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지광은 '미스터 트롯' 본선 2차 경연인 1대1 데스매치에서 자신의 매력적인 저음 톤을 잘 살릴 수 있는 이장희의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를 불러 '동굴 저음'이란 수식어를 얻었다. /이덕인 기자 |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전전, '미스터 트롯' 후 인생역전
[더팩트|강일홍 기자] 류지광(35)은 TV조선 트로트 서바이벌 프로그램 '미스터 트롯'으로 인생역전을 일궜다. 트로트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폭발하면서 무명의 한을 풀었다. 코로나 정국에 콘서트가 중단된 상황에서도 그는 쏟아지는 방송 스케줄로 누구보다 바쁜 시간을 소화한다.
"아무리 많은 스케줄이라도 지치지 않을 자신이 있어요. 지난 두 달간 거의 매일이다시피 방송에 출연한 듯해요. 힘든 시간이 길었던 만큼 행복의 크기도 다른 것 같아요. 가까운 지인들 중엔 단지 제가 TV에 나오고, 세상 사람들로부터 주목을 받는다는 것만으로도 감격스러워 해요. 그럴수록 초심을 잃지 말아야죠."
그가 대중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건 중학생 시절 길거리 캐스팅으로 처음 연예인 꿈을 키운 지 20년 만이다. '미스터 트롯' 이전까지 미스터월드, SBS 슈퍼모델, tvN 슈퍼스타K, JTBC 팬텀싱어 등 그 사이 숱한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에 도전해 입상 등 의미있는 성과를 내고도 절망과 좌절의 연속이었다.
류지광이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슈퍼스타K'(2011년) 직후다. 그는 전국에서 무려 240만명이 지원한 오디션에서 24위에 올랐지만 결국 탈락했다. 당시 상황에 대해 류지광은 "매번 주변의 권유에 떠밀리듯이 도전에 나섰다"면서 "연예계 진출을 목맸다기보다는 꼭 한번은 인정받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단 한번도 스스로는 탁월하다고 생각해본 일이 없다"고 겸손해 하면서도 "어려서부터 늘 끼를 발산하는데 자질이 있다는 칭찬을 듣고 자랐다"고 했다. 다만 초등학교 6학년 무렵 집안에 닥친 경제적 어려움(부모님 빚보증)이 가중되면서 예능 진출을 위한 체계적 관리나 기회는 잡을 수 없었다.
다소 늦은감은 있지만 '미스터 트롯'은 처음으로 대중 앞에 그의 존재감을 확인시킨 프로그램이 됐다. 그를 바라보는 대중의 팬심도 '그동안 걸어온 가시밭길 대신 꽃길만 걸어가달라'는 간절한 바람이다. 자칭 '화려한 백수'에서 '트로트 귀공자'로 거듭난 류지광의 얘기를 직접 들어봤다. 스페셜인터뷰는 지난 5일 서울 상암동 <더팩트> 사옥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힘든 시간이 길었던 만큼 행복의 크기도 다른 것 같아요. 감사한 만큼 초심을 잃지 말아야죠." 스페셜인터뷰는 지난 5일 서울 상암동 더팩트 사옥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이덕인 기자 |
-'미스터 트롯'을 통해 탄생한 트롯맨 중 가장 확실한 색깔을 가진 가수로 꼽는 데는 다름 아닌 '저음 보이스' 때문이다. 언제부터 구사하게 됐나?
누군가로부터 인정받는다는 건 정말 축복인 것 같아요. '동굴저음'이라는 단어가 저를 상징하는 단어가 됐잖아요. 더구나 그 대상이 수많은 대중이라서 저는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사실 저음 목소리에 처음 눈을 뜬 것은 '팬텀싱어' 시즌1에 출연했을 때예요. 당시 최종 우승팀 포르테 디 콰트로 멤버 중에 손태진이란 친구가 있었는데 목소리 매력에 빠져 연습을 많이 했어요. 저는 저음부터 고음까지 다른 사람들보다 비교적 음폭이 넓은 편인데, 일반적인 저음보다 한옥타브 아래 음역대가 가능한 목소리라고 들었어요.
