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일홍의 스페셜인터뷰67-박상철] '노숙자'서 '국민 오빠' 인생 역전
입력: 2019.12.09 06:01 / 수정: 2019.12.09 06:38
너무 평범해서 남보다 두 배 더 노력해야 했다. 박상철은 데뷔 무렵부터 늘 목소리 콤플렉스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는 분위기를 띄우는 데는 조용한 발라드 트로트보다 시끄러운 록 트로트가 유리하다는 판단을 했다고 말했다. /이동률 기자
"너무 평범해서 남보다 두 배 더 노력해야 했다." 박상철은 데뷔 무렵부터 늘 목소리 콤플렉스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는 "분위기를 띄우는 데는 조용한 발라드 트로트보다 시끄러운 록 트로트가 유리하다는 판단을 했다"고 말했다. /이동률 기자

가수 데뷔 후에도 오랜 재연배우 활동 '눈물젖은 빵'

[더팩트|강일홍 기자] 가수 박상철(50)은 '트로트 황태자'로 불린다. '자옥아'에 이어 '무조건'이 대박 히트를 내면서 이런 별칭을 얻었다. '대한민국 노래방 애창곡 가수 순위' 중 트로트 분야 1위를 기록할 만큼 부르는 노래마다 히트로 이어졌다. 그의 노래는 대부분 경쾌한 리듬과 빠른 박자, 그러면서도 가창력이 필수다.

그는 학창시절부터 품고 있던 가수 꿈을 펼치기 위해 온갖 고난과 역경을 견뎠다. 군 특전사 출신인 박상철은 "가수만 될 수 있다면 어떤 힘든 일도 다 견뎌낼 자신이 있었다"고 말했다. 막노동과 일용직 등 해보지 않은 일이 없고, 미용사 자격증을 따 '박상철 헤어아트'를 개업하기도 했다. 노숙자 시절의 어려움도 겪었다.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작곡가 사무실을 오가며 노래연습은 늘 게을리 하지 않았다. 가수 꿈이 현실로 다가온 계기는 93년 7월 KBS '전국노래자랑' 강원도 삼척 편에 출연한 직후다. 가수 배일호의 소개로 유명 트로트 작곡가 박현진과 만나 미용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가수의 길을 걷는다. 배일호는 당시 '전국노래자랑' FD로 활동 중이었다.

하지만 '자옥아'로 주목을 받기까지 그도 오랜기간 '눈물젖은 빵'을 먹었다. 무명을 하루빨리 탈출하기 위해 동대문의 두타, 밀리오레 등 길거리 행사장에도 자주 출연했다. 그의 집념은 통했고, '무조건'이 연달아 히트하며 일약 인기가수로 발돋움한다. 그리고 장윤정 박현빈과 함께 '트로트계 신트로이카'로 떠오른다. 그의 가요인생을 직접 들어보기 위해 이번주 스페셜 인터뷰이로 초대했다. 인터뷰는 지난 5일 서울 상암동 <더팩트> 사옥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박상철은 기존 트로트 가수들과 차별화기 위해 라이브에 유리한 자신만의 록 창법 스타일을 구사하게 됐다고 밝혔다. 인터뷰는 지난 5일 서울 상암동 <더팩트> 사옥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이동률 기자
박상철은 기존 트로트 가수들과 차별화기 위해 라이브에 유리한 자신만의 록 창법 스타일을 구사하게 됐다고 밝혔다. 인터뷰는 지난 5일 서울 상암동 <더팩트> 사옥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이동률 기자

-방송 프로젝트 프로그램을 통해 최근 트로트 신인가수로 변신한 유재석에게 '원포인트 레슨'을 하며 후견인을 자처했다. 느낌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올해 트로트계 이슈 중 하나는 송가인을 빼놓을 수 없는데요. '유산슬'이란 이름으로 데뷔한 유재석 씨도 요즘 화제죠. 음악적으로는 완성도가 떨어지는 수준이지만, 방송가에 바람몰이를 탄 뒤 일약 관심사로 떠올랐기 때문이죠. 처음 가녹음 상태의 노래를 듣고 제가 혹평을 좀 했는데 솔직히 시원찮았거든요. 그후 연습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녹음실에서 제대로 부른 걸 보고 놀랐어요. 마이크 경험이 많고, 자신감이 넘쳐서 그런지 습득시간이 엄청 빠르더라고요. 아마추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나름 기대치를 확인해줬어요. 그냥 방송스타가 아니라는 걸 실감했어요.

