숙하면서도 짧은 탈색 머리 때문에 자꾸만 아른거리는 특별한 청년의 모습으로다. 연기 하나만으로도 합격점이지만 유아인은 영화 곳곳에 자신의 아이디어를 숨겨뒀다. 준우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과정 속 사소한 부분들을 비롯해 박신혜와 주고받은 애드리브까지도 그렇다. <더팩트>와 만난 유아인은 '#살아있다'의 주인공으로서 그리고 좀비 영화의 광팬으로서 이야기를 쏟아냈다.

#살아있다는 정체불명의 사람들이 공격을 시작하며 도시가 통제 불능에 빠진 가운데 아파트에 홀로 고립된 준우(유아인 분)와 유빈(박신혜 분)의 생존기를 담는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살아있다'는 정체불명의 사람들이 공격을 시작하며 도시가 통제 불능에 빠진 가운데 아파트에 홀로 고립된 준우(유아인 분)와 유빈(박신혜 분)의 생존기를 담는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Q. 코로나 때문에 혼란스러운 시기 좀비물로 스크린에 복귀했다.

"어떻게 어려운 시기에 나오게 됐다. 다들 좋은 말씀 해주고 계셔서 기대 된다. 시사회에서 영화 보고 나니 '#살아있다'가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시는 분들에게 공감과 좋은 느낌을 드릴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많이들 봐주셨으면 한다."

Q. 영화 초반을 혼자 꾸민다. 배우로서 부담 가는 일이다.

"실제로 부담이 컸다. 하지만 그게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이기도 했다. 그 미션을 해결해나가는 재미, 도전 의식을 자극하는 요소가 있었다. 장르적인 특성이 살아있으면서 인물의 색도 강해서 더 도전해보고 싶었다. 초반을 혼자 끌어갔으니 후반부 박신혜와의 호흡도 기대됐다. 매주 편집본을 받아볼 정도로 관심이 많았던 작품이다. 중요한 장면은 홀로 리허설을 해서 감독님께 영상으로 보내드리기도 했다."

Q. 혼자 리허설을 해서 보내줬던 장면이 무엇인가.

"준우가 술에 취해 절망으로 치달았던 장면이다. 리허설을 정말 많이 했다. 감독님이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해봤다. 아무 음악이나 틀고 몸을 움직여가며 이 리듬 저 리듬 많이 고민해봤다."

Q. 준우의 짧은 탈색머리가 강렬하다. 어떻게 탄생하게 됐나.

"처음부터 준비됐던 아이디어는 아니었다. 우연히 운명적으로 만들어졌다. 원래는 눈을 덮는 긴머리 가발을 준비했고 1회 촬영을 마쳤다. 그 가발 안에 탈색한 내 원래 머리가 있었다. 그걸 보시더니 '저게 더 준우에 가깝지 않겠냐'는 의견을 주셨다. 테스트해보니 그게 맞게 느껴졌고 결국 첫 회 촬영분을 삭제하고 다시 찍기도 했다."

유아인은 그저 평범할 수 있는 준우라는 캐릭터에 짧은 탈색머리라는 포인트를 첨가했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유아인은 그저 평범할 수 있는 준우라는 캐릭터에 짧은 탈색머리라는 포인트를 첨가했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Q. 강렬한 비주얼이지만 또 친숙하다. 어떻게 준비했나.

"옆집 청년의 모습을 상상했다. 크게 거슬리지 않고 현실성 있게 살아가는 인물로 잡았다. 기계를 잘 다루고 게임 속에서 활약하고 장난치는 모습들을 연기했다. 영화 초반에 인터넷 방송을 하며 시청자들과 대화하는 모습이 있다. 내가 잘 모르는 세상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안 잡혔다. 그래서 그 부분을 더 많이 연구했다."

Q. 그렇게 구상해뒀던 준우의 소개가 영화에 다 담기지 않았다는 느낌도 있다.

"진행이 빠른 영화라서 그렇다. 캐릭터 소개도 상황 설명도 별로 없다. 바로 사건이 발생하고 거기에 끌려가는 전개다. 군더더기 없이 진행됐어야 했다. 그래서 인물 소개 외에도 구체적인 설명과 표현들을 지양하고자 했던 현장이었다. 그 템포가 후반부까지 이어졌다."

Q. 좀비 영화 마니아라고 했던 만큼 연기 외에도 직접 참여한 부분들이 있나.

"기존 좀비 영화와 좀 다르게 가고 싶었던 부분이 좀비의 몸짓이었다. 경험자가 아닌 새로운 사람이 좋을 것 같았고 현대무용가 한 분을 추천해다. 그분의 독특한 움직임을 좀비로서 표현해보고 싶었다. 덕분에 보편적이면서도 기괴한 움직임이 더 살아있는 좀비가 탄생했다."

Q. 아무리 봐도 좀비 영화인데 소개에 '좀비'라는 단어가 없다. 특별한 이유가 없다.

"사실 잘 모르겠다(웃음). 영화를 찍다가 애드리브를 친 적도 있다. 유빈에게 '저거 좀비 아니야?'라고 묻는 대사였다. 물론 영화에 들어가진 않았다. 내 생각에는 명확성보다는 모호함이 주는 공포가 더 크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명확해지면 인물들이 처한 막막함과 두려움이 약해질 거다. 추측만 할 뿐 그 누구도 '저건 좀비다'라고 주장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Q. 코로나 시기에 개봉이 되니 관객이 더 공감할 수 있는 포인트들이 있을 것도 같다.

