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독자 여러분들께서도 복 많이 받으세요."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는 익살꾼 '뽀식이'로 안방극장을 휘젓고 있는 이용식은 "작은 배려가 세상을 따뜻하게 한다"면서 "겸양의 미덕은 연예계 선배인 남진 형님을 통해 수시로 배운다"고 말했다. /남용희 기자 |
송해 유재석과 함께 '안티 없는 3대 예능인'으로 44년...트로트 음반 '여백인생'도 곧 발표
[더팩트|강일홍 기자] 방송인 이용식(67)이 갖고 있는 상징 이미지는 배불뚝이 '뽀식이'다. 실제 이름보다 더 자주, 더 친근감 있게 와닿는 별칭이기도 하다. 방송 데뷔 이후 MBC 어린이프로그램 '뽀뽀뽀'에서 19년간 '뽀식이 아저씨로' 출연하면서 생긴 꼬리표다.
이용식은 수십 년간 변함없는 익살꾼으로 안방을 휘젓고 있다. KBS1 '아침마당'에 비친 그의 감초 이미지는 세월을 거슬러 어린이로 다시 돌아간 듯 천진난만한 개구쟁이 모습 그대로다. 지금은 학부형이 된 '3040시청자'들에게 여전히 '익살꾼 뽀식이'의 짙은 추억과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사랑받는 이유다.
개그맨 중에서는 최초로 공채를 거쳐 방송에 데뷔한 '1세대 예능인'이지만, 사실 그는 가수로 먼저 출발했다. 71년 언더그라운드 라이브클럽에서 포크 팝 가수로 활동하다 이듬해 연극무대로 진출했고, 75년 MBC 방송개그콘테스트를 통해 정식으로 방송계에 입문했다. 어린이 프로그램을 하는 동안 그는 매년 캐롤송 음반을 내 히트시킨 바 있다.
노래와 연기, MC까지 그는 스스로 '원조 만능엔터테이너'임을 자부한다. 컬러TV의 전성기를 이끌며 '웃으면 복이와요' '일요일 밤의 대행진'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등 당대 최고의 예능프로그램을 종횡무진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방송인으로 꾸준한 역량을 발휘한다. 그의 44년 방송 인생을 들여다봤다. 스페셜 인터뷰는 연초 서울 여의도 한 카페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나이를 먹을수록 고운말 따뜻한 말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이용식은 "송해 유재석과 함께 '안티 없는 3대 예능인'으로 불린다는 사실만으로 행운아"라고 말했다. 스페셜 인터뷰는 지난 2일 서울 여의도 한 카페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남용희 기자 |
-44년간 방송인으로 활동하면서 무한 사랑을 받고 있다. 방송가에선 송해 유재석과 함께 '안티없는 3대 예능인'으로 불린다.
2020년 새해가 밝았어요. 우선 더팩트 독자 여러분들께서도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안티 없는 연예인'이란 사실만으로 이미 저는 행복합니다. '악플보다 무플이 더 괴롭다'는 말도 있지만 연예인으로 살면서 악성댓글이 없다는 건 행운이죠. 어른이 되고 나이를 먹을수록 고운말, 따뜻한 말을 하려고 늘 노력해요. 사실은 연예계 대선배이신 가수 남진 형님한테 얻어배운 인생지침이에요. 남진 형님은 스타라고 해서 누구한테든 갑질하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어요. 후배들한테 항상 부드럽고 인간적인 말로 다독여주고요. 아무리 스케줄에 쫓겨도 팬들이 요청하면 언제든 사인해주고 사진도 찍어줍니다. 제가 어느 순간부터 그걸 따라해보니 맘만 먹으면 결코 어려운 일은 아니더라고요.
