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일홍의 스페셜인터뷰84-조영구] '14전15기'로 다진 '멀티 방송인'..."좌절은 없다"
입력: 2020.04.13 06:00 / 수정: 2020.04.13 06:00
조영구는 아나운서 개그콘테스트 등 각종 방송사 시험에서 무려 14번이나 탈락했다. 연예계 진출은 그에게 엄청난 벽이었지만, 힘들게 통과한 만큼 남들보다 두 배 세 배 더 땀 흘려 입지를 다졌다고 말했다. /임영무 기자
조영구는 아나운서 개그콘테스트 등 각종 방송사 시험에서 무려 14번이나 탈락했다. 연예계 진출은 그에게 엄청난 벽이었지만, 힘들게 통과한 만큼 "남들보다 두 배 세 배 더 땀 흘려 입지를 다졌다"고 말했다. /임영무 기자

'근면 성실' 방송 아나운서, 리포터, 전문MC에서 가수 변신

[더팩트|강일홍 기자] 연예계는 한 두 가지 재능만 가져도 탤런트로 불리는 곳이다. 조영구(52)는 그야말로 끼 충만한 만능스타답게 일곱색깔 무지개로 연예계에 자리를 굳혔다. 아이돌 같은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 적은 없지만 방송 리포터로, 예능MC로, 가수로 숨가쁘게 달려온 그의 입지는 끊임없는 도전 정신으로 밑바탕을 닦은 만큼 화려하고 탄탄하다.

조영구의 매력은 한 마디로 부지런함이다. 근면 성실함에 타고난 붙임성까지, 마당발 인맥을 자랑하는 그는 전국 곳곳에 우군들이 수두룩하다. 방송이든 행사 MC든 자신을 기용하면 '실패가 없다'는 전설을 만들며 스스로 입지를 일궈냈다. 평소 스케줄 많은 연예인 중 한 명으로 통하는 비결이기도 하다.

"이 세상에 그냥 얻어지는 것은 없다. 노력해서 안되는 일도 없다." 조영구의 삶은 끊임없는 도전의 연속이다. 가수가 되기 위해 매번 탈락의 좌절을 겪으면서도 강변가요제와 대학가요제 등에 끝없이 도전했다. KBS1 '전국노래자랑'(청주편)에 도전해 우수상을 수상하며 그는 처음으로 '노력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확인했다.

누구도 거들떠 보지 않는 시기도 있었다. 초중등 학창시절엔 아예 바보취급을 받은 적도 있다. 그는 "가정 형편이 곤궁하다보니 육성회비는 커녕 기본 학용품조차 준비하지 못해 친구들한테 왕따를 당하기 일쑤였고, 그래도 숙명처럼 견뎠다"고 말했다. 그의 연예계 진출은 어려서부터 자신을 짓누른 이런 가난의 틀을 극복하려는 의도가 컸다.

보잘것없는 외모에, 맨손인 그에게 연예계는 엄청난 벽이었다. 94년 SBS 전문MC 공채 1기(황수정 김시연 문혜정 지석진 등이 동기)로 합격하기까지 아나운서 개그콘테스트 등 각종 방송사 시험에서 무려 14번이나 탈락했다. 조영구는 "서울과 지방을 막론하고 방송사에서 공개모집하는 시험에는 거의 다 지원했던 것같다"고 말했다.

남들보다 두 배 세 배 노력이 필요했다. 유명 MC전문가들의 진행 장면을 녹음해 수백 번 따라듣고 외웠다. 짧은 대사 한 마디에 10시간 이상 반복해 외우고 연습했다. 운도 따랐다. 훗날 자신의 인생 멘토가 된 김병찬 아나운서와의 인연은 행운이었다. 숱한 고난과 역경을 딛고 '만능' 엔터테이너로 우뚝 선 그를 직접 만났다. 스페셜인터뷰는 지난 10일 서울 상암동 <더팩트> 사옥에서 2시간동안 진행됐다.

끊임없는 도전의 연속. 조영구는 가수가 되기 위해 매번 탈락의 좌절을 겪으면서도 강변가요제와 대학가요제 등에 끝없이 도전했다. 그는 숱한 고난과 역경을 딛고 만능 엔터테이너로 우뚝 섰다. 스페셜인터뷰는 지난 10일 서울 상암동 <더팩트> 사옥에서 2시간동안 진행됐다. /임영무 기자
끊임없는 도전의 연속. 조영구는 가수가 되기 위해 매번 탈락의 좌절을 겪으면서도 강변가요제와 대학가요제 등에 끝없이 도전했다. 그는 숱한 고난과 역경을 딛고 '만능' 엔터테이너로 우뚝 섰다. 스페셜인터뷰는 지난 10일 서울 상암동 <더팩트> 사옥에서 2시간동안 진행됐다. /임영무 기자

-가수 데뷔 이후 방송과 지역 행사 MC 스케줄이 더 많아졌다고 들었다. 원래 트로트 가수들의 콘서트나 연말 디너쇼 단골 게스트로 유명하지 않나.