"내가 전 국민의 심정을 알지는 못한다. 고립된 상황과 타인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고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싶다. 살아가고 생존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 시기다. '#살아있다'가 생존에 대해 다루는 만큼 더 많은 공감을 살 수 있을 것도 같다. 창작물이 어떤 시기에 공개돼 새로운 에너지가 생성되는 부분이 있다. 시대와 호흡하며 만들어지는 영화의 성질도 중요하다."

유아인은 친숙하면서도 생동감 넘치는 준우 캐릭터를 완성시켰다. 유빈의 등장까지 중후반부를 이끌며 관객들을 몰입시킨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유아인은 친숙하면서도 생동감 넘치는 준우 캐릭터를 완성시켰다. 유빈의 등장까지 중후반부를 이끌며 관객들을 몰입시킨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Q. 실제로 '#살아있다'와 같은 재난 현장이라면 어떻게 대처할 것 같나.

"사람들과 같이 도망갔다가 이틀 만에 좀비가 됐을 거다(웃음). 그게 아니면 좀비 영화를 많이 봤으니 어떻게든 생존해보겠다고 미리 물을 많이 보관해뒀을 것 같다."

Q. 초반부 홀로 오열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사실 내가 욕심을 내서 만들어진 장면이다. 대본에는 그 정도로 디테일하게 나와 있지 않다. 준우가 긴 호흡으로 오열하는 것에 대해 반대 의견을 가진 분도 많았다. 나는 도전해보고 싶었다. 고립된 인간이 느끼는 외로움을 한번 배설하고 가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혼자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하는 사람에게는 누군가의 발소리, 도어락 열리는 소리조차도 강렬할 거다."

Q. 현장에서 스태프들과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나누는 분위기였다고 했다.

"연기에 대한 의견은 많이 냈지만 큰 설정들은 건드리지 않으려고 했다. 현장에서 소통하고 의견을 내는 것들도 도전이었다. 배우로서 느끼는 자연스러운 흐름, 어떤 장면이 영화 안에서 어떤 효과를 주는지, 그냥 조금 다른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는 적극적으로 풀어내고 토론하는 게 더 좋은 현장일 거라고 생각했다."

Q. 배우로서의 마음가짐이 달라졌기 때문인가.

"'나는 배우일 뿐이고 이건 내 영화가 아니잖아'라는 생각이 예전에는 좀 있었다. 배우라는 게 능동적이지 않고 상당 부분을 그저 수행하는 데 그친다. 어디까지가 서로의 영역인지 명확하지 않은 게 집단 창작의 현장이다. 예전에는 그게 배려라고 생각해 의견을 내지 않았다. 하지만 영화에 대한 애정과 믿음이 있다면 토론을 통해 만들어지는 좋은 매듭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매듭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아니라 보람이 되는 측면이 더 큰 것 같다."

박신혜는 또 다른 생존자 유빈에 분해 유아인과 연기 호흡을 맞췄다. 후반부 두 사람은 살아남아야 한다는 목표로 의기투합한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박신혜는 또 다른 생존자 유빈에 분해 유아인과 연기 호흡을 맞췄다. 후반부 두 사람은 '살아남아야 한다'는 목표로 의기투합한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Q. 박신혜와 기대했던 연기 호흡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렇게 기대했던 부분들이 영화에 다 담겼나.

"사실 박신혜와 로맨틱 코미디를 해보고 싶었다(웃음). 아쉬운 부분이다. 하지만 되려 판에 박힌 현장에서 만나는 것보다 이렇게 재미있는 현장, 장르물로서 만다는 게 다행이기도 했다. 내가 의견을 이야기할 때 강하게 말하는 편이다. 박신혜는 그걸 다 수용하지 않고 자기 의견을 냈다. 내 이야기를 그저 수긍하는 게 아니라 서로 아이디어를 공유하며 많은 도전을 했다. 함께 결과물을 만들어보는 현장이었다. 현장에서도 일상에서도 그렇게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이 좋다."

Q. 최근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한다는 소식도 전했었다. 마음가짐의 변화가 있었던 건가.

"개인적으로 편안함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됐다. 이 이야기는 즉 그동안 편하게 살지 않았다는 거다. 불편해도 신념을 가진 채로 움직이고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걸 좋아하는 성향이다. 그 성향이 조금씩은 변하고 있다. 계속 살아가려면 쉬는 순간이 필요했다. 그 생각이 오락적인 장르물을 선택하게 했고 예능에도 나오게 했다. 삶의 권태를 새로운 시도로 환기해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내가 꿈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세상으로부터 주입된 환상 같았다. 30대가 되고 나서 많이 변했다."

Q. 번아웃이 온 것인가. 변화 끝에 이제는 많이 내려놓았나.

"일종의 번아웃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번아웃이 유행처럼 번지는 것도 같다. 집단적으로 무언가를 추구하다가 가 같이 상실을 느끼게 되지 않았나 싶다. 요즘은 관찰자의 입장으로 살고 있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삶이고 그래서 애를 덜 쓰고 싶다는 갈망도 커졌다. 몸도 마음도 힘들어질 때가 있었다. 숨가쁘게 달려온 인생이 아니라 실제로 숨이 가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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