이용식은 익살꾼으로 44년간 잔뼈가 굵은 방송인답게 누구한테나 살갑고 편안하다. 그에게 굳은 이런 이미지는 언제 어디서든 만나는 사람들한테 똑같이 대하는 배려에서 묻어난다. 그는 방송관계자나 연예계 동료들은 물론이고 처음 보는 팬들에게도 깎듯이 대한다. 대중스타가 되기 이전부터 실천해온 삶의 신조다. 이용식은 "제가 군복무를 마친 지가 40년이 훨씬 넘었는데 군복무 시절 후임자가 '군생활을 하며 인간적으로 대해줘 지금도 감사하다'는 편지를 보내왔다"면서 "위든 아래든 내가 먼저 존중하고 예의를 갖추면 저절로 행복해진다"고 말했다.
-20대 시절 언더그라운드 포크가수로 활동한 적이 있는데 최근 음반을 준비 중이란 소식을 들었다. 긴 시간을 돌고 돌아 다시 노래를 하게 된 소감이 궁금하다.
연예인을 흔히 탤런트라고 통칭해 부르잖아요. 탤런트는 노래를 부르든 춤을 추든 충만한 끼를 어떤 방식으로든 표출할 수밖에 없죠. '배우' '가수' 'MC' 등 역할이 달라보여도 사실은 하나라고 생각해요. 편의상 다르게 분류돼 불릴 뿐 알고 보면 품은 기질은 같으니까요. 1인 다역을 한다는 건 요즘 기준으로 치면 멀티 엔터테이너인 셈인데요. 저 역시 방송에 데뷔 전까지 노래를 불렀고, 이후엔 줄곧 방송 예능인으로 활동했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을 포기한 적이 없어요. 다만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쫓아갈 여력이 안 됐을 뿐이죠.
이용식은 현재 트로트 음반 '여백인생'을 녹음 중이다. 이르면 이달 중 음반을 내고 활동한다는 목표다. 진성의 히트곡 '보릿고개'를 쓴 작곡가 김도일이 이용식을 위한 맞춤형으로 심혈을 기울인 곡이다. 60대 후반에 접어든 이용식의 인생과 빗대 건강하고 활기에 넘치는 중장년의 꿈을 펼쳐간다는 의미를 담았다. '♩♭어둠이 짙다고 새벽이 아니올쏘냐/ 봄이 멀다고 봄날이 아니올쏘냐/ 단 한번 인생의 꽃피는 날 위해 힘차게 신나게 달려라 답이 있단다~♬'
이용식은 100kg 이상의 거구임에도 늘 빠듯한 스케줄을 소화하느라 날렵하게 움직인다. 그는 "평생 왼손에 걸레 오른 손에 빗자루를 들고 사셨던 어머님의 DNA를 받았다"며 "팔자인 걸 어떡하느냐"고 말했다. /남용희 기자 |
-반세기 가까이 예능인으로 살면서 보람과 함께 아쉬움도 많을 것 같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연예계에 진출해 너무 과분하게 많은 사랑을 받았어요. 고맙고 행복한 만큼 한편으론 그래서 미안할 정도입니다. 보람이라면 누군가를 위해 봉사하며 살 수 있다는 거죠. 그게 바로 행복이고 기쁨입니다. 앞으로도 저를 통해 즐거웠으면 해요. 아쉬움이요? 왜 없겠어요. 항상 느끼는 거지만 50대 이상 중장년 세대가 함께 즐길 프로그램이 턱없이 부족하다는거죠. 특히 노년층은 시끄러운 음악이나 예능토크에 관심이 없어요. 가장 필요한 방송 소재가 바로 코미디인데 세대가 바뀌어갈수록 출구가 막혀있는 것만 같아 항상 답답하고 아쉽죠.
이용식은 개그 1세대 좌장답게 누군가를 웃기지 못하면 스스로 만족스럽지 못해 우울해질 만큼 뼛속부터 개그맨이다. 그는 "나홀로 빛나는 스타보다는 감초이미지로 더불어 상생하는 연예인이길 희망한다"고 말한다. 겸손함이 몸에 밴 데는 데뷔 직후 "가인은 대중의 조명을 받기 전에 인간이 먼저 돼야한다"는 가설극단시절부터 전해지는 대선배들의 말을 금과옥조처럼 되새긴 덕분이다. 또 훗날 세상을 떠나면 자신의 묘비명에 새길 글자도 미리 준비해뒀다. 그는 "길고 난해하게 쓸 필요없이 '앗, 더 웃길 수 있었는데'라고 한 마디면 족하다"고 했다.
