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조진웅'] '시간' 초과, '사람 냄새' 초과
입력: 2020.06.21 00:00 / 수정: 2020.06.21 00:00
조진웅 주연의 영화 사라진 시간이 18일 개봉했다. 배우 선배이자 늦깎이 감독 정진영의 꿈을 위해 힘을 보탰다. 난해할 수도 있는 이야기 흐름 속 관객이 믿고 따라갈 수 있는 사람은 역시 조진웅이 제격이었다.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조진웅 주연의 영화 '사라진 시간'이 18일 개봉했다. 배우 선배이자 늦깎이 감독 정진영의 꿈을 위해 힘을 보탰다. 난해할 수도 있는 이야기 흐름 속 관객이 믿고 따라갈 수 있는 사람은 역시 조진웅이 제격이었다.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정제되지 않은 스타는 어떤 모습일까. 요즘 연예계는 스타도 많고, 연예 매체도 많다. 모처럼 연예인 인터뷰가 잡혀도 단독으로 하는 경우도 드물다. 다수의 매체 기자가 함께 인터뷰를 하다 보니 대부분의 내용이 비슷하다. 심지어 사진이나 영상도 소속사에서 미리 만들어 배포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더팩트>는 순수하게 기자의 눈에 비친 그대로의 스타를 '내가 본 OOO' 포맷에 담아 사실 그대로 전달한다. <편집자 주>

"'사라진 시간' 출연, 연기하는 재미 때문"

[더팩트 | 유지훈 기자] 영화와 드라마의 주인공은 뜨거운 인기를 과시하는 배우가 맡기 마련이다. 믿고 보는 배우만큼 흥행을 보증하는 '치트키'는 없기 때문이다. 내게 조진웅은 늘 작품 속 활약이 궁금한 사람이었다. 얼마 전 있었던 '사라진 시간' 시사회에서 조진웅이 가진 힘을 다시 몸소 체험했다. 주인공 형구 역을 맡은 그는 다소 난해할 수도 있는 작품을 혈혈단신 끌고 갔다. 그 어떤 배우보다 굵고 우직하게.

지난 16일 영화 '사라진 시간'의 주인공 조진웅을 만났다. 다섯 취재진이 자리에 앉았고 조진웅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대부분의 인터뷰가 그렇듯 누군가의 질문이 나오기 전까지 정적이 맴돌았다. 먼저 분위기를 환기시킨 것은 조진웅이었다. "영화들은 다 보셨나요?". 정말 취재진의 어떤 말을 하길 바랐다면 조금 더 구체적인 질문을 선택했겠지만 그는 형구 캐릭터처럼 뭉툭한 면모로 그저 침묵을 깨고 싶었을 터다. 그래서 더 꾸밈없는 사람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연기하는 재미를 빼면 출연할 이유가 없는 작품이었어요. 시나리오에 묘한 부분이 있었어요. 연기를 해보고 싶게 만드는 부분들이요. 자고 일어났더니 모든 게 변해 있을 때 형구가 어떤 표정으로 어떤 행동을 할지 상상하게 됐어요. 집에서 혼자 연습해봤는데 답이 안 나왔고 내가 이걸 현장에서 꼭 만들어봐야겠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출연하겠다고 말씀드렸죠."

사라진 시간은 미스터리 판타지 형사물 멜로 코미디가 한데 뒤섞인 독특한 작품이다. 다소 낯설 수 있지만 주연을 맡은 조진웅의 활약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재미는 충분하다. /사라진 시간 포스터
'사라진 시간'은 미스터리 판타지 형사물 멜로 코미디가 한데 뒤섞인 독특한 작품이다. 다소 낯설 수 있지만 주연을 맡은 조진웅의 활약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재미는 충분하다. /'사라진 시간' 포스터

18일 개봉한 '사라진 시간'은 의문의 화재 사건을 수사하던 형사 형구가 지금까지 모든 것이 사라지는 상황과 마주하고 자신의 삶을 찾아 떠나는 이야기를 담는다. 이 영화는 흐름도 장르적 규정도 어렵다. 그런데도 자꾸만 머릿속에 맴도는 묘한 재미가 백미다. 조진웅에게도 그랬다. 정진영에게 시나리오를 받은 그는 후배를 집에 불러들였다. 후배와 소주를 마시며 작품을 봤고 텔레비전도 켜놨다. 한번 훑어볼 생각이었던 대본집에 자꾸만 손이 가서 덮었다 펼치기를 반복했다. 영화 '독전' '끝까지 간다' tvN '시그널'에 이어 또 형사 캐릭터를 맡아도 될까에 대한 의문은 뒷전이었다.

"형사 참 많이 맡아봤었는데. '사라진 시간'의 배경이 되는 마을에 자연스럽게 들어가려면 당위성 있는 직업군이 형사뿐이었어요. 물론 우체부 같은 직업도 가능하겠지만 더 수월하고 유리했어요. 그리고 이번 형사는 그저 직업일 뿐이에요. 그냥 직업이 형사인 사람인 거죠. 저는 영화가 정말 좋았어요. 제가 출연한 작품에 만족하고 한 번 더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든 작품은 이게 처음이었어요. 머리로는 이해할 수는 없는데 가슴으로는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이었죠."