그러게 말예요, 조영구는 무슨 복을 이렇게 타고났나 몰라요. 한 가지만으로 사랑받기도 쉽지 않은데 과분하게도 저는 특별한 관심을 받는 셈이죠. 다만 세상 일은 그냥 얻어지는 게 없다는 게 제 믿음이라, 지금껏 살면서 행운이나 요행을 바란 적은 없어요. 보잘것 없던 신인 때 가졌던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조영구라면 믿고 맡길 수 있다'는 걸 확인시켜준다는 마음가짐으로 뛰어다닙니다. 그게 바로 상대방을 감동시키고 선순환의 매개체로 작용해요. 요즘이야 코로나로 모든 행사 일정들이 올스톱 돼 부득이한 경우가 됐지만, 평소 같으면 강 기자님과 인터뷰하는 시간조차 이처럼 여유롭지 못했겠죠.

조영구는 가수로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각종 무대에서 자신을 찾는 일이 더 많아졌다고 한다. 지난해 연말 치러진 20여개의 트로트가수 디너쇼 중 절반 가까이 무대에 섰다. 그에 대한 수요가 커진 것은 유쾌한 MC를 넘어 가수로 당당히 레퍼토리를 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일반 콘서트 무대도 그렇지만 디너쇼는 해당 가수들의 열성팬이 주로 오기 때문에 찬조 출연하는 게스트한테도 친화력이 크다"면서 "솔직히 말하면 몇 군데는 평소 친분을 내세워 제가 부탁한 곳도 많다"고 말했다.

-원래 가수가 꿈이었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MC로 이미 명성을 날리고 있지 않나. 가수로 다시 시작하는 게 쉽지는 않을텐데 굳이 고집하는 이유가 있나.

한번 굳어진 이미지는 좀처럼 바뀌지 않더라고요. 저를 좀 잘 안다는 분들조차도 제가 음반을 내고 가수로 활동하는 걸 그냥 재미삼아 심심풀이로 한다고들 생각해요. 저는 목숨을 걸고 매달리는데도 말예요. 음반을 처음 낸 것도 아니거든요. 아마도 MC와 병행을 하니 가수란 신분에 대해선 진지하게 생각하시지를 않는 것 같아요. 마이크를 잡는 모든 MC들이 마찬가지이지만, 노력에 비해 가성비가 턱없이 낮아요. 사회를 세 번쯤 맡아야 히트곡 있는 가수 한 번의 개런티와 맞먹으니까요. 노력하면 반드시 성공한다는 사실을 제가 입증해낼 생각입니다. 이번이 세번째 가수 도전이거든요.

가수에 대한 집념은 그가 선호하는 프로그램만 봐도 알 수 있다. MBC 12개 네트워크사가 공동 제작해 방영하는 '가요베스트'를 비롯해 '쇼 뮤직파워', '낭만트롯', '쇼 성인가요베스트' 등 주로 음악프로그램 MC를 도맡고 있다. 조영구는 방송 진행 프로그램을 잡을 때 노래를 홍보할 수 있는 기준이 많이 좌우했다고 솔직히 털어놨다. 그는 "MC를 하면서 노래를 부르는 무대 위 가수들이 항상 부러웠다"면서 "이제는 저도 노래를 부를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음악 프로그램 특성상 MC로 진행을 하다보면 자신의 노래를 부를 기회는 많다고 했다.

조영구는 지난해 연말 치러진 20여개의 트로트가수 디너쇼 중 절반 가까이 무대에 섰다. 그는 믿고 맡길 수 있다는 걸 확인시켜주는 마음가짐으로 뛰어다닌다고 말했다. /임영무 기자
조영구는 지난해 연말 치러진 20여개의 트로트가수 디너쇼 중 절반 가까이 무대에 섰다. 그는 "믿고 맡길 수 있다는 걸 확인시켜주는 마음가짐으로 뛰어다닌다"고 말했다. /임영무 기자

-요즘 트로트곡 '야 이사람아'를 열심히 부르고 있는데 반응이 나쁘지 않다. 첫 음반을 낸 것은 꽤 오래됐다고 들었는데 이제서야 가수로 인식하는 것 같다.