박상철은 얼마 전 MBC 예능프로그램 '놀면 뭐하니?-뽕포유'에서 유재석과 짧지만 강렬한 호흡을 맞췄다. '놀면 뭐하니?'는 신인가수 유재석을 중심으로 시작된 트로트가수 데뷔 프로젝트다. 유재석은 이 방송을 통해 '유산슬'이란 이름으로 트로트곡 '합정역 5번 출구'를 발표했다. 그리고 장터 버스킹 등 박상철로부터 표정과 손짓 등 무대 안무를 배우며 자신감을 키워가는 모습이 눈길을 모았다. 특히 박상철의 파워풀하고 박진감 넘치는 무대 매너에 유재석은 "역시 국민가수"라며 감탄을 연발하기도 했다.

-지금은 '트로트 황태자'로 불리지만 데뷔 직전까지는 오랜 무명설움을 겪으며 '눈물젖은 빵'을 먹었다고 들었다.

어려서부터 가수 꿈은 있었지만 그 꿈을 이루기엔 상황이 늘 녹녹치 않았어요. 군복무를 마치고 무작정 상경해 일용직을 전전하면서 작곡가 사무실을 들락거렸죠. 돈이 좀 모이면 작곡가를 찾아가고 돈이 떨어지면 다시 공사장 일용잡부로 내몰리곤 했어요. 그나마 일거리가 없을 땐 갈 곳이 없어 노숙자 생활도 했야했어요. 키도 작고 강원도 사투리에 촌티까지 나니 열정은 있어도 가수 되기가 쉽지 않았던 거죠. 천신만고끝에 메들리테이프를 냈지만 시중에 유통조차 안 됐어요. 저한테는 정식 음반이라고 했기 때문에 그런줄만 알고 제 모든 걸 걸었어요. 결과적으로는 사기를 당한 셈입니다.

박상철은 미용사 자격증을 취득해 한동안 '박상철 헤어아트'의 미용사로 지냈다. 그 시기 상황에 대해 그는 "한순간 노숙자 처지가 돼보니 안정적인 생활을 하면서 가수 꿈을 키우려면 뭔가 기술을 배워야겠다는 결심이 섰다"고 했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가 다시 찾아왔다. '전국노래자랑' 강원도 삼척 편(강원도 삼척편 최우수상)에 출연을 계기로 묻어뒀던 가수 꿈이 꿈틀거렸다. 송대관의 '네박자', 배일호의 '99.9', '신토불이' 등을 쓴 유명 작곡가 박현진으로부터 경쾌한 리듬을 가진 '부메랑'이란 곡을 받아 정식 가수로 데뷔한다.

수많은 세월 남모르는 물밑 담금질. 박상철은 가수 데뷔 후에도 이름을 알리기 위해 이것이 인생이다 TV는 사랑을 싣고 사랑과 전쟁 타임머신 신비한TV 서프라이즈 등 수많은 방송프로그램에서 재연배우로 활약했다. /이동률 기자
수많은 세월 남모르는 물밑 담금질. 박상철은 가수 데뷔 후에도 이름을 알리기 위해 '이것이 인생이다' 'TV는 사랑을 싣고' '사랑과 전쟁' '타임머신' '신비한TV 서프라이즈' 등 수많은 방송프로그램에서 재연배우로 활약했다. /이동률 기자

-가수로 이름값을 내기 시작한 건 '자옥아' 아닌가. 이후에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무조건'이 히트했다.

순진하게도 이름난 작곡가의 곡을 받기만 하면 바로 유명해질 줄 알았어요. 그때나 지금이나 신인가수가 명함을 내밀고 가요계에 발돋움한다는 건 바늘구멍 뚫기입니다. 기획사 없이 '독립군 가수'로 활동하다 보니 노래를 틀어주는 곳이 거의 없었어요. 데뷔곡 '부메랑'은 저한테 실패라는 아픈 기억과 함께 각오를 더 단단하게 해준 곡이기도 해요. 2002년 가을 박현진 선생님한테 두 번째 곡을 받았는데 앞서 가수 이태호가 부른 '자옥아'를 리메이크한 곡이에요. 매니저도 없이 혼자서 방송 3사 라디오국을 열심히 쫓아다니며 홍보를 했는데 땀 흘린 만큼 반응이 오면 마냥 신이 났어요.

-출발은 재연배우로 출발해 정극 드라마에까지 활약하면서 연기자로서도 주목을 받지 않았나.

팬들이 요즘도 재연 배우 시절 얘기를 많이 해요. 사실 연기활동은 가수로 생존하기 위한 방편이었어요. '부메랑'에 이어 '자옥아'를 발표한 뒤엔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이름 석자를 알려야한다는 생각 뿐이었거든요. 무명가수가 TV에 나가 얼굴을 내밀 기회는 없고, 드라마 단역이라도 자주 나가면 언젠가는 이름이 알려질 것같았어요. 무식하면 용기가 있다고 하잖아요. 무작정 방송사 재연드라마 제작진을 찾아가 부탁을 했어요. 처음엔 어이없다는 표정이었지만, '용기가 가상하다'며 기회를 주더라고요. '타임머신'이란 프로그램이었는데 어설픈 연기가 오히려 역할을 더 실감나게 표현했다는 평을 들었고, 이후 수 백 편의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하며 연기자로 활동하게 됐죠.