류지광이 시청자들의 뇌리에 가장 깊게 각인시킨 무대는 '미스터 트롯' 본선 2차 경연인 1대1 데스매치다. 당시 그는 자신의 매력적인 저음 톤을 잘 살릴 수 있는 이장희의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를 불러 '동굴 저음'이란 수식어를 얻었다. 상대는 최종 우승자 임영웅이었지만 류지광만의 강렬한 목소리 톤은 지금도 시청자들의 귀에 긴 여운으로 남아 있다. 배호의 '돌아가는 삼각지', 하수영의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 프랭크 시내트라의 '마이웨이', 그리고 드라마 '모래시계' 주제가로 유명한 이니오시 코브존의 '쥬라블리'(백학) 등도 그가 부르면 색깔이 더욱 강렬해지는 노래다.
-원래 트로트 가수로 활동할 생각은 아니었던 것으로 안다. '미스터 트롯'에 출전하게 된 계기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아직 인생을 논할 나이는 아니지만, 조금 살아보니 삶이란 게 처음 마음 먹은대로 흘러가는게 아니더라고요. 중학교 때 길거리 캐스팅되면서 연기자를 꿈꿨고, 20년이 지난 지금 저는 가수로 관심을 받고 있어요. 많은 서바이벌 오디션프로그램에 도전한 건데 뭐든 제 특기를 살릴 수 있는 일이라면 가리지 않았어요. 나름 의미있는 결과를 내고도 지속적인 조명을 받지 못한 건 아쉬워요. '팬텀싱어' 직후엔 팝페라 가수로 활동했지만 대중적 장르가 아니다 보니 한계가 있더라고요. 무엇보다 공연 수입이 많지 않아 생활이 힘들었어요. '미스터 트롯'은 결과적으로 저한텐 돌파구의 불씨가 돼 준 거죠."
지난 2017년 1월 종영한 JTBC 오디션 프로그램 '팬텀싱어'에 출연했던 류지광은 '미스터트롯'에 도전하기 전까지 팝페라 가수로 활동했다. 앞서 미스터월드, SBS 슈퍼모델, tvN 슈퍼스타K 등에도 출연했다. 그는 "반복된 도전을 통해 내재된 끼를 분출하고 나면 늘 허탈했던 것 같다"면서 "매번 막다른 골목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으려다 보니 비슷한 반복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미스터트롯' 출연 계기에 대해서는 "다 포기하고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려던 상황에서 결심한 마지막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전국투어 콘서트 멤버에 들어갔으니 당초 목표는 달성한 셈이죠." 류지광은 "오디션에 참가하면서 준비한 것에 비해 과분한 성과를 냈다"고 자평했다. 사진은 '미스터 트롯' 멤버들과 함께한 모습. /아랑엔터테인먼트 제공 |
-'미스터 트롯'에선 최종 라운드 문턱에서 안타깝게 고배를 마셨다.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많은 시청자들이 감동을 받았는데 아쉬움은 없나?
왜 아쉬움이 없겠어요. 겉으론 쿨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솔직히 좀 슬펐어요. 가족들과 지인들은 그런 대범해보이는 모습 때문에 더 눈물이 났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아쉬움은 당시 순간일 뿐이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자체만으로 얼마나 많은 걸 이뤘는지 깨닫게 됐어요. 또 애초 전국투어 멤버에만 들어도 대성공이란 생각이었기 때문에 제 꿈과 목표를 충분히 달성했다는 점에서 저는 대만족이에요. 오디션에 참가하면서 준비한 것에 비하면 과분할 만큼 큰 성과를 낸 거니까요.
류지광은 준결승 레전드 미션(결승 진출 라운드)에서 김호중과 대결했다. '개인전'(1라운드) '한곡 미션'(2라운드)을 통해 설운도의 '다시 한번만'을 김호중과 번갈아 부르고, 2라운드에선 남진의 '사랑하며 살테요'를 불렀다. 마스터들의 엇갈리는 평가에 시청자들도 탄성을 지을 만큼 아쉬움이 컸다. 앞서 배호의 '돌아가는 삼각지'(100인 예심) 남진의 '모르리'(본선 1차전) 등 본선 1차전부터 임영웅 강태관 황윤성과 함께한 뽕다발 메들리 기부미션(본선 3차전)까지 그는 부르는 노래마다 뚜렷한 색깔을 드러냈다.
-그동안 해보지 않은 일이 없을 정도로 다양한 알바를 했다고 들었다. 특별히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된 이유라도 있었나.