노래는 중학교 때 충주 달천강 다리 밑에서 매일 목에 피가 터져라 노래를 부른 게 전부예요. 그러다가 '전국노래자랑'에서 우수상을 받으면서 처음으로 소질을 인정받았어요. 방송 리포터와 MC로 제법 돈을 벌었을 때 노래를 함께 부르자며 유혹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듀엣으로 '좋아 좋아'란 곡을 만들어 불렀고, 싱글곡 '세월아 세월아'는 하필 세월호 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한달도 안돼 중단했죠. 이후에도 싱글곡 '사랑벌' '무심한 달력' '차가운 눈물' 등을 냈는데 모두 흔적도 없어요. 지금 부르는 '야 이사람아'는 노래가 좋다기보다는 하도 홍보를 많이 하고 다녀서 많이 익숙해진 것같아요.

그는 어렵사리 대학에 진학한 뒤 꿈에 그리던 강변가요제와 대학가요제에 도전했지만 번번이 예심부터 탈락했다. 실의에 잠겨있던 그는 1991년 '전국노래자랑' 청주편에 출전해 우수상을 받는다. 그는 "그때까지 워낙 실패와 탈락에 익숙해 있어서 새로운 세상을 본듯했다"고 회상했다. 과연 이후론 승승장구했다. SBS 조용필 모창대회에서 1등을 하고 당시 최고 인기였던 '주병진쇼'에 게스트로 출연해 조용필의 '모나리자'를 멋들어지게 불러 유명해기기 시작했다. 비록 이미테이션이긴 했어도 노래엔 소질이 있었고, 훗날까지 가수 꿈을 내려놓지 못하는 이유다.

-무슨 일이든 남들보다 더 열심히 땀 흘리며 노력하는 이유가 있다고 들었다. 학창시절 돈이 없어 맘껏 공부하지 못한 아픈 기억 때문인가.

제가 세 살 때 아버님이 논밭을 모두 팔아 충주시로 이사를 했어요. 처음엔 가족을 건사하려고 이것 저것 열심히 하시려고 했다는데 농사만 짓던 분이라 도시에서 적응하시기는 힘드셨겠죠. 주변사람들한테 속아 사기도 좀 당하고 하니 나중엔 자포자기가 돼 술로 날밤을 샜다고 들었어요. 사회 낙오자가 되신 아버지가 생업을 포기하니 가족 생계는 모두 어머니가 책임져야했어요. 온 가족이 먹고 사는 일로 힘들었는데 저는 초등학교부터 신문배달을 해야했어요. 어리다고 맘 편히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이 안됐죠.

조영구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대학진학은 엄두도 못냈다. 그는 "사실 집에서 원치를 않아 건성으로 지원하고 시험을 보긴 했다"면서 "막상 불합격 됐다고 하니 엄마가 더 기뻐하더라"고 했다. 처음엔 충주 비료공장에 취직했다. 친구를 따라 서울 용두동 가야금 공장에 들어갔다가 돈을 더 많이 준다고 해 포천 돌산에서 잡부로 일했다. 그는 "돌을 캐고 나르면서 가수가 되고 싶은 욕구를 더 키웠고, 가수가 되려면 대학에 가야한다는 일념 뿐이었다"고 말했다. 두 달 남짓 일해서 번 돈으로 왕십리 EMI 입시학원에 근로장학생으로 들어가 공부한 끝에 충북대 회계학과에 입학했다.

김병찬 선배는 저의 인생 멘토 최고 인기 아나운서였던 김병찬은 조영구를 친동생처럼 보살피며 방송진출을 위한 토양을 만들어줬고, 이후 그는 특유의 붙임성과 성실 근면함으로 승승장구한다. /더팩트 DB
"김병찬 선배는 저의 인생 멘토" 최고 인기 아나운서였던 김병찬은 조영구를 친동생처럼 보살피며 방송진출을 위한 토양을 만들어줬고, 이후 그는 특유의 붙임성과 성실 근면함으로 승승장구한다. /더팩트 DB

-힘들었던 유년시절과 비교하면 대학 때는 위상이 크게 달라졌다고 들었다. 인생의 멘토인 김병찬 MC와는 어떤 인연으로 만나게 됐는지도 궁금하다.