-연예계 대표적인 뚱보 캐릭터인데 건강을 위해 다이어트를 해볼 생각은 없는지 궁금하다.
역시 강 기자님은 연예계 베테랑답게 찔러보는 감각도 다르네요. 안 그래도 그 일로 요즘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거든요. 몸무게가 한계치를 벗어났거든요. 수십년간 90kg 안팎이던 몸무게가 100kg을 훌쩍 넘어가면서 감당하기가 힘들어졌어요. 건강을 위해 담배를 끊었더니 20kg 가까이 늘어나더라고요. 지금은 108kg인데 그래서 새해 시작하자마자 특별한 다이어트 계획을 실천하고 있어요. 매월 1kg씩 올 연말까지 총 12kg을 줄일 각오입니다. 꾸준한 걷기운동으로 땀을 흘리고, 식단조절에 사활을 걸고 있습니다. 지금은 처음이라 좀 힘들긴 해도 각고의 노력과 의지로 포기하지 않으면 목표를 달성할 자신이 있어요.
이용식은 20년 전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죽을 고비를 넘었다. 관상동맥이 갑작스럽게 막혀 심장근육이 마비되는 무서운 상황을 맞았지만 그는 비교적 빠르게 병원 응급실로 달려간 덕분에 무사했다. 물론 원인은 비만이다. 바쁜 방송 스케줄에 쫓겨 운동을 거의 하지 못한데다, 뚱보 캐릭터를 유지한다는 핑계 속에 체중관리도 되지 않았다. 심근경색 수술후 기적적으로 새삶을 찾고도 담배를 끊지 못했다. 의지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7년 전 '제발 담배를 끊게 해달라'는 딸의 간절함에 울컥해 실천했듯이 그는 이렇게 새해 결심한 다이어트 목표를 필히 완수하겠다는 각오다.
"누군가에게 웃음을 준다는 사실이 기쁨이고 보람". 이용식은 2년 전인 2018년 4월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이용식의 코미디극장&쇼'를 오픈했다. 수지타산을 맞추지 못해 문을 닫았다가 재오픈을 준비중이다. /더팩트 DB |
-딸 이수민씨에 대한 부정(父情)은 소문이 났을 만큼 각별하다. 연예인이란 신분을 떠나 한 가족의 가장으로서 그 느낌이 궁금하다.
자식 가진 부모 마음이야 다 똑같죠. 제가 좀 유별나게 딸에 대한 애정표현을 하는 데는 이유가 있어요. 보통 가정의 부부들과 달리 길고 힘든 시련을 겪은 끝에 낳다 보니 저도 모르게 딸 얘기만 나오면 울컥해지곤 해요. 사실 이제사 말씀드리면 우리 부부는 결혼 후 7년 동안 서로 말을 하지 않고 살았어요. 신혼이고 뭐고 알콩달콩 행복했던 기억도 거의 나질 않아요. 백방으로 뛰어다니고 노력해도 아이가 잉태가 되지 않으니 어느 순간 온기 없는 썰렁한 집안 분위기가 되더라고요. 입양 계획까지 세워놓고 포기한 상태였는데 꿈에 그리던 딸 수민이가 우리한테 나타난거죠.
그의 딸 이수민은 결혼 8년 6개월만에 탄생했다. 이용식은 "2세를 갖기 위해 전국의 병의원을 수소문하고 다녔을 정도로 그야말로 해볼 건 다 해봤다"고 했다. 아내는 당시 서울 평창동 연예인교회(현 예능교회) 권사이던 배우 故 강효실 씨(최민수 어머니)를 따라 철야기도를 했고, 신실한 불자인 그의 장모님은 유명 사찰을 찾아다녔다. 이용식은 "당시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라 뭐라도 붙들고 매달리고 싶은 심정이었다"면서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아마도 그런 우리 부부가 너무 불쌍해서 수민이를 점지해준 것같다"고 말했다.