사실 어린 시절엔 경제적으로 크게 어려울 일이 없었어요. 부잣집은 아니어도 아버지가 가장으로서 경제적 뒷받침을 충분히 하셨고 엄마도 외국은행 국내 지점에 근무한 뱅커였으니까요. 평탄하던 집안이 기운 건 빚보증이 잘못되면서부터인데요. 이 일로 부모님 모두 실직하고 빚을 갚기 위해 온갖 허드렛 일을 다 하셨죠. 웬만큼 빚을 청산한 뒤엔 고깃집을 차렸는데 온 식구가 매달리고도 타산을 맞추지 못해 망했어요. 설상가상 아버지가 심장병으로 쓰러지시면서 쪼들리는 생활을 벗어날 수가 없었고요. 저 역시 가족을 위해 닥치는대로 일할 수밖에 없었어요.
류지광은 꿈을 활짝 피울 청소년기 내내 힘든 삶을 살았다. 10대 중반 이후 기획사에 처음 몸담은 20대 초반까지 집안에 안 좋은 일이 자꾸 겹쳤기 때문이다. 대성기획(DSP)의 연습생으로 들어가는 행운을 잡았지만, 소속사 대표(고 이호연 회장)가 쓰러지면서 물거품이 됐다. 군 입대 직후엔 아버지가 쓰러져 가세가 더욱 기울었다. 커피숍 알바를 시작으로 PC방, 독서실, 주점, 조개구이집 등을 전전하며 생계에 힘을 보탰다. 그는 "아무리 힘들어도 가족을 위한다는 마음에 용기를 잃지 않았다"면서 "오디션프로그램 등에 간간이 도전장을 내며 포기하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고 말했다.
류지광은 '미스터 트롯' 방영이 끝난 직후부터 지상파와 종편 채널 프로그램을 거의 대부분 섭렵했다. TOP7 멤버들 못지 않게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이덕인 기자 |
-요즘 방송을 틀면 거의 매일 등장할 만큼 스케줄이 많은데 긴 무명 세월을 겪어야 했던 고난의 시기와 비교하면 어떤 마음인가.
고진감래라고 생각해요. 돌이켜 보면 지난 20년간 희망과 기대, 절망과 좌절을 거듭한 시기였어요. 아예 가능성조차 없었다면 일찌감치 포기했을텐데 그만 두려고 맘 먹으면 일이 생기고, 막상 기대를 갖고 뛰어들면 다시 기약없는 기다림의 연속이었죠. 이른 나이에 많은 걸 겪어봐서 웬만한 건 결딜 만한 내공이 생겼는데도 같은 일이 반복되니 힘들더라고요. 주변에서는 더 늦기 전에 직장을 가지라고 했는데 그럴 때마다 부모님의 격려와 위로가 항상 큰 힘이 됐어요. 그동안 노력하고 땀 흘린 보상을 받는 것같아 힘든 줄 모르고 더 열심히 하게 되는 것같아요. *고진감래(苦盡甘來: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
류지광은 '미스터 트롯' 방영이 끝난 직후부터 지상파와 종편 채널 프로그램을 거의 대부분 섭렵했다. TOP7 멤버들 못지 않게 큰 관심을 받았다. 그가 유독 주목을 받은 것은 '동굴 저음'으로 불리는 그의 독특한 음색 덕분이다. 데뷔 이후 걸어온 힘든 과정을 조망한 프로그램을 통해 찡한 감동을 안기기도 했다. 그는 "트로트 서바이벌을 하면서 현역 가수들에 비해 음악적으로는 솔직히 부족함을 많이 실감했다"면서 "코로나로 인해 곧바로 콘서트가 진행되지 못한 아쉬움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공백기간에 방송을 하며 많이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5호선 여인'이란 신곡이 나왔다. 지하철을 배경으로 만든 노래라고 들었는데 팬들을 위해 어떤 곡인지 설명해달라.
네 맞아요. 제 신곡 '5호선 여인'은 과거 사랑했던 여인과 쏙 빼닮은 여성을 바라보며 추억에 잠긴다는 설정으로 만든 곡이에요. 얼마전 라디오 등에 소개됐는데 빠른 반응에 저도 놀랐어요. 서울 지하철은 전 세계적으로도 손색없을 만큼 잘 돼 있다고 하잖아요.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대중교통 수단인 만큼 누구라도 추억과 애환이 많을 수 밖에 없어요. 지하철을 타고가다 우연히 아는 사람을 만난 기억은 한두번씩 있을텐데요. 일상을 살며 가장 가까운 곳, 가장 흔히 접하는 공간인데 무심코 지나쳤다면 제 노래를 통해 한번쯤 추억을 음미해볼만하죠.