중고등학교 때는 학교에서 미운오리새끼였어요. 도화지나 물감 같은 것을 준비해가지 못하니 우선 동급생들이 업신여기고 왕따를 시켰죠. 선생님들도 육성회비조차 제때 못내는 저를 문제아로 취급했고요. 거기에 비하면 대학시절에는 위상이 180도 바뀌었어요. 방송에 출연해 이름이 알려지고, 그 자신감으로 학교 행사 등에 나가 적극적으로 활동하니 대접이 다르더라고요. 자꾸 앞장을 서게 되고 단과대학 학생회장까지 당선됐으니까요. 또 자꾸 마이크를 잡다보니 말솜씨도 늘더라고요. 소규모 행사와 가요제 MC까지 맡았으니까요. 김병찬 선배는 대학 교수님들이 먼저 만남을 주선해주셨어요.

김병찬은 충북대학교 경영대학 선배다. 조영구는 회계학을, 김병찬이 경영학을 전공했다. 조영구가 캠퍼스 MC로 이름을 알리자 경영학과 교수들(이장희 서도원)이 같은 단과대 출신인 김병찬을 소개했다. 아예 김병찬처럼 방송사 아나운서로 진출해 학교 명예를 드높여달라는 부탁이었다. 조영구는 단과대 학생회장에 당선된 뒤 용기를 내 김병찬을 학교로 초빙했다. 당시 스포츠캐스터와 예능 MC로 최고 인기 아나운서였던 김병찬은 로드매니저 이상으로 그림자처럼 따르는 그를 친동생처럼 보살피며 방송진출을 위한 토양을 만들어줬다.

-방송에 발을 들여놓은 뒤 교양정보 리포터와 예능프로그램 MC로 빠르게 입지를 다지면서 여러가지 사건 사고나 웃지못할 해프닝에 휘말리기도 했다.

-호사다마라고 하잖아요. 너무 잘 나가니 엉뚱한 표적이 될 때가 있더군요. 2000년도 젝스키스가 기자회견으로 해체를 발표한 직후 서울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드림콘서트' 고별 무대를 했어요. 아쉬움 속에 5만 명의 팬심이 운집할 만큼 엄청난 인기였죠. 저는 당시 연예정보 프로그램(SBS '한밤TV) 리포터로 이슈 현장을 누빌 때였는데 해체에 화가 난 젝스키스 팬들이 제 승용차(그랜저 XG)를 박살낸 적이 있어요. 소속사인 DSP 미디어 이호연 대표이사 소유차로 오인한거죠. 차량이 완파돼 소속사가 배상해주긴 했는데 한동안 아이돌 팬심이 무서워 현장 취재가 위축되기도 했어요.

조영구는 SBS 조용필 모창대회에서 1등을 하고 당시 최고 인기였던 주병진쇼에 게스트로 출연하면서 연예계 진출에 대한 자신감을 키웠다. 사진 위는 오는 6월6일 무대에 올릴 조영구 이병철의 효콘서트 투맨쇼 포스터. /임영무 기자
조영구는 SBS 조용필 모창대회에서 1등을 하고 당시 최고 인기였던 '주병진쇼'에 게스트로 출연하면서 연예계 진출에 대한 자신감을 키웠다. 사진 위는 오는 6월6일 무대에 올릴 조영구 이병철의 효콘서트 '투맨쇼' 포스터. /임영무 기자

-연예가를 발칵 뒤집었던 연예가X파일 사건으로 논란의 도마에 올라 활동을 일시 중단한 적도 있다. 스타들의 사생활 문건은 지금도 후유증이 크다.

스포츠신문 연예기자들을 포함해 KBS '연예가중계' 김생민과 SBS '한밤의 연예TV' 리포터였던 제가 문건 작성 가담자(구술자 10명)로 오해를 받았는데 전혀 사실과 달라요. 사실 저는 광고대행사 관계자들을 만나러 갔다가 미확인 소문을 자꾸 캐묻길래 '저는 확인된 사실 외엔 말씀 드릴 수 없다'며 거부하고 나왔거든요. 당시 여론몰이 희생자로 엄청난 피해를 봤지만 저는 지금도 당당해요. 진실이 왜곡된 데다 전혀 사실과 달랐으니까요. 후에 그 장면이 담긴 영상이 증거로 확보됐기 때문에 대부분의 방송사 관계자들 만큼은 모두 저를 믿어줬어요.

연예가X파일 사건으로 조영구는 11개 프로그램에서 도중하차 해야했다. 방송관계자들은 그의 억울함을 확인하고도 '시끄러우니 좀 쉬라'는 입장이었다. 이 파일은 2005년 당시 J 광고기획사가 관여해 작성한 문건으로, 정식 명칭은 '광고 모델 DB 구축을 위한 사외 전문가 Depth Interview 결과 보고서'다. 해당 광고대행사는 모델(연예인) 데이터 베이스를 구축하기 위해 동서리서치에 의뢰해 연예계에 정통한 인물 등을 대상으로 연예인들의 정보를 수집했다. 총 99명에 달하는 연예인들의 위상과 비전, 매력, 재능, 그리고 자기관리에 대해 항목을 나눠 별점으로 점수를 매겼다. 훗날 증권과 지라시 형태의 새로운 X파일을 양산하는 토대가 됐다.