박상철은 '뉴 논스톱' '이것이 인생이다' 'TV는 사랑을 싣고' '사랑과 전쟁' '타임머신' '신비한TV 서프라이즈' '솔로몬의 선택' 등 수많은 예능 교양프로그램의 재연배우로 활약했다. 탄탄하게 연기력을 쌓은 뒤엔 영화는 물론 정극드라마 '아내의 유혹' '내사랑 못난이' '경숙이 경숙아버지' 등에서도 주요 배역을 맡아 당당히 출연했다. 인지도가 생긴 뒤 각종 리포터로도 활동했으며, 13년간 KBS '6시 내고향'에서 활약하며 최우수리포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는 "출발 당시엔 누구도 제가 신인가수인지 재연배우인지 분간을 못할만큼 미미했다"면서 "순서는 바뀌었어도 가수로 이름을 알리는데 연기활동은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트로트 황태자로 불리는 박상철은 노래방 애창곡 가수 순위 중 트로트 분야 1위를 기록할 만큼 부르는 노래마다 히트하는 이변을 일으켰다. 왼쪽부터 박상철 태진아 송대관 장윤정 강진. /더팩트 DB
'트로트 황태자'로 불리는 박상철은 '노래방 애창곡 가수 순위' 중 트로트 분야 1위를 기록할 만큼 부르는 노래마다 히트하는 이변을 일으켰다. 왼쪽부터 박상철 태진아 송대관 장윤정 강진. /더팩트 DB

-트로트 가수들 중에선 가창 스타일이 특별하다. 애잔한 느낌을 주는 일반 트로트와는 창법이 좀 다른 건 아닌가 궁금하다.

맞아요, 제대로 보셨습니다. 같은 트로트 장르라도 제 노래는 엄청 시끄럽고 요란합니다. 보통은 트로트에 발라드를 살짝 얹거나, 디스코를 가미해 애잔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데 저는 강한 록을 섞어 부르기 때문입니다. '자옥아' '무조건' '황진이' 등 거의 제가 부르는 대부분의 노래가 좋게 표현하면 시원시원하지만, 가끔은 저 자신도 듣기 불편할 만큼 숨차고 거센 편이에요. 그래서 저는 트로트 가수로는 드물게 여름 해변 록페스티벌에도 자주 초청받습니다. 아무래도 젊은층 팬들이 많고, 분위기를 띄우는 데는 조용한 트로트보다는 시끄러운 트로트가 유리하니까요.

박상철은 데뷔 무렵부터 늘 목소리 콤플렉스에 시달렸다고 한다. 워낙 목소리가 색깔이 없고 평범해 스스로 가수로는 적합치 않다는 결론을 냈을 정도다. 이를 커버하기 위해 록 스타일로 크게 내지르는 방식을 택했다. 데뷔 당시 박현진 작곡가와도 다양한 창법을 놓고 상의를 했다. 그렇게 해서 갈라지고 끓는 듯한 지금의 '박상철표' 가창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그는 "원래 그대로 평범하게 부르면 다른 가수와 전혀 차별화가 안돼 주목을 받을 수가 없었다"면서 "피나는 연습을 통해 라이브에 유리한 저만의 스타일로 록 창법을 구사하게 됐다"고 말했다.

-각종 행사 출연료 등 몸값이 높은 가수 중 한명인데, 데뷔 후 한번도 소속사를 옮기지 않은 의리파로 소문이 나 있다.

작은 이해타산을 좇다 더 큰 걸 잃는 일은 많습니다. 주변에서 그런 사례를 많이 봐왔고, 그래서 저는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항상 노력합니다. 데뷔시절 힘들고 고단했던 기억을 잊는 순간 화려해보이는 대중적 인기는 겉모양만 남는다고 믿습니다. 뜨고 나면 힘들고 고단했던 시절을 빨리 잊고 싶어한다고 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비록 힘은 들었지만 그런 시기가 없었다면 지금이 있을리 없잖아요. 그리고 저 혼자 잘나서 대중적으로 사랑받는 가수가 된 것도 아니고요. 이미 과분하게 많이 얻었는데 더 욕심내면 탈이 납니다. 조금씩 양보하고 나눈다고 생각하면 편하더라고요.