싱어송 라이터 추가열이 작곡한 '5호선 여인'(이건우 작사)은 대중 교통이 소재인 만큼 누구나 따라할 수 있게 쉬운 정통 트로트 멜로디로 단순화했다. 가사 역시 대중성에 초점을 맞췄다. 고음부터 중저음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류지광 특유의 목소리에 실려 친근감을 더해주고 있다. 지하철 특성을 살린 일명 '덜컹덜컹 춤'과 뮤직비디오도 준비 중이다. 뮤직비디오에 대해 그는 "지하철을 배경으로 한 영상을 함께 홍보하면 좋겠다는 주변의 권유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모님을 위해서라면 뭐라도 다 해드리고 싶다." 유년 시절 남부럽지 않게 자랐지만 빚보증으로 가세가 기운 뒤 커피숍, PC방, 독서실, 주점, 조개구이집 등을 전전하며 알바로 생계에 힘을 보탰다. /아랑엔터테인먼트 |
-트롯스타로 급부상한 뒤 중년의 누나 이모팬들이 많이 생겼다. 마지막으로 평소 생각하는 결혼관이나 원하는 배우자 스타일, 기대와 소망이 있다면?
30대 중반의 나이가 됐지만 결혼에 대한 절박함은 없어요. 어쩌면 오랜 기간 저를 둘러싸고 있던 미래의 불확실성이 가로막았는지도 모르죠.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런 호사나 여유를 가질 정신이 없었어요. 독신주의자가 아니니 좋은 분이 생기면 결혼을 피할 이유는 없어요. 외모보다는 부모님이나 어르신들한테 효도하고 공경하는 분이라면 만사 오케이입니다. 아마도 그런 분은 심성이 착할 거라고 생각해요. 부족한 건 서로 조금씩 양보하거나 맞춰가면 그만이고요. 다만 취미가 운동과 여행을 좋아하는 저와 비슷하면 좋겠다는 생각은 해요.
그의 원래 꿈은 축구선수였다. 성인이 된 지금도 3개의 클럽 멤버로 뛸 만큼 축구를 좋아한다. 평소에도 격렬한 체력운동을 좋아하는 그는 "보는 걸로 만족하지 않고 직접 몸으로 뛰는 걸 즐긴다"고 말했다. 축구선수 꿈은 중학교 때 길거리 캐스팅 되면서 연예인으로 방향이 바뀌었다. 그리고 20년이 지났다. 그는 "멀고 지루한 길, 포기할까도 생각했지만 끝까지 달려온 보람이 있다"면서 "대중스타로 거듭나 내 꿈과 삶을 진솔하게 그려가고 싶다"고 다짐했다.
류지광은 "어려서부터 늘 끼를 발산하는데 자질이 있다는 칭찬을 듣고 자랐다"고 했다. 사진은 미스터월드(탤런트 부문 1위, 세계 15위)에 출전했을 당시 모습. /아랑엔터테인먼트 제공 |
2남 중 둘째인 류지광은 보기 드문 효자다. 부모의 건강과 행복은 필생의 소망이 됐다. "부모님을 위해서라면 할 수 있는 건 뭐라도 다 해드리고 싶다." 최근 JTBC '가장 보통의 가족'에 출연한 류지광은 자신이 아르바이트를 하던 횟집에 부모를 초대하는 깜짝 이벤트로 찡한 감동을 안겨주기도 했다.
그는 성격상 외향적이기보다는 조용한 쪽에 가깝다. 또 불의를 용납하지 않는 스타일이어서 스스로에게도 엄격한 편이다. 물론 어려운 가정환경을 견디며 헤쳐나오는 과정에서 터득한 깨달음도 있다. 그는 "만나는 사람들과 둥글둥글 어울리며 살아야 편하고 무난하더라"고 했다.
힘든 과거를 거치며 더 심지가 굳어지고 단단해졌다. 그는 "행여 이른 나이에 벼락인기를 얻었다면 오히려 더 힘들어졌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타고난 재능도 피나는 노력과 연습을 거쳐야 빛을 낸다. 인터뷰 전과 후의 그는 달라보였다. 인터뷰 내내 밝은 모습과 함께 겸손함도 잃지 않았다. 고난과 역경을 딛고 트로트 스타로 탄생한 류지광은 보석처럼 빛나는 가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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