-마지막으로 연예계 데뷔 26년간 쉴새없이 달려오면서 가장 아쉬웠던 건 뭔가. 앞으로 이루고 싶은 소망이 있다면 그 부분도 말해달라.

저는 데뷔 후 누구보다 성취감을 많이 맛봤어요. 뭔가를 일궜다는 자부심도 있어요. 빈손으로 출발했기 때문에 한번 인연이 닿으면 놓치지 않기 위해 남들보다 더 열심히 뛰고, 공을 많이 들였어요. 아쉬움은 앞만 보고 달리다 보니 가정에 소홀했다는 게 가장 크죠. 저는 잘 하지 못했는데 정작 제가 힘들고 어려울 때는 아내와 아들의 응원이 큰 힘이 되더군요. 그래서 가족들과 주기적으로 여행을 떠나고 힐링하는 시간을 많이 만드려고 해요. 소망이라면 연예인축구단 회오리 멤버인 가수 이병철과 6월에 효콘서트 '투맨쇼'를 준비 중인데 첫 단추를 잘 꿰고 싶어요. 제가 10여년 전 처음 음반 내고 혼성그룹으로 활동했던 멤버라 특별한 애착이 가는 친구죠.

어머니에 대한 소망도 밝혔다. 그의 어머니 안정숙 여사는 팔순의 나이에도 수십년째 장애우시설 등에서 목욕과 빨래 등 자원봉사자로 활동하고 있다. 조영구는 "아버지가 일손을 놓은 이후 평생 자식들 생계를 책임 지느라 온갖 고생을 하시면서도 '우리보다 더 힘든 이웃이 많다'며 늘 남을 도와주셨다"고 말했다. 그는 "제가 유명해진 뒤엔 그런 어머님을 도와 종종 MC도 보면서 재능기부를 하곤 했는데 앞으로는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더 적극 동참하겠다"면서 "여건이 좀더 주어진다면 '안정숙 장학재단'을 만들어 운영하고 싶다"는 뜻도 내비쳤다.

힘들고 어려울 때, 가족의 응원이 가장 큰 위로. 조영구는 가족들과 주기적으로 힐링하는 시간을 갖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은 아내 신재은과 아들 조정우 군과 다정한 한때. /조영구 제공
"힘들고 어려울 때, 가족의 응원이 가장 큰 위로." 조영구는 "가족들과 주기적으로 힐링하는 시간을 갖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은 아내 신재은과 아들 조정우 군과 다정한 한때. /조영구 제공

조영구는 인내와 끈기, 노력과 땀으로 연예계 입지를 굳힌 자수성가형 연예인이다. 그럴수록 늘 감사한 마음으로 주변에 메시지를 던진다. 때론 자가발전 칭찬도 아끼지 않는다. "보잘것 없는 제가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고 대중 스타로 자리매김한 것이 그저 자랑스럽고 고맙죠."

그의 연예계 인생에서 딱 한명 빼놓을 수 없는 주인공이 있다. 다름아닌 KBS 아나운서 출신 김병찬 MC다. 대학시절 김병찬을 만난 뒤 처음으로 방송인의 꿈을 키웠다. 그는 졸업후 대기업 입사를 포기하고 '김병찬 바라기'로 방송사 주변을 맴돌았다. 훗날 MC로 승승장구하는 탄탄한 생존력의 비결이 됐다.

인생이 모두 순탄할 수만은 없다. 그에게도 힘든 시기가 있었다. 주식투자로 거액의 손실을 봤을 때는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했다. "2000만 원을 투자해 보름만에 1000만 원을 벌었죠. 쉽게 돈을 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빠져들더군요." 차츰 무리수를 두면서 큰 돈을 잃었다.

그가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역시 사랑하는 가족이다. 주식이 한 순간 좌절로 몰고 갔지만 그게 삶의 전부가 아니란 걸 깨닫는 순간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조영구는 "사람이 살면서 평탄하고 완만하게 걸어가기만 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면서 "비온 뒤 땅이 굳는 것처럼 오히려 더 소중한 것을 되찾았다"고 말했다. 그는 인터뷰 내내 진지함과 유쾌함을 쉼없이 분출했다. 마이크 앞에서 내뿜는 달변 MC와는 또다른 모습으로 소탈하지만, '작은 거인'처럼 굳건해보였다.

eel@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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