데뷔 초기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지만 아무도 그를 거들떠 보지 않았다. 스스로의 평가대로 그는 '작달막한 키에 평범한 목소리의 무명가수'였다. 당시 그의 손을 잡아 버팀목이 돼준 사람이 지금의 소속사 '박라인' 박진복 대표다. 박 대표와는 18년째 한솥밥을 먹고 있다. 그가 재연드라마 출연을 결심하고, 가수와 연기자를 병행하며 방송 리포터로 외도할 때도 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며 결론을 도출해준 파트너다. 그는 "역지사지란 말을 늘 가슴에 새긴다"면서 "힘들고 어려울 때 함께한 상대를 상황이 달라졌다고 바꾸는건 인간적 도리가 아니다"고 말했다.

원래는 조용한 발라드를 좋아해요. 박상철은 가수로 데뷔하면서 부득이 가창 스타일을 지금의 록트로트로 바꿨지만 서서히 정통 트로트쪽으로도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동률 기자
"원래는 조용한 발라드를 좋아해요." 박상철은 "가수로 데뷔하면서 부득이 가창 스타일을 지금의 록트로트로 바꿨지만 서서히 정통 트로트쪽으로도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동률 기자

-가요계에서는 '지역축제 넘버 원' 또는 '행사 섭외 1순위 가수'로 불린다. 신인 시절과 어떤 점이 가장 크게 달라졌는지 궁금하다.

어디를 가든 누구나 다 알아보고 반겨준다는 사실은 축복입니다. 신인 때는 그저 노래 한곡만 뜨면 세상을 다 얻을 것같은 기대와 희망으로 열심히 달리기만 하면 됐어요. 한데 막상 유명해지고 보니 저를 바라보는 시선이 너무 많아 처신하기가 쉽지않더라고요. 지방 행사장 무대에 서다가도 조금만 관객석 분위기가 썰렁하면 마음이 불안해집니다. 면 단위(신인급) 또는 시군 단위 가수(중급)를 거쳐 전국구 가수(톱스타급)가 되면서부터 갖게 된 스트레스이고 걱정거리죠. 노래 도중 몇사람이 자리를 뜨기만 해도 가슴이 철렁해집니다. 신인 때와 달리 행사장 전체 분위기나 흥행까지 생각할 만큼 저절로 책임감이 생기는 셈이죠.

박상철은 기존 스타일과 약간 다른 노래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중년의 나이가 된 이후 거칠고 빠른 록 트로트만 고집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실제 앞서 부른 '항구의 남자'를 통해 전 나이층을 관통하는 정통 트로트로 각광을 받았다. 현재 준비 중인 신곡 '버스 한대'(김병걸 작사 박현진 작곡)도 중년의 깊이있는 인생이야기를 담았다. 그는 "원래 저는 조용한 발라드를 좋아하는데 가수로 데뷔하면서 부득이 가창 스타일을 바꿨다"면서 "다행히 팬 반응도 나쁘지 않으니 점진적으로 장르 변화를 시도해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박상철은 방송인 이경규가 제작해 화제를 모은 영화 전국노래자랑에서 가수 꿈을 가진 미용사 박봉남 역(김인권)의 실제모델이다. /더팩트 DB
박상철은 방송인 이경규가 제작해 화제를 모은 영화 '전국노래자랑'에서 가수 꿈을 가진 미용사 박봉남 역(김인권)의 실제모델이다. /더팩트 DB

20여년간 '자옥아' '무조건' '황진이' '부메랑' '항구의 남자' 등을 히트시킨 박상철은 트로트계 싱어송라이터 가수다. '빵빵' '노래방' '빈깡통' 등을 직접 작사해 불렀고, '바람개비'(정일송) '장구야'(더나은) '어쩌나'(이조아) '손한번'(김다나) '못난이'(양양) 등의 곡을 썼다.

그는 엄청난 노력파다. 신인 때부터 전국을 직접 발로 뛰어다니면서 노래를 부르고 홍보한 이력은 그의 자랑거리이자 자산이다. 예능은 기본이고 시사뉴스프로그램, 심지어 야구중계 현장 등 지금도 언제 어디서든 자신이 필요한 곳이면 마다않고 달려간다. 행사 출연 기준 역시 개런티의 높고 낮음에 얽매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박상철은 또 뇌출혈로 쓰러져 투병중이던 선배가수 오기택을 5년간 남몰래 후원한 사실이 알려져 감동을 안겨준 바 있고, 개그맨 이경규가 제작해 화제를 모은 영화 '전국노래자랑'에서 가수 꿈을 가진 미용사 박봉남 역(김인권)의 실제모델이다. 그는 인터뷰 내내 트로트에 대한 열정을 가감없이 쏟아냈다. 그럴수록 필자의 눈에는 늘 겸손한 자세로 팬과 교감하는 그의 따뜻한 인간미가 도드라져보였다.

eel@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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