이용식의 인생모토는 '양보'와 '배려'. 익살꾼으로 44년간 잔뼈가 굵은 방송인답게 누구한테나 살갑고 편안하다. 그에게 굳은 이런 이미지는 언제 어디서든 만나는 사람들한테 똑같이 대하는 배려에서 묻어난다. /남용희 기자 |
-지난해 서울 청담동에 장외 웃음무대 '코미디클럽'을 야심차게 오픈했다가 문을 닫았다. 어떤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었나?
평생 누군가에게 웃음을 준다는 사실이 기쁨이고 보람입니다. 안타깝게도 최근 몇년 사이 현실적인 벽을 실감해요. 방송 출연기회가 줄어들고, 다양한 형태의 콘텐츠가 SNS를 통해 실시간 공유되면서 갈수록 설자리를 잃고 있어요. 그래서 착안한 것이 사재를 털어 장외무대를 만든 것인데 역시 수지타산을 맞추는 일이 만만찮네요. 유지하는데 발생되는 비용과 수익 격차가 너무 커 결국 1년만에 문을 닫았어요. 그렇다고 완전히 포기한 건 아니고, 양주 외에 소주와 생맥주를 메뉴로 추가해 젊은층들도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게 콘셉트를 바꾸려고 해요.
이용식은 2년 전인 2018년 4월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이용식의 코미디극장&쇼'를 오픈했다. 지상파 방송사들이 개그 프로그램을 잇달아 축소·폐지하면서 갈 곳이 없는 후배 개그맨들에게도 희망의 무대였다. 이용식은 당초 "무대에 서고 싶은 후배들은 언제든지 와서 공연 할 수 있도록 개방하려 한다"고 오픈 배경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강남 한복판의 살인적 임대료 등으로 1년 만에 문을 닫아야 했다. 당초 중장년 나이대에서 30~40대로 문턱을 낮춰 재오픈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이용식은 소리소문 없는 '남몰래 기부활동'은 물론 매년 연말이면 병원에서 투병 중인 환우들을 찾아 익살 재능기부를 펼쳐왔다. 사진은 2년전 연세대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재능기부하던 당시. /더팩트 DB |
'뽀식이' 이용식은 가슴이 따뜻한 연예인이다. 소리소문 없는 '남몰래 기부활동'을 많이 하고, 매년 연말이면 병원에서 투병 중인 환우들을 찾아 익살 재능기부를 펼쳐왔다. 그는 "환우들과 웃으며 함께 힐링하다 보면 고생하는 의료진들의 노고에도 보답하는 1석2조의 효과가 생긴다"고 말했다.
108kg의 거구임에도 늘 빠듯한 스케줄을 소화하느라 날렵하게 움직인다. 주변에서 "왜 그렇게 일을 많이 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 그는 그 이유에 대해 "평생 왼손에 걸레 오른 손에 빗자루를 들고 사셨던 어머님의 DNA를 받았다"며 "팔자인 걸 어떡하느냐"고 반문했다.
이용식은 6.25 전쟁 중이던 1952년 태어났다. 황해남도 은율이 고향인 그의 부모와 가족들은 경기도 옹진으로 피난 온 뒤 그를 낳았다. 외삼촌과 작은 아버지가 인민군에 끌려가 총살을 당하고, 선친은 월남 후 북파공작원(육군 상사)으로 활동한 집안 내력이 있다. 기억에도 없는 짧은 유년기 시절을 거쳐 청소년기 이후엔 주로 인천과 서울에서 살았다.
이에 대해 이용식은 "남모르게 담아둔 아픈 가족사 때문에 더 유쾌한 모습으로 비치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는 '재롱둥이' 이미지는 아마도 이런 마음속 다짐과도 무관치 않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도 그는 '양보'와 '배려'를 수차례 강조했다. 이런 겸손과 낮은 자세는 구수한 입담으로 승화돼 '영원한 희극인'의 면모로 반짝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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