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초점] '사냥의 시간', 불가항력과의 추격전
입력: 2020.04.28 05:00 / 수정: 2020.04.28 05:00
우여곡절 끝에 사냥의 시간이 베일을 벗었다. 완성도는 높지만 반응은 엇갈린다. /사냥의 시간 포스터
우여곡절 끝에 '사냥의 시간'이 베일을 벗었다. 완성도는 높지만 반응은 엇갈린다. /'사냥의 시간' 포스터

넷플릭스 택한 기대작…관객들에 남는 아쉬움

[더팩트 | 유지훈 기자] '사냥의 시간'이 드디어 베일을 벗었다. 누군가는 '쫄깃'하다고 칭찬하지만, 다수는 '난해'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 작품이 스크린을 통해 공개됐어도 반응이 같을까. 외부의 개입이 차단되고 널찍한 스크린이 눈앞에 있으며, 5.1채널 돌비 사운드가 마련된 영화관이었다면 모두 숨죽여 이를 지켜보지 않았을까.

'사냥이 시간'은 지난 2월 관객들을 만날 예정이었다. 관객과 평단 모두에게 호평을 받았던 영화 '파수꾼'의 연출을 맡은 윤성현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그 작품에서 함께 호흡을 맞췄던 이제훈과 박정민, '기생충' 최우식,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안재홍이 출연하기 때문에 2020년 관객들이 손꼽아 기다리던 기대작 중 하나였다.

이 기대작이 관객들을 만날 준비에 분주하던 사이 영화계는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았다. 대중은 바이러스의 공포에 극장으로 향하던 발길을 돌렸고 국내 주요 멀티플렉스 영화관인 CGV는 35개, 메가박스는 10개 지점의 영업을 중단했다. 영화관이 문을 닫자 주변 상권도 도미노처럼 무너졌다. 영화산업 자체가 뒤흔들린 셈이었다.

영화관이 문을 걸어 잠그는 동안 뉴미디어의 물결은 거세졌다. OTT(Over The Top, 인터넷을 통해 TV 영화 등 미디어 콘텐츠를 제공하는 서비스)는 방송 프로그램 애청자들을 넘어 외출을 꺼리는 영화 팬들에게도 볼거리를 끊임없이 쏟아냈다. 미국이 코로나19 대응 차원에서 전국 단위의 '셧다운' 조치를 시행하자 넷플릭스의 주가는 치솟았고, 지난 16일에는 역대 최고액인 449.52달러를 찍기도 했다.

사냥의 시간을 연출한 윤성현 감독은 넷플릭스에서 사운드에 심혈을 기울였으니 극장에서 봐달라고 밝히기도 했다. /넷플릭스 제공
'사냥의 시간'을 연출한 윤성현 감독은 넷플릭스에서 "사운드에 심혈을 기울였으니 극장에서 봐달라"고 밝히기도 했다. /넷플릭스 제공

'사냥의 시간'은 개봉이 차일피일 미뤄졌고 고민 끝에 넷플릭스에 몸을 실었다. 이 과정에서 배급사 리틀빅픽쳐스와 이미 30여 개국에 해외 판권을 팔았던 콘텐츠판다 사이의 잡음이 일었다. 좀처럼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했던 두 회사는 극적으로 합의했다. 작품은 우여곡절 끝에 지난 23일 전 세계에 공개됐다.

"모든 관객들이 집에 5.1채널 사운드 시스템을 구축했다면 정말 좋겠죠. 하지만 그런 분들은 거의 없을 거예요. 어떤 분들은 TV에 내장된 사운드를 통해, 어떤 분들은 스마트폰으로 작품을 관람할 겁니다. 제가 공들인 사운드를 고스란히 전달해드리기는 어려울 거라고 봐요. 그런 부분들이 조금은 신경 쓰입니다."

윤성현 감독은 <더팩트>와 인터뷰에서 사운드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아쉬움을 내비치기도 했다. 베를린영화제 기자회견에서 "영화가 시도할 수 있는 과감한 단계까지 사운드를 디자인하고 싶었다"며 '사냥의 시간'을 극장에서 봐줄 것을 적극적으로 권장했던 그였다. 하지만 그의 뜻은 현실로 이뤄지지 않았다.

윤 감독은 '비주얼 텔러'라는 수식어로 불릴 정도로, 영상미에서도 탁월한 연출력을 보여왔다. '사냥의 시간'은 대한민국을 '지옥'으로 해석, 영화 전반적으로 붉고 어두운 톤을 유지했다. 이는 캐릭터들의 쫓고 쫓기는 연출과 맞닿아 폭발적인 서스펜스를 안긴다. 인터뷰에서 윤 감독은 "붉은 라이트를 과감하게 사용했다. 일반적인 상업 영화에서 이런 톤을 유지하기 어렵다"며 "연출가의 입장에서 밀어붙이느라 힘들었던 것 중 하나"라고 말했지만, 그가 심혈을 기울인 비주얼은 널찍한 스크린이 아닌 브라운관과 스마트폰 화면 밖을 나오지 못했다.

윤성현 감독은 지옥이 된 대한민국을 표현하기 위해 붉은 톤의 빛을 영화 곳곳에 담았다. /사냥의 시간 스틸컷
윤성현 감독은 지옥이 된 대한민국을 표현하기 위해 붉은 톤의 빛을 영화 곳곳에 담았다. /'사냥의 시간' 스틸컷

그럼에도 윤 감독은 넷플릭스를 통해 개봉된 작품에 대해 만족감을 보였다. "더 이상 (개봉을) 기다리지 않아도 됐다" "전 세계 관객들까지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서 기쁘다"는 것이었다. 만약 넷플릭스가 아니었다면 개봉은 더욱 늦춰져 부풀었던 관객들의 기대마저 낮아진다. 이해관계에 얽혀있던 회사들 역시 수익에 대한 고충을 안고 기다려야만 했을 것이다. 종합 예술이라고 읽히는 영화지만 결국 자본으로 귀결되는 것 역시 영화다.

'사냥의 시간'의 한(박해수 분)은 네 친구를 좇으며 보는 이의 숨통을 조여온다. 아무리 발버둥 치려 노력해도 불사신처럼 살아나는 그는 절대자이자 불가항력이다. 그는 붉고 어두운 톤의 아이콘 넷플릭스를 연상시킨다. 넷플릭스의 불가항력은 앞으로 더 자주 영화산업에 영향을 끼칠 예정이다.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부디 그 과정이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하는 세계 곳곳의 몇몇 번역가들의 무지와 함께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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