형구는 조진웅을 닮아있다. 행동에 계산이 느껴지지 않고 위기의 상황에서는 무릎을 꿇고 "모든 것을 되돌려달라"고 읍소하는 인간적인 모습도 숨겨져 있는 듯하다. 조진웅 자신도 "같은 상황에 놓여 있으면 나도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다. 믿기지 않는 상황이 펼쳐져 어리둥절해하다가 분노하고 슬퍼하고 부정했다가 이내 수긍하는 평범한 인간 조진웅이 곧 형구였다.

조진웅은 영화 독전 끝까지 간다, tvN 드라마 시그널에 이은 네 번째 형사 역할에 이제는 도가 텄다. /사라진 시간 스틸컷
조진웅은 영화 '독전' '끝까지 간다', tvN 드라마 '시그널'에 이은 네 번째 형사 역할에 이제는 도가 텄다. /'사라진 시간' 스틸컷

"형구 자체에 몸을 던졌어요. 지금까지 해왔던 작품들과 다르게 어떤 패턴을 가져갈 수가 없어요. 작품 속 내용으로 말하자면 내 아내가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어있는데 '너 내 마누라야'라고 얼마나 말하고 싶겠어요. 그런데 그걸 전할 수 없으니까 이상한 방법들로 전전긍긍하는 거죠. 그걸 표현하는 건 자연스러운 게 최고였어요. 일단 캐릭터 안에 모든 걸 던져보는 작품이라 더 욕심이 났어요. 살면서 이런 시도는 처음이었어요."

내가 조진웅에 빠졌던 것은 tvN 예능프로그램 '인생술집'의 첫방송을 보고 나서다. 임팩트가 필요했던 첫 회였던 만큼 조진웅이 게스트로 출연했다. 연기에 대한 열정, 결혼 4년 차에 아내와 숨바꼭질을 한다는 천진한 모습이 여전히 남아있다. 그 중에 가장 강렬했던 것은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를 열창하던 장면이었다. 술 냄새와 사람냄새 모두를 짙게 풍겼고 그 냄새가 브라운관을 넘어 내게 퍼져오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영화 속 조진웅이 송로주를 미친 듯이 들이켜고 만취하는 원테이크 장면은 묘한 기시감이 느껴졌다.

"술 마시는 장면을 촬영할 때 웬만하면 다 진짜 술을 마셔요. 그런데 이번엔 가짜였어요. 담금주는 마시면 바로 기절하거든요. 작품을 하기로 하고 나서 정진영 감독님의 집을 찾아갔을 때도 영화처럼 송로주를 마셨어요. 선배가 먹이시더라고요(웃음). 그래도 맛이 좋아서 기분이 좋긴 했어요. 형구가 술을 마시는 원테이크 장면은 정진영 감독님이 마음껏 연기해 보라고 판을 짜준 거였어요. 무아지경까지는 아니겠습니까마는(웃음) 내가 연기를 하고 있다는 의식이 들지 않았어요."

조진웅에 대한 가장 강렬한 인상은 tvN 예능프로그램 인생술집에서다. 당시 그는 숟가락을 들고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를 열창했다. /인생술집 캡처
조진웅에 대한 가장 강렬한 인상은 tvN 예능프로그램 '인생술집'에서다. 당시 그는 숟가락을 들고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를 열창했다. /'인생술집' 캡처

인터뷰가 30분이 넘어서자 배우라는 직업에 대한 고찰로 화제가 옮겨졌다. 형구가 주변의 모든 것이 사라진 후 큰 변화를 겪듯, 조진웅의 인생에 대한 터닝포인트를 짚어보기 위해서였다. 연극영화과 입학 후 의무적으로 봐야 했던 선배들의 무대, 그 무대가 너무 작아 눈앞에서 펼쳐진 열연의 강렬함, 부산에 있는 모든 공연장을 돌아다니며 연기했던 나날들에 대한 회상이 이어졌다. 안광인지 천진함인지 알 수 없는 큰 눈이었다. 머리를 쓸어 올렸고 목소리도 커졌다. 연극은 지금의 조진웅도 뜨겁게 만드는 대화 주제였다.

"7년 전쯤에 무대인사 끝내고 내려왔더니 한 분이 '조진웅씨 연극 한번 봅시다'라고 하시는 거예요. 제 손을 꽉 잡으면서요. '안될 것 같아요' 했어야 했는데 꼭 하겠다고 했었어요. 그게 지금도 짐처럼 느껴져서 꼭 하고 싶어요. 매해 지나가면서 '내가 다시 연극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긴 해요. 만약 무대에 서게 되면 완벽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갈망은 항상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제가 영화도 이렇게나 잘하는데(웃음) 전공이었던 연극은 또 얼마나 잘하겠어요."

주어진 시간은 50분이었지만 조진웅의 인터뷰는 6분이 초과됐다. 다음 인터뷰를 준비해야 하는 현장 담당자들이 일어나 정리하려 했지만 조진웅은 끊임없이 이야기를 꺼냈다. 늦깎이 신인 감독 정진영에 대한 신뢰, 그에 이어 자신이 연출을 맡은 단편 영화에 대한 소개, 그리고 그 단편이 인정받아 장편의 상업 영화로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초과한 6분을 가득 채웠다. 인사를 끝내고 돌아서는데 "몇 분 얘기 안 한 것 같은데 벌써 한 시간이네"라고 등 뒤에서 툭 뱉는 말이 또 진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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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기획팀 | ssent@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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